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6일 저녁 창원교통방송에서 전파를 탄 내용입니다. 실제로 나간 방송보다 더 많이 담겨 있습니다. 시간이 줄어들었는지 대략 절반 정도만 반영해 고친 원고가 왔더군요. 이러거나 저러거나^^

 

 

 

오늘은 '통영'이라는 도시 이름을 낳은 삼도수군통제영, 줄여서 통제영을 함께 둘러보겠습니다. 8년에 걸친 복원 작업을 거쳐 지난 3월 선보였는데요, 강구안·중앙시장·동피랑 등 통영 중심가와 가까우니까 통제영 가는 길에 이런 다른 데를 함께 둘러봐도 괜찮겠습니다.

 

삼도수군통제영은 요즘 해군사령부쯤이 되는데, 1604년 그러니까 임진왜란이 끝나고 6년째 되는 해에 지금 자리에 들어섰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통제영과 이순신 장군이 관련돼 있을 것처럼 생각하는데요, 세워진 1604년이 이순신 장군 세상 떠난 뒤니까 직접 관련은 없는 셈입니다.

 

통제영 내삼문인 지과문. 戈는 창, 止는 그친다, 입니다.

 

초대 통제사였던 이순신 장군이 개설한 통제영은 한산돕니다. 배 타고 들어가야 하는데, 지금 남아 있는 제승당도 이순신 장군 사후에 세워진 건물입니다.

 

복원되기 전에는 세병관만 덩그러니 하나 남아 있었는데 지금은 세병관뿐 아니라 통제사가 업무를 보던 운주당, 통제사 사택에 해당되는 내아, 주전소터, 비탈진 언덕배기 정자들이 들어서 있는 전망 좋은 후원 그리고 옛날 갖은 군수물품과 진상물품들을 만들어내던 십이공방까지 해서 나름 짜임새를 갖추고 있습니다.

 

내아에서 통제사 거처.

 

통제영 으뜸 건물은 누가 뭐라 해도 세병관입니다. 임금 궐패를 모셔두고 통제사 한 달 두 차례 예를 올리던 곳입니다. 이름 자체가 은하수 물을 끌어와 무기를 씻고 싶다, 그러니까 더 이상 전쟁은 하지 않고 싶다는 뜻을 담고 있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목조 전통 건물이면서 거기 마루에 올라 바라보는 통영 바다 풍경, 그리고 나무 재질이 전해주는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 등등이 좋습니다.

 

그리고 멋진 풍경과 나무 그늘을 누릴 수 있는 데는 후원입니다. 세병관에서 오른편으로 통제사 비석 무리와 운주당·내아를 지나 언덕배기에 있습니다. 통제사가 운주당에서 근무하다가 아니면 출장 갔다 돌아와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또는 귀한 손님이 찾아와 얘기를 나눠야 할 때 걸음을 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후원 한 정자에서 바라본 풍경.

 

3월에 찍은 후원 전경.

 

심은 지 오래된 나무들이 우람하게 자라나 그늘을 깔아놓은 그런 자리에, 초가 또는 기와로 지붕을 이은 정자들이 여럿 있습니다. 여기 올라서 바라보는 통영 바다 풍경 또한 썩 좋고요. 날씨가 좀더 더워지면 여기 앉아서 듣는 대숲 지나는 바람소리가 한결 더 시원해질 것 같습니다.

 

주전소 터, 그러니까 지금으로 치자면 조폐공사, 화폐 만들던 자리도 발굴돼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는 세병관만큼이나 뜻깊은 장소가 되겠습니다. 건물 자리와 불을 피워 상평통보 같은 엽전 만들던 자리가 함께 발견됐는데, 우리나라 유일한 화폐 제작 유적지라 하고요.

 

주전소 건물 자리. 주전소 화폐 만들던 자리.

 

또 이렇듯 화폐 발행권을 갖고 있었을 정도로 수군 최고 사령관·지휘관으로서 통제사에게 주어진 책임과 권한이 엄청났음을 일러주는 역사의 현장이라 합니다.

 

이밖에도 새로 발굴돼 선보이고 있는 기삽석통-가로세로 10m는 됨직한 장수기 커다란 깃발을 꽂아두던 돌통이라든지, 석인-청황적백흑 다섯 방향을 가리키는 오방기를 꽂아두던 돌인형이 이번 복원 과정에서 발굴돼 앞마당에 놓여 있습니다. 이것들 한 번 쓰다듬어 보는 재미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석인-돌인형 기삽석통旗揷石桶에 꽂힌 수자기帥字旗

 

마지막 십이공방은 요즘으로 치면 군수산업시설입니다. 활·화살, 칼·창 같은 병장기를 만들었고요, 나전이나 대나무발 같은 생활용품도 만들었습니다. 통영 예술의 원천 가운데 하나라는 얘기를 듣습니다. 통제영 군인들이 쓰기도 했지만 서울 임금한테 공납도 했습니다.

 

왼쪽 위 건물이 세병관, 나머지는 십이공방 건물들.

 

송방웅 선생이 찾은 이들에게 나전과 옻칠에 대해 얘기해 주는 모습.

십이공방은 공방이 열두 개라서 십이공방이라 한 것은 아니랍니다. 아주 많다는 뜻으로 ‘십이’라는 숫자를 붙였을 뿐이고요, 지금은 통영 출신 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螺鈿匠) 송방웅 선생이나 제114호 대발을 만드는 염장(簾匠) 조대용 선생이 간간이 작업하는 모습을 보여주곤 합니다.

 

내려올 때는 왜군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내는 의식을 해마다 치렀던 수항루를 둘러봐도 괜찮습니다. 원래는 남문 밖에 바닷가에 있던 것이었는데 개발을 하면서 떼어내 옮겼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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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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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hollx.com 사진 아이디어 2014.05.17 07: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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