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우후죽순 골프장, 문제는 없나

일본골프장엔 한국산 잔디를 쓴다

기록하는 사람 2008. 10. 8.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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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 건설 문제를 놓고 지방자치단체와 건설업자, 지역주민간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적정 골프장 숫자는 몇 개인지, 골프장으로 인한 식수원 오염이나 고갈, 산림파괴 등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인지, 지방재정에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등에 대한 실증적인 조사나 연구결과는 거의 없습니다.

이에 따라 저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획취재 지원을 받아 골프장 건설을 둘러싼 쟁점 전반에 대한 취재를 해오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버블경제 붕괴와 함께 700개가 넘는 골프장이 줄줄이 도산했고, 지금도 경영난이 계속되고 있는 일본의 골프산업을 취재했습니다.


관련 기사 : 일본에서 한국골프장의 미래를 물었다
                 일본 골프장에선 눈썰매도 탄다

앞선 두 개의 기사에 이어 이번에는 일본 취재에 동행했던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김일환 사무국장이 골프장의 환경관련 쟁점을 중심으로 쓴 글입니다. 김일환 국장의 허락을 얻어 기사를 게재합니다.

일본 도치기 현민 대중골프장. 이곳은 하천에 조성돼 아예 농약사용이 금지돼 있다.


농약 전혀 치지않는 생태골프장도 가능하다(김일환)

요즘 우리 나라는 여기저기 온 국토가 골프장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전국의 거의 모든 자치단체가 마치 특명이라도 받은 듯 일사불란하게 골프장 유치에 목을 매고 있습니다. 명분으로 지역경제를 말하기도 하고 세수증대, 고용창출을 말하기도 하며 이도 저도 없으면 '다른 곳은 다있는데 우리도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나'라는 우격다짐식 논리도 등장합니다. 이러다 보니 골프장을 하겠다는 측과 하지 말라는 측의 싸움은 이제 지역신문 뉴스거리도 안될 만큼 흔한 일이 되었고, 우리사회의 환경분쟁을 대표하는 중요한 사례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짧지 않은 기간 골프장 반대활동을 해 온 필자는 꽤나 많은 골프장 문제와 접하며 반대논리를 뒷받침할 자료와 정보 부족에 시달려 왔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 자치단체가 앞장서서 골프장 확대정책을 펴다 보니 골프장으로 인한 환경문제, 피해사례 등에 대한 연구·조사는 거의 없다 싶을 정도로 빈약합니다. 이러다 보니 골프장 반대활동을 하며 소위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없어서' 입을 다물어야 하는 답답한 상황에 처한 적도 많습니다.

그러던 중 경남도민일보로부터 일본의 골프장 실태를 취재하는 계획이 있는데 같이 하자는 뜻밖의 제안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다할 이유가 없는 신선한 제안이었습니다. 5박 6일로 충분치는 않은 일정이었지만 국토면적 대비 골프장 숫자가 가장 많은 골프대국(?) 일본을 통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가지고 다녀왔습니다.

언론사의 입장에서는 취재일 테고 환경단체 활동가인 필자의 입장에서는 일종의 조사활동이었습니다. 보는 눈이 서로 다른 탓에 필자는 주로 환경문제에 관심의 초점을 모았습니다.

황금색 들판에서 나이스 샷을

가와사키시에 위치한 고쿠사이 이쿠타 료구치 골프장을 찾았을 때 좀 색다른 팸플릿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골프장을 홍보하기 위해 만든 팸플릿에 '황금색 들판에서 멋진 샷을…'이라는 큰 글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가을과 겨울시즌에 사용할 홍보물인듯 합니다.

골프장 하면 드넓은 평원에 끝없이 펼쳐진 푸른 잔디를 연상하듯 골프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잔디입니다. 문제는 잔디가 일년 내내 푸르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대개 가을에 접어들면 누런색을 띠며 휴면기에 접어들고 이듬해 봄이 되어야 다시 푸르러지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차이를 발견하게 됩니다. 골퍼들이 누렇게 변한 골프장을 싫어하지 않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이 골프장의 총지배인 요시히코 우미노씨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황금색 필드'에 색다른 매력을 느끼는 골퍼들도 많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골퍼들은 누렇게 변한 잔디보다는 푸른 잔디를 유난히 좋아합니다. 때문에 가을과 겨울에 푸른잔디를 찾아 해외로 골프여행을 떠나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의 골프장들은 사시사철 푸른색을 유지하는 한지형 잔디를 선호합니다. 아직까지는 난지형인 한국잔디를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많은 수의 골프장들이 이미 '켄터키블루그래스', '크리핑벤트그래스' 같은 한지형 잔디로 바꾸었고, 새로 만드는 골프장들은 처음부터 한지형 잔디로 조성하는 등 그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골프장에 날아든 산비둘기들. 지렁이를 잡아먹기 위해서다. /김주완

잔디종류에 따라 농약·비료·지하수 사용량 큰 차이

골프장의 운영비 중 그린(잔디)을 관리, 유지하는 비용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이번에 다녀온 일본의 경우 일부 골프장의 '티'에만 부분적으로 한지형 잔디를 사용하고 있을 뿐 거의 모든 골프장이 '코라이(고려)'라고 부르는 난지형잔디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원산지라고 합니다. 이유를 물어 보니 일본의 기후에 적합하고 관리비용이 적게 든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선호하는 한지형 잔디에 비해 관리비용이 최고 70%까지 덜 든다고 말합니다.

잔디를 관리하는데 드는 비용의 상당부분이 농약과 비료살포, 관수작업 등에 사용됩니다. 한지형 잔디를 쓰게 되면 농약·비료·지하수의 사용량도 같이 많아지게 되는 것이고, 이는 관리비용의 증가에 따른 원가상승과 더불어 심각한 환경오염까지 유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자신을 골프업계의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소개한 도치기현의 '나스 쿠로반' 골프장의 미사와(三澤) 회장은 벤트그래스 계열의 한지형 잔디가 난지형 잔디에 비해 약간 부드럽고 모가 촘촘해서 골퍼들이 느끼는 퍼팅감이 약간 좋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프로골퍼가 아닌 이상 느끼기 어려운 차이로 무시해도 좋다고 말합니다. 펜이 좋다고 글씨를 잘 쓰는 건 아니란 말과 비슷하게 이해됩니다.

지하수 뽑아 올리는 일 없어

우리나라의 골프장 문제에서 농약만큼이나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이 지하수 고갈문제입니다. 18홀 규모의 골프장을 짓게 되면 일반적으로 800~1000톤 규모의 지하수를 개발하게 됩니다. 요즘은 골프장의 규모가 커지는 추세에 있어 지하수 개발량도 비례해 늘어납니다. 이 정도 양이면 골프장 인근 수백 가구의 지하수 사용량 전체를 합한 것보다 더 많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지하수를 이용하는 방식에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펌프 등을 이용해 강제로 뽑아올리는 방식입니다. 대개의 경우 골프장은 인근 마을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게 되는데 지하수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높은 곳에서 대량으로 뽑아 올려 차단하는 방식입니다. 즉 공공재를 유리한 위치에서 선점하는 불공정 행위입니다.

이 점도 우리나라와는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의 골프장들도 지하수를 이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와는 그 방식이 현저히 달랐습니다. 뽑아 올리는 행위는 할 수가 없고 자연히 솟아오르는 지하수만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즉 우물을 만들어 그 곳에 고이는 물을 지하에 조성된 물탱크에 저장하는 방식입니다.

물이 부족하지 않으냐는 질문에 잔디의 종류에 따라 물 사용량이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난지형 잔디의 경우 매일 물을 주어야 하는 한지형 잔디에 비해 급수량이 적어도 되며 평상시에는 자연강우만으로도 충분하고 여름철 갈수기 때는 저장해 놓은 물을 사용한다고 했습니다.

물을 적게 쓰는 골프장 조성 방식

우리나라는 골프장을 조성할 때 거의 예외없이 나무를 모두 베어내고 다시 본래의 땅껍질을 모두 벗겨 냅니다. 그러고 나서 50∼60cm 정도 깊이로 땅껍질을 만듭니다. 맨 아래층엔 굵은 자갈을 깔고 그 위에 잔 자갈을, 다시 그 위에 비료 등을 섞은 굵은모래, 고운모래를 깔아 배수가 잘 되도록 만듭니다. 이렇게 만들면 땅에 물이 고이지 않고 병해충이 줄어들어 잔디가 잘 자란다고 합니다<아래 그림>.
  
 


문제는 이런 구조의 배수층은 엄청난 양의 물을 필요로 하고 골프장이 대규모 지하수를 사용하는 원인이 됩니다.

반면 일본의 경우 이런 배수층을 조성한 골프장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물어 보니 대부분의 골프장이 1970∼1980년대에 조성되었는데 당시에는 이런 배수층을 조성하는 것이 일반화되지 않았고 공사비가 많이 들어 채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특별히 잔디 생육에 지장을 받거나 병해충이 많아지는 일은 없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적당 양의 물을 오랫동안 머금고 있어 관리측면에서 유리한 점도 있다는 것을 강조 했습니다.

지렁이?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모대학이 운영하는 평생대학원의 골프케어아카데미에 '잔디전문가 과정'이 있습니다. 그 곳에서 만든 병해충 방제에 관한 자료 중 지렁이에 관한 언급이 있습니다. 내용을 보니 '특별한 피해를 입히지는 않지만 징그러우므로 살충제를 살포한다'라고 되어있습니다. 피해를 입히지도 않는 지렁이를 상대로 농약을 쓰라고 가르치고 있고 대부분의 골프장들은 이 가르침을 잘 따르고 있습니다.

이쿠다 골프장 지렁이 분변토. /김주완

 
둘러본 골프장의 그린에서 여러 개의 작은 흙무더기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지렁이가 섭취하고 뱉어낸 분변토입니다. 페어웨이는 물론이고 티에서도 분변토가 발견됩니다. 이에 대해 골프장 관계자는 골퍼들도 그다지 큰 거부감을 보이지는 않기 때문에 분변토는 보이는 대로 치우면 되고 지렁이는 너무 많아지지 않도록 적절하게 조치를 취한다고 합니다. 약품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전체에 살포하는 방식이 아니고 심한 곳만 선별적으로 부분 방제를 한다고 합니다.

한번도 농약을 사용해 본적이 없는 골프장

골프붐이 한창이던 시절, 일본의 도치기현이 약 100만 평 정도의 하천변 공유부지에 18홀, 9홀 규모의 골프장을 조성했습니다. 골프장의 이름도 우리식으로 말하면 '도민골프장'입니다. 지금은 민간업체에 위탁해서 운영하고 있는데 이 골프장은 만들어진 이후 지금까지 농약을 사용해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물어 보니 하천부지에 조성되었기 때문에 수질오염 우려로 농약사용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도 잔디관리가 가능한지 궁금해졌습니다. 우리나라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가능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골프장 관계자는 질문에 대한 설명을 대신해 그린을 가리키며 직접 보라고 했습니다. 농약을 사용하는 여느 골프장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지렁이 분변토의 숫자가 다른 곳에 비해 상대적으로 좀 많아 보였고 페어웨이 곳곳에 잔디와 함께 거슬리지 않을 정도의 잡초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 골프장에는 한국의 골퍼들도 많이 찾아오고 있고, 그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말로만 듣던 무농약 골프장을 실제로 보았고 약간의 희망을 발견한 것입니다.

일본의 골프장을 둘러보며 '일본의 골프산업은 이미 망했다'가 아니고 '이미 망하기도 했거니와 그것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몇몇 자치단체가 지역의 골프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들을 봤지만, 그 이면에는 골프산업 활성화보다는 도산해서 문닫는 시점을 조금 늦추어 보려는 몸부림이 느껴졌습니다.

적자를 겨우 면해 다른 곳에 비해 사정이 조금 낫다는 어느 골프장 총지배인이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우리 골프장 임직원들이 말하는 가장 큰 소망은 더도 말고 한해에 1000만 엔(약 1억 원) 정도만 이익이 나는 것입니다."

자신을 일본 골프업계의 살아 있는 화석이라 소개했던 미사와 회장의 말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습니다. "골프장 사업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특히 회원권을 팔아서 자금을 조달하면 안됩니다. 골프장 사업으론 절대 이 돈을 갚을 수 없습니다."

/김일환(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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