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촌 일본인 거주지의 확장

그 북진 막으려 한 정세권 선생

 

독립운동에 몸소 나서고

고향 고성 소학교 건립도

 

서울에 가면 북촌 한옥마을이 있다. 하나같이 가운데에 마당을 두고 사방을 건물로 두른 ㅁ자 모양이다. 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있어서 고관대작들의 저택이 많았는데 지금 한옥은 1920~30년대에 대단지로 지어졌다. 북촌 맞은편 남촌은 일본인들의 집단 거주지였다. 1920년대에 서울 인구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일본인들이 많아지자 북촌 고관대작들의 소유지에 눈독을 들였다.

 

북촌 한옥마을은 일본인들의 이런 북진을 막으려고 지은 것이다. 조선이 망하면서 궁색해진 고관대작들이 저택을 내놓는 경우가 많았고 그러는 족족 정세권이라는 인물이 사들였다. 광대한 집터를 잘게 쪼갠 다음 10~20채씩 한옥을 지어 일반인들에게 분양했다.

조선어학회를 위해 조선기념도서출판관을 창립했다는 동아일보 1935년 3월 16일자 기사.

일본식이나 서양식으로 지어도 됐을 텐데 굳이 한옥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정세권은 말했다. "사람이 살려면 집이 있어야 하고 한옥을 지어 놓으면 일본인은 살지 못하고 조선 사람이 살 수 있다. 사람 수가 힘이다."

 

서울 전체 주택 거래의 35%를 차지하기도 했던 정세권은 건축왕으로 불렸다. 함께 삼대왕으로 꼽히던 유통왕 박흥식과 광산왕 최창학은 전투기를 헌납하고 친일을 했다. 하지만 정세권은 친일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독립운동을 했다.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하는 건축업자였지만 스스로 능동적으로 찾아 나섰다.

 

"친일을 피하고 징역 안 갈 만큼이라도 하자." 전국을 다니며 생산자와 소비자를 조직하고 회관을 건립하고 기관지까지 발행하면서 조선물산장려운동을 이끌었다. 만주동포구제회를 결성해 청산리전투로 유명한 김좌진 장군의 유족을 거두는 등 독립운동가 가족도 보살폈다.

 

조선어학회의 한글운동에도 뛰어들었다. 회관 건물도 기증하고 조선기념도서출판관의 이사도 맡으면서 조선어큰사전 편찬을 재정 지원했다. 잡혀가 죽을 지경이 되도록 모진 고문을 당했고 뚝섬에 마련해둔 땅 35000평도 빼앗겼다.

 

정세권은 1950년대 후반 고향으로 돌아왔다. 1919년 스물두 살로 서울에 간 지 40년 만이었다. 마지막 사업은 자급자족이 가능한 농가주택을 짓고 농촌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었지만 1965년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정세권 1500원 김용기 500원을 내어 고향에 간이소학교를 지었다는 동아일보 1936년 6월 20일자 기사.

서울 가서 출세하면 고향은 돌아보지 않기 일쑤지만 정세권은 달랐다. 그의 고향 사랑은 1939년 자기가 나고 자란 마을에 소학교를 세운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에 있다가 1993년에 문을 닫은 덕명초등학교가 바로 그 학교다.

 

올봄에 우연한 기회로 이래저래 고성에 대해 살펴보다 알게 된 사실이다. 여태까지는 고성 하면 공룡발자국이나 송학동고분군·장산숲·옥천사 정도만 떠올랐다. 지금부터는 정세권 선생도 뿌듯한 가슴으로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경남도민일보 2021728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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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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