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자치단체가 (예비) 사회적 기업을 지원·육성하는 정책 가운데 '사업개발비 지원'이 있습니다. 시설·장비 구입이나 인건비로 말고, 앞으로 사업을 벌이는 데 필요한 아이템이나 홍보 수단을 개발하라는 취지입니다.
물론 아무렇게나 주어지지는 않고, 나름 심사를 거쳐 선정합니다. 일정한 금액을 먼저 주고 중간중간에 그리고 끄트머리에 관리를 하는데요, 자부담도 지원금 10%정도를 부담하게 됩니다. 나아가 부가가치세는 전액 (예비) 사회적 기업 부담입니다.
저희 갱상도 문화공동체 해딴에도 2013년 사업개발비 지원을 두 차례 받았습니다. 창원시를 통해 받았는데, 대한민국과 경남도의 예산도 들어 있습니다. 상반기는 지원금 738만원에 자부담과 부가가치세 제각각 82만원씩 해서 902만원, 하반기에는 지원금 372만6000원에 자부담과 부가가치세 41만4000원씩 해서 455만4000원이 됐습니다.
강주마을 들머리에서 놀이를 즐기는 진해샘바위공부방 아이들.
해딴에는 상반기 지원금으로 홍보물 두 가지와 인터넷 홈페이지를 제작했고, 하반기 지원금도 긴요하게 써서 어린이 체험 프로그램으로 개발하고 있는 '해딴에 어린이 캠프' 콘텐츠를 두 가지 구성하고 그밖에 필요한 자료들을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상반기에 제작한 홍보물은 해딴에 여행·체험 프로그램을 주로 알리는 일반인용과, 스토리텔링콘텐츠 개발·제작이나 파워블로거 팸투어 또는 마을 만들기 같은 프로젝트를 알리는 자치단체·기관용 두 가지입니다.
2013년이 지나가면 별로 쓸모가 없어지는 일반인용은 이미 다 썼고요, 지난해는 물론 올해도 쓸 수 있는 자치단체·기관용은 두고두고 사용하고 있답니다.
하반기 지원금은 다 쓰지 못했습니다. 70만원 안팎이 남았는데요, 이런 나랏돈을 쓸 때는 조건을 두루 갖춰야 하거든요. 그렇게 하려면 나름 신경을 쓰고 시간을 내어야 하는데, 지원금이 늦게 나온 탓도 있지만 주되게는 10월 들어서면서부터 해딴에가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바람에 다 쓰지 못한 측면이 더 크다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반기에 나랏돈으로 시범운영까지 마친 프로그램은 두 개입니다. 하나는 휴대전화를 활용한 동영상 찍기고요 다른 하나는 시골 마을 찾아 벽화 그리기(볼런투어: 자원봉사Volunteer+여행Tour)였습니다.
아이들 아니라 어른들도 그렇듯이, 공부하기나 의무를 앞세우는 대신, 놀기와 권리를 앞세워서 진행을 했답니다.
먼저 휴대전화 활용 동영상 찍기입니다. 이제 휴대전화는 어지간하면 다들 하나씩 들고 다닙니다. 그런데 활용을 다 못하고 있습니다. 어른들은 전화·문자, 아이들은 게임에 주로 씁니다. 물론 일부러 모든 기능을 활용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휴대전화로 자기와 공동체의 일상과 역사를 기록하는 일은 나름 재미도 있고 뜻도 깊다고 봅니다.
마을회관으로 들어가는 아이들과 유덕재 선생님.
즐겁게 나가 놀거나 이런저런 행사를 할 때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찍고 편집까지 할 수 있도록 하면 나름 보람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해딴에는 함안 강주에 사는 사진작가 유덕재 선생님을 모시고 진해 샘바위공부방과 연결을 지어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유덕재 선생님은 11월 28일과 12월 5일 두 차례 진해를 찾아 공부방 아이들에게 동영상 촬영에 필요한 기본 지식과 구도 잡는 방법, 촬영하는 대상(행사, 나들이, 일상, 인터뷰 등등)에 따른 기법을 일러줬습니다.
12월 8일에는 유덕재 선생님이 주축이 돼서 마을을 새롭게 만들고 공동체까지 꾸리기 위해 애쓰는 함안 강주마을을 찾아갔습니다. 아침 나절에는 마을회관에서 동영상 찍기를 실습했으며, 마을에서 차려준 따뜻한 밥상을 받고 난 오후에는 마을을 한 바퀴 두른 다음 가까이 대송늪과 둑방을 찾아 동영상 촬영을 했습니다.
바깥에서 진행한 동영상 촬영은 실상이 어땠을까요? 어떤 대상 하나를 두고 줄 지어 서서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유덕재 선생님 지도를 받으며 휴대전화로 촬영을 했을까요? 당연히 아니지요. 원래 취지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유덕재 선생님은 핵심이나 관점을 잡아줄 뿐이었습니다. 여기서 이렇게 찍으면 들판이랑 습지가 함께 어울려 물에 비친 풍경이 아름답단다, 철새들 작은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는 한편 철새 전체도 구도에 넣으면 부분과 전체를 한꺼번에 보여줄 수 있고 그 관계도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등등등…….
대송늪에서.
아이들은 선생님 얘기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나즈막하게 감탄하는 소리를 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은 탁 트인 자연에서 거칠 것 없이 노니는 즐거움이 더욱 좋았습니다.
오른쪽 물 위에 철새들이 있습니다.
그냥 웃고 뛰고 하며 노닐었고 그러는 사이 마음에 들거나 새로워 보이거나 예뻐 보이거나 신기해 보이는 것들에 휴대전화를 들이대고 찍기를 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을 저희 해딴에는 노렸습니다.
사실 아이들이 이렇게 한 차례 교육을 받는다고 촬영 기술이 엄청 늘지는 않습니다. 다만 즐겁고 좋은 추억을 바탕삼고, 휴대전화 동영상 찍기의 기본 정도는 익혀서, 나중에 일상 생활에 한 번 적용해 보고 또 즐거운 기억으로 남겨 이런 기록에 대해 거부감을 갖지 않고 좋아하게 되면 그만입니다.
이런 어릴 적 기억 또는 추억이 아이들 일생에 끼치는 바 영향이 그야말로 작지 않거든요. 당장 잘하거나 못하거나가 목표가 아니라, 이렇게 평생을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 하나를 마련해 준다는 데에 이런 프로그램의 취지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즐거움 보람은 둑방에 가서 더욱 커졌습니다. 아이들은 겨울철 이런 강물과 들판과 갈대 같은 풀들을 마주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냥 단순한 강물과 들판과 수풀이 아니라 서로 잘 어우러지고 그래서 더욱 풍성해져 있는 자연입니다.
아이들은 거의 본능적으로 활짝 피어났습니다. 갈대를 꺾어 놀이를 하고, 강아지풀을 갖고 상대방을 간질이고, 밭두렁을 건너뛰어 넘어가 보기도 하고, 강물 가까이 우거진 물버들 낮은 키 사이로 살살 기어다니기도 하고, 풀밭이 나오면 살그머니 쪼그리고 앉아 네잎클로버를 찾아보기도 하고…….
그러다 강물이 나오면 거기 비친 바위랑 산이랑 정자랑을 보기도 하고 그러면서 조그맣게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잘못해서 아직 덜 마른 뻘흙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고는 울기도 하고, 그러다 자기를 달래주는 동무 손을 잡고 걸어나오다 금세 다시 웃음 짓기도 하고…….
그러다가 어쩌다 생각이 난듯, 휴대전화를 꺼내들고는 동영상을 찍어보기도 하고. 서로 휴대전화 들여다보면서 낄낄거리기도 하고, 또 놀리기도 하고, 그런 놀리는 친구를 뒤쫓아서 뛰어가기도 하고 말씀입니다.
이렇게 하루를 지내다가, 공부방 아이를 비롯한 아이들이 너무 늦어지면 오히려 즐거운 기운이 덜해질 수 있으니까, 3시 조금 넘은 시점에 마치게 됐습니다. 하하. 마지막에는 대표 불량식품인 컵라면을 먹었는데요, 놀다가 늦게 온 친구들은 컵라면만 받아들고 집으로 가야만 했답니다.
다음은 시골 마을 찾아가 벽화 그리기. 12월 15일 찾은 함양 휴천면 임호 마을에는 이미 벽화 그리기가 돼 있었답니다. 해딴에를 비롯해 여러 단체들이 어울려 여기서 볼런투어를 하면서 벽화도 그리고 원두막도 만들고 솟대도 세워놓았더랬습니다. 이번 볼런투어는, 볼런투어의 대중화 가능성을 가늠해 보는 자리였습니다.
앞으로 볼런투어는, 볼런투어를 통해 이득을 보는 마을이 일정 부분을 내어놓고, 전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집단(그러니까 여기서는 해딴에)이 적어도 손해는 보지 않으며, 참여하는 사람들은 최소 경비를 자기가 부담하는 대신 봉사를 하는 보람과 재미 그리고 그 마을에 독특하고도 고유한 맛과 멋을 체득하는 즐거움을 누리면 알맞겠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번 어린이 볼런투어는, 정부 지원금을 경비로 삼고 해딴에가 부분적으로 보탰습니다. 그리고 재료비나 디자인비 그리고 현장 지도비 따위도 모두 나랏돈으로 처리를 했습니다.
이런 경비 지출이 없었기 때문에 참가비 책정을 어떻게 해야 알맞을는지 등은 앞으로 좀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마련해 나가야 하리라고 봅니다.
다만 프로그램 내용 구성과 마을 주민들의 호응도 등은 바로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참가한 아이들이 얼마나 재미나고 즐거워했는지와, 어떤 대목에서 좀더 즐거워하고 어떤 대목에서 좀더 흥미를 느끼는지 등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놀이가 최고였습니다. 어디서든지 말씀입니다. 우물 하나만 갖고도 잘 놀았고 잔디밭 하나만으로도 즐거워했습니다. 어떤 시간과 공간 안에 알맞은 놀거리만 있으면 그만이었습니다. 옛날 아이들이 놀던 거리를 가져와도 좋겠고, 아니면 그렇게 복잡하지 않더라도 간단하게 놀 수 있는 거리를 새로 장만해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마을 한 바퀴 둘러보기도 괜찮겠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아이들에게는 놀이개였습니다. 새롭게 보이는 풍경이 모두 재미있고 신기한 대상이었습니다. 우물이나 개울물이 아이들 놀이개가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이번에 부러 시도하지는 않았는데도, 아이들과 동네 어르신들이 함께 얘기를 주고받고 먹을거리 간식거리를 만들어먹는 일이 벌어졌는데, 이 또한 썩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조금 짜임새 있게 미리 챙겨 진행한다면, 찾아온 아이나 동네 어르신 모두에게 재미있는 일이 되겠다 싶었습니다.
더불어, 이번에는 간단하게 고구마 구워먹기밖에 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아이들이 자기 손발을 놀려 만들어낸 먹을거리라면 무엇이든 맛있어 하고 재미있어 한다는 사실은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이 바로 싸움구경이랑 불구경이라 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커다란 깡통에 불을 붙여 놓고 갖은 땔감을 모아 태우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메인 이벤트인 벽화 그리기는 어땠을까요? 김진성 작가께서 이끌었는데요, 해딴에가 아이들 상대로는 처음 하는 볼런투어다 보니 허점이 두엇 있었습니다.
물에 빠져 거비발싸개를 한 아이 셋.
어른들처럼 알아서 서로 역할을 나눠 하기 어렵다는 점과 아이들이라 옷에 물감을 묻히기 십상이라는 점을 헤아리지 못하고 대비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 옷에 묻은 물감을 씻어내고 닦아내느라 저는 좀 정신이 없었는데, 다음에 한다면 팔토시를 충분하게 준비해야 마땅하겠습니다.
실제 그리기에서는, 물론 미리 밑그림을 그려놓기는 했지만, 처음에는 아이들이 담벼락에 마음대로 다가가서 그리도록 했는데요, 그러다 보니 효율도 떨어지고 밑그림대로 그려지지도 않는 잘못이 생겼습니다.
게다가 그리는 기회가 제대로 나눠지지 않은 측면도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아이들을 하나하나 점검하면서 어떻게 하면 좋겠다 얘기하고 꼼꼼하게 챙기는 쪽으로 바꿨습니다. 그랬더니 효율도 높아지고 그림도 좋아지고 질서도 잡히고 그림 그리는 기회도 고르게 돌아갔습니다.
아이들은 또 자기 그림이 동네를 밝고 환하게 해준다는 사실, 동네 어르신들이 자기네를 반기고 좋게 여긴다는 사실에 가슴뿌듯하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리는 자체에서 느끼고 누리는 즐거움과 재미도 많은 것 같았습니다.
춥다, 좀 쉬었다 하라, 그랬는데도, 해가 기울어 그림자가 자기 키보다 훌쩍 더 크게 자라도록 붓을 놓지 않는 친구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어쨌거나 이번 벽화 그리기에서는 김진성 작가님 고생이 가장 컸습니다. 볼런투어 전날에는 바탕 색칠도 하고 밑그림까지 그려야 했고, 당일에는 아이들 오후 4시 안돼 돌아간 다음 마무리를 했으며 이튿날도 다시 가서 더하고 고치고 메우고를 되풀이하셨습니다.
해딴에는 이번에 시험해 본 두 프로그램을 모두 현실에 적용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휴대전화 활용 동영상 찍기는 당장 올 3월부터 실행 프로그램에 집어넣을 계획이고요, 볼런투어는 아무래도 기본 들어가는 경비가 있기 때문에, 그 대책을 먼저 세운 다음 실행에 옮기려고 합니다. 시기가 그렇게 많이 늦어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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