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홍준표 도지사를 어찌하오리까

기록하는 사람 2015. 4. 23. 08:10
반응형

오늘은 경남사람으로서 대놓고 하소연 좀 하자.


10여 년 전 나는 <토호세력의 뿌리>라는 책을 쓴 적이 있다. 내가 살고 있는 경남 마산지역 기득권 세력의 기원과 행적을 추적한 책이었다. 거기서 나는 기득권 세력의 정체에 대해 이렇게 쓴 바 있다.


“… 우리는 그동안 친일-친미-반공-독재로 이어져온 이력을 근거로 그들을 ‘우익’으로만 대접해왔다. ‘우익’은 정치적 입장에 따른 분류법이다. 필자가 보기에 그들의 진짜 속성은 ‘기회주의자’였다. … 만일 그들이 북한에 살았더라면 열렬한 ‘김일성주의자’가 되었을 게 틀림없다. … 그래서 필자는 단언한다. 지역현대사는 좌익과 우익,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 아니라 기회주의자와 비기회주의자의 싸움이었다고.”


지금도 나는 이 생각에 변함이 없다.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무상급식 지원을 중단하면서 반발하는 사람들에게 ‘진보·좌파·종북’ 딱지를 붙였다. 무상급식 자체를 ‘좌파 정책’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고 보지 않는다. 자신을 보수의 대표주자로 각인시키기 위한 수단이자 프레임으로 그걸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애초부터 그는 진보도 아니었고 보수도 아니었다. 검사 옷을 벗고 정치에 입문할 때도 정당은 자신의 정치적 소신과 무관했다. 애초 민주당에 입당해 강남에서 출마하길 희망했으나 답이 오지 않자 민자당으로 갔던 사람이다.


무상급식 지원 중단으로 대립하고 있는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박종훈 경남교육감. @경남도민일보


그는 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 치러진 2008년 총선에서 당선되고 원내대표가 되자 스스로 “변방에서 중심으로 들어왔다”고 선언했다. 이후 당 대표까지 했으나 총선에서 낙선하고, 경남에서 도지사를 하고 있는 지금 그는 다시 변방으로 밀려났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가 다시 중심으로 들어가는 길은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끊임없이 이슈를 만들어 관심을 받아야 한다. 아니 당장 잊히지 말아야 한다.


변방의 경남에서 궁리해낸 최고의 수는 무상급식 이슈였을 게다. 그 전에 이미 진주의료원 폐쇄에서도 재미를 본 터다. 전체 국민의 여론이 어떤지는 지금의 관심사가 아니다. 새누리당 안에서 대표주자가 되는 게 당면 목표이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당내 후보만 되면 대통령 자리는 따 놓은 당상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약속 파기’라는 비난도 대수가 아니다. 그는 “아랫사람의 약속 위반은 배신으로 규정되고 비난의 대상이 되지만, 지도자의 약속 위반은 정치적 선택으로 존중받는다”고 믿는 사람이다. 대선 후보가 되기만 하면 무상급식에 대한 지금의 입장 정도는 간단히 번복할 수 있는 사람이다. 왜? 자신은 이미 ‘지도자’이니까. 그러면 국민들이 ‘자신의 잘못된 결정도 인정하고 정책을 바꿀 줄도 아는 훌륭한 지도자’로 봐줄 것이란 믿음이 있다.


따라서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 것도 무의미한 일이다. 그 자체가 오히려 그가 짜둔 프레임에 말려드는 것이다. 그에겐 보수적 소신도, 진보적 소신도 없다. 오직 어떻게든 ‘변방에서 중심으로’ 가보겠다는 강렬한 권력욕, 출세욕만이 있을 뿐이다. 자신의 기회주의적 욕심을 채우는데 보수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민생민주 수호를 위한 경남 315원탁회의가 20일 경남도청 현관 앞에서 불법 정치자금 엄정수사와 함께 홍준표 도지사, 이완구 총리의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 단체는 홍 지사에 대한 주민소환 추진을 검토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박일호 기자


지금 경남에서는 주민소환 추진 여부를 놓고 뜻있는 분들 사이에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성공 여부를 떠나 독선적 정치인에게 경종을 울리고 검찰에 철저한 수사를 압박하는 차원에서라도 주민소환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반면 오히려 보수층을 결집시켜 그의 입지만 키워줄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찮다.


경남도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고민이 깊다. 성완종의 폭로와 검찰의 칼자루만 보고 있는 우리가 무기력하다. ‘민중이 정신 안 차리면 절대로 정치 수준은 안 올라간다’던 얼마전 채현국 선생의 말마따나 잘못 뽑은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미디어오늘 [바심마당]에 썼던 글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