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일연 관련 문화유산 여행길 <삼국사기>는 사관이 쓴 정사(正史)고 <삼국유사>는 스님이 쓴 야사(野史)입니다. 정해진 틀대로 하는 유교의 문신귀족이 쓴 삼국사기에 견줘 삼국유사는 매임이나 걸러짐이 없이 자유롭고 진솔한 면이 있습니다.

 

오늘날 삼국유사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가지입니다. 만록(漫錄)으로 보기도 하고 미완성 작품으로 여기기도 하며 또 불교라는 특정 종교의 역사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처럼 엇갈림에도 누구나 크게 인정하는 삼국유사의 가치가 있습니다. 유사(遺事)로서 갖는 특징이랍니다. 정사인 삼국사기가 놓친 부분을 삼국유사가 제대로 보완하고 있다는 얘기입지요. 이를 위해 필요한 뼈를 깎는 노력과 뚜렷한 역사의식이 삼국유사의 바탕을 이루고 있습니다.

 

일연의 일생이 오로지 바쳐진 삼국유사

 

일연은 전국을 두루 유람한 것으로도 유명하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사료도 발굴·수집했고, 유물·유적에 대한 관찰에 필요한 현지 답사도 겸했으며, 사료 검증이나 객관적 서술을 위한 배려 등도 얻었습니다. 역사가로서 일연이 기울인 노력이 이랬으며 그 결과로 삼국유사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유가사에 있는 일연시비.

 

역사는 일어난 일을 그대로 해석하는 사실로서 역사와 현재 관점에서 사건을 재해석하는 현재로서 역사로 구분됩니다. 오늘날은 현재 관점에서 역사를 해석하는 데 더 큰 의미를 두는데 그런 면에서 삼국유사는 드높이 평가를 받는답니다.

 

유교사관에 젖어 있던 당시 사람들과는 달리 눈길이 기층민의 삶을 따뜻한 애정으로 감싸고 있음을, 그 때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을지라도 지금 관점에서 본다면 대단한 가치이고 힘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에 더해 일연이 삼국유사에 담아낸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은 권력·권위와 물질을 지향하는 삶에 찌든 오늘날 사람들에게 느끼게 하는 바가 크답니다. 육당 최남선은 일찍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가운데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후자를 택하겠다”고 말했다 합니다. 그만큼 매력 있는 역사서가 바로 삼국유사입니다.

 

대견사지와 그 삼층석탑이 있는 비슬산.

비슬산과 일연은 인연이 깊습니다. 일연은 지금 경산(경북)인 장산에서 태어났습니다. 22살 승과에 합격한 뒤 20년 동안 보당암․묘문암․무주암 그리고 인흥사와 용천사를 거쳤는데 이 모두가 비슬산에 있습니다.

 

일연이 비슬산에서 묵은 22년 세월은 삼국유사를 태동하고 완성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일연은 또 나이 많은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경북 군위 인각사로 가서 삼국유사를 완성하고 삶을 마무리했습니다.

 

이처럼 일연 스님과 삼국유사의 자취를 따라 떠나는 여행길은 일연과 인연이 깊은 비슬산 유가사에서 시작해 마지막 삶을 마친 군위 인각사에서 마감된답니다.

 

탐방 루트

 

①비슬산 유가사 - 2km, 걸어서 1시간 ②대성암 - 0.4km, 걸어서 10분 ③도통바위 - 1.2km, 걸어서 50분 ④비슬산 산마루 -2.5km, 걸어서 1시간 ⑤대견사지 - 2.5km, 걸어서 1시간 ⑥비슬산자연휴양림 -0.3km, 걸어서 5분 ⑦소재사 - 29km, 자동차로 1시간 10분 ⑧인흥사지 삼층석탑(=남평문씨인흥세거지) - 1시간 30분 74km ⑨군위 인각사 - ⑩일연공원

 

유가사의 돌탑, 도성암의 돌탑

 

유가사는 비슬산 천왕봉 기슭인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면에 있습니다. 서기 827년 흥덕왕 2년에 도성(道成)이 창건했으며, 한때는 머무는 스님만 3000 남짓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타고 말았답니다. 대웅전 앞에는 삼층석탑이 있고, 절간 오르는 길목에 부도들이 있는데요, <신증동국여지승람> 같은 옛 문헌에도 기록이 있습니다.

 

유가사, 이상한 돌탑만 없으면 이렇게나 좋습니다.

 

유가사는 일주문도 불이문도 없습니다. 대신 돌로 만든 돌문과 양쪽으로 뾰족한 돌탑이 있습니다. 차곡차곡 쌓아올린 돌탑에서 낯선 이의 간절함이 느껴집니다. 하나, 둘, 셋, 넷…… 스님이 3000명씩이나 머물렀다는 그 자리에 이제는 돌탑이 가득합니다.

 

너무 많아 어지럽습니다. 저 정도면 간절함이 아니라 욕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씁쓸한 마음을 접고 서둘러 돌아서는데 앞산에 걸려 있는 구름이 시리도록 하얗습니다.

 

 

유가사에서 발길을 돌려 찾아가는 곳은 도성암입니다. 982년 성범이 중창한 이곳에는 일연이 지은 <현풍유가사도성암사적>이 남아 삼국유사에 ‘포산이성(包山二聖)’으로 나오는 도성과 관기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유가사에서 도성암에 이르는 산길.

 

도성암.

 

비슬산 정상과 가까운 도성암 가는 길에는 낙엽이 수북했습니다. 지나가는 이는 드물고 늦가을 소슬한 바람에 낙엽들만 이리저리 몸을 뒤챕니다. 도통굴 아래에 있는 도성암 들머리에는 수도에 방해가 되니 말을 삼가라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도성암에 들어서자 마당 가운데 삼층석탑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아무 것도 없이 덩그러니 탑이 놓여 있을 뿐으로 특별한 것 없이 그저 무던한 탑입니다. 그럼에도 한없이 너그러워 보입니다. 생각해보니 빈 공간 때문입니다. 비워냄의 의미가 무엇인지 도성암 마당 탑에서 새삼 깨달았습니다. 유가사 돌탑들에 짓눌린 어지러운 마음을 개운하게 달래고 발걸음을 대견사지로 돌렸습니다.

 

도성암 마당 한 켠에 있는 도성대사나무.

 

씩씩하고 호방한 절터 대견사지

 

비슬산 휴양림을 따라 올라가다 자동차가 갈 수 없는 지점에서 2.5km 정도를 걸어 올라가면 대견사터와 삼층석탑과 조화봉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비슬산 정상에서 참꽃군락지를 스쳐지나면서 월광봉을 지나 내려와도 대견사지를 만날 수 있습니다. 9세기 신라 헌덕왕 때 창건한 절터가 대견사지라 합니다. 여기에는 삼층석탑이 우뚝 남아 있습니다.

 

대견사는 절 이름에 얽힌 설화도 있습니다. 당나라 황제가 절을 지을 곳을 찾았지만 마땅한 자리가 없어 상심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세수를 하려고 떠놓은 대야 물에 아름다운 산이 비취었는데 바로 지금 대견사 자리였답니다.

 

발굴하고 있는 대견사지. 왼쪽 위에 삼층석탑이 보입니다.

 

원래 왕지골이라 했는데 그 위쪽에 커다랗게 축대를 쌓고 터를 닦았답니다. 절을 짓도록 한 대국 중국(大)에서 보였던(見) 절터라 해서 대견사(大見寺)라 했다는 것입니다.

 

도성암 석탑에서 느꼈던 감흥은 대견사지 삼층석탑(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2호)에서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아득한 낭떠러지 끝에서 우주를 온 몸으로 끌어안은 듯한 석탑이 우뚝 서 있습니다. 실제 몸체에 견줘 열 배는 더 웅장해 보입니다.

 

낭떠러지 끝간 데 들이세운 대견사지 삼층석탑.

 

캄캄한 밤이 아니고서는 하늘에 별이 스스로 빛날 수 없듯이 존재의 가치는 스스로 알 수 없습니다. 겸손함과 배려를 생각게 하는 돌탑이었습니다. 씩씩하기 이를 데 없는 경남 합천의 영암사지에 견줘도 전혀 모자람이 없는 대견사지였습니다.

 

대견사는 일연과도 인연이 깊다고 합니다. 대견사 복원을 진행하고 있는 조계종단이 하는 얘기랍니다. 기록에 있는 보당암이 바로 대견사라는 얘기인데, <동문선>에 나온다고 합니다. 보당암이 바로 일연이 머무른 절간이었는데 여기서 삼국유사의 집필을 시작했거나 구상했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런 대견사지가 절을 복원하기 시작하면서 덩달아 분주해졌습니다. 구체 형상으로 돌리는 대신 상상할 수 있도록 여지를 허락하는 배려도 좋을 듯한데 복원이 된 뒤 어떤 모습을 보일지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답니다.

 

대견사지에 오르면 볼거리와 느낄 거리와 즐길거리가 풍성합니다. 대견사지 옆으로 남쪽을 향해 우람한 바위들이 겹쳐 있는데, 그 돌 틈에 열 사람 정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옛날부터 여기서 사람들이 기도라든지 불교 신앙과 관련된 일들을 해 왔고요.

 

밀교 관련을 짐작게 하는 마애불상.

 

들머리에는 여기 절터가 밀교(密敎)와 관련돼 있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마애불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전체 모양이 ‘유가심인(瑜伽心印)’과 비슷하다는데, 이는 으뜸 깨달음의 순간을 공(空)으로 표현하고 위로는 부처를 형상화하는 극락 만다라의 세계를 나타내는 밀교 문양이라 합니다.

 

여기 이 ‘유가’는 아래쪽 산자락에 있는 유가(瑜伽)사에서 한 번 더 확인되고 유가사가 포함돼 있는 달성군 유가(瑜伽)면에서 한 번 더 볼 수 있습니다. 유가는 인도에서 말하는 ‘요가’로서, 마음 작용의 멈춤과 사라짐=열반을 뜻한답니다. 수련 방법으로서 유가(요가)는 호흡 조절을 통해 마음을 가다듬고 바른 이치에 걸맞은 상태에 이름을 일컫는다고 합지요.

 

대견사지에서 내려다보는 비슬산.

 

대견사지에서 비탈을 하나 올라가면 나오는 30만 평 규모 진달래 군락지도 전국에 널리 알려진 명소랍니다. 봄이면 여기서 진달래축제가 벌어지는데, 봉우리와 봉우리가 이어지는 사이로 그야말로 광활하게 펼쳐지는 진달래 무리를 눈에 담을 수 있습니다.

 

비슬산자연휴양림 쪽 내리막에는 갖은 바위들이 엄청나게 모여 있습니다. 여러 갈래 물길이 흘러내리는 듯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바위들입니다. ‘비슬산 암괴류’라 하는데요, 중생대 백악기에 만들어진 커다란 화강암들이라고 합니다. 길이 2km, 너비 80m, 두께 5m에 이르고, 바위덩이 하나가 지름 1∼2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답니다.

 

 

비슬산 돌너덜.

 

대견사지 들렀다가 내려오는 길 끝에는 소재사(消災寺)가 있습니다. 마당 한가운데 오래된 단풍나무가 인상깊어서, 늦가을이면 이글이글 불꽃처럼 타오른답니다. 모든 재앙을 사라지게 한다는 소재(消災)와 잘 어울리는 풍경이라 하겠습니다. 2000년 대웅전 중수에서 확인된 상량문에는 스님 300명이 머무는 절이었다지만 지금은 대웅전과 삼성각만 남았습니다.

 

소재사 대웅전과 단풍나무.

 

물색 초라한 인흥사지 삼층석탑

 

인흥사는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이른바 인흥에 절터로 남았습니다. 일연스님이 영일(경북 포항) 운제산 오어사(烏魚寺)에서 여기 주지로 오자 법문을 들으려는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일연스님이 여기로 올 때는 이름이 인홍사(引弘寺)였는데 스님이 절을 중창하고 그에 걸맞은 이름을 지어 달라고 임금에게 요청한 끝에 인흥사(仁興寺) 현판을 받았답니다. 마을 이름 ‘인흥’과 마을 개울 건너에 있는 인흥서원은 모두 인흥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지금 절터에는 남평문씨 세거지가 있고 그 앞 들판에 이른바 인흥사지 삼층석탑이 있는데 온전한 제 모습은 아니어서 보기조차 매우 구차스러울 지경이었습니다. 경북 군위군 인각사에 1295년 세워진 보각국사비(보물 제428호)에는 비슬산에서 수행하던 일연 스님의 모습이 적혀 있습니다.

 

1227년 겨울 선불장(選佛場)에서 장원=상상과(上上科)로 합격한 뒤 포산(包山:비슬산) 보당암(寶幢庵)으로 옮겨 수행했고 1236년 가을 몽고병란 때 같은 비슬산 무주암(無住庵)에 머물며는 ‘생계(生界)는 줄지 않고, 불계(佛界)는 늘지 않는다’는 화두(話頭)로 참선하다 문득 깨우쳐 “오늘에야 삼계(三界)가 꿈과 같음을 알았으며, 대지에 터럭 하나만한 장애도 없음을 봤노라” 했습니다.

 

초라하게 남은 인흥사지 삼층석탑.

 

비슬산은 바로 일연의 득도처입니다. 그러나 비슬산에 살던 관기와 도성에 관한 ‘포산이성(包山二聖)’을 도성암 사적에서 썼고 22년 동안 수도한 이런저런 암자들은 자취를 찾기 어려울 뿐 아니라 경북 청도 운문사와 더불어 삼국유사의 산실이라 할 수 있는 인흥사(仁興寺)는 이미 허물어져 남평문씨 세거지로 바뀌는 등 그야말로 무상(無常)이 일상(日常)이었습니다.

 

인각사, 삼국유사를 완성한 장소라지만

 

조금 휑뎅그렁한 인각사와 인각공원 군위 인각사로 나설 차례입니다. 사적 제374호로 기록돼 있고 경내가 경상북도 기념물 제80호이기도 하답니다. 군위는 ‘삼국유사의 고장’으로 자처합니다. 삼국유사가 구상되고 준비되고 태동된 데가 비슬산 일대였다면 완성한 곳은 인각사입니다.

 

인각사.

 

인각사는 642년(선덕여왕 11) 의상 스님이 또는 한 해 뒤 원효 스님이 창건했다는 절인데 여기서 일연스님은 여기서 삼국유사도 탈고했고 구산문도회(九山門徒會)도 두 차례 열어 인각사를 구산선문 중심 절간으로 자리잡게 하는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인각사에 있는 같은 보물 제428호인 보각국사정조지탑(靜照之塔)은 일연스님의 부도탑이랍니다. 중대석에 동물상이 있고 상대석에 연꽃무늬가 있으며 탑신에는 ‘보각국사정조지탑’과 사천왕상과 보살상이 들어 있는데 느낌이 조금 둔합니다.

 

인각사 보각국사비.

 

이밖에 군위인각사석불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39호), 군위인각사미륵당석불좌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26호) 군위인각사삼층석탑(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 427호) 따위도 있습니다.

 

인각사는 아직 터만 넓고 제대로 된 건물이 적어 휑뎅그렁한 편이었습니다. 앞으로 복원을 한다는데 정말 잘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인각사 자리에서는 여러 차례 이뤄진 발굴에서 유물이 많이 나왔다고 합니다. 인각사 전시관과 일연학(一然學)연구소도 있습니다.

 

인각사 일연학연구소.

 

인각사에서 도로를 따라 위로 좀 올라가면 일연공원이 있습니다. 2010년 11월 15일 준공됐습니다. 군위다목적댐을 머리에 인 공원인데요 일연스님과 삼국유사가 중심 주제랍니다.

 

어찌 보면 유치하게 여겨지는 구석도 없지 않지만 나름대로 성의를 담아 탑과 비와 상과 건물을 들인 것 같습니다. 한나절 지내기는 나쁘지 않겠고요, 아이들과 노닐기도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일연공원. 단군 신화 동물 범과 곰.

 

삼국사기는 놓쳤으나 삼국유사는 놓치지 않은

 

사람들은 삼국유사가 삼국사기에서 김부식이 다루지 않은 얘기를 다뤘다는 점을 두고 일연 스님이 쓰면서 크게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십상입니다. 삼국사기는 단단히 따져 꼼꼼하게 썼고, 삼국유사는 닥치는대로 설렁설렁 썼다는 식이지요.

 

인각사 전시관 일연 영정.

 

하지만 이는 지금 인간들의 관성이고 생각일 뿐 사실과는 크게 다르답니다. 삼국유사는 "자신의 기억이나 지식으로 소화된 자료들을 주관적으로 엮어 서술"하는 대신, "당시 나라 안팎 여러 고전 문헌들에게서 폭넓게 인용"해 쓴 부분이 많습니다.(<사진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 18쪽, 까치)

 

그만큼 더 가치가 있으며, 그런 가치를 더 찾는 데 일연이 정성을 쏟았다는 것입니다. 인용된 중국 고전만도 27가지, 우리나라 고전은 책명이 확실한 것만도 50가지 안팎, 고기(古記)·향기(鄕記) 약칭 또는 범칭 표시 문헌은 매우 많으며 비문(碑文)이나 옛 문서에서 끌어쓴 대목도 많습니다.

 

실제로 삼국유사는 삼국사기가 담지 못한 <가락국기>를 요약해 남기기까지 했습니다. 일연이 뚜렷한 목적의식에 따라 삼국유사를 썼음을 매우 잘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훤주
※ 2012년 문화재청 비매품 단행본 <이야기가 있는 문화유산 여행길 경상권>에 실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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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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