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년 전 군정 대소사 담은

수령의 흥미진진한 일기

 

공적 사건부터 일상까지

당시 군수 자세하게 기록

4년 역사 생생하게 담아

역동적 활동사진평가

 

기록유산이 넘쳐나는 함안

함안은 아라가야 말이산고분군만으로도 이미 유명하지만 기록유산도 더없이 풍성한 고장이다.

첫머리에는 <함주지(咸州誌)><함안총쇄록(咸安叢鎖錄)>이 꼽힌다. <함주지>1587년 당시 군수 한강 정구(寒岡 鄭逑)가 주동하여 136쪽 분량으로 펴냈다. 가장 오래된 현전 읍지(邑誌)로서 지역지 편찬의 모범이 되었다.

<함안총쇄록>은 채원(茝園) 오횡묵(吳宖默)1889~93년 함안군수로 있으면서 적은 일기다. 형식에 매이지 않고 객관 정황에다 본인의 느낌까지 섞어가면서 수령의 하루하루를 기록하였다.

간송당 조임도(澗松堂 趙任道)1639년 펴낸 <금라전신록(金羅傳信錄)>도 있다. 금라는 함안의 옛 이름이다. 함안 출신 인물들의 행적과 시문을 모은 지역 문학·인물 사전이다.

이런 정도 기록물을 하나라도 갖춘 시·군이 드문 현실이다. 함안은 셋이나 갖춘데다 <용화산하동범록(龍華山下同泛錄)> 같은 독특한 기록물도 있으니 축복받은 기록유산의 고장이라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함안총쇄록> 1권 표지. ⓒ한국학중앙연구원

제작에서 활용까지 기록의 달인 오횡묵

오횡묵은 1886년 기근과 돌림병으로 난리를 겪던 영남에 별향사(別餉使, 별향:난리에 대비하여 따로 마련한 곡식)로 파견된 뒤로는 줄곧 수령을 맡았다. 정선(1887~88) 자인(1888~89) 함안(1889~93) 고성(1893~94) 지도(1896~97) 여수(1897~99) 진보(1899~1900) 익산(1900~02) 평택(1902~06)이 근무지였다.

오횡묵은 가는 곳마다 <총쇄록>을 남겼다. ‘()’끌어모은다’, ‘()’자질구레하다는 뜻이다. 굵직굵직한 것은 물론이고 자잘한 것까지 끌어모은 기록이 총쇄록이다.

<영남구휼일록(嶺南救恤日錄)> <정선군일록(旌善郡)> <자인현일록> <함안총쇄록> <고성총쇄록> <지도총쇄록> <여수총쇄록>은 전해지지만 익산·진보·평택에서 작성한 총쇄록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근대적 지리지 <여재촬요(輿載撮要)>도 지었다. 유럽·아프리카 등 세계를 6대주로 구분하여 50개 나라를 지도와 함께 소개했다. 조선에 대해서는 당시 읍지들을 끌어모아 필요한 부분을 골라 실었다. 원래 10권짜리를 나중에 학부(學部=교육부)에서 1권으로 요약해 교과서로 활용했다. 방대한 지리지를 국가가 아닌 개인이 저술·출판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오횡묵은 기록이라 하면 모든 방면에서 달인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1891329일 아전들에게 <총쇄록>을 나누어주고 421일 책실에서 베끼기를 마쳤다. <총쇄록>을 개인의 사적 기록으로 여겼다면 하지 않았을 일이다.

<총쇄록>이 어떻게 쓰였는지 알려주는 대목도 있다. 1889429일 살인 현장 마을로 떠나는 장교에게 <정선군일록>을 꺼내 금광에서 일어난 옥사(獄事) 부분을 보여주면서 민폐를 절대 끼치지 말라고 명령한다.

자기가 갖고 싶거나 관아에 갖추어야 할 서적도 챙겼다. 가보로 삼고 싶은 <동국여지승람>(1892. 6. 13)과 갖고 싶었던 <산림경제>(1892. 11. 19)와 형방청에 장만해둘 <흠흠신서>(1892. 11. 17)를 아전들에게 베껴 쓰게 했다.

조세를 걷는 데도 기록을 활용했다. 다만 자기 기록이 아니라 관아 기록이었다. 1889425일부터 거짓 재해·조세 포탈 규모에 대한 실태 조사를 벌이며 510일 장부 10년치를 모아 오게 하였다. 종류만 해도 호포마련등축(戶布磨鍊謄軸) 19가지에 이른다. 당시도 지금도 10년씩 소급 조사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거짓 재해 실태 조사는 비교적 일찍 마무리되었다. 615일 끝났으니 50일 만이었다. 하지만 얼마나 조세를 떼어먹었는지 조사하는 데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듬해 120일까지 끌었으니 9개월이 넘게 걸렸다.

<함안총쇄록> 에 실린 함안 지도. 아래가 북쪽이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각본 없이 반전이 거듭되는 <함안총쇄록>

아메리카 인디언만 비가 내릴 때까지 끈질기게 기우제를 지내는 줄 알았는데 130년 전에는 우리도 그랬다. 오횡묵은 가뭄으로 논밭이 타들어 가자 하루걸러 한 번씩 한 달 동안 15차례 하늘에 빌었다.

군수도 파업하고 관노도 파업을 했다. 군수는 양반과 아전이 말을 듣지 않고 묵은 조세를 제대로 내지 않자 문을 닫아걸었다. 관노는 조세를 규정대로 줄이자 자기네 콩고물이 없어진다며 일손을 놓았다. 군수는 양반과 아전들이 제발 나오시라 빌었지만 관노들은 그 대가로 단단히 혼이 났다.

당시에 이미 함안에 들어와 광산을 하는 일본사람이 있었다. 수직굴을 뚫고 전기로 기계를 돌려 안으로 신선한 공기를 집어넣었다. 군수는 일본사람에게 환대를 받았지만 광산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는 인식은 바뀌지 않았다.

누정이나 명승을 찾아 시를 짓고 노닐었지만 단순한 놀이는 아니었다. 군수의 권위를 높이고 지역사회에 질서를 세우면서 학문도 권장하는 행정 행위였다. 그렇지만 무진정이 양반 전용 놀이터는 아니었다. 봇짐장수(褓商)들이 1000명 넘게 모여 대회를 연 적도 있었다.

세 번이나 불렀는데도 통인들이 대령하지 않는다고 아닌 밤중에 집합 나팔을 불어 허둥지둥 뛰어다니도록 했다. 옛날엔 일과 뒤에도 아전은 수령을 위한 5분대기조였는지 한밤중에 마음 놓고 술을 마신다고 혼을 내기도 했다.

선물 받은 벌꿀과 딸기를 동헌에 있던 모든 아전·사령·손님은 물론 일반 백성과 죄인까지 고루 나누었다. 형틀에서 볼기짝이 드러난 상태에서도 기쁜 기색으로 이를 우물우물 삼키는 모습에 군수는 허리가 끊어지도록 웃었다.

옛날은 살인이 나면 이웃 고을 수령까지 고달팠다. 초벌 검증은 해당 고을 수령이 하지만 그에 대한 복검(覆檢=두 번째 검증)은 이웃 수령의 몫이었다. 이런 고역을 피하려고 의령에서 옥사가 일어나자 입곡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 숨었다.

농사가 잘 되면 기뻐하고 실농할 것 같으면 걱정이 된다. 농부가 게으름을 피우면 나무라고 열심히 일하면 격려한다. 조세와 풍흉이 직결되기 때문이다. 들판에 나갈 때는 엽전이나 담배·바늘을 넉넉하게 챙겼다. 말로만 하기 보다 요긴한 물건을 같이 주면 인심을 손쉽게 얻을 수 있다.

섣달그믐날 밤에 아이와 어른이 함께 귀신 묻는 놀이를 하고 정월대보름에는 다리밟기·줄다리기·달맞이가 나온다. 대군물(大軍物) 군사퍼레이드에서는 대장이 일흔을 넘었는데 자기 무기에 눌려 말에서 떨어질락 말락 한다. 군복은 이웃에서 빌리거나 아내 치마로 만들어 각양각색 볼수록 우스꽝스럽다.

군수 업무는 대부분 조세와 관련돼 있었다. 조세를 배당하고 닦달했는데 제대로 못 내면 곤장을 치고 감옥에 가둔다. 하지만 상부를 향해서는 백성 편에 서서 감해달라고 사정하는 공문도 닦아 올린다.

<함안총쇄록> 첫 장. ⓒ한국학중앙연구원

살아 움직이는 기록을 위하여

2003<함안총쇄록> 국역판을 펴낼 때 함안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 이규석 소장은 “<함안총쇄록>은 역동적인 활동사진이라 했다. 한 번 읽어보면 정말 맞는 말임을 실감할 수 있다. 또 방대한 내용을 촘촘하지만 자유로운 필치로 거의 날마다 써내려간 기록정신은 지금 봐도 놀랍다.

하지만 한글로 옮겨졌어도 친숙하고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지는 않았다. 좀더 널리 알리고 좀더 활용되도록 하는 디딤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공간을 함안에 초점을 맞추어 함안의 관아 건물과 공간을 재현해 보았다. 함안읍성도 당시 모습을 재구성하는 동시에 현재 상태도 확인하여 서로 비교해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둘째 당시 사건·사고와 얘기들을 발굴하여 장소별로 시간대별로 일목요연하게 배열하고 누구나 알아볼 수 있도록 적절한 비교·대조도 나름 적절하게 곁들였다.

셋째 당시 활동이 있었던 장소를 찾아내어 옛날 자취가 남아 있는지 확인하고 함안의 지역 색채가 뚜렷한 공간은 좀 더 더욱 꼼꼼하게 챙기고 기록하려고 했다.

넷째 민속놀이와 세시풍속은 대체로 빠짐없이 다루었다. 나중에 훌륭한 문화자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몰라서 놓칠 수는 있어도 알면서 빠뜨리지는 않았다.

다섯째 객관 사실에 대한 확인에 더하여 사실과 사실 사이 관계 파악을 앞세우고 스토리텔링 욕심은 부리지 않았다. 뜻있는 독자 여러분의 상상력과 감수성이 방해 없이 자유롭게 작동되도록 거들겠다는 취지다.

 

경남도민일보 2019612일자에 실리고 2020년 펴낸 책자 <함안총쇄록 답사기-조선시대 원님은 어떻게 다스렸을까>에 들어 있는 글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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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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