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습지 기행에서 최참판댁을 먼저 찾은 까닭

김훤주 2013. 9. 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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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람사르협약과 람사르환경재단


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대표이사 고재윤)은 2008년 설립됐습니다. 습지에 관한 국제규약인 람사르협약에 가입한 나라들의 제10차 당사국 총회가 경남 창원에서 같은 해 10월 열리게 된 데 따른 일이랍니다. 


경남도 출연기관인 람사르재단은 이 총회의 성공 개최와 총회 이후 지속적인 환경 경남 브랜드 구축에 목적이 있습니다. 자발적 참여를 바탕으로 하는 환경 보전 실현을 위해 재단은 바람직한 습지 정책을 세우고 습지와 환경에 대한 인식을 증진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경남은행·농협경남지역본부·STX그룹은 출연금을 비롯해 여러 방법으로 재단의 활동을 거들고 있습니다. 지역에 뿌리를 둔 기업으로서 지역 사회에 이바지하기 위해서입니다. 


람사르환경재단은 이들 기업에 대해 고마워하는 마음을 담아 경남도민일보와 공동 주관으로 ‘언론과 함께하는 습지 생태·문화 기행’을 마련하고 직원 자녀를 초청해 올해 다섯 차례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됐습니다. 



참가 청소년들의 습지에 대한 인식 수준을 높이는 한편 람사르재단 홍보도 겸하는 이번 기행은 8월 11일(일) 하동 최참판댁, 사천 비토섬과 광포만의 갯벌을 찾아가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일행을 태운 버스는 이날 오전 9시 경남도청을 출발해 11시 즈음 하동 최참판댁에 가 닿았습니다. 


2. 최참판댁이 습지랑 무슨 상관? 


경남의 남서쪽 하동군은 지리산과 섬진강과 남해바다로 구성돼 있습니다. 지리산으로 차도 기르며 버섯과 산나물 약초 따위도 거둔답니다. 악양천·화개천·횡천강 따위가 섬진강과 만나는 일대 기름진 들녘에서 농사를 짓고, 강가 솔숲에서 물놀이도 즐기지요. 


섬진강을 받아들이는 남해 바다는 때로 거슬러올라 하동읍내까지 재첩이 살도록 만들었습니다. 옛적엔 하동포구 80리 화개 쌍계사까지 뱃길을 마련했고 요즘은 갯가를 매립해 농경지도 만들고 화력발전소도 지었습니다. 


이런 하동에 자리잡은 최참판댁은 소설 속 허구의 산물입니다. 박경리(1926~2008) 선생이 쓴 소설 <토지>에 나오는 주인공 서희의 아버지가 최참판입니다. 


소설에서 최참판댁은 하동 악양 평사리에 있습니다. 이를 따서 하동군이 2008년부터 3년 동안 최참판댁을 지금 자리에 지어 올렸습니다. 


최참판댁 사랑채 누마루에서.


그렇다 해도 최참판댁이 완전 허구는 아닙니다. 가까운 악양면 정서리에 조부자집(=조씨 고가)이 있는데요, 이 옛집과 이에 얽힌 이야기를 박경리 선생이 <토지>에 일부 녹여 넣었다고 합니다. 조금 거칠게 말하자면 최참판=조부자, 최참판댁=조씨 고가 이렇게 되겠습니다. 


이번 프로그램의 주요 목적 가운데 하나는 습지에 대한 인식 증진입니다. 여기에 최참판댁 탐방이 들어 있는 사실을 두고 어떤 이들은 최참판댁=조부자가 습지와 무슨 상관이냐고 여기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최참판댁 사랑채에서는 악양들판이 내려다보이는데, 이 들판이 논밭으로 바뀌기 이전에 원래는 습지였습지요. 그런 자취가 남아 있는 데가 바로 들판 한가운데 동정호랍니다. 


최참판댁에서 내려다보이는 악양들판.


습지를 개간해 만든 논들을 최참판 집안이 소유함으로써 최참판댁과 일대 마을이 형성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악양천이 섬진강과 마주치는 일대에 물기를 머금은 습지를 베풀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일행은 최참판댁에 한 시간 정도 머물렀습니다. 해설사로부터 설명을 듣고 사랑채와 안채와 별당과 사당 따위를 둘러보며 옛적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짐작해 봤습니다. 시원한 누마루에 올라 섬진강과 부부송과 동정호를 한 눈에 내려보는 즐거움도 누렸답니다. 


3. 설화 <별주부전>의 무대 사천 비토섬 


토지장터에서 점심을 먹고 사천시 서포면 비토섬으로 옮겨갔습니다. 설화 <별주부전>이 태어난 곳이랍니다. 충남 태안군 남면 원청리도 <별주부전>이 태어난 동네라는데 어쨌거나 이런 이야기를 품은 데가 곳곳에 있고 그에 따라 사람들이 한 번 상상해 볼 수 있다면 그로써 충분하다 하겠습니다. 


비토(飛兎)섬과 월등도, 별학도, 굴섬, 작은굴섬, 거북섬, 목섬, 까치섬 따위가 있습니다. 비토는 날아가는 토끼, 월등도(月登島)는 달이 떠오른 데인데 여기서 자라 꾐에 속아 용궁까지 갔던 토끼가 우여곡절 끝에 돌아왔으나 달빛에 어린 바다 위 그림자를 뭍으로 잘못 알고 서둘러 뛰어내리다 목숨을 잃었습니다. 


월등도 들머리에서. 갯물이 슬금슬금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토끼섬이 생겼고 토끼 아내는 토끼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다 떨어져 죽어 목섬이 됐습니다. 거북은 용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거북섬으로 남았습니다. 별학도는 자라(鱉)와 두루미(鶴)로 짜여 있습니다. <별주부전> 동물 형상이 여기에 다 있는 셈이랍니다. 굴섬에서 굴은 움푹 파인 굴(窟)이기도 하고 사람이 껍데기를 까서 먹는 굴(石花)이기도 하답니다. 


일행은 월등도 들머리에서 갯벌로 들어갔습니다. 햇볕이 매우 따갑고 무더위도 대단했으나 바람 만큼은 시원하게 불어왔습니다. 


사천시에서 설치한 조형물.


사천중학교 윤병렬 선생님이 안내를 맡았는데요 칠면초와 갯질경이 따위 염생식물을 일러주며 맛보게도 했고, 바닷물이 빠지고 남은 웅덩이로 이끌어 거기 사는 물고기랑 게·조개 따위를 살펴보게도 했습니다. 


윤 선생님은 일대 논이 대부분 옛날에는 바다였고 갯벌이었다고 했습니다. 인간이 필요에 따라 습지를 간척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설화의 탄생지이기도 한 갯벌은 갖은 생물이 더불어 사는 터전 구실을 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어로 활동을 보장해 주고 있습니다. 또 때로는 간척을 허용해 곡식이 자라게도 한답니다. 


이날 바다는 오후 5시 전후에 가장 많이 빠지게 돼 있었습니다. 2시 즈음 섬으로 들어갈 때는 갯벌이 드러나 있지 않았으나 한 시간 가량 뒤 나올 때는 절반 정도 나와 있었습니다. 비토갯벌은 아직 인공의 작용을 덜 받아서 자연 형상 그대로랍니다. 차지고 기름지고 풍성합니다. 


광포만 갯벌. 저 조그만 구멍마다 게가 뽀글거리고 있습니다.


옛날 도로를 만든다고 끊어놓았던 갯벌을 다시 이어 복원도 했지만 원래부터 대부분 갯벌이 산기슭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산은 기슭을 통해 모래와 흙과 자갈 따위를 갯벌로 줄기차게 대주기 때문에, 개흙이 바닷물에 쓸려나가도 언제나 여기 갯벌은 이렇게 풍성하답니다. 


4. 갯잔디가 무성하게 자라는 광포만 


경남에서 갯벌이 가장 많은 데가 사천입니다. 또 사천서는 광포만 갯벌이 으뜸입니다. 광포만으로 곤양천 물줄기가 흘러들면서 맞은편 조도 일대까지 드넓은 갯벌을 풀어놓고 있습니다. 원래는 조도(鳥島=새섬, 섬이었으나 간척으로 뭍이랑 이어졌습니다)에 올라 광포만 전체를 조망하려 했으나 날씨 너무 더워 생략했습니다. 


광포만은 매우 중요한 갯벌이라고 합니다. 자연 그대로여서 보전가치가 높습니다. 갯잔디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게 무리짓고 있습니다. 갯잔디에는 기수갈고동 같은 조그만 생물들이 산답니다. 기수갈고동은 철새들 먹이로 아주 좋습니다. 


멀리 갯잔디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광포만.


광포만이 낙동강 하구나 창원 주남저수지를 찾은 철새들이 순천만으로 갈 때 중간 기착지 구실을 할 수 있는 까닭이 여기 있다고 합니다. 윤 선생님을 따르면 광포만 일대에 스무 가지 넘는 멸종위기종이 삽니다. 많은 생명들이 어우러져 사는 습지인 것입니다. 


윤병렬 선생님은 관찰 도구를 활용해 학생들에게 갯벌 생물들의 움직임을 생생하게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관찰 도구가 없어도 가만히 조금만 갯벌을 들여다보면 여러 움직임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날은 손가락만한 말뚝망둥어들 갯벌을 뛰어다니는 모습이 가장 많았습니다. 가슴·꼬리지느러미가 걷기 알맞도록 진화한 물고기인데, 새들 먹이로도 안성맞춤이랍니다. 이런 갯잔디는 전통 자연 해안선이 그대로 남아 있는 데만 자라지 콘크리트 따위로 망가진 바닷가에는 없습니다. 


이날은 별로 보이지 않았지만, 광포만은 여러 게들로도 이름이 높습니다. 콩처럼 조그만 콩게, 옆으로 길고 좁은 길게, 네모나게 생긴 방(方)게, 한 쪽 발만 굵고 큰 농게, 펄을 잔뜩 묻힌 칠게 따위가 함께합니다. 


게들은 앞발로 번갈아가며 펄을 입에 넣는답니다. 더러워진 개흙을 삼켜 유기물은 먹고 개흙은 다시 깨끗하게 싸내지요. 게들의 바다 정화 활동입니다. 


학생들은 돌아오는 버스에서 이날 하루 보고 듣고 느낀 바를 글로 풀어내기도 했습니다.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개념이나 생각이 아니라 눈·코·귀·입과 살갗으로 겪은 바가 생생하게 표현돼 있을 것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참가 학생들이 쓴 글들을 소개하겠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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