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분산성서 굽어보니 숨통까지 탁 트이네

김훤주 2014. 3. 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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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장 사랑 고3역사문화탐방] (4)김해시

 

김해 지역 '우리 고장 사랑 고3 역사 문화 탐방'은 화포천에서 시작했습니다. 11월 19일 아침 10시 30분께 마흔 명 학생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 고향 봉하마을에서 습지 풍경 속으로 걸어들어갔습니다. 탐방로 한 바퀴는 따뜻하면서 시원했습니다.

 

키 큰 갈대가 지천으로 널린 그 너머로 바람이 불었고 학생들 걷고 얘기하는 소리는 오리와 기러기 같은 철새들을 날아오르게 했습니다. 가로로 넓게 펼쳐진 습지에 균형을 맞추려는 듯, 세로로 높이 치솟은 양버들 가까이에서는 기념사진도 한 장 찍었답니다.

 

 

돌아와서는 어느새 봉하마을 명물이 된 봉하테마식당 걸쭉한 국밥을 한 그릇씩 뚝딱 해치운 다음 김해민속박물관으로 걸음했습니다. 대성동고분박물관·국립김해박물관 등에 가려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옛적 김해평야의 드높은 생산력을 입증하는 농경 유물들이 주로 나앉아 있답니다.

 

 

다음은 율하리·관동리 유적공원. 2008년 당시 손수 발굴했던 최헌섭 두류문화연구원 원장이 해설을 맡았습니다. 율하리 유적은 청동기 시대 무덤인 고인돌이 대표적이랍니다. 곳곳에 있는데 작은 돌들을 촘촘하게 박아두른 영역 표시가 독특합니다. 둘러싼 영역이 클수록 거기 고인돌 아래 묻힌 인물은 지위가 높다고 합니다.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솟대의 기둥 자리'도 여기서 나왔습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있는 '소도'(=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신성한 지역)의 원형일 텐데 신들의 영역인 고인돌 지역 들머리에 있습니다.

 

오른쪽 아래 돌 셋 있는 사진이 솟대 자리.

 

관동리는 율하리 바로 옆동네입니다. 김해평야보다 더 내륙인 여기서 가야 시대 항구 유적이 발견됐습니다. 예전에는 여기 일대가 바다고 갯벌이었다는 얘기지요.

 

최헌섭 원장(오른쪽)이 옛적과 지금의 바다 지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관동리유적공원전시관.

 

낙동강 끄트머리 김해의 가락국은 낙동강과 바다의 물길을 활용한 교역을 성장 동력으로 삼았습니다. 바다에 잇댄 나루터와 창고 자리, 민가 유적, 아직도 바퀴 자국이 뚜렷하게 남은 도로 따위가 관동리에서 모습을 나타낸 것입니다.

 

옛적 도로의 모습.

 

최 원장은 1500~2000년 전 도로와 나루 유적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옆에서는 무슨 공공건물을 짓느라 땅을 파내고 있었습니다. 한 번 망가지면 다시는 복원하지 못하는데, 눈앞 이익에 눈먼 개발은 이토록 거침이 없었습니다.

 

학생들은 자기가 나고 자란 김해에 이런 소중한 유물이 있다는 사실을 지금 알게 된 데 대해서도 어이없어했지만, 이런 유물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현실을 두고는 더욱더 어처구니없어했습니다.

 

이어서 분산, 분산성에 올랐습니다. 여기 마루에 오르면 낙동강과 드넓은 김해평야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얼마나 자주 왔는지 물었더니 대답이 허망합니다. '한 번도 없다'가 대다수였고, '온 것 같은데 하도 오래 돼 기억이 없다'가 몇몇 있었을 뿐이었거든요.

 

 

늦가을 단풍 자취가 남아 있었던 덕분인지 군데군데서 감탄하더니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전경에서는 '우와!' 소리를 합동으로 냈습니다.

 

최 원장이 "저기는 수로왕릉, 저기는 봉황대, 저기는 서낙동강…" 이렇게 짚어나갔는데 좀 있다가 보니 학생들 모두가 자기 아는 데랑 사는 집이랑 다니는 학교를 꼽아보고 있었습니다.

 

눈이 반짝이고 입가에 웃음이 맺히며 내어뻗는 팔에 신명이 넘쳐납니다. 가야시대 이래 역사·유물·유적이 넘치는 김해이기도 하지만 여기 학생들에게는 생동하는 삶터이기도 한 것입니다.

 

 

자드락 숲길을 지나 왼쪽으로 휘어지는 산성을 따라 걸었습니다. 김해로 귀양왔던 고려 선비 포은 정몽주는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옛 산성을 넓고 크게 고쳐 쌓았다. … 천 길 깎아질렀으니 한 사람만 지켜도 만 명이 당할 수 없겠다."

 

왜구 분탕질 탓에 쌓은 산성인데 분산 마루 만장대(萬丈臺)를 타고봉(打鼓峰)이라 하는 데서도 이런 사정이 짐작됩니다. <김해읍지>는 "왜구가 쳐들어오면 북(鼓)을 쳐서(打) 주민들로 하여금 분산성으로 들어오도록 해서 난을 피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저녁 먹을 차례. 만장대농원이랍니다. 앞서 주인을 만나 '우리 고장 사랑 역사 문화 탐방' 취지를 말하고 밥값 예산이 충분하지 않은 데 대해 의논을 했더랬습니다. 그랬더니 "김해 아이들 먹이고 지역을 알자는데, 덜 벌어도 된다"며 기꺼이 장만하겠노라 해줬습니다. 무척 좋고 화끈한 분이었습니다.

 

 

종일 돌아다닌 아이들은 배가 많이 고팠습니다. 그러나 만장대농원 닭백숙은 푸짐해서 솥이 끝까지 바닥을 드러내지 않았답니다. 다 먹고 나서는 과일 조각도 후식으로 내놓는 푸짐한 인심을 보였습니다.

 

이어서 친구들은 한옥체험관에 짐을 풀고 조금 쉬었다 김해천문대로 향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천문대가 여럿 있지만 도심 가까이 자리잡은 데는 김해뿐이라고들 합니다.

 

천문대에서 학생들은 갖은 감탄사를 아낌없이 쏟아냈습니다. 내려다보는 김해 야경이 그지없이 좋았던 덕분도 있었습니다. 적어도, 지난 고등학교 3년 동안, 이런 밤풍경은 한 차례도 눈에 담은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김해천문대에서 보는 김해 야경.

 

김해천문대는 기본이 되는 별자리와 계절에 따라 다른 별자리 찾는 방법을 가상 체험으로 재미나게 일러줬습니다. 가상 하늘과 가상 별자리를 불빛으로 일러줄 때마다 친구들은 탄성을 질렀습니다.

 

관측장은 지붕이 뚜껑처럼 열리는 것부터 신기했습니다. 이날 11월 19일은 음력 열이레였는데, 달 보기에 알맞았습니다. 친구들은 천체망원경으로 달 표면 곰보딱지까지 실감나게 볼 수 있었답니다.

 

첫날 일정이 마무리됐지만 학생들은 쉬 잠들지 않았습니다. 학교가 달라 조금 어색했던 처음 분위기가 많이 가셔졌기 때문입니다. 새벽 1시 넘어까지 군것질도 하면서 말을 섞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한옥체험관 꽃담장. 한옥체험관 굴뚝

이튿날 일정은 단순했습니다. 한옥체험관 식당에서 아침을 먹은 다음 '우리 고장 역사 문화 도전! 골든벨'을 진행했습니다. 정답을 맞히는 친구가 예상보다 많지 않아 선물로 준비한 상품권이 조금 남았습니다.

 

 

 

그래서 소개를 겸한 토론을 뒤이어 진행하면서 남은 상품권을 풀었습니다. 자기를 춤으로 소개하기도 했고 영어로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김해 구석구석 돌아보니 처음 예상과 달리 재미있었다는 얘기, 분산성·천문대가 기억에 남는다는 얘기, 이렇게 배부르게 먹은 여행은 처음이라는 얘기…….

 

 

마당에서 전통놀이·떡메치기·전통장식만들기 체험을 한 다음, 바로 옆 석정숯불갈비에서 점심을 먹고 다들 헤어졌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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