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태봉고등학교의 참 희한한 졸업식

기록하는 사람 2014. 1. 10.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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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선생님이 졸업생들에게 "성공하라"는 축사 대신 "나중에 부와 권력과 명예를 가지더라도 부디 사람을 짓밟고 무시하지 마라"고 당부하는 졸업식.


지옥같은 학교를 벗어난다는 해방감에 웃고 떠들며 밀가루를 뿌리고 교복을 찢는 대신 선생님과 졸업생, 그리고 학부모까지 서로 끌어안고 펑펑 우는 졸업식.


요즘 세상에서 참 보기 드문 졸업식 광경을 보고 왔다.


마산에 있는 공립대안학교 태봉고등학교의 1월 9일 졸업식이었다. 다른 학교들은 대개 2월에 졸업식을 하지만, 태봉고는 1월 초에 졸업식을 한다. 얼마 전 한겨레 인터뷰에 소개되었던 채현국(79) 이사장이 있는 양산 효암고등학교도 같은 날 졸업식을 했다. 일찍 나가서 스스로 자기 길을 개척하라는 의미다.


알고보니 채현국 이사장과 여태전 교장의 인연도 각별했다. 여태전 교장이 1988년 효암고에서 '서무실 아저씨'로 교직 생활을 시작했고, 거기서 11년이나 재직했던 것이다. 그 때 채현국 이사장의 교육철학을 배웠다고 했다.


내 아들녀석도 이날 졸업을 했다. 제2회 졸업생이다.


여태전 교장선생님의 회고사가 특이했다. 그는 이번 학년을 마지막으로 태봉고를 떠난다. 4년 임기를 마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장 선생님 회고사'라는 이름으로 졸업생에게 다음과 같은 당부말을 남겼다. 영상으로 보시기 바란다.



"오늘 태봉을 떠나는 졸업생 여러분들에게 제가 마지막으로 상기시켜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단 두 줄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먼저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다"는 말과 "당신 삶의 주인공은 바로 당신 자신이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정말 '소중한 사람'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가치와 철학보다도 '사람이 먼저'라는 이 가치를 가슴 깊이 새기시길 바랍니다. 오늘 태봉을 졸업하는 여러분들은 세상 밖으로 나가서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나누고 살다보면, 앞으로 돈 많은 부자가 될 수도 있고, 권력과 명예를 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디 여러분들은 그 돈과 권력과 명예로써 사람을 짓밟거나 무시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지 않는 그 어떤 부와 권력과 명예도 다 거짓이며 허구입니다. 사람을 무시하고 부와 권력과 명예를 얻느니, 차라리 '위대한 평민'으로서 사는 게 백번 낳습니다. 여러분이 이 사실을 분명히 깨닫고 실천한다면, 여러분은 진정 태봉이 낳은 자랑스러운 딸이요 아들이 될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여러분은 진정한 성공을 이룬 것이면, 진정한 행복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진실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대접하고 모시는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 다 함께 손을 잡고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갑시다. 이것이 제가 여러분들에게 드리는 마지막 기도이자 축원입니다."


여태전 교장이 임기를 마치자 경남도교육청은 현 교장이 후임교장 공모에 응할 수 없도록 했다. 그러자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교육청에 항의하기 시작했고, 교육청은 교장 공모 자격을 다소 완화했지만, 여태전 교장은 여전히 응할 수 없게 됐다.


여태전 교장이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이들은 아래와 같은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를 교내에 붙였다.



졸업식이 끝나자 교사와 재학생들이 강당 입구에 도열했다.


졸업생이 한 명 한 명 나가자 모두 끌어안고 운다.


우는 사진 몇 장을 올려둔다. (혹시라도 초상권에 문제가 있다면 곧바로 삭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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