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외국인과 함께 경남 역사 문화 둘러봤더니

김훤주 2016. 1. 27.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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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체류 외국인을 위한 지역 풍물기행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창의주도형 사업' 공모에 경남도민일보의 프로그램 '경남 체류 외국인 지역 풍물 탐방'이 선정됐습니다. 취업 등을 위해 경남에 와서 오랫동안 머물고 있는 외국인들한테 경남에 고유한 역사·문화·생태·경관·풍습 등을 소개하자는 취지입니다. 


외국인에게 경남과 한국에 대한 친근감과 애정·이해를 갖추게 하고 이는 경남과 여기 체류하는 외국인 사이 거리감을 좁히는 반면 통합력을 조금이나마 높이는 효과를 내리라 기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외국인들은 경남에 머물러 살고 있지만 관광 또는 여행을 다녀도 말 타고 달리며 산을 훑어보는 식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이들한테 경남도민일보의 이런 프로그램은 지역의 속살을 제대로 엿볼 수 있는 한편 여기 한국과 경남이 자기 살던 나라와 어떻게 다르고 무엇이 같은지 가늠해보는 계기도 될 수 있겠다 싶습니다. 


2015년 10월 11일부터 11월 15일까지 베트남 몽골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우즈베키스탄 캄보디아 여섯 나라 외국인들이 의령 통영·거제 하동 합천 진주 다섯 지역을 일곱 차례 탐방했습니다. 기행에 함께할 외국인들을 모으고 일정을 짜는 데는 경남이주민센터(대표 이철승 목사)가 함께했습니다. 


이들은 대체로 자기 나라에서 보지 못했던(또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이나 현상에 신기해했고 사연이 깃든 문화재에 관심을 보였으며 거대하고 잘 알려진 것들보다는 자그맣고 덜 알려졌지만 특색이 뚜렷한 데에 더 오래 머물렀습니다. 


◇의령을 찾은 베트남 사람들 


베트남 사람들은 10월 11일 의령을 찾아 이병철 생가~안희제 생가~현고수~곽재우 생가~의령천 잣나무 숲길~충익사~정암진을 둘러봤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번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생가에서는 돈 버는 기운을 받고, 독립운동을 위해 재산을 바친-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자기 재산을 가장 뜻깊게 썼다고 꼽히는- 자산가 백산 안희제 생가에서는 돈을 잘 쓰는 데 대해 생각해 보자고 했습니다. 


안희제 생가 안채 칸칸으로 복잡한 구조는 독립운동하며 숨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다고 하니까 다들 솔깃해했습니다. 베트남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와 미국 등 외세 침략에 맞서 싸운 역사가 있습니다. 


의령 곽재우 생가에 들른 베트남 탐방대.


현고수, 곽재우 생가·은행나무와 그 둘레, 의령천 잣숲길은 우리나라 자연이 아름다웠고 충익사에서는 베트남 사람들이 아름다웠습니다. 


의병장 곽재우를 비롯해 500년 전 임진왜란을 맞아 목숨을 바친 선조들을 모시는 사당이 바로 여기 충익사라 했더니 베트남 사람 몇몇이 옷깃을 여미고 들어가 향을 피우더니 크게 절을 한 것입니다! 요즘은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렇게 잘 하지 않는답니다. 


그러고는 바로 옆에 있는 곽재우 전승지 정암진을 찾아 남강 푸른 물결과 하늘을 배경으로 잠깐 즐긴 다음 한국전쟁 상처를 안은 정암진 철교까지 거닐었습니다. 


곽재우 생가 앞 은행나무 둘레에서.


◇몽골 사람들과 이순신 장군의 바다 


몽골 사람들은 10월 11일 통영과 거제로 탐방을 떠났습니다. 통제영에서 세병관을 올려다보며 연신 탄성을 쏟았습니다. 규모가 큰 때문인지 임금이 살던 데냐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400년 전 세워진 해군사령부였다니 고개를 끄덕입니다. 


사진도 찍고 체험장에서 칼과 활을 다루며 즐거워하더니 또 묻습니다. 몽골이 전쟁을 좋아하는 나라로 비칠까봐 징기즈칸 얘기는 안 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고요. 우리나라를 침략해 피해를 입혔다는 사실을 떠나 아주 용맹스러운 장수로 기억한다니 낯빛이 환해집니다. 과거 침략을 부정하는 일본에 견주면 얼마나 인간적인가요. 


그러는 가운데 갑자기 "징기즈칸 만세!"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런 얘기를 주고받은 줄은 몰랐을 텐데요, 통제영에서 체험활동을 진행하던 가이드가 몽골 사람들과 어울려 사진을 찍으며 터뜨린 선창이었습니다. 


통영 세병관에서.


오후 일정은 거제 바람의 언덕. 가는 길에 어느 순간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왜 그런지 봤더니 다들 바깥 풍경에 눈길이 꽂혀 있었습니다. 학동을 지나 시원하게 펼쳐지는 해안도로를 달리는 중이었습니다. 청명한 가을 바다와 파란 하늘 하얀 뭉개구름은 수채화였습니다. 그토록 열심히, 오래, 즐겁게 바다를 감상하는 모습이라니! 


몽골은 바다가 없습니다. 바람의 언덕, 안겨드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몽골 평원에 부는 바람이 떠올랐을까요? 나중 고향 돌아가면 이들은 어쩌면 이 바람에 대한 기억으로 '문득' 한국과 경남을 떠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인도네시아 기도와 통영 삼덕항 벅수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탐방은 10월 25일이었습니다. 버스 한 대는 거제 기성관~질청을 거쳐 바람의 언덕으로 갔고요 다른 한 대는 통영 삼덕항~당포성을 거쳐 바람의 언덕으로 갔습니다. 바람의 언덕은 이들 인도네시아인도 가보고 싶어하는 명소였던 것입니다. 


거제 바람의 언덕에 들른 몽골 탐방대.


거제현 관아 중심 건물(객사)인 기성관에서 이들은 뜻밖에 앞에 늘어선 선정비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고을 원님이 백성을 아끼고 착하게 대해줘서 고맙다고 백성들이 세웠는데, 실제로는 나쁜 원님에게도 세워주는 경우가 있었다니 다들 웃었습니다. 


머릿돌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데 까닭이 무엇이냐(원래는 있었는데 사라졌다), 돌비석도 있고 쇠비석도 있는데 왜 그렇느냐(옛날에는 돌보다 쇠가 비싸서 더 귀하게 쳤다) 등등 다른 질문들도 쏟아졌습니다. 


기성관과 질청(행정 공간)은 기둥이 둥근데 남자들 공간이기 때문이라 하니 다들 귀가 쫑긋해집니다. 여자들 사는 옛날 안채는 격식에 따르면 네모기둥인데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오랜 동양사상과 관련돼 있다 일러줬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남자는 고귀하고 여자는 천하다는 생각 때문은 아니었다고, 남자는 (씨앗을) 뿌리고 여자는 생산한다는 타고난 차이에 대한 생각일 뿐이라고 덧붙여 얘기했습니다. 


옛날 건물 남녀 공간 구분하는 방법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바로 부엌이 있느냐 없느냐라 하니 또한 크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인도네시아에서는 그런 구분이 없었나 봅니다. 우리나라 옛날 남자는 자기 밥도 스스로 해먹을 줄 모르는 존재였지요.) 


이어 통영 당포성에 올랐습니다. 옛적 성벽과 바다 시원한 풍경을 누린 다음 자드락 오솔길을 따라 내려왔습니다. 그 길 끄트머리에는 삼덕항 돌벅수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기댈 데 없었던 옛 사람들이 돌벅수를 세우고는 거친 풍랑 잦게 해달라, 고기 푸지게 잡게 해달라, 때로 아이 낳게 해달라 기도하는 대상이라 하니 신기해하며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하지만 자기네는 알라를 믿기에 이런 데 절하고 빌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슬람교 알라에 대한 신앙은 이처럼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통영 삼덕항에서 돌벅수를 살펴보는 인도네시아 사람들.


◇방글라데시 사람과 하동 섬진강 재첩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11월 8일 하동에서 송림공원~섬진강~쌍계사~화개장터를 다녀왔습니다. 이날 하동은 어디를 가도 좋았습니다. 가을 단풍이 빈틈없이 하동을 받쳐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이날 경남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터지게 누렸습니다. 쌍계사와 화개장터는 산빛이 물빛과 어울려 더없이 그럴 듯한 풍경을 연출했고요 물빛 덕분에 산빛은 더욱 다채롭게 아롱졌습니다.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 앞에서.


송림공원에서는 소나무 그늘에서 서늘한 기운도 느끼고 간간이 비가 뿌렸지만 솔가리 메마른 느낌도 누렸습니다. 섬진강 모래밭에서는 여기가 우리나라에서 재첩이 가장 많이 나는 데라고, 재첩은 민물과 짠물이 섞이는 데서 잘 자라는 조개라고, 한 번들 캐보시라고 했더니 다들 모래를 헤집으며 즐거워했습니다. 


섬진강에서 재첩을 잡아보는 방글라데시 사람들.


◇우즈베키스탄 사람에게 비친 합천의 단풍 


같은 11월 8일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떠난 합천도 단풍이 절정이었습니다. 해인사 홍류동 골짜기와 소리길은 다른 말이 필요가 없었습니다. 조금씩 내리다 잦아들었던 빗줄기는 단풍을 꽃비로 만들었습니다.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붉은 단풍 아래 삼삼오오 어울려 사진을 찍고 웃음을 머금었습니다. 해인사가 부처님 경전을 모시는 우리나라 으뜸 절간이고 가야산 지모신 토속신앙과 외래종교 불교의 합작품이라는 설명은 곁가지였습니다.


합천 영암사지 또한 문화재와 단풍이 모두 좋았습니다. 돌축대 석탑 돌계단 석등 따위를 둘러보면서 이렇게 돌이 많이 쓰인 까닭은 여기가 통째 바위산이어서라고, 바로 옆에 돌을 떼어내 쓴 자취가 보인다고, 옛날에는 커다란 바위에 정으로 홈을 파서 마른 나뭇가지를 꽂은 다음 물을 잔뜩 부어 불어터지면서 바위가 갈라지게 했다고 얘기했습니다. 


둘레를 에워싼 분위기가 무척 좋았던 모양인지 몇몇이 '엄지척'을 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즈베키스탄에도 이런 데가 있다고들 일러줬는데요 지금 그 정확한 이름을 기억하지는 못하겠습니다. 


합천 영암사지에서.


◇진주 청곡사에 머문 캄보디아 불심 


캄보디아는 우리나라가 일본에게서 겪은 것처럼 프랑스 식민 지배를 받았습니다. 또 우리나라보다 더한 독재 통치를 지나왔습니다. 그리고 국민 대다수가 불교신자입니다. 그래서 11월 15일 진주로 떠난 캄보디아 발걸음은 첫머리를 청곡사로 잡았습니다. 


한국 불교와 절간에 대해 충실하게 일러드릴 테니까 캄보디아와 무엇이 같고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보시라 했습니다. 전생에 지은 죄를 거울로 비춰본다는 업경전에서 한 사람이 거기 모셔져 있는 염라대왕에 대해 물었습니다. 캄보디아에는 그런 존재가 없는가 봅니다. 사후 세상 재판장이지요. 


국보로 지정된 탱화 앞에서는 우리나라 절하는 방법을 묻더니 다들 따라 재배 삼배를 올렸습니다. 지켜보는 사람까지 경건해지게 만드는 장면이었습니다.


진주 청곡사에서.


점심을 먹은 뒤에는 진주역 차량정비고를 찾았습니다. 일제 식민지배 식량 수탈을 위한 철도 가설과 한국전쟁 당시 총탄자국 등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여기서 은행 단풍까지 즐긴 다음 진주성으로 옮겨갔습니다. 거기서 캄보디아 사람들은 느긋하고 푸근하게 남강과 어우러지는 진주 가을을 누렸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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