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고성 소가야는 ‘작은 가야’ 아닌 ‘센 가야’

김훤주 2014. 3. 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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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고장사랑 고3역사문화탐방] (7) 고성군

 

2013년 12월 5일 1박2일 일정으로 시작한 고성 지역 '우리 고장 사랑 고3 역사 문화 탐방'의 첫 방문 대상은 고성박물관과 송학동 고분군이었습니다. 좀 더 재미있게 박물관 탐방을 하기 위해 약간 색다르게 진행했습니다.

 

팀을 나눠 미션을 주는 방식이었지요. 4~5명씩 팀을 이룬 학생들은 여기저기 분주하게 뛰어다니면서 주어진 문제의 정답을 찾아 '미션 수행'을 열심히 했습니다. 여기저기서 정답을 찾은 학생들의 즐거운 함성이 울려퍼졌습니다.

 

미션으로 나간 문제는 고성박물관에서 꼭 봐야 하는 것들을 골랐답니다. '古'(고)자 토기와 새무늬 청동기가 그 대표 유물이지요.

 

고자미동국, 고자국, 그리고 고사포국. 古라고 새겨져 있는 그릇.

 

현대 기하학 디자인처럼 아주 균형을 잘 갖춘 청동기인데요, 원형 그대로 남은 우리나라 유일한 유물로 옛적 사람들이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새를 두고 하늘과 사람을 이어주는 신성한 존재로 여겼음을 알게 해 주는 것이라 합니다.

 

이러한 귀중한 유물들이 예사롭게 지나치던 고성박물관에 있다는 것을, 학생 대부분은 오늘 처음 알게 됐답니다.

 

새무늬청동기 탁본. 새를 한 번 찾아보세요. 모두 마흔세 마리랍니다.

 

교과서에는 고성을 옛날에 '소가야(小伽倻)'라 했다고 나오지만 여기서는 고사포국(古史浦國) 고자국(古自國) 고자미동국(古資彌凍國)이라 했다고 일러줍니다. 이를 증명하는 유물이 바로 '古'자 토기입니다.(사실 '소가야'라는 말은 여러 옛 문헌 가운데 <삼국유사>에서만 한 차례 나올 뿐입니다.)

 

고성 옛 이름이 무엇인지 미션 문제를 통해 자신이 나고 자란 고성의 뿌리를 새삼 확인하는 귀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송학동 고분군을 둘러본 일행은 다음으로 마암면 석마를 찾았습니다. 석마 마을 들머리 정자나무 아래에 놓여 있는 돌말 두 마리가 그것입니다. 아이들은 옮겨가는 도중 버스에서 설명을 들을 때부터 호기심을 보였습니다. 다들 ‘우리 고성에 이런 유물이 있었다니!’ 하는 표정이었답니다.

 

 

여기 석마(石馬), 돌말은 농경문화 한가운데 남아 있는 기마민족의 자취이기 때문이지요. 이런 돌말 유적은 우리나라에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

 

안내를 맡은 최헌섭 두류문화연구원 원장은, 옛날 사람들에게 숭배 대상이 하늘에서는 새였고 땅에서는 말이었다고 일러줍니다. 말은 빠르고 귀했습니다.

 

 

그래서 제사 지낼 때 말을 희생해 바치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계속 그렇게 희생마가 나오면 말이 남아나지 않기 때문에 나무나 쇠·돌·흙으로 말 모양을 만들기 시작했는데요, 그 유물이 석마라는 얘기였습니다.

 

석마에게 바친 제물은 무엇이었을까요? 즉석에서 문제를 냈더니 맞히는 학생이 없습니다. “말이니까 당근 아니겠느냐?”는 답도 나왔는데 사실 해마다 정월대보름에 바친 제물은 콩 한 말이었습니다. 말은 콩도 좋아하잖아요.

 

점심은 옥천사 절간 들머리에 있는 옥천식당에서 먹었습니다. 밥값이 비싸지 않으면서도 갖은 재료를 외국산이나 허드레를 쓰지 않습니다. 손수 길렀거나 고성에서 나는 물건만 쓰는 식당이지요. 고성 역사 문화 탐방을 한다면서 이런 식당을 놓치면 무척 아까운 노릇이 됩니다.

 

 

음식은 그 자체로서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이런 얘기를 듣는 둥 마는 둥 수저를 놀렸습니다. 세상에는 배고픔보다 더한 반찬은 없으니까요.

 

옥천사는 볼 것도 많고 새길 것도 많은 절간입니다. 그중에서도 으뜸은 자방루랍니다. 자방루는 대웅전과 마주보고 있는데 규모나 모양새가 대웅전을 압도할 정도입니다. 옥천사는 한때 군사훈련에 쓰이기도 했는데요, 자방루에 승병(僧兵) 300명이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모습을 상상해보면 옥천사의 규모나 가치가 짐작이 가고 남습니다.

 

오른쪽이 자방루.

 

아름다운 단청과 정교하게 잘 그려진 새 그림으로도 유명하답니다. 세월은 어김없이 자방루 단청에도 내려앉아 하나둘씩 새들도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남아 있는 새를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닙니다. 더 많은 세월이 흘러가면 남아 있는 새조차 다 날아가 버릴 때가 오리라 싶었습니다.

 

맑은 샘물이 솟아나는 옥천각.

 

절간을 떠나 찾아간 학동은 담장과 집채가 옛적 그대로 남아 있는 마을입니다. 여기 일대는 상족암에서도 볼 수 있는 납작하고 편편한 돌이 많이 납니다. 그다지 단단하지 않아서 떼어내고 쪼개기가 쉽답니다.

 

 

그런 돌을 그대로 활용해 만든 것이 여기 담장이지요. 우리나라에는 돌담으로 유명한 곳이 많지만 학동 돌담은 모양이 매우 특별하다는 설명을 아이들은 최헌섭 원장으로부터 이날 처음 들었습니다. 늘 있고 가장 가까이 있는 것들인데 온통 처음 듣는 이야기들입니다.

 

학림헌 주인 최영덕(왼쪽) 어른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습니다. 왼쪽 건물이 학림헌입니다.

 

옛날에는 목간통 들여놓고 목욕을 하기도 했다는 학림헌 아랫도리 고방.

 

물때를 맞춰 찾아간 상족암은 수없이 많은 세월이 파도를 빌려 바위에 새겨놓은 무늬로 장관을 이룹니다. 밀물 때는 바닷물이 차올라 건너갈 수 없는 데입니다. 몇 번씩 왔었지만 물때를 맞추지 못해 상족암에 있는 선녀탕이나 쌍발은 처음 보고 만져본다는 학생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상족암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습니다.

 

상족암에서, '셀카질'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보기만 해도 즐겁지 않으신가요?

 

 

 

 

 

아이들이 '귀여운 척'을 하고 있습니다.

 

상족암 바다를 온전히 누리고 해변을 따라 돌아나온 일행은 주차장 너른 터에 모여 '지역 역사 도전 골든벨!'을 했습니다. 역시 아이들은 공부보다는 노는 것이 좋습니다. 지역 역사를 책상에 앉아 공부한다면 이렇게 신나게 열심히 할 수 있을까 싶을만큼 열성적이었습니다.

 

상족암 주차장에서.

 

마지막 몇몇만 남았습니다. 이러기를 여러 차례 되풀이했습니다.

 

이렇게 하루 일정을 마치고는 '흙시루'에 짐을 풀었습니다. 흙시루는 황토로 만든 민박형 펜션이랍니다. 학생수련원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시골냄새가 물씬 풍기는, 낭만적인 곳이라고 다들 좋아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모여앉아 나눈 지역 이야기의 주제는 '소(小)가야'. 고성은 절대 작은 가야가 아니었습니다. 세상에 자기 고장 자기 나라를 두고 스스로 '작다'고 이르는 못난이는 없습니다. 오히려 <삼국유사>에 나오는 낱말 ‘소가야’에서 '소'는 '쇠'를 표현한 한자소리로 봐야 맞답니다. 그러니까 쇠가야, 또는 센 가야인 셈입니다.

 

지역 이야기를 마치고 게임을 진행했습니다. 이긴 팀이 환호하고 있습니다.

 

이런 얘기를 듣고는 아이들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손뼉을 크게 쳤습니다. 자기 고장 고성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얻은 덕분이 아닐까요.

 

밤이 깊도록 아이들은 잠들지 못했습니다. 두런두런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음식을 먹고 게임을 했습니다. 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학창 시절의 아름답고 귀한 추억들…… 아이들은 이런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음을 진심으로 고마워했습니다.

 

먼 훗날 지금 이런 시간들이 눈물겹게 그리울 때가 오지 싶습니다. 흘러가는 시간들이 아쉽기만 한 겨울밤이 소록소록 깊어갔습니다.

 

이튿날 6일은 삼계체험마을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마을 어르신이 미리 장만해 놓은 짚가닥을 갖고 새끼를 꼬아보고 복조리까지 만들어 봤습니다. 다들 처음 해보는 새끼 꼬기와 복조리 만들기였지만 손으로 만지는 일은 역시 즐거웠습니다.

잘 만든 아이들에게는 상품권을 몇 장 선물로 건넸습니다. 의젓하기도 하고 놀기도 잘 놀던 고성 친구들! 짧았지만 고성을 더 많이 이해하고 사랑하는 시간이었기를 바랄 따름이랍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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