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총파업 집착을 떨치자

김훤주 2008. 8. 6.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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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운동권이 생각을 하는 데에서 게으르다고 생각하는 축입니다. 이리 잘라 말하는 까닭은, (그이들이)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별로 돌아보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렇습니다. MBC는 이미 민영화돼 있습니다. MBC를 ‘민’이 운영하지 ‘관’이 운영하지는 않습니다. 소유 구조는 공적이지만, 운영은 이미 민에게 맡겨져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실은 대통령 이명박의 MBC ‘사유화’ 정책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이면서도, ‘MBC 민영화 반대’라는 말을 서슴없이 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권력과 자본이 선점한 용어를 그대로 따라 쓰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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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파업’은 경우가 조금 다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제대로 쓰이지 않는다는 면에서는 똑 같습니다. 똑바로 알지 못하면 여기저기 찾아봐야 하는데, 찾아보지를 않습니다.

총파업은 영어로 하면 제너럴 스트라이크(Gnereral Strike)입니다. 모든 산업에서 모든 노동자가 진행하는 파업입니다.

일제 시대 원산총파업을 보기로 들자면, 원산에 있는 모든 산업 노동자가 파업을 벌였습니다. 그러니까 단일 산업 노동자가 벌이는 전면 파업을 두고 총파업이라 하면 맞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이렇습니다. 금속노조는 언론노조는 총파업을 할 수가 없습니다. 총파업은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 같은 ‘총연맹’만 할 수 있는 전술입니다.

그런데도 언론노조는 ‘총파업’을 내걸었습니다. 총파업의 뜻을 모르고 하는 언사입니다. 이러다 보니 단위 사업장 노조에서도 ‘총파업’을 내겁니다.

황당하지 않습니까? 이런 게으름에는 허위의식이 있습니다. 모자라는 객관적 역량을, 넘쳐나는 주관적 의지로 대체해 보겠다는 생각입니다.

총파업이라 하면,  사실은 그냥 집회를 하는 수준일 뿐인데도 무언가 대단한 결의가 있는 것처럼 여깁니다. 반대로 실제 파업을 하는데도 총파업이라 내걸지 않으면 정말 사소하게 느낍니다.

투쟁 방법은 다양합니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 쓸 수 없고, 소 잡는 데 닭 잡는 칼 쓰면 안 됩니다. 나아가, 특정한 칼 한 자루(한 가지 투쟁 방법이나 투쟁 형태)만을 두고 절대화하거나 하면 바로 망합니다.

주어진 조건과 역량을 잘 따져서 할 수 있는 투쟁을 하면 그만입니다. 제가 몸 담고 있는 언론노조는, 현재 조건에서, 잘해 봐야 부분파업입니다.

그러나, 부분 파업도 위력이 대단합니다. KBS본부는 못하더라도, SBS본부는 못하더라도, MBC본부가 하면 됩니다.

지역 방송도 하면 됩니다. 조건이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지역 MBC나 KBS 지역 본부나 같은 데에서 합법 불법 가리지 않고 필요한 저항 투쟁을 하면 그만입니다.

그리고 한겨레지부나 경향신문지부도 파업을 하면 됩니다. 아울러 경남도민일보지부 같은 지역 일간지 지부 몇 군데가 파업에 나서면 됩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대통령 이명박의 언론 장악 정책에 맞서서, 서울의 방송과 신문이 투쟁에 나섰고, 못지 않게 또는 더 크게 지역의 방송과 신문이 투쟁에 나서는 것입니다.

이제 저는, 총파업을 알리는 깃을 쓰레기통에 버립니다. 우리 투쟁은 이런 면에서 ‘실용’을 지향합니다. 그래야 자본과 권력의 ‘실용’ 이명박(벌써 지겹다!!)을 이길 수 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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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홍 시인의 동시집. 표제시「닿지 않는 손」은 농사일을 하는 부모님의 고마움을 표현한 동시이다.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맑고 곱게 바라보는 시적 화자의 감성이 아이들의 마음에 콕 와닿을 것이다. 특히 이야기 들려주는 듯한 시적 표현은 아이들로 하여금 동시에 푹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적인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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