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해인사 산신령이 남자 아니고 여자인 까닭

김훤주 2014. 3. 11.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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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장 사랑 고3역사문화탐방] (9) 합천군

 

2013년 12월 11~12일 이틀에 걸쳐 진행한 합천군 학생들의 '우리 고장 사랑 고3 역사 문화 탐방'에는 함박눈이 동행해줬답니다. 길을 나서기 전에는 걱정을 했으나 막상 시작하고 보니 눈 덕분에 오히려 흥겨운 여정이 됐습니다. 물론 합천은 산길이 많기 때문에 탐방 지역은 일부 바꿔야 했지만 말씀입니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황매산 모산재 아래 남향으로 들어서 있는 영암사지였습니다. 영암사는 통일신라 말기에 지어졌다고 전해집니다. 망한 절터 폐사지임에도 통째로 맑고 밝고 환한 기운을 뿜어내는 곳이 영암사지입니다. 그런 느낌은 눈이 쏟아지는 속에서도 여전했습니다.

 

자부심 서려 있는 영암사지 쌍사자석등

 

모산재가 양쪽으로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가운데 잘 다듬어진 석물들에서 무게와 힘이 느껴집니다. 들머리에 있는 나이가 600살 넘은 커다란 느티나무를 지나고 다소곳하게 들어앉은 삼층석탑을 거쳐서, 금당으로 올라가는 돌계단부터가 예사롭지 않은 것이지요.

 

합천박물관 앞에서 기념 사진.

 

한 덩어리 통돌을 쪼아 만든 이 계단은 날렵한 느낌이 들 정도로 가파른 편인데요, 올라가면 눈길은 금당터 아랫도리 돌들에 저절로 머뭅니다. 아름다운 연꽃과 생기발랄한 사자와 험상궂은 괴수 따위가 새겨져 있거든요.

 

영암사지 들머리 600년 넘은 느티나무.

쌍사자석등은 생기기도 아주 잘 생겼고요, 마을 사람들 자부심까지 여기 어려 있답니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 일본 사람이 몰래 빼내가려 했을 때 주민들이 합심해 이를 가로막고 지켜냈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이런 설명을 들으며 사자의 보드라운 엉덩이를 쓰다듬었습니다.

 

이어서 옮겨간 왼쪽 서금당터에는 비석 받침으로 쓰였던 귀부가 두 개 있습니다. 왼편 귀부 거북은 고개를 꼿꼿하게 들었고 오른편 귀부 거북이는 고개가 다소곳이 숙여져 있습니다. 거북 등짝에도 눈길을 보내는데, 육각형 껍데기의 오톨도톨함이 손에 잡힐 듯했습니다. 꼬리는 또 두어 차례 살짝 감아올린 질감이 생생합니다.

 

금당터 사자 조각.

 

해설을 맡은 최헌섭 두류문화연구원 원장의 설명이 곁들여지면서 보는 즐거움에 느끼는 보람이 더해졌습니다. 꼿꼿하게 치켜든 녀석이 오히려 힘이 들어가 어색하고, 다소곳이 숙인 쪽이 훨씬 더 자연스럽다는 둥, 둘레 보면 여기저기 멋진 돌들이 널려 있는데 가만 살펴보면 쐐기 같은 것으로 떼어내려 했던 자취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둥, 보는 안목을 트이게 하는 얘기들이 줄줄 이어졌던 것입니다.

 

남명 조식 태어난 합천 삼가

 

합천 삼가는 일제 강점 이전부터 항일 의병운동이 활발했습니다. 이를 두고 대부분 사람들은 1501년 삼가 외토리에서 태어난 선비 남명 조식과 관련지어 생각한답니다. 안동의 퇴계 이황과 더불어 쌍벽을 이룬 남명 조식은 의리를 중시했고요 그런 학풍이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랍니다.

 

삼가장터 3·1만세운동은 그를 증거하는 불꽃같은 사건이었다고 합니다. 1919년 삼가장터는 한 차례가 아니라 여러 차례 만세운동을 벌였는데요, 그 규모도 엄청나서 일제 기록으로도 3만 명에 이르를 정도였답니다.

 

삼가장터3.1만세운동기념탑 뒷면.

 

이를 기려 2005년 제막한 것이 바로 삼가장터 3·1만세운동 기념탑이고요. 이렇게 자랑스러운 자기 고장의 역사가 있는데도, 여기 삼가 출신인 학생만 알고 다른 데서 온 아닌 학생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답니다. 기념탑을 둘러보면서 새삼스레 감흥에 젖는 모습들입니다.

 

삼가장터는 소고기로도 이름나 있습지요. 그래서 여러 다른 지역에서도 사람들이 삼가 소고기를 맛보려고 모여든답니다. 같은 합천에 살아도 삼가 소고기를 그리 자주 먹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점심으로 해인식육식당에 들러 불고기 백반을 마주했습니다. 다들 입맛을 다시며 맛있게 먹었습니다. 비싸지 않으면서도 그럴 듯한 훌륭한 점심이었습니다. 

 

실크로드와 옥전고분군 로만글라스

 

이어서 합천 박물관을 찾았습니다. 옥전고분군 바로 옆에 있습니다. 대부분 유물은 옥전고분군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합천에서도 박물관 탐방은 미션식으로 진행을 했습니다. 합천박물관을 특징짓는 유물 네 가지 찾아오기였습니다.

 

합천박물관에서.

 

으뜸은 로만글라스이고 버금은 손잡이가 용과 봉황 무늬로 새겨진 큰 칼(용봉대도)였습니다. 고대 로마에서 만들어진 로만글라스가 천리만리 떨어져 있는 한반도의 동남쪽 여기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로마와 장안을 잇는 실크로드가 여기까지 뻗어와 로만글라스를 내려놓은 것입니다.

 

용봉대도는 먼저 크기로 미뤄볼 때 옥전 고분군을 이룬 세력이 결코 작지 않았음을 일러준답니다. 학생들은 소풍이라도 나온 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무덤들을 둘러봤습니다.

 

옥전고분군을 둘러보는 모습. 앞에 장갑 낀 이가 최헌섭 무류문화연구원 원장.

 

가야 마지막 태자와 월광사지, 그리고 해인사

 

월광사지에는 해인사 가는 길에 들렀습니다. 냇물이 흐르는 개울가 언덕배기에 삼층석탑 둘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돌탑들은 또 소나무로 둘러싸여 있어 느낌이 고즈넉하고 기상이 굳셉니다. 이름난 해인사나 영암사지 말고도 합천에는 이런 명승이 구석구석 있습니다.

 

"우와! 정말 멋져요." "합천에 이런 데도 있었다니!" 학생들 놀라는 품이 무리는 아닌 것이요, 여기가 관심 있는 어른들도 잘 모르는 그런 데이기 때문이지요.

 

월광사지.

 

이름은 대가야 마지막 태자 '월광(月光)'에서 왔지만, 시기는 아무리 올려 잡아도 통일신라를 뛰어넘지는 못한다고 합니다. 월광 태자가 지은 절은 아니더라도, 월광 태자가 노닐던 자리 정도는 될 것 같습니다. 

눈싸움하는 모습. 눈싸움하는 모습.

 

 

해인사 뜨락에서 아이들이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원래는 소리길을 걸을 작정이었으나 눈이 내리는 데 더해 바람까지 거세어져 해인사 둘러보기로 일정을 바꿨답니다. 눈을 만난 아이들은 그저 신이 났습니다. 눈이 내리는 해인사는 그림처럼 고요했습니다. 해인사를 둘러본 여러 기억 가운데 가장 잊히지 않은 풍경이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가야산 정견모주와 해인사 국사단

 

가벼운 물소리가 나는 개울을 건너 경내로 들어서니 스님들이 마당에 내려앉은 눈을 소리도 없이 치우고 있습니다. 팔만대장경을 모신 장경각,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 최치원이 심었다는 학사대 잣나무를 둘러본 다음 내려오는 길에 산신령을 모시는 국사단을 들렀습니다.

 

학사대.

 

국사단에서 제(아래쪽)가 학생들이랑 얘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국사단에 모셔져 있는 가야산 산신령, 정견모주.

 

국사단 주인이 보통은 남자지만 여기 주인은 여자랍니다. 가야산 산신령이 여자, 정견모주(正見母主)이기 때문이지요. 대가야 건국신화에서 정견모주가 붉은해 첫째(朱日)와 새파란끄트머리(靑裔) 둘째를 낳았는데 붉은해는 고령 대가야를 세웠고 새파란끄트머리는 김해 가락국을 세웠습니다.

 

김해 가락국을 아래로 끌어내리고, 후기 가야세력 대장격이었던 고령 대가야를 머리로 끌어올리는 그런 건국설화라 하겠습니다. 어쨌거나, 주일이나 청예 같은 작명도 재미있지 않습니까?

 

해인사 눈에 쌓인 풍경.

 

눈에 싸인 해인사 홍류동.

 

유성가든에 들러 합천 별미인 붕어찜으로 저녁을 먹고 짐은 황매산펜션에다 풀었습니다. 남학생 여학생으로 나뉘어 흩어지기 전에 함께 모여 합천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합천은 매우 넓어서 서울보다 1.5배나 클 정도랍니다. 독립된 행정 단위였던 강양(합천)·삼가·초계가 하나로 합쳐진 때문입니다. 이렇게 크다 보니 인물도 많습니다. 남명 조식과 그 제자인 정인홍을 대표로 꼽을 수 있습니다.

 

뿔똥마을에서 가마솥 밥짓기

 

광해군 때 영의정을 지낸 정인홍은 임진왜란 때 합천 지역 의병장이었고 합천은 의병 활동이 전국에서 가장 활발했답니다. 이런 기풍이 근대까지 이어지면서 터져나온 것이 삼가장터 3·1만세운동이라고들 사람들은 말합니다.

 

이튿날 아침에는 지역 역사 문화 도전! 골든벨을 진행했습니다. 하루 동안 보고 느끼며 마음이 움직인 탓인지 제법 익숙하게 지역 문제를 맞혀나갔습니다.

 

가마솥에 쌀을 안치고 부채질까지 해대며 밥을 짓는 모습.

마지막 일정은 각사 뿔똥마을에서 풀었습니다. 뿔똥은 보리수 열매를 뜻하는 경상도말이지요. 눈이 내린 뒤끝이라 뽈똥 열매는 많이 지고 얼마 없었습니다. 대신 열매를 한 봉지씩 얻어가기로 했습니다.

 

가마솥으로 밥을 짓는 체험에 아이들은 열을 올렸습니다. 조금은 생각밖이었는데요, 아이들은 언제나 새로운 것에 흥미를 느끼는 모양입니다. 연기 때문에 눈물을 글썽글썽거리면서도 정성껏 밥을 지었습니다.

 

손수 지은 가마솥밥에다 시골 마을 자연 반찬을 곁들여 점심으로 먹었습니다.

 

뜸이 알맞게 든 밥은 윤기마저 자르르했습니다. 스스로 지은 밥에다가 시골 마을 자연 반찬을 곁들인 점심은 먹음직스러웠습니다. 고3 마지막 학창 시절을 마무리해 주는 따뜻하고 풍성한 일정이라 할 만한 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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