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지리산 아래에 있는 한 산골마을을 찾아갔습니다. 경남 산청군 시천면 덕산리라는 곳입니다. 퇴계 이황과 대척점에서 조선 유림의 거두였던 남명 조식 선생이 말년에 수학하다 돌아가신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요즘은 산청 지리산 곶감으로 유명하며, 이곳의 식당에서 파는 돼지고기는 대부분 지리산 흑돼지로도 유명합니다. 마침 '가는 날이 장날'이어서 산골의 장터구경을 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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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이 덕천강가의 정자에서 무더위를 피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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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편에서는 한 상인이 화분의 나무와 화초를 팔고 있었습니다. 빨간 벼슬의 장닭(수탉)도 팔러나온 거랍니다. 값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쌌는데, 5000원이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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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입니다. 그야말로 만물상답게 낚시도구는 물론 각종 공산품과 곶감, 벌꿀, 고로쇠 등 식품에다 신발까지 판다고 적혀 있군요. 인근에 덕천강이 있어서인지 투망과 튜브도 팔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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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리 도로의 한적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유난히 가게 앞에 즐비한 화분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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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에는 온갖 종류의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저 멀리에는 떡방아집도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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낫과 호미, 톱, 망치 등 각종 농기구와 공구를 팔고 있습니다. 과거엔 대장간이 동네마다 있었지만 요즘은 다 사라지고 공장에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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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도 화초가 꽤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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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탐스러운 꽃들입니다. 여기엔 지붕 위에도 꽃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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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골목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여기에도 오른쪽에 화분들 보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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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무더위를 이겨낼 수 있는 각종 상품들을 팔고 있습니다. 삿갓을 하나 사고 싶었는데, 나중에 사려다 결국 못사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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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도가도 있습니다. 막걸리를 빚어 파는 곳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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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다방도 있고, 약국, 옷가게, 문방구, 세탁소 등 시골이라도 있을 건 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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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장수도 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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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견공도 팔리기 위해 실려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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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사시는 지인의 집 마당과 집앞 개울에서 오랫만에 봉숭아도 봤습니다.

이처럼 평화스럽게 보이는 이 산골마을에도 59년 전 큰 아픔이 있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 토벌을 하러온 국군들이 마을 주민들을 집단학살한 사건인데요.

당시 덕산시장과 다리 하나 사이에 있던 덕산초등학교(현 덕산중학교)에 주둔하고 있던 국군 3연대 소속 군인 37명이 빨치산에 의해 희생을 당하는 사건이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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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년 덕산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외공리 뒷산에 암매장된 피학살자의 유해를 시민단체가 수습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이곳도 추가발굴을 할 예정입니다.

그런데 이 때문에 약이 오른 군인들이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불을 지르고 주민을 덕천강가와 신천초등학교에서 학살했는가 하면, 덕산초등학교와 3연대 정보과 본부인 농회창고 등에 주민들을 끌고와 학살한 후 뒷산에 암매장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무고하게 희생된 주민들이 수백 명에 이르는데, 최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확인한 희생자 명단만 해도 129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국군이 마을주민들을 학살한 이유는 '빨치산에 협력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민들은 '낮에는 국군, 밤에는 빨치산 천지가 되는 상황에서 빨치산에게 반강제적으로 쌀을 빼앗기거나 밥을 해줄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런 이유로 재판도 없이 비무장 민간인을 군인들이 학살한 것은 유족들에게 반세기가 넘도록 풀리지 않은 깊은 한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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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제가 그곳을 찾았던 것은 진실화해위원회가 마침내 59년만에 당시 희생된 분들의 유해발굴작업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학살됐던 당시 덕산초등학교 강당에서 개토제(흙을 파기 전에 지내는 제사)를 지냈습니다. 여기에 참석했던 유족들은 기쁨도, 슬픔도 드러내지 않은 덤덤한 무표정이었습니다. 이 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천추의 한을 풀고 저승에서나마 당시 희생된 남편, 부모님들을 만날 수 있을까요?

개토제가 시작되기 전 유족들과 점심을 먹던 중 만나 알게 된 한 유족의 증언을 동영상으로 남깁니다. 그는 "여순반란사건으로 쫓겨온 좌익군인들이 지리산에 들어가 빨치산이 되었고, 그들에게 국군 37명이 희생되자 국군이 주민들이 사는 마을에 불을 지르고 덕산초등학교에 집결시켜 학살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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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기록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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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uldackcamera.tistory.com 불닭 2008.07.27 20: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렇게 평화로운곳에서 정말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었군요... 에효, 그래도 아무잘못없는 주민들을 학살한 국군은 잘못이 잇긴 있네요.

  2. Favicon of http://blog.daum.net/mylovemay/?_top_blogtop=go2myblog 실비단안개 2008.07.27 21: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픈 역사의 한페이지군요.
    유해발굴작업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는 기회면 좋겠습니다.()

  3. soultype 2008.08.01 14: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며칠전 친구랑 거창에 월성계곡을 다녀왔습니다. 덕유산 자락에 위치한 그 곳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거창군 신원면에 위치한 거창사건추모공원을 갔었더랬죠. 719명이나 되는 양민들을

    '견벽청야'라는 작전명으로 모두 죽임을 당했던 그 곳에, 동네 주민들로 보이는 노인들이

    정자에 앉아 쉬고 계셨습니다.

    뭐랄까요...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들더군요.

    국군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일이 그렇게 많았는데도, 어떻게 우리는 자라면서 그런 부분들은 전혀

    안배울 수가 있었던가부터 박산골합동묘역이란 곳에 500명이 넘는 사람들을 모셨는데, 박정희가

    5.16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았을 때, 그 곳에 개장명령을 내려 모두 개인묘로 이장하라는 지시와 함께

    그 곳에 세워져있던 위령비의 글자 한 자, 한 자마저 정으로 쪼아 땅 속에 파묻었다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박정희는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실...

    정말 요즘엔 제 정신으로 사는게 참 힘든 것 같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산청을 지나서 내려왔는데, 산청에서 또한 그런 일이 있는지는 몰랐었네요.

    기자님의 좋은 글 보고 갑니다.

    억울한 죽음을 당하신 모든 분들의 넋이 지금에라도 위로받길 바랍니다.

    p.s : 그냥 기자님 글을 보니 조금 착잡한 마음에 주저리 주저리 읊었습니다.

    참고로 저는 현직 교사입니다. 수고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