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국가기록원 "사본제작? 우리 실수예요"

기록하는 사람 2008. 7. 24.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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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말에 '쌔운다'는 말이 있다. 억지 주장을 하면서 박박 우기는 걸 뜻한다.

요즘 대통령기록물 '사본복사'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주장과 조·중·동의 보도를 보면 이 경상도 단어가 떠오른다. 그 쌔우는 수준이 거의 초딩이다.

어레버레버레베베베

반장 선거에서 당선한 이모 군이 멋대로 권한을 남용하다가 아이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입장이 아주 난처하게 됐다. 그러자 이 반장은 느닷없이 작년에 반장을 했던 졸업생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여러분~, 쟤가 불법을 저질렀어요. 아주 나쁜 놈이에요."

"엥? 뭐가 불법인데?"

"지가 쓰던 공책을 유출했으니 불법이에요."

"유출이 아니라, 원래 공책은 도서관에 넘겨주고 사본만 복사했다잖아."

"사본복사도 불법이에요."

"왜 그게 불법인데?"

"사본복사도 불법유출이니까요."

"사본복사가 왜 불법유출이야? 선생님(법제처)이 복사해도 된다고 했다는데."

"그건 몰라요. 하지만 불법이에요."

"도서관장님(국가기록원)도 사본제작을 할 수 있다고 게시해놨다가 엊그제 갑자기 지워버렸다던데, 그건 왜 그랬어?"

"몰라요, 그건 실수래요."

"그럼 대체 뭐가 불법이라는 거야?"

"하여튼 불법이에요."

"아, 그래 왜 불법인지 말을 해보라니까?"

"불법이야, 불법 불법 불법 어레버레버레베베베베…."

"나, 참, 기가 막혀서."

"뭐야, 너 기가 막힌다고 했어? 기가 막히는 건 나야 나! 씨~ 두고봐, 쟤 고발하고 말거야."

"???"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결국 쌔우는 아이를 감당할 수 없어 사본을 반납하고 말았다.

"자, 자, 여깄어. 가져가. 이제 됐지?"

"그런데, 왜 이걸 이런 싸구려 포장지에 싸온 거야? 그리고 처음 이걸 담아간 상자는 어쨌어? 또 집 안에 다른 상자들도 더 있던데, 그것도 내놔."

"그 상자는 내건데?"

"안 돼, 그 안에 하나 더 남겨놨을 수도 있으니, 그것도 다 내놔!"

일은 이렇게 진행돼 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과연 사본을 복사한 것이 '불법 유출'이냐는 것이다. 2007년 4월 27일 제정된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을 보면 '대통령기록물은 (누구에게나) 공개함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아, 그거요? 실수예요. 실수

비밀을 요하는 중요한 것은 '지정기록물'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정하게 돼 있다. 하지만 이 '지정기록물'도 '열람, 사본제작 및 자료제출을 허용'하는 경우가 있다.

1. 국회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의결이 이루어진 경우
2. 관할 고등법원장이 해당 대통령지정기록물이 중요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여 발부한 영장이 제시된 경우
3. 대통령기록관 직원이 기록관리 업무수행상 필요에 따라 대통령기록관의 장의 사전 승인을 받은 경우

이 조항이 '제17조 제4항'이다.  그러면 '전직 대통령'인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열람·사본제작'을 할 수 있을까 없을까? 이에 대한 답이 바로 아래 제18조에 나온다.

'대통령기록관의 장은 제17조 제4항의 조항에도 불구하고(이 '불구하고'까지가 중요하다. 밑줄 좍 긋고 볼 것-글쓴이) 전직 대통령이 재임 시 생산한 대통령기록물에 대하여 열람하려는 경우에는 열람에 필요한 편의를 제공하는 등 이에 적극 협조하여야 한다.'

바로 이것이다. 즉 여기서 '제17조 제4항의 조항에도 불구하고'라는 문구는 위의 세 가지 범위에 관계없이 전직 대통령의 경우 '열람, 사본제작'이 가능하다는 걸 뜻한다. 이건 초등학교에서 국어를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법조항이다.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 홈페이지에도 '열람·사본제작, 자료제출의 법적근거'라는 제목으로 이 내용이 명기돼 있었다.

그런데 최근 갑자기 지워버렸다.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해 직접 대통령기록관에 전화를 해서 물어봤다.

"아, 그거요? 실수예요. 우리 직원이 혼동해서 오기했던 거예요."

"헉! -.-;;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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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록원 관계자들이 봉하마을에 다녀간 후 노무현 전 대통령측이 기자들에게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http://www.knowhow.or.kr


물론 사본제작 자체가 금지된 것은 아니더라도, 국가기록원을 통하지 않고 바로 가져간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문제를 제기하려면 바로 이 부분을 지적해야 한다. 절차상의 문제이지, 마치 해서는 안 될 행위를 한 것처럼 호도해선 안된다. 어차피 나중에라도 사본으로 볼 수 있는 자료를 미리 가져간 것에 불과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노 전 대통령측은 "열람 편의를 위한 시스템이 퇴임시까지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절차상의 문제는 시인하고 자료를 반환했다. 이제 남은 것은 대통령기록관과 봉하마을 사저 사이에 전용선 구축과 같은 열람편의 시스템만 갖추면 끝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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