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4일부터 내리 아팠습니다. 몸살이었습니다. 일상에서 일하고 놀고 하면서 몸을 돌보지 않은 대가를 혹독하게 치렀습니다. 25일 밤에는 앓는 소리가 입에서 절로 나왔습니다.
이불과 담요가 흥건하게 젖을 정도로 땀을 흘렸는데도 몸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온 몸 모든 뼈마디가 쑤시고 아렸고 머리조차 제대로 가눌 수 없었으며 허리 또한 마음 먹은대로 움직여지지 않았습니다.
이리 아픈 가운데 네팔 지진재해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 기억으로 처음에는 70명 남짓 사상(死傷)이라고 나왔던 것 같습니다. 그랬으나 숫자는 기하급수로 불어났습니다. 숨진 사람이 800명, 1000명, 1500명, 2000명 3000명 이랬습니다. 몸살난 지 사흘째 되는 날 사무실 나가 할일 좀 해놓고 봤을 때 그랬습니다.
치트완 가까운 타루족이 사는 마을에서 찍었습니다.
지금은 사망 6000명 이상에 이재민은 800만명을 넘는다고 합니다. 제가 알기로 네팔은 인구가 2000만명 규모입니다. 800만이라면 전체의 40%에 해당합니다. 일가붙이나 친구들까지 치면 네팔에서는 하나 빠짐없이 모든 사람이 몸 또는 마음이 이재민인 셈입니다.
그동안 줄곧 들었던 생각은 ‘람은 무사할까?’, ‘눈동자가 더없이 맑았던 그 아이들은?’이었습니다.
1월 27일부터 30일까지 짧은 3박4일 동안 네팔 트레킹 일정을 함께했던 젊은이가 ‘람’이었습니다. 스물셋 람은 성실하고 친절하고 사려까지 깊었습니다.
빨간색 반팔옷을 입은 친구가 람입니다.
지친 우리를 늘 뒤에서 보살펴 주다가도 머물 자리가 가까워오면 언제나처럼 먼저 올라가 자기 짐을 내려놓고는 도로 내려와 우리 짐을 덜어주려 했습니다.
눈길 내려오는 발걸음이 디딜 곳을 찾지 못할라치면 자기 다 떨어진 운동화로 바닥을 슥슥 밀어 디딜 자리를 마련해 주곤 했습니다. 길 가다 아이들을 만나거나 함께 농담을 하거나 할 때 커다란 눈동자가 살짝 웃음을 머금으면 조금 슬픈 듯이도 보였습니다.
어느 게스트하우스에서 아이와 더불어 즐거워하고 있는 람.
여느 때 같으면 지금 4월과 5월이 네팔 트레킹 성수기라고 저는 들었습니다. 네팔을 찾는 트레커들 대부분이 출발점으로 삼는 포카라(수도 카트만두에 이어 네팔 두 번째 큰 도시)가 근거지인 람은 이번에도 아마 누군가의 짐을 대신 짊어지고 산길에 접어들었을 것입니다.
트레킹에 나선 이들이 이번 지진으로 말미암은 눈사태 탓에 고립돼 행방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뉴스에 제가 불안해지는 까닭입니다. 제발, 무사하기를 빕니다. 람의 그 선량한 웃음과 은근히 사람을 끄는 그윽한 눈동자가 여전히 빛나기를 빕니다.
가운데가 람, 오른쪽이 영주형, 왼쪽이 저랍니다.
이런 람과 더불어 네팔 히말라야 산길을 걸으면서 숱하게 많이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아이들은 집이 가난하고 옷은 남루했지만, 웃음 하나만큼은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누구나 해맑았습니다.
살갗은 비록 트고 갈라진 데가 없지 않았지만, 눈동자 하나만큼은 티조차 하나 없이 그야말로 투명했습니다. 눈동자에 사람 표정이 비칠 정도로 투명해 오히려 그 깊이를 짐작하기 어려웠습니다.
그 아이들과 서로 얼굴을 어루만지고 손바닥과 손등을 쓰다듬고 했던 손길 감촉이 아직 제 손에는 남아 있습니다. 카메라를 같이 들고 사진 찍으며 웃었던 순간, 사탕을 나누고 과자를 나누며 눈길을 주고받았던 순간들도 제 눈에 아직은 남아 있습니다.
깔깔거리며 웃고 떠듬떠듬 서툰 영어로 얘기를 나눴던 그 음성과 숨소리가 아직도 제 귀에는 담겨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은 히말라야 산악에도 많았지만 도시에서는 더 많았습니다.
평원 지대 농촌에서도 그런 아이들 해맑은 웃음 해맑은 눈동자는 그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 순수였습니다. 제게는 너무 새롭고 보지 못했던 즐거움이고 보람이었던 때문에 때로는 감당하기조차 버거운 그런 순수였습니다.
오른쪽 사진과 같은 아이입니다. | 왼쪽 사진에 이어지는 표정입니다. |
그런데 지금 저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그 아이들한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기를, 일어났다 해도 제발 큰일이 아니기를, 몸으로 마음으로 빌 수밖에 없을 따름입니다.
원래 생각 같았으면 지금껏 열한 차례 이어온 네팔 여행기 연재를 쉰 차례도 더 해나가겠지만, 이쯤에서 그만둬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이 제가 사람 도리를 벗어나지 않는 첫걸음이지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 네팔에서 벌어지는 참담한 현실을 제가 외면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제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서 나름 실천에 옮기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울 것 같기도 합니다.
소꼴 베는 기계가 있기에 찍으려고 하니까 이 아이가 뛰어들어 함께 담을 수 있었습니다.
네팔을 여행할 수 있었던 자체가 여태 살아온 삶에서 축복이고 은총이었다고 생각하는 이상, 또 바로 그만큼 네팔 자연과 네팔 사람들에게 빚지고 있는 이상은 말씀입니다.
(그리고 저희 여행이 서너 달 뒤에만 있었더라도 이번 지진 참사는 바로 다름 아닌 제 몫이 됐을 수도 있습니다. 남과 내가 이렇게 다를 수 없는 것이고 다르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국면입니다.)
일부러 그럴 듯한 표정을 지어준 네팔 아이들.
그러고 보니,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가까운 데에 있었습니다. 한겨레 4월 29일치에 “한국 사는 네팔인 성금 모금 나서 - ‘서포트 네팔 파운데이션’ 설립” 기사가 실렸습니다. 최상원 기자가 쓴 이 기사를 일부 옮겨보겠습니다.
한국에 사는 네팔인들이 대규모 지진 피해를 당한 고국 동포를 돕기 위해 구호단체를 설립해 성금 모금에 나섰다. 수베디 여거라즈(43) ‘김해 이주민의 집’ 대표는 28일 “네팔 교민들이 지난 26일 긴급히 모여 고국에 구호금을 보내기로 결의하고, 이를 위한 비영리단체 ‘서포트 네팔 파운데이션’(Support Nepal Foundation)을 설립했다.”고 밝혔다.
주한네팔인협회, 주한네팔유학생회, 부산·대구·경남 진주 네팔모임 등 30여 네팔인 모임이 참여했다. 현재 국내 네팔인은 이주노동자 2만6000여명, 유학생 1000여명, 결혼이민자 1000여명 등 2만9000여명에 이른다.
사무실은 ‘김해 이주민의 집’에 두고, 대표는 수베디 여거라즈 대표가 맡기로 했다. 그는 1996년 산업연수생으로 국내에 들어와, 2009년 12월 결혼이민자가 아닌 네팔인으로는 처음으로 한국에 귀화했다. …… 네팔 교민들을 대상으로 먼저 모금을 시작해 28일 현재 400여만원을 모았고, 1000여만원을 약정받았다.
다음달 1일 노동절엔 경남 김해를 중심으로 대형마트와 번화가 등에서 모금운동을 펼칠 계획이다. 3일엔 경남 창원시 팔용동 ‘금담부락 옛터’ 공원에서 열리는 노동절 기념 경남이주민대회에 참여해 모금을 하기로 했다. …… 성금 계좌는 우리은행 1006-701-422191(예금주: 스포트네팔모금단체)이다.
아울러 경남이주민노동복지센터도 네팔을 위한 모금 계좌를 열었다고 합니다. 농협 355-0028-3783-13(경남이주민노동복지센터)랍니다.
우리도 "아이 러브 네팔!"입니다.
유니세프나 페이스북 또는 한국 정부를 통해 기금을 내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저는 이런 네팔(출신) 민간단체 또는 네팔 사람들을 돕는 우리나라 민간단체를 통해 내는 보람이 더 크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한국이 정부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이렇게 성원하는 뜻이 있다는 사실이 가장 잘 전달되지 싶다는 것이 하나입니다. 다음 하나로는 네팔에서 한국으로 와서 사는 네팔 사람들한테도 작으나마 기운을 돋우는 일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더불어 들었습니다.
저는 일단 이 단체에 10만원을 보냈습니다. 제 통장에 남아 있는 잔액이 20만원을 넘지 않아서요. 다음 주에 월급을 받으면 몇 푼 되지 못하더라도 한 번은 더 보낼 요량입니다. 그래야지 제 마음이 조금이나마 더 편안해질 것 같아서요. 끝
김훤주
네팔 지진 피해 극복을 위한 민간단체 모금 계좌 안내
우리은행 1006-701-422191(서포트네팔모금단체)
농협 355-0028-3783-13(경남이주민노동복지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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