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지역시민단체가 청소년역사탐방 하는 뜻

김훤주 2015. 1. 4.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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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해양 방위 요총 거제에는

 

140년 전 마지막 쌓은 전통 성곽도

 

지역시민사회단체가 아이들과 더불어 지역 역사와 문화를 알아보는 프로그램을 본격 시작했습니다. 거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대표 허철수)이 10월 18~19일(제1기)과 11월 15~16일(제2기) 1박2일 일정으로 두 차례에 걸쳐 '청소년 역사·문화 탐방'을 진행한 것입니다.

 

거제경실련은 그동안 해마다 청소년 프로그램을 치러왔는데 지난해까지는 주로 '어린이 경제교실'을 운영했습니다.

 

주제는 제1기가 '거제에 남아 있는 성곽'이었고 제2기는 '거제·통영 일대 임진왜란 유적'이었습니다. 거제경실련이 이처럼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에서 초점을 '지역의 역사와 문화'로 맞춘 데는 학교 안팎에서 이뤄지는 교육 현실에 대한 고민과 반성이 담겨 있습니다.

 

알다시피 우리 청소년 교육은 대학 입학이 중심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나 학원은 물론 가정에서도 대입수능시험에 나오는 것들만 가르치고 배웁니다. '수능'은 전국적 것이나 세계적인 것만 다룰 뿐입니다.

 

지역의 역사·문화·자연·생태·인물은 건드리지도 않습니다. 자라는 아이들은 자기가 터잡고 사는 지역을 잘 모르게 되고 그러다 보니 그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이 생겨나기 어려운 현실인 것입니다.

 

거제경실련은 거제시 지원금과 자체 기금에 참가비(한 차례 2만 원씩)를 받아 이번 프로그램을 마련했습니다. 거제뉴스광장과 경남도민일보가 후원했고요, 갱상도문화공동체 해딴에(경남도민일보 자회사·경남형 예비 사회적 기업)가 진행을 함께했습니다.

 

경남도민일보는 지역시민단체들의 관심과 참여 촉진을 위해 두 차례(12월 11·18일치 20면)에 걸쳐 이번 탐방을 다뤘습니다. 2014년에는 임진왜란과 성곽에 대해 알아봤고요, 이어서 2015년에는 일제강점기 군사시설과 한국전쟁 당시 포로수용 관련 유적 등 거제 일대에서 이뤄진 근대 역사·문화를 아우르는 일정을 마련할 예정이랍니다.

 

◇스무곳 넘는 훨씬 거제의 성곽들

 

10월 18일(토) 아침 10시 거제 초·중학생 20명 남짓이 거제시공공청사 회의실에 모였습니다. 거제 일대 성곽 둘러보기를 통해 지역 역사·문화를 알아가는 거제경실련 청소년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아이들이었습니다.

 

거제를 두고 땅이 너르고 물도 풍부해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 수 있었다거나 풍경이 아름답지만 좁다란 해협으로 떨어진 섬이라 외로웠으며(유배) 육지와 바다가 만나지는 터전이라 괴롭기도(임진왜란·일제강점) 했던 지역이라는 전체 흐름을 먼저 익혔습니다.

 

 

성곽의 구조와 명칭·목적·방법 등에 대해서도 전반적으로 아울렀습니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특히 문화재는 조금이나마 알고 마주할 때랑 모르면서 볼 때는 그 느낌과 재미가 크게 다르기에 마련된 시간이었습니다.

 

초점을 맞춘 짧은 설명에 이어 '도전! 골든벨' 게임 형식을 통해 배운 내용 복습까지 지겹지 않게 마쳤습니다. 아이들은 가까운 밥집에 들러 가볍게 점심을 먹고 본격 성곽 탐방에 나섰습니다.

 

 

거제에는 대충 주워섬겨도 남아 있는 성곽이 스물을 넘는답니다. 영등포성·옥포성·조라포성·지세포성·율포성·오량성·아주현성·중금산성·탑포산성·수월리산성·율포산성·다대산성·장목산성·하청성·성포산성·사등성·가배량성·고현성(거제읍성)·둔덕기성(폐왕성), 그리고 왜군이 쌓은 견내량왜성·영등왜성·송진포왜성·장문포왜성…….

 

이 모든 성을 빠짐없이 둘러볼 수는 없는 노릇, 대표성과 상징성이 높은 몇몇을 골라야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중에 쌓은 옥산금성, 가야시대 거제에 있었던 나라 독로국의 도읍으로 알려진 사등성, 한때 삼도수군통제영이 있었던 가배량(오아포)성 세 곳이 선택됐습니다. 여기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가운데 하나인 진주성도 둘러보는 일정에 더해졌습니다.

 

◇'통영'이 될 뻔했던 거제

 

통영보다 거제에 먼저 통제영이 있었다는 사실이 거제 사람들한테도 잘 알려져 있지는 않습니다. 바로 오아포인데요, 지금 동부면 가배리 일대 산마루를 따라 가배량성이 있는 가배리 일대랍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이처럼 거제가 '통영'이 될 뻔했었던 얘기를 들려줍니다.

 

가배량성에 올라.

 

아이들과 더불어 언덕배기 마루금을 따라 올라가 많이 허물어지지 않은 가배량성을 눈에 담았습니다. 공격을 위해 불쑥 튀어나온 치(雉)도 보고 통제영 시절 군선으로 가득했을 앞바다도 내려다봤습니다.

 

가배량성에서 앞바다도 내려다보고.

 

1593년 초대 통제사가 된 이순신은 여기 오아포에 삼도수군통제영을 뒀다가 이듬해 8월부터 한산도 등지로 옮겨다녔습니다. 1597년 3월 이순신 대신 통제사가 된 원균은 통제영을 오아포로 다시 옮겼습니다.

 

원균이 칠천량에서 전사한 뒤 복귀한 이순신은 전세에 따라 남해바다 서쪽 끄트머리 전라도 고금도 등에 통제영을 설치했습니다. 오아포는 임진왜란 뒤 다시 통제영이 됐습니다만, 1602년 5대 통제사 류형이 춘원포(통영 광도면 안정만)로, 6대 통제사 이경준이 다시 두룡포(지금 통제영 자리)로 옮겼습니다.

 

 

 

이어서 사등성을 찾았습니다. 민가나 논밭이랑 뒤섞여 있는데 한길에서는 돌담장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고즈넉함과 아늑함으로 푸근한 평지성이랍니다. 치라든지 옹성 그리고 성문 따위가 제법 옛날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데가 많습니다.

 

원래 모습은 많이 잃었지만 그래도 들녘과 마주한 성벽 거뭇거뭇한 색깔은 옛날 분위기를 물씬 풍긴답니다. 아이들은 성을 한 바퀴 돌아보면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쓰레기를 줍는 봉사활동도 벌였습니다.

 

사등성 옹성 있는 데에 올랐습니다.

사등성을 둘러본 일행은 진주성으로 향했습니다. 진주성은 임진왜란 때 처절한 싸움이 두 차례 치러진 역사 현장입니다. 1592년 10월 5~10일 첫 전투에서는 진주목사 김시민(1554~1592)과 3800 군사가 3만 왜적을 물리쳤습니다.

 

이듬해 1593년 6월 22~29일 두 번째 전투에서는 경상 우병사 최경회·창의사 김천일·진주목사 서예원·충청병사 황진 등 3000 관군과 백성이 10만 왜군을 맞아 죽음으로 지켜냈습니다. 왜군은 진주성이 함락이 됐지만 스스로도 손실이 커서 전라도로 들지 못하고 물러났다고 합니다. 이 때 왜군은 사람은 물론 짐승까지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살륙했다고 합니다.

 

의기사에서.

 

일행은 촉석루·의기사·의암을 들른 뒤 성벽을 따라 전체를 한 바퀴 두른 다음 정문 공북문 바로 옆 충무공 김시민 장군 동상 일대에 퍼질러 가장 인상 깊은 하나를 골라 그림을 그렸습니다. 포근한 잔디밭이나 반듯한 계단 등에 앉아서요.

 

 

어떤 아이는 성벽을, 어떤 아이는 동상을 그렸으며 성문을 그림으로 옮기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다 그린 다음 아이들 스스로 평가해 잘 그린 그림을 몇몇 뽑아 선물로 문화상품권을 한 장씩 안겼습니다.

 

 

저녁은 통영 도남식당에서 먹었고요 짐은 그 바로 옆 통영청소년수련관에 풀었습니다. 자기 소개를 겸한 소감 발표를 간단히 한 데 이어 이날 돌면서 듣고 보고 익힌 바를 되짚어보는 시간도 마련했지요.

 

 

이 또한 설명하듯 하면 집중도 되지 않고 재미도 없으므로 '도전! 골든벨' 형식에다 담았답니다.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만 재미도 있어하고 관심도 보인답니다. 아이들에게 던져지는 설명과 아이들 스스로 찾아나가는 문제풀이는 이렇듯 차이가 납니다.

 

◇ 화포에 맞서 전통 산성을 쌓았다?

 

이튿날 아침을 먹은 뒤 거제면소재지 '기성관'을 찾았습니다. 조선 시대 거제현 객사랍니다. 임금 위패를 모셔두고 수령이 한 달에 두 차례 임금 받드는 의식을 꼬박꼬박 치른 장소입니다. 임금을 대신해 내려오는 사신이 묵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거제 기성관은 이렇듯 통영 세병관·밀양 영남루·진주 촉석루에 이어 경남서 네 번째로 큰 전통 목조건물이라 합니다. 거제가 옛적에도 작은 고을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물증이라 하겠습니다. 이어 근대문화재로 지정된, 대학교 건물 같은 거제초교 본관을 눈에 담으면서 옥산금성에 올랐습니다.

 

거제초교 운동장 그늘에서. 본관 건물이 멀리 보입니다.

 

이 산성은 1873년 완공됐습니다. 근대 화포 제작기술이 발달해 전통 산성이 이미 효력을 잃은 시점이었지요. 거제부사 송희승이 관아 읍성을 쌓겠다고 하자 고종은 백성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자 송희승은 대신 산성을 쌓기로 하고 백성을 동원해 여덟 달만에 다 쌓았으나 그 탓에 파직되고 말았습니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산마루에 서면 크고작은 바위들이 잘 어우러져 있고 올려다보이는 계룡산과 내려다보이는 바다가 두루 괜찮습니다. 또한 아래 마을에서 산성을 바라보는 풍경도 퍽 그럴듯합니다. 아이들은 여기서 노닐다가 기념사진까지 찍고 내려왔습니다.

 

옥산금성서 내려와 기성관에서 수료식을 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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