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장 사랑 고3역사문화탐방] (5) 통영시
통영의 '우리 고장 사랑 고3 역사 문화 탐방'은 2013년 11월 26일과 27일 이틀 진행됐습니다. 첫 걸음은 삼도수군통제영 시절 형성된 '열두 공방(工房)'을 통해 400년 넘게 작품을 생산해내 통영의 상징 가운데 하나인, 그러나 잘 알려져 있지 못한 '옻칠'을 품은 '통영옻칠미술관'으로 향했답니다.
통영옻칠미술관 김성수 관장은 1935년생으로 옻칠 공예를 지키고 널리 알리고 세계적인 예술로 자리잡게 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옻칠은 아직 본고장에서조차 제대로 대접 못 받고 있습니다.
김 관장은 자라나는 세대에게 어른들이 옻칠에 대해 가르치지 않고 있는 때문이라 여깁니다. 제도교육의 정규 교과 교육과 특기·적성 교육은 물론 사교육에서도 다루지 않는 것입니다.
김성수 관장이 학생들에게 옻칠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김 관장은 오전 10시 조금 넘어 미술관을 찾은 마흔 명 어린 손님들을 아주 감격스러워하며 맞았습니다. 작업하다 그대로 나온 듯한 차림으로 김 관장은 자상하고 정성스레 얘기하고 작품까지 보여주면서 옻칠의 특징과 장점, 역사 등을 들려줬습니다.
"옻칠은 향기가 뛰어나고 썩지 않게 하며 해로운 벌레를 쫓아요. 또 옻칠이 중국 소산이라고 많은 이들이 여기지만 실은 우리것이지요. 창원 다호리처럼 청동기 시대 무덤에서 옻칠한 나무가 나온답니다." 등등.
아이들로서는 모두 처음 듣는 얘기입니다. 이 어린 손님들은 관심을 보이며 여러 옻칠 예술 작품들을 그윽하게 들여다봅니다. 생활용품으로 쓰임직한 소품들 앞에서는 귀여워하는 웃음도 빼물고요……. 좀더 있다 가라고 아쉬워하던 김 관장은 아이들이 탄 버스가 떠날 때까지 바깥에서 손을 흔들었었습니다.
이어 봉평동 '오미사꿀빵'을 찾아 하나씩 베어 물었습니다. 통영에는 꿀빵이 유명하고 으뜸 자리에 오미사가 있답니다. 오미사라는 이름은 무엇에서 비롯됐을까요?
대부분 빵집 이름으로 알지만 아니고 원래는 빵집 옆 세탁소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빵집에는 간판이 없었고, 그래서 사람들은 세탁소 이름을 빌려 오미사꿀빵이라 했답니다. 그 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세탁소 오미사는 없어지고 빵집이 오미사 이름을 이어 달았던 것입니다. 통영적십자병원 뒤편 골목에 허름한 차림으로 그 본점이 들어앉아 있습니다.
우리나라 목조건물 가운데 가장 큰 제승당과 그 앞자리 문화동 벅수도 찾았습니다. 재미를 더하기 위해 '미션식'으로 진행했지요. 문화동 벅수가 남자라는 증거 네 가지 찾기, 제승당 경내에서 평화를 상징하거나 기원하는 글귀 두 개 찾기, 그리고 제승당이 당시 통제영에서 중심 건물이었음을 입증해주는 부위 찾기…….
세병관. 세병은, 무기를 씻어 둔다는 뜻. | 지과문. 지과는, 창을 거둔다는 뜻. |
미션 수행을 위해 문화동 벅수 앞에 선 학생 둘에게 최헌섭 두류문화연구원 원장이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통영 학생들도 여느 다른 지역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고장을 아주 잘 아는 듯이 굴었겠지요. 그런데 결과는 신통하지가 않았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미션을 즐기는 가운데 지역 속살을 좀더 알게 됐습니다.
통영서 이름난 먹을거리 가운데는 멍게비빔밥도 있습니다. 항남동 국민은행 뒤편 ‘멍게가’는 깔끔하고 맛있는 밥집인데 통영 비싼 물가를 고려해 남들이 무어라 하기 전에 스스로 밥값을 1000원 낮추기까지 한 식당이랍니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박경리기념관과 삼덕항·당포성지를 둘러봤습니다. 통영 고3들은 당연하게도 박경리를 알고 있었고 박경리기념관에 와 본 학생들도 많았답니다. 그런데 뒤편 박경리 선생 무덤까지 찾아 본 친구는 없었습니다.
박경리기념관에서.
박경리기념관을 지나 박경리 선생 산소로 가는 길목에서.
양지바른 데 자리잡은 무덤은 거기서 내려다보는 풍경 또한 아주 좋습니다. 아이들은 여태까지 이 정경을 보지 못한 것이지요. 무덤 맞은편 오른편 산기슭과 그리로부터 미끄러져 내려가 왼편 아득한 바다까지 한 눈에 담는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이렇게 멋질 줄은 정말 몰랐어요!"
박경리 선생 산소 있는 데서.
기념관 잔디밭에서는 노루꼬리 오후 햇살을 활용해 '우리 고장 역사 문화 도전 골든벨!'을 진행했습니다. 문제 맞힌 즐거움과 맞히지 못한 아쉬움이 엇갈리는 가운데 끄트머리에는 놀이까지 진행했답니다. 덕분에 기념관 잔디밭의 오후 한 시간 남짓은 어린 손님들 함성으로 가득찼습니다.
우리 고장 역사 문화 도전! 골든벨.
삼덕항에서 길라잡이로 나선 최헌섭 두류문화연구원 원장은 맞은편 장군봉에 대해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삼덕항 일대가 중요함을 알려주는 유적이 장군봉 꼭대기 당집이고 삼덕 고갯마루와 나루 벅수라고 일러줍니다. 안녕과 번영을 비는 이런 시설이 아무데나 들어서지는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당포성에 올라 삼덕항을 바라보는 학생들.
학생들은 당포성에서 많이 즐거워했습니다. 탁 트인 전망과 시원한 바람이 좋았나 봅니다.
장군봉은 여기가 군사 요지임도 아울러 일러준다고 했습니다. 단박에 사방이 한 눈에 장악되는 자리이거든요. 뒤편 당포성지는 고려말 최영 장군이 왜구를 막으려고 쌓았다는 얘기가 있고, 이순신 장군은 여기서 임진왜란 당시 왜선 스물한 척을 깨뜨렸으며 왜병 250명 남짓도 무찔렀습니다.
그런데도 삼덕마을에 사는 셋만 빼고는 여기 와 본 학생이 없었습니다. 즐거움은 작지 않았습니다. 재게 걸어 올랐어도 바람이 시원해 땀이 나지 않을 정도였고요, 바라보는 바다와 산과 섬과 배들은 때때로 나서거나 잦아들었답니다.
당포성을 들렀다가 자드락 오솔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가는 아이들.
내려올 때는 성곽 뒤편 마을 쪽 오솔길과 사람 사는 자취를 좇았습니다. ‘최초의 서양 도래인(渡來人) 기념비’도 둘러봤습니다.
포르투갈 출신으로 조선 시대 국경 일지인 <등록유초(謄錄類抄)>에 '지완면제수(之緩面第愁)'로 적혀 있는 주앙 멘데스가 주인공입니다. 임진왜란 끝난 직후인 1604년 일본 가는 뱃길에 풍랑을 만나 여기 앞바다로 흘러들었습니다.
첫날 탐방 일정을 마무리한 일행은 도남식당서 끼니를 잇고 통영시청소년수련관에 짐을 풀었습니다. 간단하게 씻은 뒤 모여 통영 출신 예술인이 많은 까닭을 짧은 시간 함께 생각해 봤습니다.
요지는 첫째 물산 풍부 둘째 아름다운 자연풍광 셋째 전통 깊은 통제영 열두 공방 따위였습니다. 이런저런 설명이 뒤따랐는데, 그럴 듯한 내용이었는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답니다.
서포루로 올라가는 학생들.
11월 27일 이튿날은 비가 내렸습니다. 이를 대비해 전날 프로그램을 많이 소화한 터였습니다. 남은 일정은 서문고개 골목문화 탐방. 아침을 먹고 서포루에 올라 통영길 문화연대 송언수 사무국장과 설명을 나눈 다음 골목을 찾아나서니 바로 비가 내립니다.
뒤편 북포루, 앞쪽 바다, 오른쪽 동포루 그리고 지금 서 있는 서포루를 끼고 한가운데 들어앉은 통제영 세병관이 후줄근해 보입니다. 다들 서둘러 남옥식당에 모였습니다. 점심도 먹을 겸해서 해물탕으로 이름난 여기를 집결지로 삼았었더랬습니다.
팀을 이뤄 완성한 탐방 지도를 설명하는 모습.
매직펜과 사인펜으로 4절 크기 종이에다 서문고개 일대 지도를 그리고 나름 발표하고 설명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무래도 내리는 비 탓에 분위기가 조금은 어수선했지만 배불리 먹고 헤어지는 학생들은 입가에 웃음을 베어물고 있었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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