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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본 세상

블라인드 처리된 농협 회장 선거 관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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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 글의 제목은 ‘농협 중앙회장 후보 김순재 숨은 얘기 둘’이었습니다. 1월 3일 써서 올렸는데 요즘으로는 보기 드물게 댓글이 51개 달렸고 페이스북에서는 1244차례 ‘좋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랬다가 1월 5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이 글이 불법 선거운동으로 보고 다음카카오에 삭제 요청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다음카카오가 ‘삭제’까지 하지는 않고 ‘블라인드 조치’만 했습니다. 말하자면 지워지지는 않았고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도록만 했다는 말씀입니다. 


농협중앙회장 선거는 1월 12일 끝났습니다. 기호 5번 김순재 후보는 5표를 얻어 꼴찌를 했습니다. 이즈음 김순재 후보는 이 같은 선거 결과를 확인해 주면서 ‘은퇴’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앞으로는 어쩌면 김순재 선수가 농협과 관련해서 나서는 일이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이 글이 ‘블라인드 조치’를 당했을 때 저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전화를 해서 물었습니다. 중앙선관위는 이 글이 선거운동에 해당이 되며 ‘공공단체 등 위탁 선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징역 2년 또는 벌금 2000만원 이하에 해당되는 범죄라 했습니다. 


위탁선거법을 따르면 누군가를 당선되게 하거나 당선되지 않게 하는 선거운동은 후보자 본인만 할 수 있으며 나머지 다른 사람이 하면 처벌 대상이 된다는 얘기였습니다. 


저는 제 글이 선거운동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제한하는 것이 타당하냐 아니냐를 떠나 실정법을 위반한 사실은 분명하기에 아무 말 하지 않았습니다. 


한국농어민신문.

어쨌거나 이제 선거는 끝났습니다. 그래서 다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전화를 해서 선거가 끝났으니 원상회복해 줘야 맞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중앙선관위는 불법인 선거운동을 단속할 권한만 있지 불법으로 선거운동을 한 블로그 글을 원래대로 돌려줘야 할 의무는 없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는 선거도 끝났고 했으니 다음카카오한테 연락을 해서 다시 열어달라고 하면 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권한만 있고 의무는 없다는 중앙선관위 말에 조금은 황당했습니다. 헌법상 보장된 권리인 표현의 자유에 대한 엄연한 제약이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원인 제공을 한 주체가 그로 말미암은 침해를 원래대로 되살려줘야 한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법률 조건과 현실 상황은 중앙선관위가 상황을 원래대로 회복해 주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이렇게 원래 썼던 글을 다시 올리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글을 봐 주시는 여러분께 여쭙고 싶습니다. 이런 정도 선거운동은 용인하고 합법화해 줘야 맞지 않을까요? 농협 조합원이 230만 명을 넘는데, 그 중앙회장을 뽑는 선거에 투표권을 가진 이가 291명밖에 안 되는 조건에서는 더욱 그러하지 않습니까? 


돈은 최대한 묶어야 하지만 입은 최대한 풀어야 합니다. 적어도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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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협동조합 중앙회 회장 선거가 1월 12일(화) 치러지는 모양입니다. 여기 등록한 후보 여섯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김순재 창원 동읍농협 전직 조합장입니다. 


2009년 동읍농협 조합장에 당선됐는데, 2015년 있었던 전국 최초 조합장 동시 선거에는 나서지 않았습니다. 출마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는 까닭이 무척 궁금했습니다. 제가 대표로 있는 '갱상도문화공동체 해딴에'에다 단감 홍보 블로거 팸투어를 두어 차례 맡긴 인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묻지는 않고 이래저래 알아보니 농협중앙회 회장 출마를 위해 동읍농협 조합장 재선에 나서지 않았다더군요. 이 또한 저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현직 조합장도 중앙회장 선거에 나설 수 있고 그런 경우가 오히려 득이 된다고 들었으니까요) ‘김순재니까’ 그럴 수 있으려니 생각했습니다. 


그이는 이번 출마를 위해 그동안 참 많이 애를 썼습니다.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보면, 전국 곳곳을 누비며 많은 사람을 만나 오래 토론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대부분 사람들 눈에 ‘스스로도 주체하지 못하는 공룡’으로 비치는 농협 개혁의 당위성과 가능성을 주장하고 설명한 것 같습니다. 


왼쪽이 저 김훤주고 오른편이 김순재 선수입니다. 저는 김순재 팬입니다.


저는 농민이 아니기에 농협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그래서 그이 주장과 설명이 얼마나 타당한지에 대해서도 판단할 능력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김순재에 대해서 두 가지는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10년 동안은 농사만 짓고 농민운동은 그 다음에 하겠다.” 


제가 알기로 김순재는 경상대 낙농학과를 나왔고 창원 동읍 판신마을이 고향입니다. 학생운동 시절에도 이러저런 신화나 전설 수준에 이르는 이야기를 많이 남겼다고 들었지만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누구나 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20대 젊은 시절 뜨거운 혈기가 있다면 어떻게든 한 번 해 볼 수는 있는 그런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2013년인가에 김순재한테서 들었던 한 마디가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군대 갔다 와서 학교 졸업했을 때 ‘앞으로 10년은 아무 말 않고 농사만 짓겠다. 그러고 나서 농민운동을 해도 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저는 매우 놀랐습니다. 이토록 긴 안목으로 세상을 보고 운동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저는 하지 못했었습니다. 제가 그래도 나름 노동운동 쪽에서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중반을 보냈습니다만, 거기서 저를 포함해 그런 생각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었습니다. 



아마도,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 가운데, 그것도 대학 출신으로 지도자급에 이른 사람 가운데, 이런 생각을 하고 실천한 사람이 있다면 우리나라 노동운동이 지금 현실과는 달라져도 크게 달라져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그 때 했었습니다. 


학생 출신이 공장에 들어가 작업복을 입는다고 바로 노동자가 되지는 않습니다. 노동자처럼 행동하고 노동자처럼 생각하고 노동자처럼 슬퍼하고 기뻐할 수 있어야 노동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은 노동자 복장을 한 학생일 따름입니다. 


거칠게 말하면, 노동자가 아닌 학생운동 출신이 노동운동을 이끌고 주도할 경우 그 노동운동이 성공할 개연성은 그다지 높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학생운동의 재판일 뿐이지 참된 노동운동이 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니까 김순재는 속된 말로 먹물을 다 빼고 몸과 마음이 모두 농민이 되는 것이 먼저고 운동은 그 다음이라고 파악했던 것입니다. 그래야만 농민운동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타산하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옳았습니다. 


증거가 있습니다. 2010년 1월 동읍농협 조합장 선거에서 순수 농민운동 출신이던 김순재가 모든 예상을 뒤엎고 당선된 것입니다.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는 출마도 뜻밖이었고 당선도 뜻밖이었습니다. 그러나 본인은 아니었습니다. 


당선되기 전에 김순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 조합장 선거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기에 얼마나 당선 가능하다고 보시느냐 물었습니다. 그이는 “거의 100%”라고 말했습니다. 출마하기 전에 이미 파악이 다 됐다고 했습니다. 


동읍농협 조합원이 얼마나 되는지 저는 잘 모르지만, 김순재는 그 모든 조합원의 현황과 성향을 정통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이가 10년 동안 농사지으며 농민으로 살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 조합원들을 그리 잘 알고 또 나아가 믿음을 얻을 수 있었겠습니까. 


농민운동을 하기 앞서 먼저 농민이 되겠다…… 농민이 하는 운동이 바로 농민운동이라는 명제에 기본부터 충실한 자세를 저는 여기에서 봅니다. 그리고 이를 이룩하려면 돌아가는 길이 없고 긴 안목으로 꾸준하게 지치지 않고 걸어가는 수밖에 없다는 정확한 현실 인식과 성실함도 함께 봅니다. 


우리 사회에는 바로 이런 사람이 아쉽습니다. 순간순간 벌어지는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사람, 한 순간 벼락치기로 무엇을 이루려 하기보다 자기 삶을 통째로 걸고 일하는 사람이 말입니다. 이런 사람은 아마 우리나라 농협에도 아쉽지 않을까 모르겠습니다. 


‘스무 살 시절에 겪은 경험이 평생을 좌우한다.’ 


누군가에게서 이런 얘기를 들었을 때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어린 시절 고생을 한 사람은 서른 마흔이 돼서도 고생을 잘 견디고 이깁니다.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은 어려움이 닥치면 쉽사리 무너지곤 합니다. 


그런 고생을 사서 한 경우는 더욱 그렇다고 저는 들었습니다. 김순재 군대 생활이 그러했습니다.(물론 김순재는 자기가 그런 고생을 사서 하지는 않았다고, 나중에 겪고 나서 보니까 그렇게 돼 있더라고 말했습니다.) 


2015년 봄철 어느 날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대학 3학년 때 육군에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어찌어찌해 받은 보직이 지역 신병 훈련부대 조교였습니다. 


그 때 신병들은 몸에 돈을 지니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당시는 친가 외가 일가친척 집을 죄다 돌면서 입대 인사를 했기 때문에 그러면서 받는 돈이 꽤 쏠쏠했습니다. 그렇게 꼬불쳐 들여오는 돈이 몇 만원은 예사고 몇십 만원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다 받아내어 은행 통장에 넣어뒀다가 돌려주는 것이 조교의 임무였다고 합니다.(대한민국에서 국가의 가장 커다란 책임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 지키기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경우가 거의 절대 다수였다고 합니다. 



돈을 꼬불쳐 들어온 신병들한테도 조금 콩고물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그 가운데 일부를 통장에 넣지 않고 빼돌리는 일을 당시 대부분 조교들이 했다는 것입니다.(당연히 이렇게 빼돌려진 돈은 먹이사슬을 타고 군대 지휘부까지 올라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김순재는 신병들 돈을 규정대로 은행에 100% 예치했다고 합니다. 부정에 저항하고 비리를 막겠다는 생각으로 한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그렇게 해야 하니까 했던 것뿐이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본부에서 ‘상병’ 김순재를 찾는 전갈이 왔습니다. ‘어디서 이런 빨갱이가 들어왔느냐?’, ‘어떻게 이런 녀석이 조교라는 중책을 맡게 됐느냐?’ 등등 험한 말도 많이 듣고 고초도 꽤 겪었다고 했습니다. 


꽤 오랫동안 지속됐던 고초가 많은 경우 물리적 폭력만은 아니었고 오히려 그런 물리적 폭력을 넘어서는 이상이라 했습니다.(구체적인 내용을 듣기는 했지만, 여기서 자세한 서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 그냥 읽는 분들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한 달 남짓 지난 뒤에 어찌어찌해서 군대 다른 기관에 알려지는 바람에 더이상 커지지 않고 마무리가 됐다고 합니다. 고초에서 풀려나게 됐을 때 담당 장교가 한 말이 이랬답니다. “야 인마, 어째 이 지경이 되도록 가만있었어?” 


그제야 김순재는 비로소 눈물을 왈칵 펑펑 흘리며 말했답니다. “뭐를 어째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진정성 그 자체입니다. 육체적·정신적 고통은 물론 고립감·무력감 등등에 시달리면서도 놓지 못했던 진정성입니다. 


우리 사회는 이런 진정성을 갖춘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런 진정성을 갖춘 사람은 우리 농협에도 필요하리라고 저는 압니다. 


덧붙임 : 이번 농협중앙회장 선출에 투표권이 있는 사람이 대의원 290 더하기 현직 중앙회장 1명이라고 들었습니다. 이런 간선제로 농협 조합원의 뜻을 제대로 담을 수 있는지 미심쩍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 가운데 한 명이라도 읽어주십사 바랍니다. 


그이가 농협 개혁을 전면적·전격적으로 추진할까봐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학 졸업하고 처음 10년은 농사만 짓고 그 다음 10년은 운동도 하다가 최근 5년은 제도권에서 조합장까지 하면서 익힌 현실 감각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하나가 이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방향만 잃지 않는다면 언제까지라도 지치지 않고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김순재 여태 살아온 삶이 말해주는 바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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