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한지 5년만에 영농조합 실무 총책 맡은 서울 토박이 

유덕재 함안친환경안전농산물영농조합법인 사무국장 


농사 경험도 전혀 없는데다 서울이 고향인 사진작가 유덕재(58)씨가 귀촌한지 5년만인 지난해 1월 영농조합법인 사무국장을 맡았습니다. 


유 국장은 농촌 마을을 내실 있는 공동체로 만드는 데도 관심이 있어서 자기가 사는 경남 함안 법수 강주마을을 탈바꿈시키는 일에도 나서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찾고 주민들이 함께 어울리는 마을로 만들기 위해 벽화도 입히고 해바라기밭도 가꾸고 축제도 마련했답니다. 


퍽 인상적인 강주마을 벽화.


거실에서 명함을 주고받았습니다. 유덕재씨의 명함은 두 겹이었습니다. 첫 장에는 사단법인 경상남도친환경농업인연합회 경남친환경유통사업단 운영지원본부장이 있습니다. 


한 꺼풀 넘기니 함안친환경안전농산물영농조합법인 상호와 사무국장 직책이 나타났습니다. 밑에는 ‘Professoinal Photographers of America/Art Director Yoo duk-jae’라고 적혀 있습니다. 


영판 농사꾼 같은 서울 토박이 


“경남친환경농업인연합회는 1만6000명 회원을 바탕으로 2012년 4월 결성됐고 거기서 함안지부 사무국장을 맡고 있어요. 산하 경남친환경유통사업단은 7월 24일 오후 2시 경남도청 대강당에서 발대식을 합니다. 


창원 농협경남본부 금요장터, 사천 홈플러스 첫째 셋째 수목장터, 창원 내서 삼풍대에서 열리는 둘째 토요일의 푸른내서주민회 알뜰장터에도 참여합니다. 경남도청 구내식당에 친환경 잎채소 공급도 하고요.” 


유덕재 국장. 빨간 자동차는 크라이슬러에서 만든 랭글러라고 했습니다.


“함안친환경안전농산물영농조합법인은 조합원이 96명입니다. 2011년 6월 등록하고 이듬해 9월 경남형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됐습니다. 친환경쌀을 주로 하면서 잎채소·뿌리채소·열매채소도 하고 된장·고추장·간장도 한답니다. 저는 주로 판로 개척과 영농조합법인 총괄 관리 등을 합니다.” 


유 국장은 안경과 곱슬머리를 빼면 ‘영판’ 농사꾼 모습이어서 저는 사진작가 명함이 이채롭게 여겨졌습니다. “저기 적힌 영어는 무슨 뜻입니까?” “거 뭐 미국프로사진작가협회 회원이라는 얘기입니다.” 


그 밑으로 몇 줄이 더 달려 있습니다. ‘국제순수사진작가협회 기술이사’, ‘교육과학기술부 재능기부단체 사진강사’, ‘함안교육지원청 협약단체 사진 강사’. 


‘아 이 사람 경력이 아주 다채롭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에서 인정받는 사진 실력을 갖춘, 농업인단체 실무 책임까지 맡고 있는 ‘농사꾼’으로 보였으니까 말씀입니다. 


제게는 그이가 강주리가 고향이고 도시로 나갔다 돌아와 자리잡고 사는 모양이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고향이 서울입니다. 서울서 태어나 줄곧 살았습니다.” 예상이 빗나갔습니다. “그러면 농사는요?”라는 물음이 절로 나왔겠지요. 


“여기서 처음 지어봤지요. 벼농사를 해 보려 했는데 장비도 없고 할 줄도 모르겠고 못하겠더라고요. 고추도 한 300평 심었는데 또한 안 됐습니다. 태풍 불고 하니까 바람에 가지가 찢어지고 해서요. 농사지을 생각은 접었습니다. 귀농이 아니고 귀촌이지요.” 


경상남도자원봉사센터(센터장 김현주)의 대학생 자원봉사단이 강주마을에 들어와 해바라기밭을 가꾸고 있습니다.


또다른 궁금증이 샘솟았습니다. 강주리, 함안, 경남이 고향도 아닌데, 서울 토박이가 어떻게 이리 멀리 떨어진 데까지 왔을까? 


“오랫동안 농촌을 동경해 왔어요. 서울에서는 상업 사진을 했어요. 스튜디오까지 갖추고 직원도 썼습니다. 카탈로그에 나오는 상품이나 정장 또는 캐주얼을 차려 입은 모델 사진 작업이지요. 


아들이 하나 있는데 대학 공부 마쳐 놓고 직장까지 잡은 뒤에 작품 활동을 해보려고 부산으로 갔습니다. 부산 사람들이 성격이 좋더라고요. 한 2년 했습니다. 


농업단체 일하면서 사진 활동 병행 


2007년 이 마을로 들어왔습니다. 제대로 알았으면 오지 않았겠죠. 공장이 많잖아요. 윤외리 들판에 들렀다가 왔는데, 노을이 아주 좋았습니다. 집이 남향이라 서쪽 오른편 논으로 해가 지고 있었는데, 너무 아름다웠어요. 


노을이 아름다운 그이의 집 거실에서 얘기를 주고받았습니다.


대지가 123평이고 건평은 30평 정도? 집짓는 비용까지 1억원 넘어 들었지요. 당시 돈이 좀 있었는데요, 짓고 나서도 조금 남았습니다.” 


유 국장은 처음에는 농사까지 지으면서도 사진 작품 활동을 주로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유 국장은 자신의 사진과 관련된 지식·감성과 기술 등을 재능기부로 내놓았답니다. 이런 활동이 그이를 농업인단체 활동으로 이어지게 만들었습니다. 


“꽤 유명하신 분인데, 남용현씨라고, 함안친환경안전농산물영농조합법인 회장이세요. 급식센터 공급장 문을 열 때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영농조합 행정을 책임질 사람이 없다고 해요. 직원은 2명이고요. 


주말이나 이럴 때 사진 활동을 많이 했으니까, 사무국장을 해도 되겠다 싶었지요. 2012년 1월 일하기 시작했어요.” 


나름 잘 운영되는 함안친환경안전농산물영농조합법인 


유 국장을 따르면 이 영농조합은 모범적이랍니다. 경남도교육청 학교급식 평가대회에서 함안이 1등을 했습니다. 친환경급식이 가장 잘 되는 지역이라는 얘기입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대부분 농협이나 일반 유통업체가 급식 재료를 공급하는데 함안에서는 농민이 만든 이 단체가 학교급식을 주도합니다. 유 국장의 영농조합은 함안 30개 학교, 함안이 아닌 2개 학교에 학교급식 재료를 대고 있습니다. 


“농민 단체가 직접 하면 문서 작업 등에 어려움이 있지만 농민한테 바로 이득이 간다는 장점이 큽니다. 규모가 크지 않아 도정이나 전처리 시설이 미흡한데 행정 지원을 받아 조만간 해결될 것 같습니다. 전처리란 이를테면 양파나 마늘 껍질을 까는 것인데 그만큼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지요.” 



이밖에 ‘아라가야 도란미(米)’ 상표 등록이나 취급자 인증 같은 일은 유 국장이 주도해서 이뤄낸 일이랍니다. 


도란미는 쌀로 지은 밥이 놓인 밥상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눈다는 뜻입니다. ‘취급자 인증’이란 급식재료를 가져와 학교별로 작게 나눠 재포장하는 일(=소분 작업)을 다른 데 맡기지 않고 직접 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는 얘기입니다. 


기부도 활성화했습니다. 복지회관 같은 데 무농약 쌀을 지원하고 장애인 시설이나 취약계층 어린이공부방을 찾아가 본인 재능 기부도 하고 사진 찍는 출사도 나갑니다. 


실비는 영농조합에서 제공합니다. 10명 남짓에게 서울 구경도 시켜줬습니다. 2박3일 경기도 남양주 아프리카문화원과 종합영화촬영소 견학 등을 하고 동대문·남대문 시장을 함께 돌아다녔습니다. 


강주 마을을 풍요롭게 꾸미는 활동 


유 국장은 ‘재미있다’, ‘즐겁다’는 낱말을 입에 달고 있었습니다. ‘서울 있을 때보다 훨씬 만족스럽다’는 말도 했습니다. 맨날 회의를 하고 날마다 출장이 이어져서, ‘쓰러질까봐 두렵다’고도 했습니다. 까닭은 바로 강주 마을에 있었습니다. 


강주마을을 위해 봉사를 자원한 대학생들. 여기에는 경상남도자원봉사센터(센터장 김현주)의 뒷받침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마을회의에도 잘 안 나갔습니다. 동네에서 사람 취급도 못 받았지요. 하지만 뜻한 바 있어서 마을을 특화 마을로 만들어보자고 했어요. 담벼락에 벽화를 그린다든지 말입니다. 2012년 봄이었는데, 처음에는 마을회의에서 반대가 심했습니다. 


하지만 적극적인 사람 셋만 있어도 하겠다는 생각으로 의지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결국 동의가 됐고 사랑의 집짓기 운동을 하는 해비타트한국운동본부에서 벽화 작업을 무상으로 해주도록 만들기도 했습니다. 


마을 담벼락을 벽화로 꾸미는 작업을 하고 있는 대학생 자원봉사자들.


지난해 가을에는 ‘강주마을 발전 추진위원회’(조문삼 위원장·조현구 부위원장)도 꾸려졌습니다. 그런데 해비타트 벽화 작업이, 서울서 와야 하니까 거리 문제 등으로 미뤄졌습니다. 


강주마을 주민들의 회의하는 모습.

마을 주민들이 해바라기밭을 가꾸고 있습니다. 요즘은 도시든 시골이든 이렇게 공동체를 위해 자기 품을 내는 일이 무척 드뭅니다.


그래서 주민들이 언제 오나 언제 오나 이러던 차에 경상남도자원봉사센터와 경남사회적경제지원센터랑 연결이 되고, 노루표 페인트가 공장이 함안에 있거든요, 거기서 페인트를 원가에 얻고 지역 예술가들 재능 기부를 받고 해서 이번 9~11일 벽화 작업을 했습니다.” 


농촌이든 도시든 자기한테 이득이 없는데도 제 몫을 크든 작든 떼어 내어놓는 사람은 드문 세상물정입니다. 강주 마을도 예전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마을을 위해 금전이나 물건이나 토지를 조건 없이 내어놓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생겨났습니다. 


“마을이 말굽 모양입니다. 산이 ‘ㄷ’자 모양으로 감싸고 가운데 들판이 있고 그 경계에 마을이 걸쳐 있지요. 악귀를 물리치고 행운을 가져온답니다. ‘둘레 산기슭을 따라 나무를 심자’고 제안했어요. 전혀 가꾸지 않아 볼품이 없었거든요. 


그랬더니 ‘아무 조건 없이 써라’고 기꺼이 허락해 주시는 분이 생겼습니다. 물론 보류하신 분도 계시고요. 올해는 마을회의를 여러 차례 거치면서 스스로 결정해 추진해보자고 했는데 해바라기를 하자고 결론이 났습니다. 


80가구 정도 있는데요, 아무 대가 없이 해바라기를 심도록 해준 것이 다섯 분에 5000평 정도 됩니다. 5월 27일 4000평에 마을 주민에 대학생 자원봉사자까지 더해 모종을 심고 씨앗을 뿌렸습니다. 


강주마을 앞들에 심긴 해바라기.


자금도 내놓으셨습니다. 10만~30만원씩 해서 500만원 정도 모였습니다. 정부 지원 받지 말고 스스로 해보자, 자력갱생을 하자, 돈부터 먼저 들어오면 반드시 분란이 생긴다, 등등 의견을 주고받은 끝에 내린 결정입니다. 


옛날에는 여기 집 앞에 종일 있어도 사람을 거의 볼 수 없었어요. 지금은 자원봉사 하러도 오고, 해바라기나 벽화 보러도 오니까 사람이 사는 것 같은 마을 같은 마을이 됐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아직 완성은 아닙니다. 오히려 갈 길이 멉니다. 고작 첫걸음을 옮겼을 따름입니다. 하지만 외부 지원 없이 마을이 스스로의 동력으로 움직인다는 사실 자체는 아주 소중합니다. 


정이 넘치는 농촌 마을공동체 


별난 일이기는 하지만, 귀촌 6년째인 서울 토박이 유덕재 국장이 바로 마을 내부 동력 가운데 하나임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농촌·농업은 물론 경남이나 함안과도 무관한 ‘서울내기’가 어떻게 이런 농촌 마을 살리기를 할 생각을 다했을까요? 궁금했습니다. 


“정이 넘치는 공동체를 많이 구상해 왔었습니다. 세상에 정이 메말라 있으니까요. 또 원래 공동체에 특히 도시빈민운동에 관심이 많았어요, 한창 나이 때 도시빈민을 마주한 적이 있었거든요. 어떻게 발전해 가나 눈여겨봤지요. 


천주교도시빈민사목위원회나 빈민운동에 앞장섰던 제정구 국회의원 등이 경기도 시흥에 보금자리신협 만들어 기술 있는 사람한테 종잣돈을 대주고, 협업농장 등을 하면서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 얼마 전 생협 매장에 갔더니 그 보금자리에서 나온 딸기잼이 굉장히 유명해져 있더군요. 아주 재미있게 봤습니다. 


마을 잔치도 하고 그러잖아요. 언젠가 한 번은 구상했던 대로 도전을 한 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은 끝까지 할 계획입니다.” 


귀촌한 뒤 기억에 남는 일 하나만 얘기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빗길에 미끄러져 허리를 되게 다쳤고 지금도 후유증이 있는데, 그것 빼고는 온통 재미와 기쁨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사람 대접을 받잖아요. 처음에는 서울서 왔다고 제대로 대접을 못 받았습니다. 마을 분들 변화도 재미있습니다. 처음에는 부정적인 분도 많았지만 적극 믿어주는 분들이 있어서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 많이 바뀌셨고 함께 즐거워하시고 기뻐하시는데 저도 기쁨과 보람을 함께 느낍니다. 벽화 작업을 할 때 자원봉사자들 먹이려고 얼마나 싸 들고 오시는지… 좋았습니다. 


마을회관에서 빈대떡을 굽고 막걸리까지 장만해서 내셨어요. 부침개도 만들고 그밖에 마실거리를 내놓으시거나 현금을 주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마을 분위기가 달라졌고 동네 인심이 새로워졌습니다. 서로 나누고 베풀며 커지고 풍성해진 것입니다. 정부를 비롯한 바깥 지원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살 길을 찾아나선 덕분으로 보였습니다. 


50대 들어서 새롭게 열어가는 나날 


마을 들머리 자기 집 앞에 서서 사진을 하나 찍었습니다.


유덕재 국장은 자식이 장성한 뒤 이렇게 새로운 삶을 열었다고 했습니다. 아내는 서울에 살고 있습니다. 아내에게도 자기 일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삶과 가치관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제각각 사는 것입니다. 여러 관점에서 볼 수 있겠지만, 서로가 상대에게 기대거나 간섭하지 않고 독립적이라는 면에서 저는 좋아 보였습니다. 


7월 27일 토요일 오후 5시 강주마을에서 해바라기 축제가 열립니다.(열렸습니다.) 유 국장은 원래는 기부만으로 열려 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을 주민들이 회의를 거쳐 마을기금에서 500만원을 내놓았습니다. 


노래와 풍물과 연주와 낭송 등이 어우러집니다.(그리고 나중에 와서 보니까 돼지수육이랑 막걸리도 풍성했습니다.) 


초대장에는 이런 대목이 있었습니다. 소박한 마을 만들기의 보람이 거기 담겨 있었습니다.


착한 바람이 날마다 찾아오는 강주마을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의 땀과 손길이

마을 어르신들의 노고와 내 고장을 아끼는 그 사랑이

이제는 보람과 웃음과 동행의 이름으로

사람 사는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덧붙임 : 해바라기 축제 행사는 예정대로 27일 풍성하게 치러졌습니다. 마을 들머리 폐교에서요. 모자라는 구석도 여럿 지적이 됐겠지만, 스스로 애쓰고 함께 돕는 모습에서 밝은 앞날이 싹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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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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