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애환 말없이 보듬은 산정 억새평원

 

의병장 곽재우와 창녕 화왕산

창녕에 가면 화왕산(火旺山·756m)이 있다. 남쪽과 서쪽·북쪽이 모두 가파르고 동쪽은 다른 높은 산들과 이어져 있다. 산성이 사방을 대부분 두르고 있는 화왕산 정상부에 이르면 북쪽에 꼭대기가 남쪽에 배바우가 솟아 있다. 홍수로 천지개벽이 되었을 때 배()를 묶어두었다는 배바우에는 사람 하나 들어갈 만큼 갈라진 틈이 있다. 의병장 곽재우의 전설이 서려 있는 장소다. 곽재우는 1592414(음력) 임진왜란이 터지자 같은 달 22일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켜 거름강(기강)나루와 솥바위(정암)나루에서 왜적을 물리쳤다. 낙동강 기강나루는 의령과 창녕을 이어주고 남강 솥바위나루는 의령과 함안을 이어준다. 곽재우는 당시 물길을 타고 의령·창녕·합천·고령·성산 등지에서 활약하면서 백전불패라는 신화 같은 역사를 남겼다.

화왕산 용지를 둘러싸고 사방으로 펼쳐지는 억새평원.

화왕산 배바우에는 곽재우와 관련된 전설이 있다. 1597년 왜군이 다시 쳐들어온 정유재란을 맞아 곽재우는 721일부터 화왕산성에 진을 치고 있었다. 무슨 일 때문인지 곽재우가 왜병들한테 쫓겨 커다란 바위의 갈라진 틈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랬더니 바위가 곽재우 장군을 알아보고 저절로 벌어졌다가 지나간 뒤에는 사람 하나도 지나기 어려울 정도로 다시 오므라들었다. 그래서 곽재우가 적병을 따돌리고 결국에는 무찔러 이길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런 전설을 보면 화왕산성 일대에서 왜적과 전투가 있었던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후대 사람들이 듣기에는 싸워서 이기는 전승이 통쾌하지만 당대 사람들한테는 죽거나 다치는 싸움일랑 어쨌든지 하지 않고 적병을 물러가게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당시 기록을 보면 화왕산성에서 곽재우는 전투를 하지 않았다. 실학자 이긍익(1736~1806)의 역사서 <연려실기술>을 보면 이렇게 적혀 있다. “방어사 곽재우가 화왕산성을 지키고 있으면서 적병이 다가왔는데도 다만 굳게 지키라고 장졸들에게 명령했다. 과연 하루 밤 하루 낮이 지나자 적이 싸우지 않고 강을 건너갔다.” 미수 허목(1595~1682)이 지은 망우당(忘憂堂) 곽공(郭公) 신도비명(神道碑銘)’, 갈암 이현일(1627~1704)이 지은 망우당 곽공 시장(諡狀)’, 다산 정약용(1762~1836)이 지은 <목민심서>, 무관 이덕무(1741~1793)가 펴낸 <청장관전서>가 모두 한결 같이 그렇게 적었다.

화왕산성에서 밀양·영산·창녕·현풍 일대 백성들을 거느리고 농성(籠城)을 했던 것이다. 사방이 가파르고 높아 왜적이 범접할 수 없었던 화왕산이었다. 왜적은 전라도와 경상도의 분수령 육십령을 넘어 전주·남원을 치기 위하여 함양 황석산성으로 떠났다. 곽재우는 조정에서 거듭 철수를 명령하고 계모 허씨의 초상이 겹쳐 8월 하순 산성에서 나왔다. 삼년상은 강원도(지금은 경북) 울진에 가서 자식·조카와 함께 패랭이(蔽陽子=폐양자)를 삼아 생계를 이으며 치렀다.

1983년 10월 배바우산악회가 화왕산성에서 의병이 왜적과 싸워 이겼다고 새긴 바위. 한자로 화왕산성의병전승지라고 적혀 있다. 역사적으로 사실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리 믿고 싶었나 보다.

화왕산성은 언제 쌓았을까? 아마 처음에는 가야 시대에 만들어졌다고 보면 맞다. 하지만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조선시대 기록은 고쳐 쌓은 것들이다. <태종실록>1410229일자 기사에서 화왕산성을 고쳐 쌓았다고 했다. 1454년 완성된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화왕산 석성(火王山 石城):둘레가 1217보이다. 샘이 아홉, 못 셋이 있으며 군창(軍倉)도 있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1530년 만들어진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화왕산 고성(火王山古城):돌로 쌓았고 둘레가 5983척인데 지금은 폐해졌다(今廢).”고 적혀 있다. 100년 남짓 세월이 흐르면서 다시 허물어진 것이다. 임진왜란이 터지면서 다시 쌓을 필요성이 커졌다. 정유재란 한 해 전인 15961120일자 <선조실록>은 창녕·영산·현풍·청도 네 고을의 수령을 시켜 화왕산성을 서둘러 수리하도록 한 사실을 적어놓고 있다.

화왕산성은 둘레가 대략 4에 이르고 넓이는 185000(56000)여서 대단한 규모다. 전란을 피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여 농성하는 데는 너른 공간만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옷가지나 먹을거리는 다른 데서 가져다놓을 수 있었지만 마실 물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함안 조남산 성산산성, 하동 양경산 하동읍성, 양산 영축산 단조성에도 물론 샘 또는 우물이 있다. 하지만 화왕산성의 그것만큼 크거나 많지는 않다. 수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마셔도 될 만큼 산성 한복판 여러 곳에서 물이 솟아나는 것이다. 정유재란 당시 창녕으로 쳐들어온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왜군은 창칼이 햇살에 빛나고 깃발이 들판을 덮었으며 행렬이 눈길 닿는 데까지 끝없이 이어질정도였다. 군사도 많았고 군기도 엄정했다는 얘기다. 왜적의 이와 같은 날카로운 기세에서 비껴나 백성들을 보전할 수 있었던 1등공신이 바로 화왕산성 한복판 샘물이었다.

 

산정습지에서 출토된 호랑이 머리뼈

화왕산성 한복판은 화산활동으로 자연스레 생겨난 분화구라고 짐작되는 자리로 움푹하게 꺼져 있다. 사람들은 오랜 옛날부터 용지(龍池)라 일러 왔다. 옛날에도 산꼭대기에서 물이 솟아나는 것이 신기했던지 이렇게 이름을 붙이고 둘레를 네모지게 돌로 쌓았다.

억새가 에워싸고 있는 가운데에 물이 고여 있고 오른쪽 나무 있는 데서도 물이 솟는다. 나무 뒤에 네모나게 창녕조씨득성비가 보인다.

2003년과 2005년 발굴(경남문화재연구원)에서는 비를 내려달라고 하늘에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던 현장이었음도 확인되었다. 어느 한 시대에만 그치지 않고 신라에서 조선에 이르기까지 1000년 남짓 동안. 용지 바닥 아랫부분 통일신라시대층에서는 세발솥, 1m 길이 칼, 놋그릇·구리그릇, 접시, 가위, 항아리, 다연(茶硏, 차를 가는 기구), 수막새 기와 등 500점 가량이 나왔다. 모두 제사 의식과 관련 있는 유물들이다. 윗부분 조선시대층에서는 호랑이·멧돼지·사슴의 머리뼈·턱뼈가 여럿 나왔고 몸통·다리에 해당되는 뼈다귀는 발견되지 않았다. 기우제를 지낼 때 목을 잘라 머리만 용지에 집어넣었다는 얘기가 된다.

왜 호랑이일까? 용지는 이름에서 보듯이 용이 깃들어 있는 자리였다. 용은 전설에서 하늘과 물을 오가면서 구름을 쥐락펴락하고 비를 내리거나 말거나 하는 영물이다. 옛 사람들은 이런 전설을 일상생활에서 진실로 믿었다. 용과 호랑이는 상극으로 용호상박(龍虎相搏), 용지에 깃든 용을 호랑이와 한 판 뜨겁게 맞붙게 함으로써 비가 내리도록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건너편 언덕에 있는 창녕 조씨 득성비도 용지와 무관하지 않다. 신라 진평왕 시절 한림학사 이광옥의 딸 예향이 병에 걸렸다. 치료를 위해 화왕산에 올라 용지에서 몸을 씻었더니 아이를 배었다. 꿈에 신령이 나타나 아이는 용의 자식이며 태어나면 겨드랑이에 ()’라고 적혀 있을 것이라 했다. 예향이 몸을 풀고 나서 임금이 불러서 보니 모두 그대로였다. 그래 창녕 조씨 시조로 삼고 이름을 계룡(繼龍-용을 이었다, 용의 후손)이라 했다.

 

억새 태우기 놀음의 참극

화왕산성 안쪽 너른 평원은 용지 덕분에 억새로 가득하다. 억새는 물기를 좋아한다. 사철 물이 마르지 않으니 억새가 무성하게 자라났다. 사람들은 이런 억새를 좋아하고 즐겼다. 창녕 산악인들은 화왕산과 배바우를 사랑하여 배바우산악회를 만들었다. 배바우산악회는 1971년부터 해마다 10월 첫째 토요일에 화왕산갈대제’(그 때 사람들은 대부분 억새와 갈대를 구분해 보지 않았다.)를 열었다. 10월 첫 금요일부터 사흘 동안 이어지는 비사벌문화제와 동시에 치러졌다. 산신제를 시작으로 산성 둘레를 통째 한 바퀴 돌면서 벌이는 횃불행진과 불꽃놀이가 장관이었다. 창녕 읍내에서 느긋하게 점심을 먹고 자하곡(작골)을 따라 가을바람 선선하게 맞으며 올라가면 지금도 구경할 수 있다.

전국에서 하나뿐인 야간산상축제이다 보니 전국에서 사람이 몰렸다. 이게 창녕군청에서는 관광상품으로 욕심이 났나 보다. 그래서 화왕산갈대제는 그대로 둔 채 1995년부터 정월대보름날 화왕산성 억새평원에 불을 지르는 축제를 하나 더 만들었다. 1996년과 2000년에 치러졌고 그 뒤로는 3년마다 한 차례씩으로 고정되어 치러졌다. 추운 겨울날 아닌 밤중에 12만 인파가 화왕산 꼭대기에 모여 억새평원이 활활 타오르는 불구경을 하는 엄청난 축제였다. 여기에 억새 태우기는 정월대보름날 화왕산에 불기운을 들여 재액을 물리치고 평안과 풍년을 비는 세시풍속이라는 억지 창작까지 더해졌다.

여섯 번째인 200929일 참극이 벌어졌다. 드디어 오고야 말 것이 오고 말았다. 저녁 620분 억새밭에 불이 붙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돌풍이 일자 불길은 사람들 몰려 있던 배바우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입었던 옷은 눈 깜짝할 새에 불탔으며 사람들은 불길에 떠밀리면서 낭떠러지에서 떨어졌다. 7명이 숨지고 81명이 다치는(4명은 중상) 참사였다. 화왕산 억새 태우기 축제는 다시 열리지 않게 되었다.

풀이 쓰러져 있는 자리와 나무가 있는 자리가 모두 바닥이 축축한 습지다.

 

생명들 보금자리 억새평원

화왕산 억새평원은 이처럼 사람들 관광지이고 놀이터였다. 사람들은 더 즐겁게 놀려고 억새평원에 불을 질렀다. 반대도 있었으나 지역 경제 활성화목청에 눌렸다. 하지만 자연이 사람들 놀이터인 것만은 아니다. 화왕산 용지와 둘레 억새평원은 사람뿐 아니라 다른 동물과 식물까지 함께 어울리는 삶터라 해야 맞다. 사람들이 조금만 이렇게 여겼어도 56000평 너른 억새평원을 통째 불사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용지를 둘러싼 일대는 전형적인 습지다. 산기슭 개울가에나 있을 법한 버드나무가 산꼭대기인데도 여럿 자라고 있다. 물이 질퍽한 데는 습지임을 일러주는 풀 진퍼리새가 무리지어 있다. 여기 물은 때로 붉은빛을 띠는데 진퍼리새와 여러 식물들이 생명을 다하고 스러져 산화(酸化)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쌓이고 다져지면 이탄층(尼炭層)이 된다. 화왕산 정상에는 물이 모이고 고이는 데가 용지 세 곳 말고도 더 있다. 동문 바깥만 해도 두 곳이 더 있었다. 억새는 물 속에서 자라지 않으므로 이런 데에는 없다. 대신 진퍼리새처럼 그보다 작은 풀이 자리를 잡는다. 억새는 물기를 머금을 정도 되면 딱 잘 자란다.

화왕산성 안팎에는 이처럼 물이 솟아 고이는 데가 여럿 있다.

억새평원은 짐승들 보금자리다. 용지를 비롯한 여기 물가를 뒤적여보면 짐승 똥이나 발자국이 여러 군데 눈에 띈다. 수풀에 있다가 나와서 물을 마신 흔적이다. 덤불에서 쉬고 머물고 잠자고 바람과 눈·비도 피한다. 덤불에는 새순·씨앗·잎사귀와 벌레 등등 먹이가 풍성하다. 억새 태우기는 그러니까 이런 동물들에게 안방을 불태우고 이불을 걷어차고 밥상을 엎어버리는 패악질이었던 셈이다. 불길이 지나가고 1년이 지난 뒤 용지 둘레 억새평원를 찾아 올라갔던 적이 있다. 20102월의 일이다. 예상한대로 멀쩡했다. 탄내도 가셔져 있고 포기까지 타버린 갈대와 억새도 다시 무성해져 있었다. 숯이 되었던 찔레도 다시 자라나 있었다. 둥지를 잃어 떠나야 했던 새들과 토끼들도 돌아왔다. 맵새는 덤불 사이로 낮게 날았고 꿩은 곳곳에서 푸드득거렸다. 토끼와 고라니 등의 똥도 여러 곳에서 눈에 띄었다. 용지는 여전히 식물들에게는 뿌리를 적셔주고 동물들에게는 목을 축여주고 있었다.

발굴을 거쳐 복원까지 이른 용지. 둘러싼 돌의 매무새가 어쩐지 그럴 듯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화왕산 용지가 이처럼 동물·식물에게 생명선이라면 저 아래 자리잡고 사는 사람들한테는 무엇일까? 말 그대로 밥줄이다. 화왕산 용지에서 솟은 물은 서쪽으로는 창녕천을 이루고 남쪽으로는 계성천을 이루며 북쪽으로는 토평천을 이룬다. 창녕천·계성천·토평천은 낙동강으로 합류할 때까지 창녕 계곡과 들판을 이리저리 휘감아 흐른다. 토평천은 게다가 그 유명한 우포늪(소벌)까지 안고 있다. 이렇게 여러 물줄기를 베풂으로써 그 유역에 인간들이 정착하여 논과 밭을 일굴 수 있도록 해주었던 것이다. 덕분에 창녕은 옛날부터 물산이 풍성했다. 청동기시대부터 가야 비사벌·통일신라를 거쳐 고려·조선까지 갖은 문화유산이 남아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창녕은 화왕산과 용지한테 엄청 크게 빚을 지고 있는 고장이다.

 

<습지에서 인간의 삶을 읽다>에 실린 글입니다. 경남도민일보의 '도서출판 피플파워'에서 201811월 출간했으며 2008년 펴낸 <습지와 인간>의 후속편에 해당됩니다. 2019년 문화관광부·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우수출판콘텐츠 세종도서에 선정되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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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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