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틈새학교로 꾸는 해딴에의 꿈

김훤주 2013. 9. 8.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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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와 학원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고 익힐까요? 물론 100%는 아니지만은요, 학교나 학원이 아이들에게 제 노릇을 다 못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자기 힘으로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갈수록 떨어지는 현실이 그 방증이랍니다.

 

1. 명문 대학 졸업했어도 제 앞가림 못하는 현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경남에는 세계에서 알아주는 조선업체가 여럿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지금 휘청거리기는 하지만, 하나 같이 월급도 세고 다른 대우도 빵빵한 대기업이랍니다.

 

여기 취직한 젊은이 이야기인데요. 그이는 설계가 전공인데 이른바 서울에 있는 명문 사립대학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자기 소속 부서에서 제작한 설계도를 보고 만든 제품이 불량으로 반품돼 왔다고 합니다.

 

설계도를 보고 이렇게 용접했겠지요.

 

확인해 보니 그 젊은이가 설계를 제대로 못한 탓이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납품 기한을 맞추기 위해 부서에서는 바로 연장근로를 해서 ‘불량 수리’를 하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다들 저녁을 먹고 와서 함께 일하기로 했답니다. 젊은이는 남겠다고 했습니다. 동료들은 자기 책임이 크다 보니 혼자 남아 일하려나 보다 여겼습니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사람이 없었습니다. 나무람이나 꾸중은 없었다고 합니다. 당일은 물론 다음날도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며칠 지나 상관한테로 전화가 걸려왔답니다. 어머니였습니다. 아들이 서울 집에 와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묻는 내용이었습니다. 한 젊은이의 첫 직장 생활이 이렇게 끝났습니다.

 

2. 경남도민일보가 만든 사회적기업 '해딴에'

 

경남도민일보가 지역사회에 보탬도 되고 즐겁고 재미있는 일을 해보자는 취지로 지난해 ‘갱상도 문화공동체 해딴에’라는 사회적기업을 만들었습니다. 나름 이윤을 내면서도 사회에 이바지하자는 기업이 사회적기업입니다.

 

 

‘해딴에’는 ‘해가 떠 있는 동안에’를 뜻하는 경상도 지역말입니다. ‘해딴에’에서 ‘어린이·청소년 여행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고 아이들을 모아 함께 길을 떠나는 일을 다달이 한 차례 하고 있습니다.

 

함께 다녀보면 아이들이 무엇이든 스스로 해결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밥과 반찬을 입에 떠넣고 자기 얼굴과 몸을 씻는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먹거나 씻고 나서 뒤처리를 할 줄 모르는 경우도 태반이지요. 간식으로 먹은 과자 봉지나 음료수 병은 팽개쳐지기 일쑤랍니다.

 

3. 스스로 몸을 움직여 뭔가를 만들어내는 즐거움과 보람

 

그래서 단순한 체험이나 놀이는 조금씩 줄이고 대신 작더라도 무엇인가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을 늘리고 있습니다. 8월에는 어느 골짜기에서 문화재를 살펴본 뒤 물놀이를 하는 중간에 밥 지어 먹기를 했습니다.

 

 

밥짓기라지만 지어 놓은 밥을 프라이팬에 옮겨 기름을 두르고 김치랑 다른 반찬과 섞어 볶음밥을 만드는 한편 간단하게 국을 끓이는 정도였습니다.

 

이렇게만 했을 뿐인데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서로 의논하고 일거리를 나누며 협력해야 했습니다. 누구는 물을 떠 오고 누구는 버너에서 불이 꺼지지 않도록 가림막을 쳐야 했으며 어떤 이는 밥을 덜어 치댔고 어떤 이는 볶는 재료들을 섞었고 누군가는 국 끓일 재료를 씻었습니다.

 

서로 맞지 않아 실랑이도 벌였지만 대체로는 순조로웠습니다.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먹고 나서 설거지하고 치우기도 즐겁게 스스로 했습니다. 아이들 대부분은 집에서도 설거지를 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해야 하거나 할 수 있는 일로 여기지조차 않습니다.

 

또 이렇게 해서 먹는 밥은 맛이 좋습니다. 보통은 한 그릇도 먹지 않았을 아이들이 두세 번 밥을 퍼 먹었습니다. 아무래도 자기 노력이 들어갔기 때문이겠습니다.

 

 

4. 학교도 학원도 놓치는 틈새에서

 

이런 아이들을 보면서 틈새학교를 떠올렸답니다.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배울 수 없는 것이지만 실제 삶에는 도움이 되는 기술과 지식과 마음가짐을 익힐 수 있습니다. 학교와 학원의 틈새에서요.

 

먹을거리를 함께 장만하고 설거지도 함께 하며 여러 산천경계를 찾아 속깊은 체험도 하고 또 그날 있었던 일들을 말로 정리하고 글로 남겨두는 그런 활동을 기본으로 한답니다.

 

아이들이 ‘제 몸을 움직여 뭔가 만들어내는 능력’, ‘자기 멋대로보다는 함께 의논하고 협력하는 능력’,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말글로 정리·기록하는 능력’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되지 싶습니다.

 

나중에 프로그램이 완성되거든 지역사회에 내놓겠습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실컷 활용하도록도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지역사회에 공동 자산이 되지 않겠습니까! ^^

 

김훤주

 

<기자협회보>에 9월 4일치에 실은 글을 조금 가다듬고 내용도 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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