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역사기념관에 가해자 명단과 악행을 새기자

기록하는 사람 2015. 1. 6.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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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박제화를 막으려면...


나는 '기념'이란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무슨무슨 기념관, 무슨무슨 기념사업회도 그렇다. 특히 어떤 역사를 기념한다는 것은 거기서 교훈을 얻어 좋은 일은 계승하여 발전시키고, 나쁜 일은 단죄하여 근절시키자는 게 본래 취지일 터. 실제 그런 기념을 제대로 하고 있는 꼴을 본 적이 없거니와 도리어 박제화(剝製化)만 하고 있는 꼴을 무수히 봐왔기 때문이다.


박제화란 더이상 발전하거나 본질적인 기능을 발휘할 수 없을 정도로 굳은 상태가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역사를 과거에만 가둬놓고, 오늘의 시대에 계승·발전은커녕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데, 그걸 과연 '기념'한다고 할 수 있는가? 가령 독재와 부정선거에 항거했던 3·15의거 주역들이 오늘의 독재와 부정선거에 침묵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뭐, 좋다. 그분들도 세월이 흐르니 나이가 들었고, 예전의 열정과 패기가 사그라졌을 수도 있다. 그때의 독재와 지금의 독재는 다르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때 당시 명백한 독재자에 빌붙어 민중을 상대로 갖은 악행과 살인을 저질렀거나 동조했던 앞잡이 가해자들에 대한 역사적 단죄는 왜 그리 미적지근한가? 독재자의 편에 서서 자기 고향 시민들의 민주의거를 '무모한 흥분으로 지성을 잃어버린 데모'라고 몰아붙였던 이은상에 대해선 왜 또 그리 관대한가?


지난 2일 우리지역의 재야사학자 박영주 형과 함께 국립 3·15민주묘지 안에 있는 3·15기념관에 다녀왔다. 26억 원을 들여 전시실을 개·보수하고 전시물 또한 대폭 바꿨다는 뉴스를 봤기 때문이다. 바뀐 기념관은 과연 앞잡이 가해자들을 어떻게 단죄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혹 그나마 있었던 가해자들의 명단마저 지워버리지는 않았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다행히 예전에 어렵사리 들어갔던 명단은 그대로 있었다. △자유당 정권 △마산에서 부정선거를 총지휘한 자유당 국회의원 이용범 △이용범에게 매수돼 민주당에서 자유당으로 당적을 바꾼 국회의원 허윤수 △김주열 열사를 살해하고 시신을 바다에 유기한 박종표 마산경찰서 경비주임 △발포 경관 김종복 이종덕 주희국 이종한 △발포명령자 서득룡 부산지검 마산지청장과 손석래 마산경찰서장 △고문 경관 강상봉 마산경찰서 사찰계장 △시민을 공산분자로 모는데 앞장섰던 왜곡보도의 주범 이필재 서울신문 마산지국장 △시위진압을 지휘한 최남규 경남경찰국장 등이 그들이다.


김주열 열사를 살해 유기한 박종표(맨 오른쪽)와 발포 경관들.


이 명단은 2001~2002년 기념관 전시설계를 할 때 당초 기획안에는 없었던 것을 내가 줄기차게 주장하여 정말 어렵게 넣은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전시 패널 한 장에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 덧붙여 이들 한 명 한 명의 죄상을 더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특히 최남규와 박종표는 일제 때 독립운동가들을 붙잡아 고문했던 왜놈 경찰관과 악질 헌병보조원이었다는 전력도 추가했으면 좋겠다.


젊은 시절의 이은상은 이렇게 놀았다.


더불어 독재에 들러붙어 민중을 배신한 이은상의 이름과 함께 그가 어떤 짓을 했는지도 알려주자. 또한 3·15 주도세력과 당시 사회운동세력이 이듬해인 1961년 박정희 쿠데타 정권으로부터 어떤 핍박을 받았는지도 새겨 넣어야 한다.


그래야 못된 짓을 하면 그 오명이 길이 남아 후세의 지탄을 받는다는 교훈이라도 될 것 아닌가. 피해자만 부각시키고 가해자는 슬쩍 숨겨주는 식의 역사기념사업은 박제화밖에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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