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과 주5일 근무제의 만남

 

장흥 토요시장은 정말 대단합니다. 저는 그 대단함의 근원을 장흥 토요시장을 구상하고 만들어낸 감각에서 찾습니다. 거기 찾아갈 때마다 저는 그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습니다.

 

장흥이 토요시장을 시작한 때가 2005년 7월입니다. 주5일근무제 전면 시행에 맞췄다고 들었습니다. 토요일이 노동에서 해방돼 일하지 않게 되면서 이를 겨냥해 전통시장을 한 차례 더 열자는 얘기였겠습니다.

 

이로써 장흥장날은 2일과 7일에 더해 토요일이 더해지게 됐습니다. 이제 2일과 7일은 오히려 수그러들고 토요일이 훨씬 더 두드러져 있습니다.

 

토요시장 풍경.

 

생각을 거꾸로 해 봅니다. 우리나라 곳곳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장흥과 같거나 비슷한 조건을 갖춘 데가 전혀 없지는 않을 텐데, 어째서 토요시장은 장흥에만 생겨났을까요?

 

다른 자치단체는 생각을 못했고 장흥은 그렇게 하자 생각해냈던 것 아닐까요? 그러니까 바로 이런 생각해내는 조그만 차이가 능동과 수동을 나누고 창발과 답습을 가르며 성공과 실패를 결정합니다.

 

 

빼어난 장흥의 명물들과 산천경개

 

물론 장흥과 같은 조건을 갖추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장흥 명물이 굉장하기 때문입니다. 장흥 명물 가운데 제가 잘 모르는 것도 오히려 많을 텐데요, 어쨌거나 제가 아는 명물만 해도 농업·어업·임업·축산업 분야에 가지가지 있습니다.

 

갑오징어.

탐진강에서 잡히는 민물고기, 바다에서 잡아내는 키조개·바지락·낙지·쭈꾸미, 그리고 매생이·미역·감태·김, 산에서 나는 전통차와 표고버섯과 여러 약초들, 들에서 나는 찹쌀·맵쌀·올벼쌀 등등이 토요시장을 알차게 받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장흥은 산천경개도 빼어난 편이어서 그 풍물과 경관을 찾는 이들까지 토요시장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가을 억새 천관산과 봄철 철쭉꽃 제암산 등등에 더해 1000년 넘는 역사를 품은 보림사 같은 절간까지 장흥에 있는 것입니다.

 

제암산 철쭉군락.

 

그리고 새롭게 경관과 풍물을 더하려는 애씀까지 합해져서 편백우드랜드가 억불산에 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장흥은 이렇듯 산천경개를 배경으로 삼고 전통산업을 발판으로 삼아 전통시장 판을 키우고 이들이 서로 제대로 맞물려 줄곧 잘 돌아가도록 하는 애를 쓰고 있습니다.

 

장흥에서 만들어낸 대표 청정, 무산김

 

잘 돌아가도록 하는 핵심은 제가 보기에 ‘청정’입니다. 장흥 사람들은 청정이 엄청난 힘임을 일찌감치 알아차렸습니다.

 

 

무산(無酸)김이 그 보기입니다. 장흥군에서는 염산 처리를 하는 김은 아예 기르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그래서 장흥에서 나는 김은 전혀 염산 처리를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바닷물에 넣어놓고 김을 길렀습니다.

 

기간을 정해놓고 때가 되면 들어올려 염산을 풀어넣은 물에다 담갔다가 꺼냈습니다. 잡티 없애고 갯병 걸리지 말고 때깔 좋으라고 하는 일이지만 염산이 얼마나 심각한 독성 물질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아시는 사실입니다.

 

사람에게도 좋지 않고 바다에도 나쁜 영향을 끼치는 이런 염산 처리를 전혀 하지 않는 대신 김발을 바다 위로 끌어올려 햇볕에 쬐고 바닷바람에 말리는 방법을 씁니다.

 

무산김.

 

이런 무산김을 생산·판매하는 100% 주민 기업으로 장흥무산김주식회사까지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를 아는 사람들은 염산에 찌든 나쁜 김이 아니라 햇볕에 보슬보슬 마른 좋은 김을 장만하려는 목적만으로 토요시장이 있는 장흥을 찾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난해 가을에 토요시장에서 색다른 김을 마련했는데 양식이 아니라 자연 상태에서 뜯었으며 또 네모나게 뜨지도 않고 그냥 말린 김이었습니다. 비싸지 않게 사서 집에 와 먹어보고는 정말 반했더랬는데, 씹을수록 차지고 고소했으며 또 그게 혓바닥에서만 놀지 않고 입안 전체에 촥촥 감겨드는 맛이어서 그야말로 감동적이었습니다.)

 

할매실명인증제와 청정 장흥 지키기

 

장흥은 이렇게 ‘청정’을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애써 지키는 데에도 나름 힘을 쏟습니다. 토요시장에 나오는 이런저런 산물들에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것들이 섞이면 섞일수록 사람들은 믿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언제나 어디서나 이런 장점을 악용해 쉽사리 돈을 벌려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중국에서 밀수한 인삼은 보통 충남 금산으로 스며들어가 ‘신분 세탁’을 합니다. 실제로 한국 인삼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금산에는 한국산으로 둔갑한 중국산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양파·마늘·고추가 나름 좋다고 소문난 경남 창녕에서도 그런 일은 마찬가지 벌어집니다.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양파·마늘·고추가 들어와 창녕 장날에 뒤섞여 팔려나가는 것입니다. 주로 이런 일은 ‘동네 아지매·할매’로 위장한, 다른 지역에서 온 소매상들 손에서 이뤄진다고 들었습니다.

 

육즙이 풍성한 키조개전.

 

장흥 토요시장에는 ‘고향 할머니 장터’가 있습니다. 여기 ‘할매들’은 다들 이름표를 목에 걸고 있었습니다. 처음 보는 장면이어서 신기하고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장흥군에서 까다롭게 따져서 내어주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지역 사람들이 섞여 들어와 장사하지 못하도록 하고, 장흥 산물이 아닌 것이 장흥에서 청정 이미지를 업고 팔려나가지 않도록 하는 ‘할매실명인증제’인 셈입니다.

 

청정으로 버무린 장흥 명물 음식

 

이처럼 장흥은 ‘청정’을 만들어내고 또 지키기도 하지만 장흥은 이 ‘청정’을 제대로 버무릴 줄도 알고 있습니다. 원래부터 있었는지 아니면 요즘 들어 새로 개발했는지까지 따져보지는 않았지만, ‘장흥삼합’이 그 대표라 할만합니다.

 

 

 

장흥은 사람보다 소가 더 많은 고을입니다. 사람은 4만2000명이지만 소는 5만 마리 가량 됩니다. 새끼를 한 번도 배지 않은 암소고기를 내놓는다고 합니다. 경남 합천의 삼가가 소고기로 유명한데, 삼가와 마찬가지로 품질도 좋고 값도 싼 소고기를 살 수 있는 데입니다.

 

천정에는 소가 그려져 있습니다.

 

키조개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저는 장흥에서 키조개를 보고서야 키조개를 보고 왜 키조개라 하는지 까닭을 알았습니다. 전에는 그냥 키가 커서 키조개라 하나보다 이렇게만 생각했는데요, 여기 와서 엄청나게 큰 키조개를 보면서 그 조개껍데기가 그야말로 옛날 곡식 까부르던 ‘키’를 완벽하게 닮았음을 바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소고기와 키조개에 다시 표고버섯을 더합니다. 표고버섯도 장흥 명물로 자리잡은 녀석입니다. 호남정맥이 흩뿌려 놓은 억불산·제암산·천관산 산들이 장흥 곳곳에 있기에 가능했던 명물입니다.

 

 

이런 식으로 버무리고 뒤섞어 만든 것으로 소고기+키조개+표고버섯=장흥삼합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낙지삼합도 있습니다. 그것은 낙지+삼겹살+키조개, 이렇습니다.

 

토요시장 곳곳에서 엿보이는 남다른 감각

 

 

그런데 이런 어울림이 저절로 이뤄졌을 리는 없습니다. 절로 이뤄진 측면이 있다 해도 누군가가 감각을 더하고 섬세함을 입히지 않으면 전체적으로는 꺼칠꺼칠함을 벗어나기 어렵고 세부적으로는 새는 구멍이 뚫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눈맑은 사람이라면 장흥 토요시장을 두 번 아니라 한 번만 휘 둘러봐도 그런 섬세함과 남다른 감각을 여러 군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다우리 음식거리’입니다. 장흥으로 시집온 이주 여성들이 떠나온 고국의 먹을거리를 펼치는 데입니다. 저는 처음에 ‘다문화 음식거리’이리라 여기고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찍어놓은 사진을 보니 ‘다문화’가 아니라 ‘다우리’라 적혀 있습니다.

 

다우리 음식거리.

 

손뼉을 쳤습니다. 기가 막히는구나! 싶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왔다 해도 모두가) 다 (남이 아니고) 우리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사람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까지 세심하고 섬세하게 신경을 써서 이런 아름답고 따뜻한 작명을 한 사람이 도대체 누구일까, 궁금합니다.

 

 

세심함은 화장실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두 말이 필요 없습니다. 붙여놓은 글귀와 그림을 사진으로 확인만 해도 됩니다. 그래서 저는, 잘은 모르지만, 토요시장은 지역의 명물과 지역의 사람이 제대로 어울려지고 버무려지는 바람에 생겨날 수 있었던, 그런 명품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순수 민간 역량까지

 

한 나절 아니라 하루종일 누리고 노닐어도 전혀 지겹지 않고 즐겁기만 한 그런 명물이라는 말씀입니다. 게다가 장흥 토요시장을 더욱더 명품답게 가꿔 주는 순수 민간 역량(^^)도 있습니다.

 

추억의 사진관.

 

 

아무 이득이 생기지 않는데도 부담 없이 누구든 들어와 노닐다 가라고 공간을 내놓은 전시관인 ‘추억의 사진관’이 그렇고요, 60도 넘는 소주를 전통 방식으로 여지껏 빚어내고 있는 ‘선비 주조장’도 그렇습니다. 이런 양념들이 있어서 풍성한 장흥 토요시장이 더욱 풍성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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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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