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골프장의 차이
지난주에 이어 이번주에도 일본 골프장 현지 취재 결과를 소개한다. 지난 9월 1일부터 6일까지 5박 6일간 이뤄진 일본 취재에는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김일환 사무국장이 동행했고, 현지 섭외는 외신 프레스센터 재팬(Foreign Press Center Japan : FPCJ)의 큰 도움을 받았다.
한국과 일본 골프장의 차이점과 공통점은 뭘까. 일본의 골프장은 굳이 40%의 수림지 의무확보율 규정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숲이 잘 보존돼 있다. 일본 토치기현 레이크랜드골프장의 클럽하우스. 한국의 골프장과 달리 여기까지 들어오는데 아무런 제지도 없다. 가와가나에 있는 이쿠다국제골프장은 연간 2회 골프장을 시민과 아이들에게 개방한다. 또 눈이 오면 유치원생들을 초청해 눈썰매를 탈 수 있도록 한다. 썰매도 골프장측에서 무료로 제공한다.
우선 총 골프장 수는 한국이 280개, 일본이 2442개로 일본이 약 8배 이상 많다. 1년간 연이용객 수는 한국이 2200만 명(골프장당 8만 명 정도), 일본이 8100만 명(골프장당 3만6000명 정도)으로 약 4배 가량이다. 일본의 골프장 이용객은 90년대까지만 해도 연 1억 명에 달했으나, 해마다 줄어 이렇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용객 수 대비 골프장 수만 비교해봐도 일본 골프장이 한국보다 2배 이상 많은 셈이다. 그러니 700개가 넘는 골프장이 부도·도산하고, 절반 이상이 지금도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문제는 우리나라 골프장 이용객수도 2002년 이후 감소세로 돌아섰지만, 골프장은 우후죽순처럼 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건설 중인 103곳에 착공예정인 골프장까지 합치면 2~3년 후에는 400개가 넘게 된다. 또 한국골프장경영협회에 따르면 2017년에는 640개로 늘어나게 된다. 지금보다 무려 2.3배가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럴 경우 더 이상 골프인구가 늘어나지 않을 경우, 이용객 대비 골프장 수는 일본보다 훨씬 심한 과잉상태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일본의 골프산업 전문가들은 지금도 최소 700~800개 골프장이 과잉공급 상태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다.
물론 한국의 골프장 찬성론자들은 골프인구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미 이용객 수가 감소세로 돌아섰다는 객관적 수치를 들이대도 수긍하지 않는다.
게다가 일본의 골프장은 버블경제 붕괴 이후 700여개 골프장의 부도·도산과 뼈를 깍는 구조조정과 인력·비용절감 및 서비스 향상 과정을 거쳤다. 그럼에도 '골퍼에겐 천국, 업자에겐 지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도사태는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골프장 숫자나 이용객 수 말고도 일본과 한국의 골프장은 다른 점이 많았다.
◇일본 골프장엔 정문과 수위가 없다 = 우선 일본의 골프장은 한국처럼 골프장 진입로에서 출입자를 통제하는 정문이나 수위실이 아예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골프장은 거의 어김없이 진입로 입구에 경비실을 겸한 수위실이 지키고 있다. 이에 따라 골프장 고객 외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수위실을 지나 한참을 더 가야 클럽하우스가 있다.
또한 대부분의 골프장은 필드 외곽을 수목과 철망으로 둘러싼 구조를 하고 있어 일반인이 안쪽을 들여다보기도 어렵다. 감히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곳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위압적이다. 고위 관료나 정치인, 기업가 등이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은밀한 만남이 가능한 것도 한국 골프장의 이런 구조와 출입 통제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의 골프장은 수위가 지키고 있는 정문이 아예 없다. 클럽하우스까지 가는데 아무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다. 대중골프장은 물론 회원제골프장도 마찬가지였다.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에 있는 이쿠다(生田)국제골프장이나 토치기현의 레이크랜드골프장, 토치기현민대중골프장, 오타와라시의 나수쿠로바네골프장 등이 모두 그랬다.
이들 골프장 관계자에게 이유를 물어봤다.
"인건비 때문에 수위실을 둘 수 없다. 오래 전부터 그랬다. 일본 골프장도 정문이나 수위실 비슷한 게 있는 곳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수위를 배치하진 않고 있다. 그 때문에 가끔 이상한 사람들이 들어오는 일도 있고, 골프백 도난사건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땐 경비인력 배치 필요성을 느끼긴 하지만 역시 인건비 부담 때문에 어렵다."
◇골프장에서 벚꽃놀이와 썰매놀이도 한다 = 앞서 언급한 이쿠다국제골프장은 1971년 가와사키시에서 출자해 만든 재단법인이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흔치 않게 흑자를 내는 골프장이다.
이 골프장은 매년 4월초 벚꽃이 만개하는 날과 7월말 어린이들의 방학 때 하룻동안 필드를 시민에게 개방한다. 시민들은 잔디밭에 자리를 깔고 앉아 도시락을 먹으며 벚꽃을 감상하고, 아이들은 넓은 페어웨이에서 잔디썰매를 즐긴다.
또 겨울철에 눈이 오면 골프장 인근의 모든 유치원에 전화를 걸어 눈썰매를 타러오도록 한다. 골프장에서 빨간 썰매도 구입하여 제공하는데, 아이들보다 유치원 교사들이 더 즐거워한다고 한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이 골프장 소식지 2008년 가을호에는 지난 봄 골프장 개발일에 시민과 아이들이 썰매를 타고 노는 사진들이 실려 있었다.
◇골퍼 외에 가족동반도 할 수 있다 = 한국의 골프장에는 골프를 치는 고객 외에는 입장할 수 없다. 하지만 일본 골프장은 대부분 가족 동반을 허용한다. 레이크랜드골프장의 다케야마(高山) 상무이사 겸 취제역 지배인은 "과거엔 골프장에 어린이들이 들어와 있으면 이상하게 생각했고, 경기에 방해가 된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버지나 어머니가 아이들을 동반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말했다.
나수쿠로바네골프장의 대표취제역 총지배인 쿠로타(黑田)씨도 "예전엔 아이들의 입장을 금지했고, 꼬마들은 플레이도 못하게 했는데, 그게 골프인구 증가를 가로막은 요인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은 함께 와서 구경하고 노는 것도 가능한데, 다만 안전사고의 우려 때문에 소정의 보험료는 받고 있다"고 말했다.
◇캐디 없이 골프를 즐길 수 있다 = 한국에서 캐디 없이 골프를 즐길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극히 일부의 대중골프장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거의 모든 골프장에서 캐디없이 셀프플레이를 할 수 있다. 카트도 수동카트와 승용카트를 선택할 수 있다. 실제 일본의 골프장 이용객 중 캐디를 동행하지 않는 셀프플레이 비율은 약 60%에 달한다고 한다.
오타와라시 나수쿠로바네골프장 총지배인(왼쪽에서 두 번째)과 인터뷰 중인 취재팀(왼쪽이 김일환 사무국장).
◇골프장 수림지 비율 40% 유지 = 일본의 경우 골프장을 조성할 때 수림지 비율은 원래 20%였다. 그러나 1989년부터 40% 이상을 유지하도록 의무화했다. 이에 따라 일본 골프장은 숲이 우거져 있는 곳이 많다.
그러나 한국은 일본과 정반대로 갔다. 이명박 정부 들어 원래 40%로 되어 있던 산림 및 수림지 의무 확보율을 아예 없애버린 것이다. 대신 산림에 대한 원형보전지 확보율 20%만 남겨뒀다. 그만큼 산림훼손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이 밖에도 일본과 한국의 골프장은 많은 차이가 있었다. 우리나라는 골프장 이용객에게 특별소비세와 체육진흥기금을 부과하여 국가 세입으로 거둬들이고 있는 반면, 일본은 골프장 이용세를 부과해 지방자치단체의 세입으로 하고 있었다.
또한 일본은 중앙정부가 골프장 정책에 전혀 개입하는 일이 없지만, 한국은 정부가 오히려 골프장 규제를 완화하여 개발을 부추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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