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함양 임호 마을의 도농교류형 도랑 살리기

김훤주 2014. 1. 1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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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양은 지리산 자락에 있는 마을과 그렇지 않은 마을로 나뉩니다. 옛날에는 지리산 자락에 있는 마을이 더 오지였습니다.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자연생태의 값어치가 높아지고 덩달아 오지 마을이 사람들 발길과 눈길을 더 많이 잡아 끌게 됐거든요.

 

대표로는 지리산을 업고 용유담이 앞에 있는 함양군 휴천면 송전마을을 꼽을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용유담을 건널너려면 다리가 없어서 배를 타야 했고 산이 험해 다니지도 못할 정도였지만 시대가 달라지면서 마을도 달라졌습니다.

 

산림청이 2008년 산촌생태 최우수 마을로 꼽은 데서 알 수 있듯, 이런 마을에 나랏돈이 지원되면서 개발이 많이 됐답니다.

 

 

제가 김성효 이장님과 협약을 하고 있습니다.

 

지리산 자락이 아닌 오지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둘레길이 생겼어도 지리산 자락만 대부분 정부 지원을 받습니다. 살려고 들어오는 사람은 줄어드는 반면 나간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았고요, 마을을 찾는 다른 사람들의 발길도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함양군 휴천면 임호 마을이 그랬습니다. 임호마을은 개울 너머로 지리산을 멀찌감치 앞에 두고 있습니다. 마을 앞 도랑은 곧장 서주천에 합쳐져 유림에서 엄천강에 들어갑니다.

 

뒤로 화장산(586m)이 있는데 그 위로 다른 마을은 없습니다. 휴천면사무소와 직선 거리로 6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데도 그렇습니다. 가구는 서른이 넘지 않고 사람은 마흔이 채 안 됩니다. 하지만 마을은 남동향이라 볕이 바릅니다.

 

임호 마을 주민들의 마을 만들기에서 앞서가고 있는 통영 연대도 견학.

 

연대도 에너지 체험 놀이시설을 타보는 임호마을 주민들.

 

이런 마을에서 2013년 도랑 살리기 운동이 벌어졌습니다. 창원에 있는 봉사단체 '꽃들에게 희망을'(대표 김미원)이 앞서고 경남도민일보가 만든 예비 사회적 기업 '갱상도 문화공동체 해딴에'가 함께했습니다.

 

창원 북면 신음마을 도랑 살리기 사례를 살펴보고 "우리도 할 수 있다!" 외치는 임호 마을 주민들.

 

한국생태환경연구소(이사장 양운진)와 수질환경센터(센터장 이상용)가 거들었으며 경상남도자원봉사센터(이사장 신문현)도 힘을 보탰습니다. 낙동강유역환경청과 낙동강수계관리위원회의 '민간단체 수질 보전·감시 활동 지원 사업'이 있었기에 가능했습지요.

 

처음에는 마을 앞 도랑이 상류에 있는 소·돼지·오리 축사 때문에 더럽혀지는 줄로 짐작됐지만 이상용 수질환경센터 센터장은 현장 답사에서 마을에서 나오는 생활하수가 더 문제라고 짚었습니다.

 

임호 마을 생활하수가 흘러드는 지점의 도랑 모습.

 

 

도랑에 바로 흘러든다는 점에서도 문제고요, 다른 원인을 탓하기 앞서 스스로에게 있는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점에서도 문제라는 얘기였습니다.

 

크게 네 가지 방향에서 진행됐습니다. 생활 하수 수질 개선과 물길 내기(물놀이장 만들기 포함), 마을과 도랑 쓰레기 치우기, 그리고 마을 전체를 새롭게 가꾸기(마을 만들기).

 

생활 하수 수질 개선은 흙사랑영농조합법인 EM활성액을 공급받아 쓰는 데서 시작됐습니다. EM활성액에는 미생물이 들어 있고 미생물의 활동과 번식을 왕성하게 하는 물질도 들어 있습니다. 미생물은 더러운 물이나 쓰레기에 들어가 오염물질을 분해합니다.(이런 활동이 자기네 미생물들로서는 먹이를 먹는 일이 해당되겠습니다.)

 

꽃창포 심는 모습.

 

그렇게 오염원 자체도 없애고 좋지 않은 냄새도 잡아줍니다. 이렇게 좋다고 해도 마을 사람들이 처음부터 즐겨 쓰지는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낯설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교육이 거듭되는 한편 조금이나마 써 보는 과정에서 효과가 크게 났기에 사용량이 늘어났습니다.

 

택호가 고태댁인 어르신은 "손주가 아토피가 심했었는데, EM활성액으로 씻고부터는 없어졌어. 지금 집안 곳곳에 쓰고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EM활성액은 몸을 씻을 때나 설거지할 때 써도 좋습니다. 하수 통로나 논밭에도 뿌려지고 거름을 만드는 데 뿌려도 좋습니다. 그런데 이런 EM활성액 관련 교육은 10월을 마지막으로 멈췄답니다.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지요.

 

제대로 뿌리를 내린 꽃창포. 5월 31일 모습. 꽃까지 피었네요.

 

 

생활 하수가 드는 도랑 들머리에는 4월 꽃창포를 심었습니다. 꽃창포도 수질 정화에 한 몫 하기 때문이지요.

 

쓰레기 치우기는 창원 사파고교 학생들이 거들었습니다. 3월과 6월 두 차례 마을을 찾아 버려진 비닐과 농약병과 생활쓰레기들을 걷어냈습니다. 대부분이 일흔을 넘긴 마을 주민들은 점심을 자연 밥상으로 차려 이들을 반겼답니다.

 

 

임호마을 주민들이 마련해 준 점심을 맛있게 먹고 있는 사파고 학생들.

 

동네 쓰레기를 치우러 학생들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마실거리를 사들고 찾아온 박동서 휴천면장.

 

임호 마을은 아직 쓰레기를 태운 자취도 남아 있고 들머리에는 비닐이 잔뜩 쌓여 있지만 전보다 많이 깨끗하다는 느낌이 납니다. 옛날에는 대밭에 쓰레기를 버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조심하는 기색이 뚜렷합니다.

 

있는 쓰레기를 치운 한편으로 버려지는 쓰레기가 줄었으니 당연한 결과입니다. 아직 재활용품 분리수거가 안 되는데 행정기관과 함께 풀어야 하지 싶습니다.

 

꽃창포 심기 전에 도랑에서 걷어낸 쓰레기들.

도랑 물길 내기와 물놀이장 만들기도 했습니다. 굴착기를 불러 토목공사를 해야 했습니다. 만든 뒤 돌보는 일은, 마을 주민들이 나섰어야 하는데, 장마철 상류에서 내려온 모래가 가득 쌓이는 바람에 그래도 물길은 남았지만 물놀이장은 많이 덮이고 말았습니다. 내년 다시 할 때 새로 검토하고 보완해야 마땅한 대목이 되겠습니다.

 

보통은 이렇게 시골 한 마을과 도시에서 오는 팀이 함께하는 사업은 서로가 겉돌기 쉽습니다. 하지만 임호 마을 주민들과 도랑 살리기 주관 단체들은 겉돌지 않습니다. 서로 믿기 때문이지요.

 

도랑 살리기 운동을 '꽃들에게 희망을'과 함께하는 '해딴에'가, 2012년 '버스 타고 함양 속으로'를 하면서부터 자주 만나온 덕분입니다. 경남문화콘텐츠진흥원 '초록문명 지역아카데미 시범 사업' 가운데 하나로 3년 계획이었습니다.

 

 

나름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경남도지사가 바뀌며 문화정책도 바뀌어 '뜬금없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주민들의 믿음과 인정은 보이지 않는 성과로 남았답니다.

 

'꽃들에게 희망을'은 처음 도랑 살리기를 기획할 때 마을 만들기까지 이어가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원을 신청할 때 마을 역사와 문물을 모아 마을 박물관을 만들고 원두막을 세울 계획을 적어넣기도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경상남도자원봉사센터가 해딴에에 볼룬투어(자원봉사Volunteer+여행Tour)를 해 보자고 제안했고요 해딴에는 임호 마을을 두고 계획을 짰습니다. 이런 일은 임호마을 도랑 살리기 운동이 있지 않았고, 이를 통해 마을 주민들과 어우러져 있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었겠지요.

 

윗모랭이길에서 바라본 지리산 주능선.

 

주민들이 반기는 가운데 자원봉사 보람과 여행 재미를 함께 누리는 일이 임호 마을에서 9월부터 11월까지 벌어졌습니다. 함양신협과 신협경남서부평의회 두손모아 봉사단이 몸과 마음과 물건을 보탰는데, 지역사회에서 크게 관심을 보여 임창호 함양군수도 두 차례나 찾아왔답니다.

 

요즘은 마을마다 정자가 하나씩은 있습니다. 임호 마을은 없었습니다. 지을 터가 없었기 때문인데요 마음을 내고 찾아보니 마을회관 앞 샘이 있는 옆자리가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아름답게 휘어지는 아랫모랭이길.

 

솟대나 벽화도 요즘은 흔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임호 마을은 없었습니다. 도랑 살리기를 통해 사람들 눈길과 발길이 쏠리다 보니 생겨났습니다. 여기 벽화와 솟대는 아무 데나 있는 판박이가 아니고 다른 데는 없는 색다른 작품들이지요.

 

마을 앞 버스 정류장 꾸미기는, 다른 데서는 여태 거의 시도되지 않은 작업이었습니다. 어두운 색깔을 덜어내고 도드라지게 할 뿐 아니라 편하게 머물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하고 마을 특징·장점을 담은 사진까지 붙였습니다.

 

 

임호마을에는 여러 장점과 특징이 있습니다. 앞 들판 구송은 의젓한 천연기념물입니다. 마을 들머리는 굽어지는 모랭이가 멋지답니다. 집들과 사람과 연장도 모두 사연을 품고 있습니다.

 

뒤편 화장산은 함양에서 가장 먼저 해가 솟는답니다. 산마루에 오르면 사방으로 모든 산악이 한 눈에 들어온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해을 맞이하러 가는 임호 마을 들판 길은 푸근합니다.

 

 

마을 주민들도 마음이 넉넉해서 눈 앞 작은 이문에 매이지는 않는답니다. 또 정월대보름날 하루종일 펼쳐지는 풍물 길놀이 같은 민속이 여태껏 살아 있는데요, 보통 다른 마을은 다른 사람이 오면 부정 탄다고 꺼리지만 여기는 인심이 푸짐해서 마을 주민 아닌 사람도 함께 어울리게 해 줄 정도랍니다.

 

 

이처럼 지금 임호마을에서 벌어지는 도농교류형 도랑 살리기는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마을 만들기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완성되면 사람들도 많이 찾고 더 나아가 농산물 도농 직거래도 이뤄질 수 있겠습니다. 임호 마을에는 깨끗한 쌀과 고구마, 콩과 팥, 그리고 삼채 따위 채소가 난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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