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상식으로 볼 때 우리나라 선거 관련 규정에는 이치에 맞지 않는 구석이 적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공직 사퇴 시한이 그렇습니다. 일반 공직자는 선거 90일 전에는 자기가 몸담고 있는 조직을 떠나야 합니다.
자치단체장과 국회의원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됩니다. 제가 알기로 해당 선거 자치단체장은 선거를 하는 당일까지도 현직으로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국회의원도 후보 등록 시점까지는 자리를 지켜도 됩니다.
까닭이 저마다 없지야 않겠습니다만, 형평 차원에서 보면 문제는 분명히 있습니다. 자치단체장과 국회의원에게는 그 자리가 주는 프리미엄을 누리도록 보장해 주는 반면, 다른 공직자들에게는 석 달 앞선 시점에 사퇴하도록 해서 아무 프리미엄도 누리지 못하게 막아 놓았습니다.
창원시장이던 박완수 당시 예비후보는 창원시장 자리를 떠나서 계급장 없이 싸웠지만, 당시 경남도지사였고 지금도 도지사인 홍준표 당시 예비후보는 도지사 계급장을 그대로 단 채로 싸웠습니다. 한 사람은 현직 프리미엄을 조금도 누리지 못했고, 다른 한 사람은 현직 프리미엄을 톡톡히 누렸습니다.
경남도민일보 사진.
이런 불합리는 또 있습니다. 다른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만, 널리 알려지기로는 따를 사람이 없기에 정몽준 국회의원을 보기로 꼽겠습니다. 정몽준 선수는 현직 국회의원입니다.
서울시장 후보로 등록을 하게 되면 서울 동작을 지역구 국회의원직을 그만둬야 합니다.(글을 쓰고 있는 지금, 국회의원 사퇴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네요.) 이로써 서울 동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는 당연히 치러질 테고, 이로써 또 당연히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이 비용을 지금 당장은 세금으로 감당하도록 돼 있는데, 이에 대해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유권자는 멀쩡하게 가만있고 정몽준 국회의원 본인 귀책사유로 보궐선거를 치르게 됐는데도 그 비용을 왜 유권자들이 물어야 하느냐는 얘기입니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당사자가 의사 결정을 자유롭게 할 수 없도록 만든다는 이유를 들며 반대하는 의견도 많은 줄 압니다. 하지만 당사자의 정치활동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것과 보궐선거든 재선거든 그것을 치를 원인을 제공한 바로 그 당사자가 비용을 대는 것이 대립하지는 않습니다.
경남도민일보 사진.
보궐선거 비용만 댄다면, 국회의원직을 그만두든 단체장 선거에 나가든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테니까요. 저는 오히려 이렇게 함으로써 국회의원들의 정치활동에 책임을 더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다른 법률이나 제도와 마찬가지로 이런 선거 관련도 국회에서 국회의원이 고치거나 바꾸거나 합니다. 선거관리위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를테면 개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하는 정도에 그칩니다.
선거 관련 현행 제도와 법률이 국회의원에게 유리하게 돼 있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고 저는 압니다. 법률이나 제도가 아무리 유권자들한테 유리해도, 자기네한테 불리하거나 해로우면 어지간해서는 만들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에 경남선거관리위원회 사람들을 만날 일이 있었는데 그이들도 아무리 개정안을 잘 만들어 갖다 줘도 국회의원들한테는 소용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유권자를 동원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경남도민일보 사진.
그렇게 해도 제대로 안 될 때가 더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달리 없습니다. 만약 이처럼 현직 국회의원에게 유리하고 형평에는 맞지 않는 규정을 바꿀 생각이 선관위한테 있으면 그에 걸맞게 여론을 동원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선관위도 지금껏 나름대로 열심히 여론을 살피고 챙겨 왔다고 볼 수는 있습니다. 선거를 마치고 나면 반드시 전체 과정을 따져보면서 잘못이나 문제가 있지 않은지 확인하는 작업을 벌입니다.
쟁점이 제기되면 무슨무슨 학회 등등에다 연구·조사도 맡깁니다. 때로는 몸소 나서서 토론회나 공청회를 열기도 합니다. 또 홈페이지에다 ‘정책제언’ 코너를 두고 누구나 글을 써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도 해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걸음만 더 나가면 저는 좋겠습니다. 특정 사안 하나를 집중해 다루는 띄우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자치단체장 선거 입후보자 공직 사퇴 시한 하나만 집어냅니다.
지금처럼 국회의원은 후보등록일, 단체장은 아무 제한이 없고 일반 공직자는 선거 90일 전으로 차등을 두는 것이 나은지, 아니면 언제가 되든 같은 날로 통일하는 것이 나은지 설문 조사를 합니다.
차등을 두는 편이 낫다는 의견이 많으면 그대로 두고, 통일하는 편이 낫다는 견해가 많으면 국회에다 그렇게 개정하라고 요구합니다. 만약 이런 사안이라면 시민사회와 함께하기도 어렵지 않습니다. 시민사회가 선관위와 함께하기 먼저 바랄지도 모를 일입니다.
선거관리위원회의 투표 참여 제고를 위한 활동 가운데 하나. 경남도민일보 사진.
설문 조사를 하고 여론을 형성하고 또 동원하는 일까지 선관위가 나서서 하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렇게 한 사안을 마무리짓고 나면 다른 사안으로 넘어갑니다. 여기서 말씀한다면 당사자 귀책사유로 치르는 보궐선거 비용 부담 주체를 누구로 삼아야 맞느냐가 그런 사안이 될 수 있겠습니다.
선관위는 여태 좋지 않은 얘기를 많이 들어왔습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등 권력 눈치를 본다는 말씀입니다. 강한 사람한테는 약하고 약한 사람한테는 강하다는 얘기도 종종 들어왔습니다. 시·군의원 선거 불법 단속에는 호기롭게 나서지만,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선거 불법 단속에는 오그라든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생각을 깨끗하게 씻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장 아래에 있는 일반 유권자와 직접 소통하는 데 있습니다. 가장 아래 일반 유권자들이 선거 과정에서 가장 거슬려하고 못마땅하게 여기는 문제점이 무엇인지 찾아내어 바로잡는 일이 선관위 업무의 또다른 시작이고 또 끝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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