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뜻밖에 초행도 많았던 최참판댁
기행을 시작한 첫 날은 몹시 무더웠답니다. 가만 있어도 땀이 흘러내리는 한여름 날씨였습지요. 바다나 계곡에서 하는 신나는 물놀이도 아니고, 조금은 재미없고 지루할 것 같은 ‘습지 생태·문화 기행’이라니……. 그럼에도 출발 시각에 맞춰 아이들이 8월 11일 오전 9시 경남도청으로 두런두런 모여들었습니다.
이번 기행은 습지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아보고 깨닫기 위해 청소년을 대상으로 마련한 행사랍니다. 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과 함께하는 습지 생태·문화기행은 11월까지 다섯 차례 진행됩니다.
재단을 후원해 주는 경남은행·농협경남본부·STX 그룹의 직원 자녀들과 함께 하는 이번 기행에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동행합니다.
최참판댁 으뜸 명당 사랑채 누마루에서.
다녀올 때마다 한 번은 전체 진행 상황을 적어서 알리고 다른 한 번은 참가 학생들의 소감을 소개하겠습니다. 첫 날은 하동 최참판댁, 그리고 사천 비토섬과 광포만을 찾았습니다.
많이 알려진 곳이라 다들 한두 번은 찾았으리라 짐작했는데 뜻밖에 초행도 많았습니다. 박경리(1926~2008) 선생의 소설 <토지>에 나오는 주인공이 서희인데 그 아버지 최치수 참판이 거처한 사랑채는 최참판댁 건물 가운데 가장 명당이라 할 수 있습니다.
멀리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 물길이며 너른 들판이 누마루에 서면 한 눈에 담긴답니다. 그 누마루에서 아이들은 섬진강과 지리산에 대해 <토지>에 대해 조선시대 건축에 대해 설명을 들었습니다. 최참판댁을 돌아본 아이들의 소감이 다양합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섬진강변을 지나며 한껏 분위기를 만끽했다. 최참판댁 가는 오르막길을 걸으면서도 최참판댁이 어떤 집인지 전혀 몰랐다. 도착해서 보니 정말 이런 곳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넓은 평야와 섬진강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의 조화가 너무 절묘했다.”(창원경일고교 2학년 박진우)
별당채와 그 앞 연못.
“조선시대 건물을 그대로 되살린 최참판댁은 사랑채 안채 별당 행랑채로 되어 있다. 남자들이 머무는 사랑채 기둥은 하늘을 상징하는 원기둥이고, 여자들이 기거하는 안채와 별당의 기둥은 땅을 상징하는 사각기둥인 것을 알게 되었다.”(창원대방중학교 2학년 박소열)
“최참판댁 건물에는 계단이 있는데 키 큰 하인이 양반을 내려다보거나 키 작은 양반이 하인을 올려다보는 것을 막기 위해 20cm 정도의 계단이 3개가 있다. 그리고 대부분 산신은 남자지만 최참판댁을 둘러싼 지리산의 신은 여자여서 지리산에 오르면 편안해지고 마음이 안정된다고 한다.”(창원 대방중학교 1학년 박주완)
“최참판댁에 와서 보니 어떻게 지어졌는지 알 수 있었고 소설 <토지>가 얼마나 유명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저번에 왔을 때보다 더 자세한 것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창원삼정자초등학교 6학년 이채훈)
한 번 나선 걸음에 한 가지만 제대로 익혀도 훌륭합니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되어 좋았다는 친구도 있고 다시 찾은 길에 자세히 알게 된 것이 있어 좋았다는 친구도 있습니다.
하동 악양의 너른 들판이 습지이고, 그 습지로 말미암아 악양이 <토지>의 배경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신기해했습니다.
2. 에어컨 바람을 이긴 비토섬 갯벌의 매력
점심을 먹고 찾아간 곳은 토끼와 자라 설화 탄생지인 사천 비토섬이랍니다. 이번에 가장 크게 인기를 얻은 곳이기도 합니다. 갯벌로 내려가니 무더운 열기가 한층 가셔져 있었습니다.
너무 더워 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이렇게 탐방하기도 했습니다.
비토섬 갯벌을 담는 참가 청소년들.
에어컨이 시원한 차에서 내리기를 꺼리던 아이들도 점점 갯벌의 매력에 빠져 들었습니다. 이날 설명을 해주신 사천중학교 윤병렬 선생님과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었습니다.
“비토섬이 별주부전의 무대라고 해서 놀랐습니다. 비토는 날아가는 토끼라는 뜻이라 합니다. 목섬은 토끼 아내가 토끼 남편을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거북이와 토끼상이 있는 곳에서 밑으로 내려가면 바다가 있는데 물이 빠지면 갯벌이 된다고 합니다.”(중동초등학교 6학년 신현경)
갯가 소금기 많은 데서 자라는 칠면초 같은 염생식물을 일러주는 윤병렬 선생님.
“나는 그동안 땅과 바다가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비토 갯벌을 보고 새롭게 생각이 바뀌었다. 갯벌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생물이 살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게가 가장 많았다. 돌 사이로 재빠르게 쌩~하고 지나가는 물고기들도 보았다. 정말 갯벌은 바다 생물들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흔히들 식물은 소금에 닿으면 죽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바다와 함께 공생하며 살아가는 식물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안에 소금기를 품은 식물 그리고 밖으로 소금기를 뿜어내는 식물처럼 같은 공간에서도 다들 다른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석동초등학교 6학년 김예지)
“비록 예전에 비하면 개간이 많이 되었지만 바다내음 나는 풍경과 그 속에 사는 소라·게 등의 어우러짐이 나를 만족시키기에 손색이 없었다. 물수제비뜨기 같은 놀이도 하였는데 아버지와 어릴 적에 했었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거창 대성고등학교 2학년 조현욱)
“갯벌에서 조개·게·고동·따개비 등 여러 생물을 봤다. 내가 탐구에 관심이 있어 선생님께 ‘이게 뭐예요? 왜 이래요?’ 하며 질문을 했다. 직접 보고 만지고 설명을 듣고 하니 머릿속에 쏙쏙 들어왔다. 갯벌에 수많은 생명들이 살아 숨쉬는데 걸을 때마다 밟혀 너무 미안하다. 갯벌 훼손은 어느 누구도 하지 않으면 좋겠다.”(진해장천초등학교 5학년 2반 신유민)
“비토갯벌의 모든 것이 신비로웠고 처음 보는 것들도 있었다. 부드러운 갯잔디 요리조리 잘 피해 다니는 게, 수많은 고동과 고동 안에 자리잡은 게들……. 모르면 재미없지만 알면 알수록 신비로운 갯벌이다. 갯벌을 비롯한 모든 자연은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율하초등학교 6학년 신정환)
3. 갯벌생물들을 몸소 누려본 광포만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경남에서 가장 너른 갯벌 사천 광포만이었습니다. 들어갈 때는 바닷물이 가득했던 곳이 섬을 돌아 나올 때는 마치 마술이라도 부린 듯 갯벌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스코프를 통해 갯벌생물들을 보는 방법을 윤병렬 선생님이 일러주고 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맨 마지막에 본 광포만 갯벌이다. 이상하게 날아다니는 생물체가 있었는데 말뚝망둥어라고 한다. 새우같이 생긴 게 뛰어다니는 모습이 신기했다. 망원경으로 보니까 게들이 춤추는 것처럼 보여 정말 귀엽고 재미있었다.”(용남초등학교 5학년 김혜리)
“광포만에는 다양한 생명이 살고 있었다. 여태까지는 책과 인터넷에서만 보고 실제 모습은 못 봤는데 이번에 보니 더 실감이 났다. 환경을 깨끗하게 하는 것에 대해 한 번 더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환경개발론자들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지사지는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라는 의미다. 우리가 만약 생명체라면 하고, 개발하기 전에 한 번 생각해봤으면 하는 말이다.”(구산중학교 2학년 이옥해)
책이나 이론보다 몸으로 익힌 것들일수록 훨씬 힘이 세답니다. 여행은 떠나면 고생이라 하지요. 하지만 그 더위에 나서지 않았다면 얻지 못했을 소중한 것들을, 몸으로 가슴으로 한껏 담고 돌아가는 아이들이 지친 기색도 없이 뿌듯해 보였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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