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창원공단의 기억 - 뿌리뽑힌 사람들, 뿌리내린 사람들

김훤주 2023. 5. 25.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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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민일보가 지역 언론사로서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싶었던 공공의 기억입니다."
 
---벌써 남겼어야 할 공공의 기억
---창원공단 50년 만에 기록하다
 
창원공단이 설립된 지 내년이면 만 50년이 된다. 창원공단은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이끌고 선진국 대열에 올려놓는 주인공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물론 영세기업에 이르기까지 숱한 기업들이 무대에 올라 저마다 자신이 맡은 배역을 펼쳤다.
 
국가 시책 차원에서 만들어진 창원공단은 말 그대로 깡촌이었던 원(原) 창원을 우리나라 최초의 계획도시로, 경남에서 으뜸가는 도시로 탈바꿈시키는 지렛대 구실을 했다. 이로써 많은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서 창원으로 와서 크고작은 기업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그들 가운데 대부분은 공업계 고등학교를 이제 막 졸업한 젊은이들이었다. 창원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아 청춘을 보내고 새로운 삶을 일구어 새로운 창원을 만들어가는 한편으로 그들 스스로도 창원 사람이 되어 갔다.
 
이렇게 창원공단이 우뚝 서고 개별 공장들이 젊은 노동자들로 채워져 갈 때 그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다. 오랜 옛날부터 창원에 터 잡고 살면서 농사를 짓거나 어로 활동을 해오다가 공단 설립과 함께 고향에서 밀여나야 했던 원주민이 바로 그들이다.
 
그동안 빈곤하나마 기록되어 왔다면 그것은 창원공단의 역사였다. 무슨 기업이 들어섰고 어떤 물건을 만들고 원청과 하청의 관계가 어떠하고 연관산업이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지, 고용된 인원은 얼마나 되는지 등등 수치와 도표 또는 통계로 정리되는 역사였다.
 
그리고 그것은 창원공단과 더불어 울고 웃었던 많은 이들의 사람 이야기는 배제된 역사였다. 50년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었다. 공단이 만들어질 때 풋풋한 노동자로 공장에 들어섰던 이들은 대부분 70대에 턱걸이를 하고 있다. 집과 논밭을 내어주고 이주했던 원주민들은 그 노동자들보다 연배가 높다.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고 역사로 갈무리할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이다. 2022년 한 해 동안 창원공단으로 말미암아 뿌리뽑힌 원주민들과 그 덕분에 뿌리내린 노동자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활자로 담았다.
 
그동안 누구도 하지 않았던 작업이었고 사상 최초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비어 있던 백지를 채워 창원공단의 역사가 좀더 입체적으로 구성되고 따뜻한 피가 돌 수 있게 되었다.
 
무미건조한 역사에 생생하게 실감되는 내용을 조금이나마 더하게 되었으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책이 좀더 다채롭고 풍부한 서사를 찾아내는 디딤돌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앞으로는 특히 여성 원주민들의 사연이 날것 그대로 넓고 깊게 챙겨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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