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서비스센터 노동자 염호석씨가 자살했습니다. 자기가 살던 경남 양산을 떠나 강원도 정동진에 가서 죽었습니다. 해가 뜨는 그곳에 간 까닭을 염호석씨는 ‘빛을 잃지 않고 내일도 뜨는 해처럼 이 싸움 꼭 승리하리라 생각해서’라고 유서에서 밝혔습니다.
염호석씨가 소속돼 있는 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지금 파업에 들어가 있습니다. 노조 요구를 살펴봤더니 무척 단순했습니다. 생활임금과 노조 활동을 보장하고 사업장 위장 폐업을 철회하라는 정도였습니다.
염호석씨는 2010년 6월 삼성전자서비스 양산센터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이태 뒤 센터 사장이 직원 숫자를 늘리는 바람에 수리 건수가 적어져 월급으로 받는 수수료가 줄어들자 그만뒀다가 지난해 2월 다시 들어갔습니다.
삼성에서 보유하고 있다고 알려진 '행복한 눈물'.
보니까 ‘건당 수수료’가 문제입니다. 삼성전자서비스센터 노동자들이 임금 대신 받는 월급입니다. 센터 사장은 삼성전자서비스주식회사와 계약합니다. 삼성 표지를 달고 다니지만 직접 고용돼 있지는 않습니다.
사용자 처지에서는 참 편리합니다. 삼성전자서비스는 현장 인력은 관리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수리한 건수에 맞춰 돈만 넘겨주면 됩니다. 센터 사장도 편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직원을 10명 채용하든 20명 채용하든 수리 건수가 같으면 지출되는 인건비 총액은 같습니다.
10명에게 200만원씩 주든 20명에게 100만원씩 주든 센터 사장이 알아서 할 일일 따름입니다. 수리할 거리가 많아지면 센터 사장은 수리하는 사람을 늘립니다. 개별 노동자가 챙겨가는 월급은 거의 달라지지 않습니다. 노동자만 죽어나는 셈입니다.
염호석씨 유서.
대신 노조 활동을 하든지 해서 밉보이면 불이익을 줍니다. 일감 자체만 줄이면 건당 수수료가 저절로 적어지는 것입니다. 노조 분회장을 하던 염호석씨 월급이 70만원(3월) 40만원(4월)뿐이었던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염호석씨 같은 노동자를 밑변으로 삼은 삼성전자서비스의 먹이사슬이 이렇습니다. 삼성전자에서는 먹이사슬에 백혈병 노동자가 아래 놓여 있었습니다. 병든 노동자에게 돌아가야 마땅한 치료비와 보상금이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의령 이병철 생가.
반면에 먹이사슬의 상층부에는 일한 대가 이상으로 챙겨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떵떵거리며 잘 먹고 잘 사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염호석씨 같은 노동자가 제 몫을 제대로 가져갔다면 이건희·이재용을 비롯한 삼성그룹 지배 일가와 측근들의 불로소득이 그렇게 많을 수가 없습니다.
배당금이든 이자든, 임원 급여든 그 본질은 불로소득입니다. 또 그들의 불로소득은 삼성 노동자들이 그이들로부터 지급받지 못한 근로소득입니다. 삼성전자서비스센터에서는 누군가가 생활임금을 못 받았습니다. 또 삼성전자에서는 또다른 누군가가 치료비와 보상금을 못 받았던 것입니다.
모든 불로소득은 사회에 해롭다고 저는 압니다. 손쉽게 얻어지는 불로소득은 더 큰 불로소득을 기대하게 합니다. 불로소득 그 자체와 불로소득에 대한 기대는, 땀흘려 일하는 사람을 천하게 여기도록 만듭니다. 그리고 동시에, 일하지 않고도 떵떵거리는 인간을 대단한 존재로 만듭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에는 그에 걸맞은 노력이 들어가기 마련입니다. 그런 노력이 생략될 때 참사가 일어납니다. 세월호 침몰도 불로소득을 노린 탓이 아닐까요? 이를테면, 컨테이너를 선박에 제대로 묶어두는 노고를 하지 않았던 처럼 말씀입니다.
삼성전자에서 백혈병에 걸리는 노동자도 죽고, 한 달에 40만원밖에 못 받는 삼성전자서비스센터 노동자도 죽습니다. 엄청나게 불로소득을 챙기는 삼성그룹 지배 일가 구성원이나 그 측근들도 결국은 죽습니다. 죽는 것은 모두 같습니다.
그런데 불로소득으로 사는 사람들은 많은 경우 다른 사람한테 대못을 박거나 한이 맺히게 만든다는 점이 근로소득으로 사는(또는 살 수밖에 없는) 사람과 다릅니다. 물론, 언제나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삼성 재벌이 그런 예외처럼, 삼성전자서비스센터 노동자의 눈물을 닦아주고 어깨를 감싸안을 수 있을까요? 그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 개연성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엄효석씨 주검을 둘러싸고 일어난 일들을 보아하니, 아주 기대할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김훤주
※ <기자협회보> 5월 23일치에 실은 글을 조금 고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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