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박노자 교수를 처음 만난 것은 2004년이었다. 경남도민일보가 박노자 교수를 모시고 그해 12월 29일 저녁 7시 ‘한국 식민지 유산의 특징과 과거사 청산’을 주제로 특강을 마련했는데 그때 내가 연락과 섭외를 맡았었다.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박노자 교수 이메일 주소를 알아내서 간절히 청하는 편지를 보냈는데, 내 기억으로는 언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 처가가 마산이니까 한국 들어가는 길이 있으면 반드시 연락을 주겠다는 답이 왔고 고맙게도 그게 그대로 지켜졌다.
그 후에도 2007년인가에 한 번 더 박노자 교수를 모시고 특강을 개최한 적이 있는데 그때 기억은 뚜렷하지 않다. 어쨌든 예전 강의에서 나는 정말 얘기를 똑 부러지게 하는구나 하고 느꼈었다. 논증에는 허술함이 없었고 예시는 구체적이었으며 결론에는 비약이 없었다.
3.
결론은 이랬다.
“그 어떤 복지정책도 한국의 출산율을 자연 재생산이 가능한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는 없다.”
“한국도 유럽 각국처럼 이민 등 인구 유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단 평등지향적 복지국가 건설 정책은 사회적 불안과 불신, 공포, 좌절감을 줄여 ‘자살공화국’을 ‘행복한 나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밖에도 귀에 쏙 들어온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다는 신화에서 벗어나야 하고 성장을 위한 발버둥을 멈출 수 있을 때 한국 사회는 살 만해질 것이다’라는 얘기였다. 내가 듣기에 그것은 ‘이제 어제보다 나은 내일은 더 이상 없다’는 것이었다.
4.
그러나 듣는 내내 한숨이 계속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한국은 독재국가가 더 이상 아니고 구성원 전체의 합의 또는 동의를 통해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바를 정해야 할 텐데, 그게 조선일보가 이토록 패악을 부리는 현실에서 그게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이날 박노자 교수가 짚어낸 우리 현실의 문제점이나 미래사회의 방향성들은 하나 빠짐없이 모두가 조선일보가 차별과 혐오가 어린 눈길로 적대하고 증오하는 주제였다. 저 독극물이 이를테면 ‘증세와 복지’ 또는 '노동자의 경영 참여'를 잡아 뜯으면서 광기를 부리기 시작하면 과연 누가 얼마나 감당할 수 있겠는가…….
이른바 지금의 이 언론지형이 바뀌지 않고서는 그림의 떡일 뿐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서 정말 울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박노자 교수가 무슨 해답을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었다.
어쨌거나 박노자 교수의 이번 강의에도 나는 흠뻑 젖어들었다. 고맙게도 16년 전 19년 전 옛날 추억에도 깊이 빠져들 수 있었다. 그러면서 독극물 조선일보의 척결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5.
하나 더. 박노자 교수의 박학다식·명석판명은 질의응답에서 더욱 빛난다. 질문은 예상한 범위 밖에서 쏟아지기 십상이다. 그렇지만 답변은 거침이 없었다. <일본서기>에 나오는 한반도 남부 지명 이야기, 떨어지지 않는 청소년 자살률 이야기 등이 그랬다.
눈을 감고 듣고 있는데 옛날 생각이 슬그머니 떠올랐다. 2004년 특강이었는데, 그때 박노자 교수는 어떤 이가 무슨 질문을 한 데 대하여, “그 이야기는 누구누구가 지은 무슨무슨 책 몇백몇십몇 쪽에 나온다”라고 하면서 답변을 시작했다.
“미리 준비하지 않고도 저렇게 콕 집어 말할 수 있다니! 그냥 타고난 천재구나, 천재……”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노르웨이 오슬로 머나먼 곳에서도 한국 사회를 마치 자기 손바닥처럼 자세히 헤아려서 보는 것이 그런 천재라서 가능한 걸까.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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