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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가 거제가 아닌 통영이 될 뻔한 사연

김훤주 2014. 3. 3.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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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장 사랑 고3역사문화탐방] (6) 거제시

 

거제에서 이순신 장군과 임진왜란을 빼놓기는 어렵습니다. 남해에서 특히 거제도 일대가 이순신 장군의 주된 활동 영역이었거든요. 2013년 11월 28~29일의 거제 지역 '우리 고장 사랑 고3 역사 문화 탐방'은 그래서 그 유명한 한산도대첩이 벌어졌던 견내량에서 시작됐습니다.

 

견내량(見乃梁)은 거제시 사등면과 통영시 용남면 사이에 있습니다. 길이 3㎞남짓, 너비 최대 400m 안팎으로 좁고 길다랗습니다. 여기서 이순신은 1592년 음력 7월 8일 학익진으로 왜군을 크게 물리쳤습니다.

 

'한산도대첩'은 후세 사람이 붙인 이름이고요, 이순신이 조정에 보고한 장계(狀啓)에는 '견내량파왜병(見乃梁破倭兵)이라는 글귀가 있을 따름입니다. '견내량에서 왜병을 깨뜨렸나이다.' 일행은 거제대교를 건너 통영타워 꼭대기에 올라 견내량 일대를 내려다보며 한산도대첩 당시를 머리로 그려 봤습니다.

 

기성관.

 

여기서 발길을 돌려 찾아간 데는 거제 관아. 기성관(岐城館)과 질청이 남아 있습니다. 객사로 쓰인 중심 건물 기성관은 정면 9칸으로 매우 크며 가운데 3칸은 지붕이 높다랗습니다. 그 모습이 우람하고 무척 인상깊습니다.

 

 

부속건물인 질청은 행정실 또는 도서관에 해당된답니다. 모두 27칸으로 ㄷ자형인데 고을 수령 자제들 강학 공간으로도 쓰였습니다. 하지만 동헌은 헐리고 그 자리에 거제면사무소가 들어서 있습니다.

 

가배량성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흥미로운 거제 지역 문화재입니다. 여기에 원래 경상우수영이 있었는데, 임진왜란 끝난 뒤에는 1601년까지 삼도수군통제영이 있었다고 합니다.

 

가배량성에 오르는 학생들.

 

수풀이 우거진 동부면 가배리 언덕배기 마루금을 따라 별로 허물어지지 않은 채로 남은 가배량성에는, 하마터면 거제가 '거제'가 아니라 '통영'이 될 뻔했던 사연이 서려 있는 셈입니다.

 

지금 통영에는 3년 뒤인 1604년에야 통제영이 들어섰습니다. 학생들은 거제에도 통제영 자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무척 신기해했습니다.

 

가배량성에서 최헌섭(가운데 등을 보이는 사람) 두류문화연구원 원장이 가배량성에 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지세포에 있는 밥집 대패나라에서 점심을 먹은 다음 거제조선해양문화관을 둘러봤습니다. 거북선 등 임진왜란 당시 해전에 쓰인 배들이 만들어졌고 지금도 삼성·대우 같은 세계적인 조선업체가 들어선 거제에 걸맞은 전시시설이었습니다.

 

거제조선해양문화관을 배경으로 삼고 찍은 기념 사진.

 

거제조선해양문화전시관을 둘러보는 학생들.

 

이어 찾은 옥포대첩 기념공원. 옥포대첩은 이순신 전라좌수사와 원균 경상우수사가 함께 싸운 해전으로 조선이 바다에서 거둔 첫 승리였습니다. 이로써 왜군의 기세를 꺾고 전라도 곡창을 지킬 수 있었다고 하지요.

 

옥포대첩기념공원 옥포루에서 바라본 바다.

 

지금 대우조선이 있는 옥포만 일대에 기념공원을 지은 때는 1957년이랍니다. 판옥선 모양을 한 기념관과 옥포루·사당 등을 둘러봤습니다. 내려다보이는 바다 풍경과 불어오는 바람이 학생들 마음을 시원하게 씻어내줬답니다.

 

옥포대첩기념탑.

 

다음은 조선 수군의 유일한 패전 칠천량해전을 다루는 칠천량해전공원. 여기 전시관에는 1597년 7월 있었던 전투가 재구성돼 있습니다. 조정·장군이 아니라 일반 수군·백성 관점에서 다룬 애니메이션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칠천량해전공원 전망대에서.

 

나오는 길에 마주친 한 중년 부부는 "뭐 한다고 굳이 공원까지 만들어 진 싸움을 보여주나?" "그래 말이야, 참 성난다"고 얘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날 해설을 맡았던 최헌섭 두류문화연구원 원장은 바깥 전망대에서 학생들에게 달리 말했습니다.

 

칠천량해전-원균과 전라우수사 이억기 충청수사 최호 등이 죽었는데, 장수와 병사가 죽은 것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라고 적혀 있습니다.

 

임진왜란은 일본이 대륙 침략을 위해 일으킨 전쟁입니다. 이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재현돼 조선을 일제가 강점했고 중국·러시아 등 동아시아 여러 나라도 참혹하게 만들었습니다. 일본의 우익 지배집단은 이런 시도를 아직도 하고 있습니다.

 

칠천량해전 기념관.

 

일본 지배집단의 생각은 예나 이제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칠천량해전공원은 조선 수군의 유일한 이 패전을 통해 일본 지배집단의 속성을 역사적으로 일러주고 도발을 대비하도록 하는 공간이라는 얘기였습니다.

 

빡빡한 일정을 소화한 일행은 장승포동 밥집 멧돌순두부에서 저녁을 배불리 먹고는 노자산에 자리잡은 명물 거제자연휴양림으로 옮겼습니다. 동백 1~4호실에 10명씩 들어가 짐을 푼 다음 산림문화휴양관으로 모였습니다.

 

먼저 '재미있는 지역 이야기'를 통해 칠천량해전 패배의 장본인 원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진행했습니다. 원균이 지금 알려져 있는 대로 나쁜 인물일까를 두고 다시 생각해보자는 취지였습니다.

 

학생들이 즐거운 표정으로 얘기를 듣고 있습니다.

 

경상우수사 원균은 임진왜란 초기 경상좌수영이 전멸한 상태에서 왜군을 막는 데 적극 나섰고 이순신과 공동으로 전투도 했습니다.

 

이순신은 초기부터 이겼는데 임진왜란 1년 2개월 전인 1591년 2월 전라좌수사로 임명돼 준비할 시간이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원균은 1592년 1월 고작 3개월 전에 경상우수사로 임명돼 시간이 모자랐습니다.

 

이순신은 왜군의 이간책에 넘어간 선조 임금으로부터 출전 명령을 받았으나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1597년 1월 파직됐습니다.

 

뒤이어 통제사가 된 원균 또한 같은 명령을 받고 실상을 알고는 출전을 미루다 거듭 독촉을 받는 바람에 나섰다가 칠천량에서 대패했습니다. 원균은 또 1594년 3월부터 줄곧 육전에 배치돼 1597년에는 해전에 익숙지 못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마지막, 임진왜란 1등 공신은 딱 세 사람이 책봉됐는데 이순신·권율·원균입니다. 따라서 원균이 이순신과 사이가 좋지 않았음은 인정되지만 무능하고 몹쓸 인간은 아니었고 나름 전공도 뛰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학생들은 이런 얘기에 쫑긋 귀를 기울였습니다. 몇몇 학생은 어이없어하며 사실과 달리 원균에 대한 나쁜 인식이 퍼진 까닭이 무엇이냐 따져묻기도 했습니다.

 

원인은 1960~70년대 박정희 정권의 이순신 우상화 정책과 관련돼 진행된 원균 깎아내리기였습니다. 이순신을 더욱 돋보이도록 하려고 경쟁 상대인 원균을 나쁜 놈으로 만들었던 것이지요.

 

황포돛배 모형 등을 만드는 체험을 하는 모습.

 

학생들은 이어 '지역 역사 문화 도전 골든벨!'과 게임 등을 진행했으며 일정을 마친 다음에는 저마다 주어진 방으로 옮겨 이번 탐방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나 관점을 두고 얘기를 나누고 즐겁게 놀았습니다. 졸업을 앞둔 고3에게 또래랑 함께하는 하룻밤은 여러모로 뿌듯한 추억거리였을 것입니다.

 

잔디밭에서 공 차기를 하는 모습.

이튿날 아침 학동해수욕장 경북식당에서 따끈한 찌개로 배를 채운 학생들은 영공방으로 옮겨 황포돛배와 사진 액자를 만드는 체험을 남녀로 나눠 진행했습니다. 아울러 다사로운 햇살 아래 공놀이도 즐기다가 거제 시내 돌산보리밥에서 점심을 먹고는 가벼운 마음으로 헤어졌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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