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풍운아 채현국의 새옹지마 임플란트

김훤주 2015. 1. 26.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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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고나서도 다시 꺼내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책은 드문 편입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읽은 책 네 권은 모두 그랬습니다. 김효순 <간도특설대>, 한홍구 <유신>, 성석제 <투명인간>, 김주완 <풍운아 채현국>입니다.

 

<간도특설대>는 새롭게 제시된 사실 관계가, <유신>은 사실과 사실 사이 맥락을 이어주는 설명이, <투명인간>은 그 능청스런 표현에 담긴 삶의 절절함이, <풍운아 채현국>은 채현국 선생이 보여주는 거침없는 인식과 행동이 그리 마음먹도록 만들었습니다.

 

<풍운아 채현국>이라는 책이 보여주는 채현국 선생이 살아온 일생의 다양한 구비구비가 사실 제게는 별로 관심사가 되지 못했습니다. 삶이란 사람에 따라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것이고 나아가 그런 채현국 선생처럼 살고 싶다고 한들 그렇게 살아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물론 <풍운아 채현국>은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할 뿐만 아니라 어떤 국면에서는 대리만족 또는 카타르시스라 할만한 그런 것들이 넘쳐나기도 하는 그런 매력이 가득차 있습니다. 더군다나 툭툭 던져지는 한 마디씩은 촌철살인이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제 눈길이 오래 머물고 생각 또한 더불어 한참 하게 만든 대목은 그이가 이가 없는데도 임플란트를 하지 않는 까닭을 밝히는 부분이었습니다. 지은이인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이사가 묻고 채현국 선생이 대답을 합니다.

 

첫 물음은 "73년에 탄광하고 사업을 정리하고 79년 정도까지 친구들 강권에 못 이겨서 또 흥국통상을 하다가 넘겨주고 나온 뒤로는 아무런 사업을 하지 않고 지금까지 온 겁니까?"

= 그럼요. 그때는 할 수 없이…. 그런데 내가 병이 났어요.

 

"그 때도 위궤양이었나요?"

= 위궤양이 나았다고 하는데 미열이 또 나더라고요. 내가 감기, 독감을 굉장히 잘 앓습니다. 친구 의사는 심지어 장질부사 같은 병으로도 의심을 해요. 그렇게 열병이 잘 나고 하니까. 잇몸도 나쁘답니다. 축농증도 잘 생기고…. 35살에 당뇨란 소리가 나오면서 그 때 이가 다 빠졌습니다.

 

"그러면 아무래도 음식을 씹고 하는 데 불편하지 않나요?"

= 그만 처먹으라고 이 빠진 건데 그걸 또 해넣을 겁니까? 그렇지 않아요? 당뇨라는 게 많이 먹어서 나는 병인데…. 이를 안 해 넣었기 때문에 적게 먹어서 내가 이렇게까지 살아 있는 겁니다.

이를 해 넣었으면 훨씬 빨리 죽었습니다. 아무래도 잇몸으로 먹으니까 불편할 거 아닙니까. 그래도 이렇게 배 나오고 했는데. 허허허.

 

경남도민일보 사진.

 

어떤 사람은 이를 두고 자기를 합리화하는 얘기로 여길 수도 있겠습니다. 사람들 상식으로는 이가 빠지면 어떻게든 새로 해 넣어야 옳거든요. 제대로 골고루 먹어야 건강할 수 있는데, 이가 없으면 그렇게 하기가 어려워지고요.

 

그런데 이런 상식을 거스르고 이를 해 넣지 않았는데, 이를 두고 그 덕분에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아전인수격으로 둘러대는 것으로 여길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말하자면 이가 빠지고 나서도 이를 해 넣지 않은 것과 1935년생인 채현국 선생이 2015년까지 지금껏 살아 있는 사실과는 별로 상관관계가 없는데도 그냥 갖다붙인 억지로 보일 수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이런 자세 또는 인식이야말로 채현국이라는 인물의 품격이 남다른 근본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이런 것을 말로 설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안타깝게도 하지만 당연하게도 제게는 아직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다만 미루어 짐작해 볼 따름인데요, 문득 새옹지마가 떠올랐을 따름입니다.

 

많이들 입에 오르내리는 중국 고사인데요, 변방에 사는 늙은이가 자기 말이 달아났을 때 슬퍼하지 않았고 그 말이 준마를 데리고 돌아왔을 때도 기뻐하지 않았으며 자기 아들이 준마를 타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고 장애를 입었어도 나쁘게 여기지 않았고 그로 말미암아 병역이 면제돼 목숨을 이어갈 수 있었어도 좋게 여기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변방에 사는 그 늙은이는 자기한테 닥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할 뿐이고 그로 말미암아 희로애락을 품지도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저를 비롯한 사람들 대부분은 그냥 좋은 일이 생기든 나쁜 일이 생기든 일희일비(一喜一悲)하면서 날뛰지 말고 항상심을 지키라는 가르침 정도로만 여깁니다.

 

본인이 법인 이사장으로 있는 학교 복도에서 아이들과. 뒤에 김주완 이사 모습이 보입니다. 경남도민일보 사진.

 

하지만 채현국 선생은 이런 정도에서 머물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아직은 머리로만 그것도 어렴풋하게 알고 있는 삶의 진실을 채현국 선생은 온 몸으로 깨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도 40대 전후밖에 되지 않은 젊은 나이에 말씀입니다.

 

이렇습니다. 보통 생각으로 보면 변방 늙은이가 보여주는 모습은 나쁜 일에도 휘둘리지 않고 좋은 일에도 휘둘리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너머에는 (길게 보면) 세상에는 좋은 일도 없고 나쁜 일도 없다는 성찰이 놓여 있습니다.

 

이런 말이 좋고 나쁨을 넘어선 부처님 같은 소리로 여겨진다면 달리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겠습니다. 세상 어떤 일도 좋은 측면과 나쁜 측면이 함께 뒤섞여 있다, 그러니 당장 두드러져 보이는 한쪽 측면만 갖고 감정에 사로잡히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노릇이다…….

 

물론 이런 생각은 이런 생각은 어지간하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그것이 자기 아닌 남의 일일 때는 더욱 그러하겠습니다. 당장이라도 이 자리에서 들 수 있는 보기가 있습니다. 부자 부모를 둔 자식들 경우입니다.

 

그런 자식 형제들이 그 재산 덕분에 행복해지기는커녕 눈으로 볼 수 없는 꼴을 보이면서 불행해지는 경우를 적지 않게 봐 왔습니다. 없던 다툼도 형제 사이에 생겨나고 상속을 둘러싼 신경전도 심해지고 우애가 끊어지는 정도는 그래도 다행이고 나아가 생판 모르는 남이라도 하지 않을 짓을 형제들끼리 서슴없이 해대는 따위 말이지요.

 

그러다가 결국 이르는 데가 살인이 되기도 한다는 얘기는 신문이나 방송이 자주 전해주는 레퍼토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에게 재산을 많이 상속해 줄 부모가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저게 결국은 화근이 되고 말지…… 이렇게 여기곤 합니다.

 


그런데 그런 화근(!)이 자기한테 닥쳐도 똑같은 태도를 보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나중에 어찌 될 값에라도 일단 당장은 그 화근 덩어리를 자기 옆으로 끌어댕겨오는 일이 우선이다, 이렇게 여기지 않을까요? 아마 저부터도 그렇지 싶습니다.

 

이는 아픈 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참 쉽게 세상을 통찰한 듯이 말하는 사람도 정작 같은 일이 자기한테 닥치면 크게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저는 그런 면에서 채현국 선생이 대단합니다.

 

세상에는 좋은 일도 없고 나쁜 일도 없다, 그러니 거기 따라 기뻐할 일도 없고 슬퍼할 일도 없다, 다만 그런 국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면 그만이다. 이를 머리에서 생각하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몸을 써서 실천하는 것으로까지 나아갔습니다.

 

이러니 세상이 투명하게 있는 그대로 보이고 무슨 일을 하든 걸리적거림이 없는 것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이제 나이가 쉰셋인데, 지금 이가 빠져 달아난다면 채현국 선생처럼 이러나 저러나 그대로 두고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런저런 잡생각이 참 많은 저로서는, 온갖 경우의 수를 가지가지 다 생각해 보다가 머리가 터져 죽을는지도 모를 노릇입니다.

 

<풍운아 채현국>. 175쪽. 1만2000원. 김주완 지음. 도서출판 피플파워 펴냄.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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