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칼춤-조선 검무 기생 운심의 환생 이야기

김훤주 2016. 1. 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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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칼춤>을 읽었습니다. 김춘복 선생 작품입니다. 10년 넘게 공들여 썼다고 말씀하셨는데, 읽어보니 과연 그에 걸맞은 역작이라 하겠습니다.아주 매끈하게 잘 빠진 작품이라고 저는 봅니다.


다만 김춘복 선생은 우리 사회 ‘대통합’을 기원하며 썼다고 했습니다만, 저는 그런 사회 대통합 따위는 개한테나 던져 주고 읽는 편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전제는 어쩌면 작품을 날것 그대로 즐기고 누리는 데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 자체로 재미있고 즐거운 장편 소설이었습니다. 지난 20일 저녁 출판기념회(밀양시청 대강당)에서 사회를 맡은 경남작가회의 하아무 회장(소설가)이 “책을 들면 놓기 어려울 것”이라 말했을 때 저는 괜한 공치사겠거니 여겼습니다. 


김춘복 선생.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그제 새벽 1시에 잠자리에 들면서 심심풀이 땅콩 삼아 이 책을 펼쳤는데(읽다가 잠이 오면 자려고요) 새벽 4시가 돼서야 눈을 붙일 수 있었습니다. 한 장을 다 읽었을 때마다 그만 읽어야지 마음을 먹었지만 그 다음이 궁금해 도저히 덮을 수가 없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1960년생으로 동갑인 박준규와 최은미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한 번 더 간단하게 말하면 준규는 좌익 빨갱이의 자식이고 은미는 우익 백색분자의 자식입니다. 국민학교 5학년 때 처음 만나졌다가 스무 살이 되면서 다시 만나게 되지요.



여기에 밀양 출신으로 칼춤(진주 검무 따위) 원형을 만들어낸 조선 기생 운심, 그리고 그이가 사랑했던 관헌 이야기를 겹쳐놓았습니다. 운심은 밀양 관기였다가 서울로 뽑혀갑니다. 칼춤도 잘 추고 인물도 고왔던 때문이겠지요. 


관헌은 소설에서 모습이 뚜렷하게 나오지는 않습니다만, 어쨌거나 이 둘은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이승을 떠납니다. 운심은 죽어서도 잊지 못해 관헌들이 오가는 역로가 내려다뵈는 언덕배기(꿀뱅이)에 묻힙니다. 


준규는 관헌의 화신이고 은미는 운심의 화신입니다. 은미는 운심의 칼춤을 배워 그 원형을 되살리려는 춤꾼이고, 준규는 운심 관련 얘기를 소재로 삼아 작품을 쓰려는 소설가입니다. 


전생이 겹쳐진 현생을 살아가는 박준규와 최은미 두 사람은 사랑을 이룰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우여곡절우여곡절, 구절양장구절양장. 


소설 <칼춤>은 무겁지 않습니다. 내용은 아주 빈약하면서 그것을 가리려고 모호한 낱말들을 총동원해 가면서 억지로 버티는 소설들도 많은데 <칼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또 낱말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가 적시하는 상황과 국면이 모두 구체적입니다. 


늘어지지도 않아서 장면 전환이 재빠릅니다. 그냥 따라가다 보면 어떨 때는 읽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빠져 옵니다. 쓸데없고 엉뚱한 생각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습니다. 


경상도와 밀양의 지역말을 잘 살려 썼다는 미덕도 갖췄습니다. 어떤 소설은 보면 지역말을 살려 썼다어도 겉도는 경우가 많은데요, 김춘복 선생 이 소설은 적재적소 있는 그대로여서 아주 찰지고 쫀득쫀득합니다. 씹으면 씹을수록 새록새록 솟아나는 말맛이 입안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어줍니다. 


시대 상황 묘사도 나쁘지 않습니다.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50년 세월을 제대로 아우르고 있습니다. 전체로 보면 아주 잘 재현해 놓으셨는데요, 제가 보기에는 그렇다 해도 꼭 그렇지만은 않은 구석이 있기는 합니다. 


가운데 두 초등학생이 박준규와 최은미가 처음 만나는 대목을 낭독하고 있습니다.


다만 20~30대 젊은 친구들한테도 쉽고 재미있게 읽힐는지 여부는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이미 세대가 달라져서 언어조차 작지 않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지요. 소재 자체가 주는 거리도 있을 것 같습니다. 기생, 칼춤, 환생, 운동, 데모가 20~30대에게는 좀은 낯선 존재들이지 않을까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약점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 현대화(또는 청년화)까지 김춘복 선생이 감당해 내셔야 할 몫이라고 하기는 어렵거든요. 지금 50대에 이른 작가들이 맡아야 할 몫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김춘복 선생은 1938년 태어나셨습니다.


출판기념회에서 김춘복 선생은 몇 마디 말씀 기회가 왔을 때 “이런저런 얘기 않겠고, 그냥 오셨으니 즐겁게 먹고 마시며 놀다 가시라”고만 하셨습니다. 저도 같은 말씀 드리려 합니다. 무척 재미있는 작품이니까 이런저런 세상 생각 마시고 그냥 푹 빠져서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산지니. 366쪽. 1만5000원.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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