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루트

 

임시 수도 기념관 →0.7km 동아대학교 박물관  →2.8km →중앙공원 3.8km →남포동·광복동일대 0.5km →자갈치 시장 1.0km → 보수동 책방골목 0.4km →부산근대역사관 1.1km →40계단 문화관광테마거리(40계단문화관)

 

임시수도기념관-이승만 대통령 임시청사

 

부산이 지금은 국제적인 영화제가 열리고 외국인 관광객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 화려한 국제도시로 탈바꿈했지만 6.25전쟁 당시는 전국에서 밀려든 피란민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1950년 8월 18일부터 9.28 서울 수복 이후 10월 27일까지, 그리고 1.4후퇴로 서울을 내어준 뒤부터 휴전협정이 성립될 때까지 부산은 대한민국의 임시 수도였답니다. 

 

임시수도기념관(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3호) 건물은 일제강점기 경남 진주에 있던 경남도청을 부산으로 옮기면서 지은 도지사 관사로 6.25전쟁 당시 대통령 임시 청사였습니다. 일대 광복동과 남포동의 화려함에 밀려 근처에 이처럼 아픈 역사의 현장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뜻밖에 많습니다.

 

 

한국전쟁 때 정치·경제·국방 등 정책 수립과 전쟁 수행의 산실로 근·현대 헌정사를 담당한 장소랍니다. 역사적으로뿐만 아니라 건축사적으로도 중요한 공간이라고 합니다. 유럽식 르네상스 양식이 변형되면서 일본식과 서양식이 절충된 목조건축물인 것입니다.

 

대외 활동을 하는 대현관(大玄關)과 응접실 등은 서양식으로, 주거 공간은 일본의 전통 주거 양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당시의 건축 경향을 알 수 있는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2층짜리 붉은 벽돌 건물이 잘 가꿔진 야외 정원과 어우러져 고즈넉하고 기품 있는 운치가 느껴집니다. 1월 1일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이면 다음 날)은 문을 열지 않습니다. 

 

 

근·현대사 체험 학습 장소로도 활용되는데, 찾아오는 아이들에게 전쟁의 폐해만큼은 아주 열심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을 마치 이승만 기념관처럼 꾸며 놓은 것은 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피란행렬 그림과 이승만 내외가 입었던 옷.

이승만이 대통령이기 이전에 우리 역사에서 어떤 인물인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민간인들이 억울한 죽임을 당한 보도연맹 학살은, 더없이 처참한 동존상잔으로 역사에 기록된 6.25전쟁에 견주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비극적이었습니다.

 

그 특명을 내린 사람이 바로 이승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전쟁의 비극만 강조하고 그런 학살에 관한 언급은 찾을 수 없습니다. 이른바 역사의 현장이 어느 한 쪽에 치우쳐 단편적으로 기록되는 것이 옳으냐에 대한 고민을 좀 더 깊이 있게 해야 하겠다 싶습니다.

 

임시수도기념관 선거 유세 모형.

 

동아대학교박물관-부산 대표 근대 공공건축물

 

동아대박물관.

 

사람들이 북적이는 번화가에 박물관이 있다면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6.25전쟁 당시 부산 임시수도 정부청사로 쓰였던 곳에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가 들어오면서 지금은 동아대학교 박물관으로 바뀌었습니다.

 

눈길을 잡아끄는 건물 겉모습이 범상치 않습니다. 정면 한가운데 현관에 자동차를 댈 수 있도록 포치(porch)가 툭 튀어나왔고, 가운데와 양쪽 끝부분을 튀어나오게 하는 한편으로 양끝을 ‘ㅅ’자 모양으로 널빤지를 붙이는 박공(牔栱)지붕으로 하는 등 전체적으로 위엄이 있어 보이게 처리했습니다.

 

 

식민지 조선의 백성들에게는 사뭇 위협적이었겠다 싶습니다. 어쨌거나 근대 정치·사회적 변화를 감당했던 건물로, 경남도지사 관사(임시수도기념관)와 더불어 부산을 대표하는 근대 공공 건축물이랍니다.

 

정문.

 

등록문화재 제42호로 국경일, 공휴일, 동아대학교 개교기념일, 일요일은 문을 열지 않습니다. 마당에 있는 탑들이 사람들이 오고가는 한길과는 한 뼘 거리입니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잠시 눈길을 주는 이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보물 제569호로 지정된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見危授命:이로움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내어주라)이라 적은 안중근의사 유묵과 창경궁과 창덕궁을 함께 그려 담은 국보 제249호 동궐도를 비롯한 문화재를 많이 갖추고 있습니다.

 

2층은 서화실·도자실·고고실·와전실·민속실·불교미술실 같은 상설전시실이고요, 3층은 부산임시수도정부청사 기록실로 쓰고 있습니다. 박물관을 한 바퀴 둘러보면 조그마한 설명문 하나에도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인 자취가 보이는 등 곳곳에서 시민들과 함께하려는 노력이 확 느껴집니다.

 

3층 기록실에 나와 있는 관련 유물들.

 

부산민주항쟁기념관-부산 민주화 운동의 열기

 

중앙공원에서 내려다보면 부산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으로 몰려들어 피란민 판자촌이 넘쳐났던 대청산이 부산 시민들의 휴식처로 거듭난 것입니다.

 

70m 높이로 우뚝 서 있는 충혼탑에는 부산 출신 전몰 장병 영령 8954위가 모셔져 있습니다. 원래 용두산 충혼탑에 모셔져 있었는데 이곳으로 옮겨왔습니다. 그밖에 일제강점기를 돌아보는 부산광복기념관과 대한해협 전승비도 있습니다.

 

중앙공원 충혼탑.

 

 

중앙공원에는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중심 노릇을 했던 부산의 민주화 열기를 느낄 수 있는 부산민주항쟁기념관(월요일·공휴일 휴관)도 있습니다. 여기를 돌아보면 한국 근·현대 역사 발전에 부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희생과 열정을 바쳤는지를 제대로 알 수 있답니다.

 

그래서 부산민주항쟁기념관을 비롯한 일대를 민주공원이라고 합니다. 다양한 체험학습으로 민주주의의 의미와 가치와 그 소중함에 대한 교육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노무현 소나무.

 

2002년 5월 4일 노무현은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 자격으로 여기를 찾아 소나무로 기념 식수를 했습니다. 민주공원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연이 깊은 까닭을 나름대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부산을 찾는 정치인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중앙공원에는 많은 조각상과 기념조형물이 있습니다. 단연 돋보이는 것은 원형 램프로 에워싸인 민주항쟁기념관 안쪽 마당에 세워진 높이 20m의 ‘민주의 횃불’이랍니다. 민주공원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으로 밤중에는 불이 활활 타오르는 듯한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부산광복기념관은 2000년 광복절에 맞춰 부산의 독립운동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문을 열었습니다. 일본의 침략 기지가 된 항구도시 부산의 독립운동은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을 비롯해 여러 부문에서 일찍부터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동래 3.1독립만세운동과 구포장터 독립만세운동 등을 주제에 따라 전시하고 있습니다. 크고 작은 지역 항일운동을 정리한 연표와 자료도 있습니다.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이면 다음 날)은 문을 열지 않습니다.

 

 

남포동·광복동 거리는 일제강점기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져오는 근대와 현대가 만나는 공간입니다. 일제강점이 끝남에 따라 ‘본토’로 돌아가게 된 일본사람들이 물자를 팔아 노자를 챙기기 위해 지금 국제시장 자리를 장터로 삼으면서 새롭게 형성됐습니다.

 

한국전쟁 때는 미군이 부산에 주둔하면서 들여온 많은 통조림들이 나오는 바람에 깡통시장이라고도 했습니다. 밀수품도 꽤 나왔는데 자유시장, 돗떼기시장이라는 이름도 얻었습니다.

 

지금은 국제시장으로 일컫는 일대를 포함해 남포동·광복동 거리도 도심 공동화로 쇠락하다가 몇 해 전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광복동패션거리와 PIFF광장에는 모여드는 사람들로 주말에는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가 됐습니다.

 

임시수도기념관에 있는 당시 판자촌 모형.

 

용두산공원과 국제시장 주변은 통째로 근·현대사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백산기념관도 그런 가운데 하나입니다. 경남 의령 출신 독립운동가 백산 안희제를 기리는 이 건물은 광복 50주년을 맞아 옛 백산상회 자리에 지었습니다.

 

지하와 1·2층 전시실로 되어 있는데 입구는 독특하게 피라미드 모양입니다. 민중계몽교육사업과 언론사 창설, 백산상회를 통한 독립운동자금 확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모로 힘썼던 백산의 흉상도 있고, 친필 편지를 비롯해 책과 도장 등 유품과 독립운동 자료들도 모여 있습니다.

 

자갈치시장-아지매들의 활기찬 웃음소리

 

자갈치시장은 새벽에 어판장에서 그 싱싱함을 사고파는 사람들의 우렁찬 목소리와 부산스런 움직임으로 시작됩니다. 자갈치 아지매들의 활기찬 웃음소리에는 그들만의 애환과 고단함이 보람과 함께 뒤섞여 있습니다.

 

 

1924년 일본인들이 여기 바닷가에 시장을 열면서 남쪽 물가를 뜻하는 ‘남빈(南濱)시장’으로 이름을 붙였는데 이것이 오늘날 자갈치시장의 시원이 됩니다. 검은 자갈 해안에서 비롯되었다는 설과 살아 있는 활어만 취급해 살아 있는 채로만 거래되는 자갈치라는 물고기 이름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전해집니다.

 

자갈치시장의 으뜸 매력은 누가 뭐라 해도 그 역동성에 있습니다. 바다사람 특유의 비릿함이 묻어 있는 거칠음은 오히려 정겨움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시장사람들과 뒤섞이는 것만으로도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자갈치시장의 매력이 널리 알려지면서 그 매력을 누리려는 이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이제는 부산에서 으뜸가는 명소로 꼽히게 됐습니다. 자갈치시장에 가면 눈맛 입맛 사람 사는 맛을 한꺼번에 누릴 수 있습니다.

 

자갈치시장에서 또다른 명물은 생선구이입니다. 기름에 노릇노릇하게 구운 생선구이 정식을 시키면 얼큰하게 끓인 순대국이 따라 나옵니다. 몇 번을 시켜도 공짜입니다.

 

해변을 따라 늘어선 포장마차에서 곰장어 구이 한 접시를 주문해 놓고 바다구경을 해도 좋습니다. 붉은 노을을 등지고 영도를 오가는 통통배들을 바라보면 그 풍경이 그만입니다. 자갈치시장은 다달이 마지막 화요일 하루가 쉬는 날이랍니다.

 

보수동 책방골목-한국전쟁이 만들어낸 명물

 

보수동 책방골목에는 헌책방이 60개 남짓 촘촘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가게마다 책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책방골목 또한 6.25전쟁의 산물입니다.

 

 

중구·동구·서구·영도구 등에 살던 피란민의 자식들은 구덕산 자락 보수동 뒷산 등에 마련된 노천교실 천막교실에서 수업을 했습니다. 배움이 그이들에게는 절망을 견디게 해주는 강력한 희망이었습니다. 덕분에 보수동 골목길은 통학로로 붐볐습니다. 먹고 사는 것만으로도 빠듯한 시절에 헌책이라도 살 수 있으면 감지덕지였습니다.

 

한편에서는 피란 온 사람들이 먹을거리 살 돈조차 없을 때면 갖고 있던 책들을 여기에 내다팔았습니다. 여기 책방골목은 이런 수요와 공급이 맞물린 결과물입니다.

 

 

이제 어디 가나 책이 넘쳐납니다. 굳이 책방에 가지 않고 인터넷에서 더욱 손쉽게 살 수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줄어드는 서점 자리에는 술집과 옷가게가 들어섭니다. 이런 시절에도 보수동 책방골목은 찾는 이들에게 새로운 즐거움과 보람을 선사합니다.

 

쉼터가 돼 주기도 하고 추억과 향수도 느끼게 해주는 공간으로 거듭났습니다. 헌책은 정가보다 50~70% 싸게 살 수 있고요 새 책도 다른 데 견줘보면 훨씬 싸답니다. 이제는 책방 노릇을 넘어서 전국적으로 유명한 명소로 자리를 매겼습니다.

 

부산근대역사관과 40계단 일대-외세의 수탈과 전쟁의 고달픔

 

부산근대역사관(부산광역시 지정기념물 제49호)은 외세의 침략과 수탈로 얼룩진 부산의 근·현대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부산의 근대 개항, 일제의 부산 수탈, 근대도시 부산, 동양척식주식회사, 근·현대 한미관계, 부산의 비전 등으로 전시가 짜여 있고요 부산 근대거리도 모형으로 나와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착취·수탈의 본거지로 1920년대 지어진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 건물이었습니다. 해방 이후 미군 숙소였다가 1949년 미국문화원이 됐고 그 뒤 시민들의 끊임없는 반환 요구에 힘입어 1999년 대한민국 소유로 돌아왔습니다. 이런 역사로 외세 지배의 상징이 됐고 부산근대역사관이 여기 들어선 까닭도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40계단 일대는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피란민들이 살았던 판자촌으로, 바로 앞으로 보이는 부두에서 들어오는 구호물자를 내다 파는 장터로, 헤어진 가족들의 상봉하는 장소로 이름을 떨친 곳입니다.

 

40계단. 가운데 즈음에 아코디언 켜는 악사상이 있습니다.

 

40계단 가운데 아코디언 켜는 악사.

 

40계단문화관은 1950년대 피란민들의 힘겨운 생활상이 당시 사진과 생활용품에 담겨 있습니다. 미군 전투식량, 구호 밀가루, 화폐, 비누, 전쟁 당시 학교 모형이나 교과서, 필기구, 도시락 등이 전시돼 있습니다. 월요일과 국경일, 명절은 쉽니다.

 

일대 테마거리는 잘 짜여 있고요 바로 옆에 자리잡은 동광동 인쇄골목도 여기 밀집해 있는 인쇄공장들을 구경하는 재미를 누리게 해주고 있습니다. 40계단 들머리에는 뻥튀기 조각상이 있습니다. 주인은 뻥튀기 기계를 막 터뜨릴 참이고 지켜보는 두 아이는 지레 질려 귀를 막았습니다.

 

40계단 들머리 뻥튀기 기계.

 

 

어릴 적 골목에서 자주 보던 이 풍경에 눈길을 두다가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핑계 삼아 40계단 가운데 즈음에 있는 찻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따뜻한 기운이 온 몸으로 스며듭니다. 빗방울이 맺혀 있는 유리창 너머로 내다보니 여러 사람이 오가는데 카메라를 든 외국인 여자도 한 사람 보입니다.

 

 

고난을 온 몸으로 견뎌내며 생활이 아니라 생존을 목표로 삼아야 했던 그 때 그 시절이 이제 와서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되고 있습니다.

 

여기 부산의 근·현대 역사 현장을 찾으면서는 지난 날 향수에만 매달릴 일이 아닙니다. 지난날 겨레붙이를 괴롭힌 사실을 들어 일제나 지배집단을 나무라기만 할 일도 아닙니다.

 

아무리 만만한 세상이라도 사람살이가 녹록지 않음을 일러주는 한편으로, 아무리 버거워도 그럭저럭 살아지는 것이 또한 사람살이라고 말해주는 여행길이랍니다.

 

김훤주

 

※ 2012년 문화재청에서 발행한 비매품 단행본 <이야기가 있는 문화유산 여행길 경상권>에 실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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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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