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습지에서 인간의 삶을 읽다> 에필로그

김훤주 2021. 9. 29.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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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는 습지는 아름답다. 하지만 속으로 들어가면 인간이 습지를 얼마나 함부로 대하는지 그 흔적들을 너무도 쉽게 볼 수 있다. 이번 습지 탐방은 우리 인간이 망가뜨린 적나라한 현장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해안에는 그물, 브이, 유리병, 페트병 따위가 밀려온 파도 끝에 수북이 매달려 있다. 냇가에는 수풀더미로 대충 눈가림을 하고 있는 쓰레기더미가 쌓여있고, 낚시꾼들이 버린 찌, 바늘, 밑밥, 라면 따위는 흐물흐물 습지 속으로 녹아든다. 냉장고, 텔레비전, 전축, 선풍기, 밥솥 등 온갖 가전제품이며 자전거, 타이어, 의자, 소파, 찬장, 씽크대, 침대매트, 옷가지, 과자 봉지, 포장용 스티로폼 등 인간이 버린 온갖 잔해들이 패잔병처럼 구석구석 널브러져 있다. 어디 그뿐이랴! 농사용 비닐은 물론이고 용암처럼 울퉁불퉁 굳어 있는 콘크리트 더미며 군데군데 철근이 튀어나온 건축 폐기물, 그야말로 육해공군이 습지에 다 모여들었다.

진주 장재늪의 봄 풍경.

 

그럼에도 습지는 한없이 너그럽다. 습지가 품고 있는 풍성한 인간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습지와 인간이 어떻게 공존해왔는지를 짐작한다. 신석기시대 통나무배나 청동기시대 고인돌, 가야시대 고분과 고려시대 연밥에서 인간과 습지의 조화로움을 배운다. 그러나 그 조화로움이 언제나 평화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일제강점부터는 습지를 대하는 인간의 자세가 좀 더 공세적으로 바뀌게 된다. 식민지 백성과 마찬가지로 습지도 침략과 수탈을 겪어야 했던 시기였다. 창원 주남저수지의 주천갑문, 고성 대가저수지의 수호탑, 사천 두량저수지의 준공기념비, 사천강 기슭의 비행기 격납고는 뼈아픈 그 시절을 잘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습지에 관심이 없다. 습지에 얽힌 인간의 역사나 인간으로 말미암아 상처를 받고 있는 습지의 고통 따위에 대하여 대체로 무감하다. 그러다 보니 무심히 버린 쓰레기가 습지를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그런 행위가 결국 우리에게 어떤 결과로 돌아올 것인지에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흔히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알지 못하면 보이지 않는 법이다. 습지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게 된다면 습지가 눈에 들어오게 되고 눈에 들어오면 아끼게 되지 않을까 싶다. 마찬가지로 습지에 어려 있는 역사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되면 그만큼 습지를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욕심을 이 책에 담아봤다.

 

습지에 대하여 좀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는 데 이 책이 보탬이 된다면 좋겠다.

 

김훤주

 

<습지에서 인간의 삶을 읽다>에 실린 글입니다. 경남도민일보의 '도서출판 피플파워'에서 201811월 출간했으며 2008년 펴낸 <습지와 인간>의 후속편에 해당됩니다. 2019년 문화관광부·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우수출판콘텐츠 세종도서에 선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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