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바위와 영험한 기운

열린 광장이었던

되살려 내고픈 그 때 그 명승지

신령에 기도하던 자리

글자 새기고 단장해 개방

지금도 다수 흔적 존재

 

지금 함안읍성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시골 풍경이지만 130년 전에는 빼어난 명승이 있었다. 자이선(自怡墠)이다. 얼마나 멋진 곳이었을까? <함안총쇄록>을 따라가보면 그럴 듯한 당시 모습을 생생하게 그릴 수 있다.

 

갈라터진 돌등에 새겨진 전임 군수의 행적

자이선은 동헌이 등지고 있는 자리였다. 지금 함안초교와 함성중학교가 만나는 경계의 뒤편에 해당된다. 오횡묵은 1890623일 처음 관심을 보였다. “비봉산 앞면을 보니 돌등 가운데가 갈라터져 휑뎅그렁하게 파인 것이 일부러 쪼개 깨뜨린 것 같았다.” 통인들의 대답은 엉뚱했다. “쪼개지기 전에는 부유한 아전들이 많았는데 쪼개진 뒤에는 50석 이상 하는 아전이 없습니다. 민속도 경박해졌고 읍도 많이 피폐해졌습니다.”

정작 알아봤더니 신령에게 기도하는 자리(祈靈之地)’(1891.4.26.)였다. “질병이 있으면 소생을 구하고 액난이 있으면 복을 비는, 영험을 기대하면 반드시 은혜로 갚는”(1892.7.26.) 장소였던 것이다.

옛날 자이선이 있던 함안초교와 함성중학교 경계 뒤편 .  지금은 이처럼 수풀이 우거지고 안에 들어가 보면 흙더미까지 쌓여 있어 옛 모습을 확인하기 어렵다 .

관심은 관찰로 연결되었다. 바위에서 글자가 여럿 눈에 띄었다. 예사롭지 않은 역사를 간직한 각자(刻字)였다. 1890719일자 <함안총쇄록>에 오횡묵 이전에 여기에 경관을 꾸몄던 주인공이 이 각자에서 등장한다.

새겨진 것이 있는데 군수연안이진수임술작대조정자연우서(郡守延安李晉秀壬戌作臺造亭子淵愚書)’였다.” ‘연안 이씨 진수 군수가 임술년에 누대를 짓고 정자를 만들었으며 그 아들 연우가 썼다.’

 

오횡묵이 부임 이튿날 읽은 <군지>에서 이진수는 신유년(1801)에 군수로 와서 3년 뒤 현직에서 세상을 떠난 인물이다. 또 임술년은 신유년 다음이니 1802년에 작대조정한 셈이 된다. 오횡묵보다 90년 앞선 시점에 이미 이곳 풍경의 독특함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오횡묵의 관찰은 이어졌다. “대정(臺亭)에도 각자가 있었다. ‘적서암(積書巖) 군옥봉(羣玉峯) 기여(跂余) 관폭(觀瀑)’이었다.” 보통 대정이라 하면 누대와 정자를 뜻하지만 여기서는 아니다. 널찍한 암반 위에 포개져 있는 바위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다.

군옥봉(왼쪽)과 적서암.
군옥봉.
적서암.

또 적서암은 책을 쌓은 듯한 바위이고 군옥봉은 옥구슬이 무리를 이룬 봉우리. 두류문화연구원 최헌섭 원장은 이곳 경관의 특징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인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군옥봉은 붉은색과 푸른색이 뒤섞인 바위 색깔을 옥구슬에 견주었고, 적서암은 퇴적암이 켜켜이 갈라진 모양을 쌓은 책에 비유했다고 말했다.

관폭은 폭포를 바라본다는 뜻이며 기여는 무엇을 보려고 까치발을 드는 모습이다. 깎아지른 바위가 층층이 쌓여 있으면 평소에는 메말랐어도 장마가 지면 사정이 달라진다. “여름철 소나기가 세찬 폭포를 만드니/ 구슬이 튀고 옥이 뿜어지는 은하수로다.”(1891.4.20.) 다른 글자는 반듯하지만 관폭은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다. 물줄기가 떨어져 내리는 역동성을 나타내기 위해서였지 싶다. 기여는 폭포를 보려고 상체를 기울이며 발돋움을 한 모습으로 자연스레 이해가 된다.

관폭.
기여.

풍경이 그럴 듯하고 바위가 독특한데도 함안 사람들은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오횡묵조차 늘 머물던 동헌에서 활 한 바탕 거리밖에 안 되는데도 알아보기까지는 부임 이후 12개월이 걸렸다.

 

황폐해진 경관을 새로 단장하다

새 단장까지는 8개월을 더 기다려야 했다. 오횡묵은 1891410관아 여러 고지기를 시켜 개척하고 수축하는 일을 시작하였다.모두 새롭게 정리를 하였다. 오솔길에 줄줄이 떼를 입히고 차례차례 대나무와 오동나무를 심어 훌륭한 경지를 뚜렷이 이루었다.” 앞선 명칭인 은선대(隱仙臺)’ 대신 남쪽은 자이선(自怡墠), 북쪽은 연처초연(燕處超然)이라고 새 이름도 붙였다.

 

이틀 뒤에는 좀더 자세하게 보충하는 기록을 남겼다. “무너지고 떨어진 것은 깎아내고, 썩고 더러운 것은 쓸어내고, 깨끗한 흙으로 표면을 고르고, 네모난 돌로 가장자리를 채우고, 떼를 베어와 입히고 대나무를 옮겨 심었다.”

경관 조성은 이후로도 간간이 이어졌다. 189221일 오횡묵은 오늘은 풍신(風神)에게 기도하는 날이고 또 나무를 심으면 아주 좋다고 한다. 오동나무와 백일홍을 많이 가져와 심도록 명령하고 감독하였다.”

새로 지은 두 이름은 무슨 뜻일까? 먼저 연처초연은 장자의 <도덕경>에 나오는데 세상사에 매이지 않고 한가로이 지낸다는 뜻이다. 자이는 도홍경(432~536)의 한시에 이렇게 나온다. ‘산중에 무엇이 있느냐구요?/ 산마루에 흰 구름이 많이 있지요/ 스스로() 즐기며() 기뻐할 뿐/ 그대께 갖다 드릴 순 없사옵니다’. 그리고 선(墠)은 제사터를 뜻한다.

 

높고 또 넓게 켜켜이 쌓인 바위

1891410일 기록을 통해 풍광을 감상해보자 돌덩이는 위로 겹겹이 쌓여 책을 쌓아놓은 듯한 모양이다. 바탕색은 울긋불긋하였고 꼭대기는 반듯하고 네모났다. 바위 하나의 높이는 몸을 기울여 쳐들거나 숙일 수 있고 넓이는 다리를 쭉 뻗고 앉을 수 있다. 이런 바위들이 마주보거나 옆으로 늘어서 있거나 하여 마치 크고 작은 병풍을 늘어놓은 것 같다. 길게 이어지니 8~9폭이 되고 길이는 서른 걸음 남짓이다.

팥배나무가 둘레에 빙 둘러 있고 위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무리를 지었다. 담쟁이덩굴·버들과 느티나무 같은 것들이 넝쿨이 지거나 가지를 늘어뜨려 바람에 하늘거렸다. 해를 가리는 우거진 숲, 돌의 기운과 숲의 향기, 새소리와 바람소리가 손에 잡힐 듯 즐겁게 들려왔다.”

 

412일에도 찾았다. “바위면은 날카로운 도끼로 쪼개놓은 듯한데 판자문이 마주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왼쪽은 굽고 오른쪽은 돌아서 그윽하고 깊숙하다. 바위의 형세는 층루가 솟아오르고 비단병풍을 옆으로 펼쳐놓은 듯하다. 위는 넓고 아래는 평평하게 해서 높다랗게 솟아 있다.”

미풍이 이르러 담쟁이덩굴이 흔들리고 붉은 기운을 이끌고 해가 솟아 종려나무 사이에 어른거리니 붉은 절벽과 푸른 벽이 손으로 가리키고 눈으로 돌아보는 사이에 다투듯 모습을 드러내어 아름다운 향기와 그윽한 시운이 심안(心眼) 사이에 녹아 모여들었다.”

 

함께 어울리는 열린 광장

오횡묵은 여기를 모든 고을 사람들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하였다. 426일 돼지를 잡고 술과 과일을 베풀고 노래꾼을 불러 놀면서 말했다. “자이선이라 이름을 붙인 것은 사람들이 저마다 스스로() 즐기자()는 뜻이다.내 어찌 혼자 마음대로 할 수 있겠느냐?”

이로써 자이선 일대는 젊고 어린 친구들이 북을 치며 노래를 부르고 함께 모여 춤추는 공간이 되었으며 때로는 전문 예인을 불러 공연을 마련하고 뒤풀이까지 즐기는 무대가 되었다. 공부하는 아이들은 이를 갖고 시 짓기 내기도 했다. 요즘으로 치면 다함께 모여 즐기는 문화광장 같은 곳이었다.

노는 젊은이들과 어린아이들이 화고(畵鼓)를 갖고 노래를 서로 주고받으며 팔을 맞잡고 발을 굴렸다(連臂蹴踏). 흥이 도도하였는데 모인 사람은 수삼백이 되었다고 한다.달빛이 정말 아름다운 가운데 함께 노래하는 그 소리도 뚜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1891.4.20.)

노는 젊은이들이 광대를 거느리고 와서 노는 자리를 베풀었는데 300명 남짓이 모였다. 처음에 춘향가로 시작했다가 노래가 끝나니 또 잡가로 놀았다. 술이 다하고 해가 기울자 노래하는 사람 춤추는 사람이 질탕하고 낭자하게 어우러졌다.동문 안 서재에서는 편을 나누어 시 짓기로 기예를 다투었는데 나에게제목을 요청하기에 자이선으로 삼았다.”(1891.4.25.)

 

지군채인(위)과 자이선.

자이선의 숨은 흔적을 찾아서

이지러진 달처럼 희미해진 자이선의 자취를 찾아나섰다. 옛 사람의 흔적은 쉽게 전모를 보여주지 않았다. 다섯 번 걸음 끝에야 나름 찾아낼 수 있었다.

첫 걸음에서는 이진수가 쓴 기여(跂余관폭(觀瀑)’과 오횡묵이 새긴 지군채인(知郡茝人자이선(自怡墠)’을 찾았다. 지군은 군수를 일컫는 다른 표현이고 채인은 오횡묵이 고종 임금에게서 하사받은 별호였다.

 

오횡묵이 바위에 글자를 새기는 심정을 어떠했을까? 이진수 부자가 새긴 글자를 보고 자기도 각자를 하고 싶어졌다. 1891412일 읊은 한시에 나온다. “먹으로 바위에 쓴 흔적이 지금 오래 되었으니/ 나 또한 그대처럼 후대에 증거를 남겼으면.”

15일에는 바위에 이끼는 옛 전서에 깊이 끼었네라 읊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글자를 새겨 넣어도 마찬가지 운명이 되리라고 여기지는 않았나 보다. 바로 사흘 뒤 자이선과 연처초연 새기는 일을 시작했고 다시 이틀 뒤 자이선 새기기를 마치고 붉은색을 칠했다.” 20일 한시에서는 석수가 다섯이었음을 밝히며 가을 뱀과 봄 지렁이처럼 주홍색이 뚜렷하네라 했다.

 

두 번째에는 군옥봉(羣玉峰)과 적서암(積書巖)을 확인하였다. 자이선 등이 적혀 있는 데서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언덕배기 바위에 이진수가 차례로 새긴 것이었다. 흙더미에 절반가량 파묻혀 있었는데 글자 하나의 가로세로 크기가 30~50cm씩 되었다.

오른쪽 위에서부터 '군수연안/이진수세/임술작대/조정자연/우서대/정/호'.

세 번째는 군수 연안 이진수등등을 찾았다. 적서암에서 오른편으로 20m 가량 위쪽 암벽이었다. 세로로 넉 자씩 일곱 줄이 새겨져 있었다. “군수연안/이진수세/임술작대/조정자연/우서대///(郡守延安/李晉秀歲/壬戌作臺/造亭子淵/愚書臺///).” 여덟째 와 마지막 대정호(대정의 이름)’는 이끼에 가려졌거나 해서 오횡묵이 발견하지 못한 글자였다.

 

심복이 새긴 일곱 글자도

유치영과차 경인.

네 번째는 생각지도 못했던 글자를 찾을 수 있었다. ‘군수 연안 이진수각자에서 오른쪽으로 10m 정도 떨어진 바위에 유치영과차경인(柳致永過此京人)’이 있었다. ‘서울사람을 뜻하는 경인은 왼쪽 끝에 세로로, ‘유치영이 여기를 지나갔다유치영 과차는 가로로 새겨져 있었다.

유치영은 오횡묵의 심복 가운데 한 명이었다. 민간인 신분으로 함안군수로 부임하여 고성군수로 떠날 때까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보좌했다. 부임 전날 창녕에서 묵을 때 입맛이 까칠해진 오횡묵을 위하여 크기가 한 자씩 되는 잉어 한 마리와 붕어 세 마리를 사와서 받들어 올렸다.” 군수 대신 농사일을 권장하는 업무도 수행하였다. 오횡묵은 1890524상리면 강지·장명마을 등지에는 몸소 갈 겨를이 없어 치영에게 대신 담배 한 움큼 반과 바늘 두 봉지 돈 여덟 전 네 푼으로 권농을 하도록 명령했다.”

서예를 잘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좋은 필체는 아니었다. 글씨는 삐뚤삐뚤했고 크기는 10cm 정도로 조그마했으며 굵기 또한 가늘었다. 혹시 자기가 모시는 군수 몰래 새겼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살짝 들었을 정도다.

 

아직 못 찾은 글자들

다섯 번째는 전체적으로 한 번 더 훑었다. 아직 찾지 못한 글자 때문이었다. 1891412일자 <함안총쇄록>에 나오는 각자 은선대와 18일 새기기 시작한 글자 연처초연이 그것이다. 1891125일 오횡묵이 석면에 있는 시는 과거 사람들이 지은 것이라 한 대목도 해당된다.

더 이상 찾을 수 있는 각자는 없었다. 만약 떨어져 나가지 않고 남아 있다면 적서암과 군수 연안 이진수사이 바위일 것 같았다. 벽면이 널찍하게 펼쳐진 바위가 수직으로 내려서는 부분을 100년 넘게 흘러내린 흙더미가 수북하게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만든 명승 자이선

하늘이 낸 명승지는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타난다. 그런데 자이선은 하늘이 아닌 사람이 만들어낸 명승이었다. 1802년에 먼저 이진수가 작대조정(作臺造亭)을 하였고 1891년에는 오횡묵이 기정(起亭)을 하였다. 주변 일대를 가꾸고 다듬어 고을 사람 누구나 와서 즐길 수 있는 장소로 만들었다.

지금은 수풀이 우거져 옛날 모습을 떠올리기 어렵다. 하지만 130년 전 오횡묵과 같은 안목으로 깎아내고 쓸어내고 고르고 채우고 입히면새로운 명승지로 거듭나지 않을까!

<함안총쇄록>이 전해주는 이런 내력을 알리고 관과 민이 더불어 활용한다면 손쉽게 옛날 모습을 되찾을 수 있지 싶다. 밋밋하던 함안읍성도 훌륭한 경관을 하나 보유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경남도민일보 201987일자에 나가고 2020년 펴낸 <조선시대 원님은 어떻게 다스렸을까>에 실려 있는 글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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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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