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기 참정권=투표권 확보를 위한 투쟁을 안다면
저는 사실, 투표는 하루만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제가 세상에서 좀 편하게 사는 축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투표가 어쨌든 일단은 권리인데, 세상에 ‘권리 위에 잠자는 사람은 보호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잘 아시는데로, 지금처럼 평등선거·보통선거·비밀선거가 일정한 자격을 갖추고 잃지 않은 모든 구성원에게 주어지기까지는 그야말로 피튀기고 숨넘어가는 일들이 숱하게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1945년 해방이 되고 처음 헌법이 만들어지면서 성년에 이른 모든 사람에게 선거권이 주어졌습니다만, 유럽 여러 다른 나라들에서는 재산이 없는 사람이나 여성들이 자기들 선거권=참정권 확보를 위해 엄청나게 피를 뿌려대야 했던 것입니다.
사전 투표를 하러 들어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과정을 겪고서야 노동자나 여성들이 부자들이나 남자들과 마찬가지 권리를 갖게 됐으니, 그 역사를 귓등으로나마 들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저로서는, 그 뿌려진 피한테 미안해서라도 그 끊어진 목숨한테 미안해서라도 방해를 하든 말든, 바쁜 일이 있든 말든, 사용자가 일이나 하라 하든 말든, 투표는 반드시 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투표가 없었던 박정희 독재 말기
또 하나, 이런 기억도 저로 하여금 투표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듭니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다닐 때 들은 우스개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벌써 35년 전 일이네요. 1979년 봄이었으니까요.
떡을 두고 내기가 벌어졌습니다. 누가 가장 자주 목욕을 하지 않는지를 가립니다. “나는 설 추석 명절마다 한다네.” “나는 전국체전이 열릴 때마다 한다네.” “나는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한다네.” 이렇게 해서 4년이나 지나야 목욕을 한 번 한다는 사람이 떡을 가져가려 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완전 새까맣고 더러운 냄새를 풀풀 풍기는 사람이 짠~~ 나타났습니다. “잠깐만 기다리게나, 아직 하수군. 나는 말일세,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목욕을 한다네.” 그러니까 그이는 1961년 5·16쿠데타 이후 박정희가 대통령이 된 이후로 17년 남짓 목욕을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서읍사무소 앞에, 사전투표소를 알리는 펼침막이 걸려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경찰에 들키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만약 그런 치들한테 이런 일이 발각됐다면 아마 어쩌면 줄초상을 치고 난리도 보통 아니게 났을 것 같습니다. 박정희 욕을 했다가, 중앙정보부 요원한테 끌려가서 어금니에 드릴로 구멍을 뚫는 고문을 당했다는 따위 풍설을, 어린 저도 심심찮게 듣곤 했으니까요.
말하자면 저는 때가 되면 때 맞춰 투표를 할 수 있는 세상과 때가 돼도 때 맞춰 투표를 할 수 없는 세상이 어떻게 다른지를 나름 알고 있기 때문에, ‘귀찮아서’ 또는 ‘공장에 일하러 가야 해서’ 또는 ‘시험공부를 해야 해서’ 따위는 투표를 하지 않는 이유가 될 수 없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투표하기 너무 쉬워진 요즈음 선거
그런데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귀차니스트들이 엄청나게 늘었나 봅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엄청나게 바빠졌나 봅니다. 그보다는 투표를 소중한 권리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귀찮은 의무로 여기는 사람이 늘었나 봅니다.
물론, 투표가 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의무라는 것은 틀리지 않는 사실이라고 저는 봅니다. 사람들이 투표라는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사회가 존립하지 못하거나 정치가 비틀리는 것은 분명한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그래서 나라가 나서서 투표할 수 있는 날을 하루에서 사흘로 늘렸습니다. 6월 4일 투표일에 더해 그 나흘 닷새 전인 5월 30일 오늘과 31일 내일까지 사전 투표일로 정했습니다.
사전투표일에 하는 투표가 투표일에 하는 투표와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려고 오늘 사전 투표를 한 번 해 봤습니다. 오늘 아침에 말씀입니다. 다른 점이 두 개 있었고 같은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정해진 투표일에 투표를 하려면 자기한테 정해진 투표소를 찾아가야 합니다. 다른 투표소에서는 투표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전투표일에 투표를 하면 전국 곳곳에 널려 있는 읍·면·동사무소를 찾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내서읍사무소 3층에 마련된 사전투표소 들머리.
특별하게 정해진 장소를 찾아가지 않아도 되니까 번거로움이 오히려 없습니다. 자기가 일하다가 또는 어디 나들이 나가다가, 얻어걸리는 읍·면·동사무소가 있을 때 그냥 들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저는 오늘 출근하는 길에 제가 사는 동네인 마산 내서읍 읍사무소에 들어가 투표를 했습니다.
또 하나 다른 점은, 사전투표는 관내 선거인과 관외 선거인 두 줄로 나뉘어 진행되고, 정해진 투표일에 하는 투표는 그냥 한 줄로 서서 진행된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내서읍에 살기 때문에 관내선거인 줄에 서서 투표용지 받은 일곱 장에다 꾹꾹꾹꾹꾹꾹꾹꾹꾹꾹꾹꾹꾹꾹꾹꾹 누른 다음 바로 투표함에 넣었습니다.
관외선거인은 이렇게 누른 다음이 달라집니다. 꾹꾹꾹꾹꾹꾹꾹 누른 투표지를 해당 지역으로 우편 발송을 해야 하기 때문에, 봉투에 넣는 작업이 하나 더 들어가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선거가 어렵지 않았습니다. 쉬웠습니다.
같은 하나는, 신분증만 들고 가면 전국 어느 읍·면·동사무소에서나 투표를 할 수 있습니다. 신분증이 필요한 것은 정해진 날 하는 투표랑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런데도 투표를 하지 않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그런 이는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격이 없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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