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16. 함안 연꽃테마파크와 옥수홍련·옥수늪

김훤주 2021. 9. 20.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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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접받아 마땅한

토종 연꽃의 1100년 고향

 

 

 

옛 습지에 들어선 새 습지

함안에 가면 함안연꽃테마파크가 있다. 가야읍 나들머리에 자리잡은 함주공원과 가깝다. 가야동늪지 또는 가야습지라 이르던 곳이다. 함안군청은 일대 1098002008~2013100억원을 들여 공원을 새로 꾸몄다. 가야동늪지는 아라가야의 왕궁 자리로 알려져 왔다. 공원 조성에 앞선 문화재 발굴에서 관련 유적이 나오지 않을까 은근한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왕궁 유적은 발견되지 않았고 대신 제방 유적이 나왔다. 왕궁을 둘러싸는 토성으로 짐작되어 왔던 것이다. 바로 옆 신음천에서 여기로 물이 들지 못하도록 막는 구실을 하는 제방이었다. 1500년 전 안팎 가야시대 것이었다. 함안군청은 개발·활용보다 현상 보존이 낫다고 여겨 흙으로 다시 덮었다.

신음천은 여기를 지나면 곧바로 함안천과 합해진다. 함안천은 다시 북쪽으로 6를 더 나아가 남강을 만난다. 그러면서 운곡천과 옥렬천 등 몇몇 줄기를 더 받아들인다. 1500년 전에도 가야읍 일대는 이처럼 여러 물줄기가 겹쳐져 사람이 들어서기 어려운 습지였을 것이다. 이런 데를 옛날 사람들이 그 끝자락이나마 농토로 활용하려고 힘들여 제방을 쌓았다. 그래서 함안연꽃테마파크에는 고대 낙동강 중·하류역의 농경지 개척 현황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이며 특히 고대 제방의 축조방법을 알려주는 중요한 토목사적 유적이라 적힌 안내판이 있다. 팽개쳐져 있던 묵은 습지를 재활용한 현장이다. 습지의 여러 효용 가운데 심미적 가치를 특화한 셈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누리며 지친 심신을 어루만지고 달랠 수 있도록.

옥수홍련이 피어 있는 함안연꽃테마파크.
함안연꽃태마파크에 피어 있는 옥수홍련.

1100년 전 그대로 옥수홍련

함안연꽃테마파크는 6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이름이 크게 나 있다. 연꽃이 만발하는 7~9월에는 새벽부터 붐빈다. 주말·공휴일이 아닌 평일도 그렇다.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마음껏 꽃도 구경하고 사진도 찍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지 싶다. 연꽃이 대단한 데는 여기 말고도 적지 않다. 전북 전주 덕진공원이나 전남 무안의 백련지가 그렇다. 하지만 거기서는 연꽃에 바짝 다가가지 못하고 먼발치서 보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함안연꽃테마파크에서는 꽃송이에 얼굴을 밀착시킬 수도 있고 손으로 만질 수도 있다. 꽃술과 연밥이 어떻게 생겼는지, 꿀벌이 몇 마리나 웅웅거리는지 등을 손금 들여다보듯이 할 수 있다. 특수렌즈가 없는 똑딱이 카메라나 폰카를 갖고도 꽃송이 하나로 화면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여기 연꽃은 다른 연꽃 단지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명품이다. 하얀 백련이나 꽃이 수면에 붙어 피는 수련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주인공은 옥수홍련이다. 옥수(玉水), 이름도 예쁘다. 함안군 법수면의 옥수늪에서 옛날부터 절로 자라던 연이라서 붙은 이름이다. 사람 취향에 맞추어 개량을 거듭한 연꽃이 아니라 원래 모습과 성질을 제대로 간직한 토종이고 순종이다. 사람이 바빠지고 세상도 빨리 돌아가는 때문인지 요즘 연꽃은 눈길을 단박에 끌어당길 수 있도록 색깔이 화려해졌고 덩치가 커졌다.

반면 옥수홍련은 잎맥이 뚜렷하고 그 잎맥을 따라 퍼지는 색깔이 그윽하고 은은하다. 꽃송이는 소담하고 키 또한 1m 안팎으로 크지 않다. 옥수홍련의 DNA는 신라 경주 왕궁 안압지에 있는 연과 같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1100년 전 원래 품성을 여전히 변함없이 품고 있다. 덕분에 옥수홍련은 2007년 서울 경복궁 경회루 연꽃 복원에도 쓰였고 2016년에는 경북 울진의 명소 연호정으로도 보내졌다. 우리나라 고유 연꽃의 대표선수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옥수홍련의 초라한 고향

옥수홍련을 배출한 옥수늪은 어디에 어떻게 있을까. 사라지지나 않았을까. 법수면 법수초교 근처에 농협경남물류센터와 롯데하이마트경남물류센터가 있다. 둘 다 옥수늪을 매립한 위에 들어선 건물이다. 그래도 아직은 사라지지 않았다. 옥수늪은 그 사이에 쪼그라진 채 셋으로 나뉘어 있다. 농협과 롯데하이마트 사이에 하나, 농협 뒤편 들판 쪽에 둘. 원래는 5남짓이었지만 1993년에 절반 가까이가, 2004년에는 나머지 대부분이 매립되었다. 제각각 건물터와 농지의 조성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농지 조성을 위해 매립된 부분도 언제 건물터로 용도변경이 될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길에서 만난 할매 한 분은 “50년도 전에 시집왔을 때는 모두 뻘탕이었다. 배고픈 시절 먹고살려고 고생고생해서 논을 만들었지라 했다. 그 때 논을 만들면서 농지에 물을 대려고 남겨두었던 습지가 지금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옥수늪의 원형일 것이다. 뻘탕은 진흙탕을 이르는 경상도 지역말이다.

들판 쪽에서 바라본 옥수늪.
농협경남물류센터와 롯데하이마트물류센터 사이에 끼여 있는 옥수늪.
농협경남물류센터 쪽에서 바라본 옥수늪. 콘크리트 구조물은 공중에 나 있는 농수로이다.

옥수늪으로 흘러드는 물줄기는 서남쪽 천제산(230m) 언저리에서 나온다. 다른 한편으로는 윤내저수지에서 나오는 물도 받아들인다. 물줄기는 개울을 이루지 못했다. 아래로 가면서 넓어지기는 하지만 봇도랑(농수로)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직선 제방에 갇힌 채 가로세로 들판을 지르다가 남강으로 들어간다. 그래서인지 이름도 없다. 들판에서 할배 한 분에게 여쭈었다가 봇도랑 이름 묻는 사람은 팔십 평생에 처음이네하는 지청구만 들었다.

옛날에는 어땠을까. 산비탈을 빠져나와 너른 벌판을 만나면 속도와 방향을 잃고 대중없이 흩어지는 것이 물이다. 바닥이 고르지 않아 거기 고인 물은 깊이를 대중하기 어려웠다. 사람 입장에서 볼 때 물이 스며들어 흥건해져 있는 이런 지대는 접근이 어려웠다. 그래서 논밭과 집은 산기슭이나 언덕배기 가까이 있었다. 일대가 얼마나 물이 빠지지 않는지는 바로 옆 제방 너머 논을 보면 알 수 있다. 분명 논이지만 오리 200~300마리가 떼로 헤엄치고 있을 만큼 물이 깊고 그득하다. 제방에 있던 할매 한 분한테 일부러 물을 넣어 무논으로 만들었느냐 물었다. 그랬더니 어데가! 사철 물이 나는 논이라 나락농사밲이 못하네. 채소 같은 밭농사는 지을 수 없으니라 일러주었다. 이처럼 주변이 논으로 바뀐 뒤에도 물이 솟거나 흘러들어 고이는 들쭉날쭉한 지대는 논두렁 바깥에 남았고 사람들은 이를 옥수늪이라 했다.

옥수늪 옆에 있는 무논. 늘 물이 고여 있어서 벼농사밖에 못 짓는다.
옥수늪 옆에 있는 무논에서 오리를 비롯한 겨울철새들이 노닐고 있다.

일대 옛날 지명이 막등(幕嶝)이었다는 사연도 있다. 1920년대 남강·함안천에 제방을 쌓기 전 여기 늪지대에는 뽕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뽕나무는 느릅나무·버드나무와 함께 습지 가까이에서 잘 자라는 나무다. 뽕잎으로 누에를 치면 질 좋은 실을 뽑을 수 있었다. 그래서 달리 사람한테 살기 좋은 조건은 아니었지만 몇몇은 자리를 잡았다. 반듯한 집은 짓기 어려워 원두막() 비슷한 거처를 야트막한 비탈()에 지었다. 1500년 전~2000년 전 고대 유적지에나 있었던 고상(高床)가옥이 100년 전 옥수늪 주변에도 있었던 것이다.

창원 다호리고분군에서 출토된 고상가옥=다락집 모양 토기. 100년 전에만 해도 이런 집이 여기 함안에 있었다.

 

우리나라 연근 최대 산지 함안

지금 옥수늪은 초라하다. 둘러싸고 있는 물류창고에서는 개발압력도 느껴진다. 어쩌면 초라하게나마 살아남은 옥수늪을 없애버릴지도 모른다. 옥수홍련의 고향을 계속 이대로 두면 곤란하다. 함안군청·한국수자원공사·한국농어촌공사·낙동강유역환경청 등 관계기관과 지역 주민·환경단체가 머리를 맞대면 지금과 같은 오종종한 몰골은 쉽게 벗어날 수 있다. 구석구석 들어찬 쓰레기, 나무줄기를 뒤덮은 덤불, 바닥 여기저기 남아 있는 낚시 흔적만이라도 치우고 지우면 많이 나아질 것이다.

옥수늪은 옥수홍련의 고향답게 대접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걸림돌이 있다. 옥수늪이 사유지라는 점이다. 그동안 보전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었는데도 여태껏 매립과 개간을 피할 수 없었던 이유다. 지금 남은 면적이 넓지 않은 것은 어쩌면 오히려 다행이다. 공유지로 만드는 데 나랏돈이 많이 들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다음으로는 주변 식생을 정비하고 탐방로를 마련하면서 옥수홍련으로 옥수늪을 채우면 좋겠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이 자주 찾고 관심을 갖고 아끼게 되면 습지는 사라지지 않는다.

옥수늪이 되살아나고 옥수홍련이 피어나게 되면 또다른 이득이 있을 수 있다. 함안 특산물인 연근을 마케팅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침 함안이 우리나라 연근의 으뜸 생산지이니까. 함안은 북쪽을 남강이 흐르고 동쪽을 낙동강이 흐른다. 또 함안 땅 한가운데로는 함안천이 남에서 북으로 흐르며 갖은 물줄기를 쓸어담는다. 이런 까닭으로 하천 주변에 뻘밭이 많이 형성되었고 이런 데에다 연을 많이 심게 되었다. 함안의 연근 재배 면적은 전국 최대 규모이다. 2016년 현재 70남짓으로 전체의 12%에 이른다. 생산량도 그에 걸맞게 전국 최고 수준으로 2016년 한 해 동안 1276t을 웃돌았다. 이를 위해서라도 옥수늪을 지금처럼 계속 팽개쳐두면 안 된다.

 

<습지에서 인간의 삶을 읽다>에 실린 글입니다. 경남도민일보의 '도서출판 피플파워'에서 201811월 출간했으며 2008년 펴낸 <습지와 인간>의 후속편에 해당됩니다. 2019년 문화관광부·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우수출판콘텐츠 세종도서에 선정되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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