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 기자사회는 선후배간 서열 문화가 센 편이다. 나이 많은 후배라도 먼저 입사한 선배한테는 꼬박꼬박 '선배'라고 불러야 한다. 요즘은 좀 달라졌지만, 과거엔 나이 어린 선배가 자기보다 몇 살이나 많은 후배에게 "○○야, 이리 와봐!"하며 함부로 말을 까기도 했다.
특히 경남도민일보는 기자 채용시 나이 제한을 없앴기 때문에 선배보다 나이 많은 후배들이 많이 들어왔다. 2000년이었던가? 내가 기자회장을 맡으면서 교통정리를 했다. "둘이 동갑이거나 후배 나이가 더 많을 경우, 서로 존대하라"는 것이었다. 내가 김훤주 기자와 지금도 서로 존대하는 이유다.
왜? 신문사는 민간회사이지 군대 같은 계급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우리 사회의 학연, 혈연, 지연 문화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고향 친구들 모임 외에 동창회나 향우회 같은데 거의 나가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일선 기자로 경남도청 출입을 할 때였다. 계장급 공무원을 상대로 뭔가 취재를 하던 중 내 고향이 남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랬더니 대뜸 그 공무원이 자신도 남해 출신이라며 바로 말을 까는 것이었다.
경남도교육청을 출입할 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교육공무원들은 기자를 처음 만나면 어느 학교 출신인지 물어보는 게 습관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교사로 있었던 학교나 지역을 엮으려 했다. 심지어 자신과 전혀 관계없는 학교라 해도, 그 학교에 재직했던 아무개 선생이 자신과 잘 아는 사이라는 식으로까지 엮으려 했다.
그런 식으로 엮이면 그가 담당하고 있는 업무 분야에 비판적인 기사를 쓰는 게 참 곤란해진다. 그래서 기자는 가급적 취재원과 사적인 관계로 엮이면 안 된다. 내가 마산 창원에 온지 25년이 다 됐지만 사적인 교분을 튼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인 것도 그런 까닭이다.
김용택 선생. @경남도민일보
나는 공적으로 만난 사람이라면 그가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결코 하대하지 않는다. 반대로 나보나 아무리 나이가 많은 어른이라도 내가 먼저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라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1945년생으로 올해 70이 넘은 김영만 선생이나 김용택 선생도 나에게 꼬박꼬박 존대한다. 나 또한 우리 아들 또래의 청년들에게도 꼬박꼬박 말을 높인다.
지역사회에 오래 살다보면 동갑내기들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동갑내기들과도 '친구' 관계는 트지 않았다. 토끼띠 석영철 전 도의원, 여영국 현 도의원, 강창덕 전 경남민언련 대표와도 동갑인줄 알지만 서로 존대한다.
대개 기자사회는 남의 회사 후배기자에게도 하대를 하는 관습이 있다. 기자들도 자기보다 연배가 높은 타회사 기자에겐 '선배'라 부른다. 하지만 나는 우리 회사 직속 후배들 외에는 거의 모두 존대한다. 예외도 있긴 하다. 예전 취재 일선 같은 출입처에서 친해졌던 몇몇 후배들이 그렇다.
윤성효 오마이뉴스 기자는 나보다 몇 살 어리지만, 서로 말을 놓는다. 예전 진주에서부터 알던 사이였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만났는데, 알고보니 내 고등학교, 대학교 후배이더라도 바로 반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학교 후배라는 걸 아는 순간 바로 태도를 돌변하며 말을 까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한 후배가 어떤 목사님을 취재할 일이 있었는데, 한동안 목사처럼 점잖게 말씀하시던 그 목사님이 기자의 학교 선배라는 걸 아는 순간 목사스러운 태도가 싹 돌변하며 '선배스럽게' 말하더라는 것이다. 목사님마저 학연으로 얽힌 권위에서 자유롭지 못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채현국 선생은 나이 어리다고 반말하지 않는다.
1935년생으로 올해 81세인 채현국 선생은 나이 어린 사람이라고 하대하지 않는다. 그게 일본 사람들 습관이라는 것이다. 그는 "퇴계는 26살 어린 기대승이랑 논쟁을 벌이면서도 반말 안 했다. 형제끼리도 아우한테 '~허게'를 쓰지, '얘, 쟤…' 하면서 반말은 쓰지 않았다"고 말한다.
채현국 선생은 또한 "인류 나이로 치면 젊은이 나이가 노인보다 많다"고도 한다. 그래서인지 나에게도 존대말을 쓴다. 기분이 좋아지면 "주완이 형~"하며 엉기기도 한다.
그런데 한국경제 양병훈 기자가 이명박 전 대통령을 우연히 만나 "(자원외교 관련) 검찰 수사에 대한 입장이 어떠십니까?"하고 물었던 모양이다. 이에 이 전 대통령은 "자네 어디 신문사야?"라고 받았다는 것이다.
☞이명박 "자네 어디 신문사야?"…취재원과 기자의 줄다리기
자기보다 어려 보인다고 사적인 관계도 아닌 기자에게 저렇게 말을 까는 버릇은 어디서 배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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