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출입통제 풀린 우포늪 늦은 봄나들이

김훤주 2014. 5. 1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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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교통방송 원고입니다. 9일 저녁 7시 20분에 했습니다. 방송 작가 손보는 과정에서 많이 고쳐졌더랬는데 원래 원고를 그대로 내놓습니다. 다른 별 뜻은 없습니다. 우포늪은 원래 토종말로 소벌이라 했습니다.

 

오늘은 조류인플루엔자로 묶였던 발길이 5월 1일 풀린 창녕 우포늪을 주말 나들이 장소로 소개합니다. 어쨌든 그동안 겨울철새들은 이번 출입 통제 덕분에 요즘 들어서는 무척 드물게 아주 조용하고 한적하게 겨울을 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포늪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이름난 자연습지입니다만, 그 구석구석을 제대로 찾아 즐기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물론 그렇게 즐기고 누려야만 좋은 것은 아니지만, 자연을 해치지 않고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라면 나름 권장할만하다 하겠습니다.

 

목포(나무개벌) 들머리 왕버들 무리.2011년 4월 초순 사진.

 

봄은 아직 온전하게 오지 않았을 때가 가장 그럴 듯합니다. 엄마 품에서는 엄마 품이 얼마나 따뜻한지 알아차리기 힘든 것처럼, 봄 한가운데서는 봄이 얼마나 좋은지 잘 모르는 법이거든요. 그래서 바람도 쌀쌀하고 잎사귀도 막 고사리손을 내밀어 연두빛을 머금는 초봄이 가장 느낌이 좋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그런 호사는 아무도 누릴 수가 없었고, 봄 끄트머리 이제야 우포늪 가장자리에서 초록 빛깔을 한 번 눈에 담을 기회가 생겼습니다. 출발점은 창녕군 유어면 세진마을입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곧장 갑니다.

 

풀과 나무들의 초록이 이미 많이 짙어지긴 했지만 아직 엉큼한 느낌이 풀풀 날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사람으로 치자면, 코 밑에 가뭇가뭇 여린 솜털이 날까 말까 하는 중학교 2학년 남자애랑 비교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겨우내 들판을 덮었던 갈색 지푸라기들 뚫고 땅 밑에서 갖은 풀들이 솟아났습니다. 포플라처럼 공중에 있는 가지들은 잎사귀가 손바닥만한 녀석도 있습니다. 이렇게 어슬렁어슬렁 느릿느릿하는 산책이 우포늪에서는 제격입니다.

 

가운데 고목은 새들의 아파트랍니다. 모두 21층이라 들었습니다. 이렇게 사진으로 봐도 둥지로 쓰이는 구멍이 여럿 뚜렷합니다.

 

눈·코·귀·입과 살갗까지 오감을 열어 피어오르는 봄기운을 누리는 것입니다. 여러 잎들은, 자기네 눈여겨보는 이들에게만, 같은 초록이라 해도 실은 전혀 다른 초록들임을 알려줍니다.

 

길이 우포늪과 만나는 데서 왼쪽으로 꺾어져 걸어갑니다. 오른쪽으로 커다란 호수 같은 정경이 펼쳐집니다. 여기서는 누구나 가슴을 풀고 한숨을 크게 내쉽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느덧 체질이 되고만 긴장이 스르르 풀어지는 것입니다.

 

길섶에서 나뭇잎과 풀잎을 만져봅니다. 같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자연은 원래 그렇습니다. 인공에서는 같은 것이 넘쳐납니다만. 앞면·뒷면·옆면을 쓰다듬어 보면 어떤 것은 매끈매끈하고 어떤 것은 꺼칠꺼칠하며 톱날마냥 오톨도톨한 잎도 있습니다.

 

힐링나무 사진은 찍어놓지 않아서 이번 글에는 쓰지 못했습니다.

 

전망대에는 오르지 않습니다. 사초군락 있는 데로 바로 들어갑니다. 마른 풀들을 헤치고 조금 더 가면 왼편에 둥그렇게 푸근한 느낌이면서 키도 큰 나무가 몇 그루 나옵니다. 가운데에는 습지답게 물이 고여 조그만 웅덩이를 이뤘습니다. 바닥에는 풀들이 연푸른색으로 나지막하게 돋아 있습니다.

 

슬그머니 앉아서는 가만히 소리도 내지 않고 있습니다. 숨은 크고 깊게 쉬어봅니다. 눈은 감는 편이 좋지만 뜬 채여도 괜찮습니다. 머리가 시원해집니다. 뒤통수부터 맑아집니다. 살갗 세포들 열리는 느낌이 들면서 소름이 돋을 수도 있습니다.

 

우포늪을 잘 아는 몇몇 분들이 힐링 나무, 치유의 나무라고 별명을 붙인 나무들입니다. 앉아 있기만 해도 마음이 가라앉고 기분까지 덩달아 상큼해지는 자리입니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돌아나옵니다.

 

마침 점심 때입니다. 거기 밥집 ‘우포랑 따오기랑’에 들어가 논고동비빔밥 같이 우포늪 아니면 못 먹는 것을 시켜 먹습니다. 비싸지도 않습니다.

 

 

이제 어디로 갈까요? 창녕에 우포늪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이방면 이방초등학교 뒤편 산토끼 노래동산이 안성맞춤입니다. 얼핏 아이들만 즐거운 공간 같지만 실은 아닙니다. 어른들도 너무너무 좋아 함박웃음까지 터뜨리는 공간입니다.

 

우리는 토끼라 하면 한 가지뿐인 줄 알지만, 여러 가지 많기도 한 가지가지 토끼들을 잘 갖췄기 때문이기도 하고, 동요 산토끼의 DNA가 깊이 박혀 있는 때문이기도 합니다. 또 티 하나 묻지 않은 어린아이들이 몰려드니, 어른들로서는 그런 아이 보는 보람만으로도 웃음이 절로 머금어지는 것입니다.

 

블로거 선비님 사진.

 

아, 참 우포늪은 입장료나 관람료는 물론 주차비도 받지 않지만, 산토끼 노래동산은 관람료를 받습니다. 어른 2000원, 어린이 1000원입니다. 들어가보시면 본전은 충분히 뽑고도 남음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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