지역에서 본 세상

새해 첫 날부터 맛본 씁쓸한 친절

김훤주 2009. 1. 7.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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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 출근을 했습니다. 주차 타워에 차를 집어넣는데 보니 여태와는 다른 분이 건물 경비를 서시고 있었습니다. 고개도 더 크게 숙이고 인사도 더 크게 했습니다.

좀 이상했습니다. “새해 첫날이다 보니 경비 서시는 분들이 잠깐 휴가를 얻어 가고 용역 업체서 다른 사람이 나와 대신 근무를 해 주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튿날, 김주완 선배랑 신문사 건물에서 차를 타고 나오는데, “씁쓸하네…….” 이러셨습니다. 저는 왜냐고 물었겠지요. “전에 경비 서던 두 분 있잖아요, 짤렸어요.”

저는 당연히 한 번 더 왜냐고 물었습니다. “불친절하다고 그만두라 했다네요.” 저는 조금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그 분들이랑 정이 좀 들어서 그런 면도 있었을 겁니다만.

1.
이어지는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제가 몸 담고 있는 경남도민일보는 건물 전체 13층 가운데 3.4.5.6층만 소유하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여러 업체가 나눠 갖고 있습지요.

건물 관리를 위해 이런 여러 업체 대표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데, 어느 한 군데에서 경비원을 두고 문제제기를 했답니다. 드나드는 손님들이 경비원더러 불친절하다 한다고 말입니다.

물론 제가 보기에는 전에 있던 분들이 그리 불친절하지 않았습니다. 한 분은 조금 그런 경향이 없지는 않았지만, 다른 한 분은 전혀 그러하지 않았습니다.

이를테면 한 분은 자동차를 제 때 빼내주지 않으시거나 성의가 없어 보일 때가 없지 않았지만, 다른 한 분은 맡은 바 모든 일에 잘못이 없으셨고 열성도 보이셨습니다.

물론, 연세가 일흔 전후(순전히 제 짐작입니다만)이시기 때문에, 젊은 또는 덜 늙은 우리들을 좀 만만하게 대했을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 해도 말을 놓아 하시지는 또 않았습니다.

저는 이런 정도면 무난하다 여기고 있었는데, 다른 업체 사람은 그렇지 않았나 봅니다. 그래서 건물 관리소장이 권고사직 형식으로 자르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2.

포스터 글귀 “받은만큼 드릴게요”가 예사로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저도 씁쓸하네요.” 맞장구를 쳤습니다. 앞선 경비원 분들이 불친절한지도 잘 모르겠고, 또 그렇다 해도 그런 것이 해고 사유가 되는지도 모르겠어서 한 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불친절하다 해도 그렇다면 친절 교육을 다시 하든지 하는 과정이 필요하지, 추운 겨울 연말에 갑자기 그만두게 하면 도리에 맞지 않다고 생각해서 한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선배의 씁쓸함은 그것을 넘어서는 데 있었습니다. “훤주 씨도 그렇지요? 아까 그 아저씨 고개를 확 숙이면서 ‘안녕히 가십시오!’ 소리 내어 그러는데 참 기분이 씁쓸했어요.”

“새로 사람이 들어왔을 때 관리소장이 한 마디 했을 것 아닙니까? 앞에 사람들 왜 짤렸는지 말입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라 했을지도 훤하게 짐작이 되거든요.”

굳이 말을 더하지 않더라도, 김주완 선배 씁쓸함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충분히 짐작이 됐습니다. 일상적인 해고 위협 앞에 파르르 떨고 있는, 메마르고 강요된 친절이었던 것입니다.

3.
물론, 자본주의니까 그런 따위야 당연하지, 하시면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인 이상 자본주의 ‘너머’를 지향할 수밖에 없다고 여기는 저로서는, 참 참담한 노릇이었습니다.

24시간 맞교대로 몇 해 동안 일하다가, 바람 찬 한겨울 12월 30일과 31일 나란히 관리소장에게 불려가 해고 통보를 받는 일흔 어르신들 추운 어깨가 자꾸 떠올랐습니다.

나아가 그 분들이 1월 1일 새해 아침 일어나자마자 “아, 오늘부터는 일하러 나갈 데가 없어졌네…….” 이러면서 허전해 하셨을 장면도 눈앞에 저절로 그려졌습니다.

세상이 이대로 흘러간다면, 이것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언젠가는 겪을 수밖에 없는 국면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날 세상만사가 이냥저냥 허무해지고 말았습니다.

김훤주

중고령자 노동시장 국제비교연구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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