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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본 세상

이명박 박근혜의 '대통령의 글쓰기'도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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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글쓰기>를 읽었습니다. 김대중 정부에서 연설비서관실 행정관으로, 노무현 정부에서 연설비서관으로 모두 합해 8년 동안 근무했던 사람이 펴낸 책입니다.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되는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새롭게 배운 점도 많고 제가 나름 알고 있던 부분을 재확인한 점도 많았습니다. 읽으면서 눈에 들어온 것들을 차례대로 적어봅니다. 이런 정도만 익혀도 누구나 글을 쓰는 데 적지 않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 모자라는 구석도 있습니다.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이 모든 연설을 다 잘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렇게 잘못된 연설에 대해서는 그다지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이들의 실패한 연설, 실패한 글쓰기를 구체적인 보기로 들며 그 까닭을 제대로 밝혀내기만 하면 좀더 크게 좀더 많이 좀더 정확하게 배울 수 있을 텐데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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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만 있으면 된다. 논리적인 얘기보다 흉금을 터놓고 하는 한마디가 때로는 더 심금을 울리기도 하니까.(68쪽)

 

횡설수설하는 두 번째 이유는 할 얘기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략) 느낀 그대로, 아는 만큼 쓰자. 최대한 담백하고 담담하게 서술해나가자. 그러면 결코 횡설수설하지 않는다.(68~69쪽)

 

김대중 대통령이 정치활동을 시작한 때로부터 당시까지 해온 어록들은 모두 모았다. (중략) '주제별 어록'이란 책으로 가제본을 하여 대통령께도 보여드렸다. 연설문을 쓸 때마다 그것을 찾아봤다. 모든 실마리를 거기서부터 찾았다. 김대중이란 거인의 글을 보좌할 수 있는 힘이 그곳에서 나왔다. 나는 난장이였지만 거인의 어깨 위에 무동을 타고 있었다.(76쪽)

 

그다음으로 찾아봐야 할 것(자료)이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핵심메시지에 관련된 내용이다. 핵심메시지 관련 자료도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찾아보는 게 좋다. 글을 쓸 때 먼 곳에서 자료를 찾으려고 구천을 헤매는 경우가 많다. 시간만 낭비하고, 설사 찾았다 한들 공허한 소리가 되기 십상이다. 파랑새는 우리 집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79쪽)

 

말과 글의 성패는 첫마디 첫 문장에서 판가름 난다. 거꾸로 얘기하면, 출발에서 실패하면 독자와 청중은 떠난다. 그런 점에서 글의 시작은 유혹이어야 한다. 치명적인 유혹이면 더욱 좋다. 그러나 쉽지 않다.

(중략) 긴장하는 이유는 둘 중의 하나다. 첫째는 눈이 높은 것이다. 그러다보니 글쓰기가 아닌 글짓기를 하려고 한다. 글짓기는 농사짓기와 같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다.

욕심을 버리자. 나중에 고친다는 생각으로 일단 쓰고 보자. 시작하는 용기가 글쓰기의 첫걸음이다. 다른 하나는 남의 눈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검열한다. 이렇게 쓰면 남들이 저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그럴 사람 없다. 설사 있더라도 나중 일이다.(95~96쪽)

 

2009년 8월 경남도청 분향소. 경남도민일보 사진.

 

자기가 아는 말을 해야 쉬워진다. 모르는 소리는 글을 어렵게 만든다. 알더라도 알은체를 하는 순간, 어려워진다. 특히 전문용어는 아예 쓰지 않거나 쉽게 풀어서 써야 한다. 또한 우리말로 바꿀 수 있는 한자어 사용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115쪽)

 

"반드시 창의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에 진부한 인사나 칭찬으로 시작하는 것은 피해주세요."

<노무현 대통령>

특히 일반론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지면과 시간 낭비다.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자. 같은 사안도 낯선 눈으로 보면 새롭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 말대로 '참된 발견은 새로운 땅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119쪽)

 

가장 좋지 않은 마무리는 질질 끄는 것이다. 이에 대해 소설가 안정효는 <글쓰기 만보>에서 재미있는 비유를 했다.

"장황한 종결은 낭비다. 그것은 꽃상여와 비슷하다. 살아서는 뼈 빠지게 가난하여 누더기만 걸치고 옹색하게 살았던 사람이 죽은 다음 만장을 휘날리며 꽃상여를 타고 가서 어쩌겠다는 말인가."

누구나 멋있게 끝내고 싶어한다. 그래서 욕심을 낸다. 하지만 마무리쯤 오면 독자나 청중은 지쳐 있다.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져 있다.

반대로, 말하는 사람은 처음에 생각나지 않던 것이 끝날 때가 되면 떠올라 할 말도 많아지고 아쉬움도 커진다. 그래서 끝낼 듯 끝낼 듯하면서 끝내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사족이 된다.(130~131쪽)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자.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물어볼 것이고, 느낌은 얘기해줄 것이며, 명백한 오류는 잡아줄 것이다. 나아가 다른 시각으로 새로운 것을 찾아줄 것이다. 특히 전문적인 내용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에 조언을 구하는 게 필수다.(144쪽)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면 좋다. 너무 분명하면 여지가 없다. 상상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약간은 모호하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148쪽)

 

경남도민일보 사진.

 

노무현 대통령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글이라는 것은 중학교 1, 2학년 정도면 다 알아들을 수 있게 써야 한다."

실제로 중학교에서 배우는 수준이 어디쯤인지 알고 싶다며 중학교 교과서를 가져와 보라고 한 적도 있다.

역사의 진보에 대한 노 대통령의 정의, 즉 소수가 누리던 것을 보다 많은 사람에게까지 확산하는 것, 그런 시각에서 보면 선택된 소수가 아니라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글을 쓰는 것이야말로 역사 발전에 일조하는 길이다.(173쪽)

 

쉬운 이해를 위한 세 번째 방법은 사례를 들고 비유를 하는 것이다. 여행 갔을 때, 가이드가 그 나라 국토 면적을 몇 제곱질로미터라고 하면 이해가 쉽던가? 한반도의 몇 배다, 이렇게 설명해야 쉽지 않던가.

넷째 반복해줘야 한다. 세 번 정도는 반복해줘야 전달이 분명하게 된다고 한다. 글의 서두에 내가 할 얘기는 이것이다(한 번), 이런 얘기를 하는 배경은 이것이다(두 번), 내 얘기의 결론은 이것이다(세 번)는 식으로.

단, 이런 반복이 '강조'로 들리지 않고,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는 횡설수설로 들리면 곤란하다.(175쪽)

 

대우 김우중 회장은 달변이었다. 생각도 많고 할 말도 많았다. 그는 1997년 말 IMF 외환위기 국면에서 전경련 회장이었다. 말을 해야 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결과론이지만, 대우 사태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삼성 이건희 회장은 눌변이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그랬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할 말만 짤막하게 한다. "기업은 2류, 정치는 3류",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그 파괴력은 컸다. 할 말 똑 부러지게 전달하는 게 좋은 글이다.(184쪽)

 

경남도민일보 사진.

 

엄혹했던 군사독재 시절, 필화사건을 주로 변론했던 한승헌 변호사는 그의 책 <권력과 필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필화는 있어서 불행한 것도 아니고 없다고 다행인 것도 아니다. 전자가 의당 해야 할 비판과 저항의 살아 있음의 증좌일 수 있고, 반면에 후자는 압제 하에 항복한 침묵과 굴종의 반사적 현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학교 1학년 노무현도 작은 필화사건을 겪었다. '우리 이승만 대통령'이란 제목의 글짓기 시간에 '택도 없는 대통령'이란 뜻으로, '택통령' 석 자만 써서 낸 것. 그 이유를 묻는 선생님에게 "이승만 대통령이 독재자여서 그랬다."고 답해서 벌선 일이 있다.

남들이 모두 '그렇다'고 할 때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진실한 글을 쓰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다. 두 대통령은 용기가 있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용기 있게 말하고 글을 썼다.(243쪽)

 

2006년 10월 서울대 개교 60주년 초청 강연. 북핵 문제가 다시 불거져 '전쟁 불사론'까지 등장하자 대통령은 전쟁만은 안 된다며 던진 비유인데, 강연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찰리 채플린이라는 희극배우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히틀러를 반대하고 전쟁을 반대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희극배우답게 말했어요.

전쟁은 전부 40대 이상의 사람만 가라. 나이 먹은 사람들이 자기는 전쟁에 안 가니까 쉽게 결정해서 젊은 사람들을 죽게 만든다. 그러니까 나이 먹은 사람들이 전쟁에 나가서 죽든지 살든지 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유머와 위트의 달인이었다. 친근한 이미지와 친화력의 저변에는 타고난 해학과 기지가 있었다.(253쪽)

 

2007년 6월 원광대 명예박사학위 수여식. 학위 수여장에 명예박사를 의미하는 '명박'이라는 단어가 쓰여 있었다. "이제 걱정이 되는 것 하나가, 여기 보니까 '명박'이라 써놨던데, 제가 '노명박'이 되는가 싶어 가지고…. 하여튼 뭐 이명박 씨가 '노명박'만큼만 잘하면 괜찮습니다."(254쪽)

 

2009년 5월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 경남도민일보 사진.

 

우리는 누구나 저마다의 생각과 스타일이 있다. 생각과 스타일에는 우열이 없다. 자신감을 갖고 자기 생각을 자기답게 쓰자. 그럼 자기 글이란 어떤 글인가? 첫째 자기만의 관점이 있어야 한다. 김 대통령은 이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모든 지식은 내 자신의 비판의 그물에서 여과시켜 받아들여야 한다. 설사 그것이 미숙하고 과오를 범할 위험이 있을지라도, 그것이야말로 내가 나로서 사는 유일한 지적 생활의 길이다."(최성, <김대중 잠언집>, 다산책방)(271~2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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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나서 드는 생각에는 이런 것도 있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삼은 <대통령의 글쓰기> 출판은 과연 가능할까?' 저는 가능하지 않다고 봅니다.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두 대통령에게는 콘텐츠가 있었습니다. 적어도 자기 하는 말을 스스로 이해하고 알고는 있었고, 또 나라를 어떻게 경영해 보겠다는 포부도 있었습니다. 김대중은 '화합과 통합'이었고 노무현은 '균형 발전'이었습니다.

 

이명박·박근혜 두 대통령은 그렇지 못합니다. 이명박이라 하면 저는 '기업들 이윤 추구'밖에 기억나지 않고, 박근혜에게서는 '발표한 공약 깨기'가 가장 도드라져 보입니다.

 

이들은 더욱이 자기가 하는 말을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녹색 성장'을 많이 말했지만 그것이 과연 무엇인지 알기 쉽게 간추려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또한 지금 '창조 경제'를 되풀이 말하고 있지만 그 실체는 사람들한테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좋은 글도 쓰지 못하고 훌륭한 연설도 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래서 저는 <이명박근혜 대통령의 글쓰기> 같은 책이 당연히 세상에 나올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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