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동네 골짜기에도 공정여행은 있다

김훤주 2013. 8. 4.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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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돼지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하던 함양 용추 골짜기

 

11년 전인 2002년 5월 함양 용추계곡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여름을 앞두고 하루 정도 시원하게 지낼 데를 소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주말이 아닌 평일이라 사람은 없었는데도 이상하게 돼지고기 굽는 냄새가 났습니다. 바로 위에 있는 절간 용추사에 올라가 물었더니 한 해 전 여름철에 여기 온 사람들이 고기 구워 먹은 냄새가 골짜기 구석구석에 배여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놀라웠습니다.

 

7월 20일 창녕 옥천계곡에 다녀왔습니다. 일요일인 때문인지 오전 10시 즈음에 닿았는데도 곳곳에 사람들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싸온 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고기 굽는 냄새가 11년 전 용추계곡만큼 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밥이나 반찬이나 술이 담겼던 그릇들을 계곡에서 씻는 이들은 보였습니다. 11년 전 용추계곡에서도 이런 일은 마찬가지 있었을 것 같았습니다.

 

2. 더없이 한산한 지역 주민이 하는 천막가게

 

반면 골짜기 여기저기 자리잡은 밥집은 무척 한산했답니다. 크고 번듯하게 잘 차린 밥집은 그럭저럭 장사가 되는 것 같았지만 동네 주민이 하는 것 같은 포장마차 수준 가게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일행 가운데 여기 조그만 천막가게에서 국수를 주문해 먹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이는 국수 먹는 30분 동안 자기 말고 한 사람이 더 가게를 찾았는데 그조차 마실거리만 딱 일곱 깡통 사갔다고 했습니다. 들어올 때 먹을거리 마실거리 바리바리 싸 들고 오지 않는 이가 그렇게 드물었습니다.

 

낮 두 시 넘고 세 시 넘고 하니까 사람들이 많이 자리를 떴습니다. 골짜기를 벗어나는 이들의 두 손에는 천막과 깔개와 걸상·탁자 따위, 그리고 고기·밥·반찬 담은 통들이 들려 있었습니다.

 

3.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땀 범벅으로 돌아가고

 

골짜기가 시원은 하지만 살짝만 벗어나도 열기가 훅 끼쳐오는 날씨였는데 그이들 들고 가는 무거운 품이 벌써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골짜기 들어올 때도 더위에 찌들어 있었는데, 나갈 때도 적지 않은 짐 때문에 마찬가지로 땀을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4. 군내버스 타고 골짜기 찾았던 기억

 

가만 생각해 봤습니다. 2011년 ‘시내버스 타고 우리 지역 열 배 즐기기’ 기획을 연재하면서 여기 옥천계곡을 찾은 때가 8월 3일이었습니다.

 

아침 9시 40분에 창녕읍내 터미널을 출발해 10시 10분 옥천골짜기에 닿는 버스를 탔었습니다. 몸에는 물병 하나랑 떡가래 두 조각 그리고 신문이랑 카메라랑 수건이 하나 들어 있는 배낭만 지녔었습니다.

 

 

골짜기 위에 있는 관룡사 절간을 둘러보고 중턱에 있는 용선대 석가모니석불까지 갔었습니다. 그렇게 땀에 범벅이 돼서 내려와서는 바로 옆 망한 절터 옥천사지까지 둘러보면서 솔바람을 쐬고 계곡물에 들어가 탁족을 하는 즐거움까지 누렸더랬습니다.

 

그러고는 돌아나오는 길가 가게에 들어가 동동주 한 통과 묵무침 하나와 국수 한 그릇을 주문해 먹었습니다. 이렇게 홀가분하게 놀다 쉬다 먹다 하는 동안에도 자가용 자동차들은 줄곧 밀려들었습니다. 곳곳에 만들어져 있는 주차장은 물론 관룡사까지 이어지는 도로까지 ‘만차’가 돼 있었습니다.

 

5. 자가용에 먹을거리 잔뜩 싸오면 좋을까?

 

그런 골짜기를 벗어나 돌아오는 버스를 탄 때가 낮 2시 40분이었습니다. 에어컨이 팡팡 돌아가는 버스 안은 자가용 자동차 못지 않게 시원했습니다. 무거운 짐도 없어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답니다.

 

먹을거리 마실거리 잔뜩 싸 들고 자동차 끌고 가면 돈이 아껴질 것 같지만 실제는 별로 그렇지 않습니다. 단가는 싸게 먹히지만 장만해 가는 분량이 많아지기 때문이겠습니다.

 

버스를 타고 짐도 단촐하게 해서 가면 고기 굽는 냄새로 골짜기를 찌들게 하지도 않는답니다. 그릇을 씻어 계곡물을 더럽히는 짓도 하지 않고 동네 주민한테 적당히 물건을 팔아주는 보람도 누리게 된답니다. 그리고 가져간 짐을 도로 챙겨 들고 나오는 낑낑거림에서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6. 공정여행이 먼 나라에만 있지는 않다

 

공정여행은 지역도 주민도 자연도 약탈하지 않는 여행입니다. 공정여행은 자기도 좋고 지역 주민도 좋으면서 자연에게는 해코지를 되도록 하지 않는 여행입니다. 이런 공정여행이 좋다지만 대부분은 다른 나라에나 가야 생각이 나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조그만 데도 공정여행은 있습니다.

 

김훤주

 

※ 7월 23일치 경남도민일보에 실은 칼럼을 조금 다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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