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주완

누가 민주화로 가장 덕을 봤을까?

기록하는 사람 2008. 11. 26.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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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사](한겨레출판, 전4권)의 저자이자 성공회대 교수인 한홍구가 마산에 왔다. 마산YMCA가 주최한 시민논단에 '민주주의'를 강의하기 위해서였다.

한 교수와는 약 8~9년 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운동 조직화 과정에서 만난 적이 있었지만, 이후 그는 주로 베트남전 진실위 활동과 평화박물관 건립, 국정원과거사위원회 활동 등에 주력하는 바람에 거의 만나지 못했다.

그러다 실로 오랫만에 다시 인사를 나누게 됐는데, 그는 조선시대 사람처럼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한 교수와 인터뷰도 했는데, 그건 나중 정리할 예정이다. 우선 그의 강의 내용 중에서 함께 생각해볼만한 이야기가 있어서 소개해본다.

모처럼 마산YMCA 강당 좌석이 거의 찼다.


강의 도중 그는 권영길 버전으로 이렇게 물었다.


"민주화 돼서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나요?"

그러면서 '누가 민주화로 가장 덕을 보았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선, 자신의 질문에 답하기 시작했다.

삼성 등 세습 경제권력이 가장 큰 덕을 봤다

첫번째로 그는 삼성재벌이 가장 큰 덕을 보았다고 말했다. 민주화 이전의 삼성은 독재정권의 눈치를 보며 수백 억씩 정치자금을 갖다 바쳐야 하는 그저 그런 재벌에 불과했지만, 민주화 덕분에 오히려 삼성이 권력을 쥐고 흔드는 상황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는 정권 교체가 가능해지면서 정치권력의 유한성이 증명된 반면, 삼성재벌과 같은 교체되지 않는 세습권력의 힘이 훨씬 강해졌다고 말했다. 삼성 비자금 사건을 보면 이제 재벌이 국가권력보다 우위에 서서 권력을 조종해왔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독재시절, 재계 8,9위였던 국제그룹이 전두환의 한 마디에 공중분해돼버린 것을 보면 민주화 이후 삼성이 누리는 권력은 오롯이 군사독재에 저항해온 80년대 민주화 투사들의 덕분이라는 것이다.

1992년 현대그룹 정주영이 대통령에 출마한 이유도 한 마디로 '더러워서'였다고 그는 규정했다. 걸핏하면 100억 원씩 가져오라는 독재정권이 더러워서, 차라리 그 돈으로 내가 대통령해보겠다고 나섰다는 것이다. 그 때 정주영은 그야말로 정주영만이 내놓을 수 있는 공약을 선보였는데, 아파트 반값 공급과 공산당 합법화가 그것이었다고 한 교수는 설명했다.

한홍구. 조선시대 수염과 가죽잠바가 별로 어울리진 않는 듯.


이렇듯 민주화 이전에는 정치권력이 경제권력을 압도했으나, 민주화 이후엔 경제권력이 정치권력을 압도하게 됐다.


삼성과 같은 재벌 외에도 민주화로 덕 본 집단은 역시 선출되지 않는 세습권력인 조중동 등 거대 족벌·재벌언론과 교회권력, 사학 권력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민주화 이전에는 조중동과 같은 언론권력도 독재정권에겐 찍 소리도 못한 채 보도지침에 충실히 따랐지만, 민주화 이후 대통령 씹는 놀이를 국민스포츠로 만들만큼 자유를 누렸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이어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극히 일부 국회의원과 물좋은 자리를 거쳐간 사람들 몇백 명쯤이 덕을 봤다고 덧붙였다.

이들 집단이 민주화로 덕 보는 걸 본 국민들은 "민주화를 그들만의 민주화, 그들만의 잔치로 씁쓸하게 바라보았을 뿐이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은 민주화로 덕 좀 보셨나요?

대한민국사 세트 - 전4권 - 10점
한홍구 지음/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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