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송전탑 밀양시장, 외부세력보다 못한 까닭

김훤주 2013. 8. 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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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자치단체장이 어느 한 편에 서서 다른 편에 있는 지역 주민을 몰아세우는 일에 대해 매우 마땅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일정한 의도를 따라서 특정 지역 또는 견해 주민을 고립시키는 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체장의 권한은 이런 경우 생각 밖으로 막강합니다. 관변단체들이 단체장 뜻을 따라 먼저 움직이고, 자치단체와 관계에서 ‘을’의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는 많은 사람·단체들도 덩달아 그렇게 움직입니다. 물론 단체장 또는 자치단체가 이런 일을 대놓고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지역 사회는 산산조각이 나고 맙니다. 지금 밀양에서 그런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아니 일어나고 있다고 해야 맞겠습니다. 이에 대해 지난 8월 5일 저녁 MBC경남의 ‘라디오 광장’ ‘세상 읽기’에서 한 번 짚어봤습니다.

 

원래는 서수진 아나운서랑 얘기를 주고받게 돼 있었는데, 여름휴가를 떠난 때문인지 다른 분이 제 상대였습니다.

 

1. 권한도 책임도 없으면서 나서신 밀양시장

 

아나운서(아) : 안녕하세요? 밀양 76만5000볼트 초고압 송전탑 건설을 둘러싼 공방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어요. 엄용수 밀양시장이 적극 개입 의사를 밝힌 뒤 표면화된 현상이지요?

 

엄용수 밀양시장 기자회견 모습. 경남도민일보 사진.

 

김훤주 기자(주) : 7월 25일 오전 10시 30분 엄용수 밀양시장님이 경남도청 프레스센터를 찾아 “적극 개입해 사업을 종결짓겠다”고 밝혔습니다. 더불어 “765kV 송전탑 사업은 불가항력이고, 대안도 없다”며 “피해 주민은 생업으로 돌아가고 ‘과장·왜곡된 정보로 갈등을 만드는 외부세력’은 개입을 중단하라”고 했습니다.

 

아 : 그러면서 엄 시장은 ‘보상협의체’를 만들어 정부 보상안과 주민이 원하는 보상안의 간격을 줄이는 ‘직접개별보상’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주 : 직접개별보상은 법적 근거도 없고 밀양시 또는 밀양시장은 당사자도 아니고 주체도 아니라는 문제가 있는데요, 엄 시장님은 “어쨌든 노력을 해보겠다는 얘기”라고 답했습니다.

 

2. 주민들과는 제대로 얘기도 하지 않은 밀양시장

 

아 : 어쨌든 단체장이 적극 나서면 사태가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또 빨라지지 않을까요?

 

주 : 일반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번 엄 시장님의 경우는 지역 주민 편에 서지 않았다는 점에서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고 대립과 분열을 키우게 돼 있습니다.

 

이에 발맞춘 듯이 반대 주민 빠뜨리고 무슨 지원 협의체 띄운 한전. 경남도민일보 사진.

 

아 : 그렇게 잘라 말씀하는 근거가 있는지요?

 

주 : 여태 주민들은 한 번도 ‘돈이 적다’거나 하는 말로 보상을 입에 올린 적이 없습니다. 그냥 살던 땅에 그대로 살게 해달라는 요구를 해 왔습니다.

 

또 철탑 대신 땅에 묻는 지중화나 지금까지 써온 다른 송전선로를 활용한다든지 하는 대안 마련 필요성을 말해왔습니다. 반면 엄 시장은 보상을 말하고 대안은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송전철탑 관련해 지역 주민들을 제대로 만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이미 어느 한 쪽을 배제하고 고사하겠다는 의사가 없는 이상 이렇게는 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한 마디로 상식과 어긋납니다.

 

아 : 2006년 시작된 문제로 알고 있는데요. 올해로 8년째인데……, 엄 시장도 올해로 민선 시장 8년째로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대화 한 번 하지 않았다니 놀랍습니다.

 

3. 이른바 외부세력보다 못한 밀양시장

 

주 : 엄 시장님이 외부세력보다 못하신 대목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이른바 외부세력은 다른 지역에 살면서도 밀양 주민들의 재산·신체·정신적 피해를 걱정하고 근본 원인인 핵발전의 중단·축소를 바라는데요, 그이들은 밀양 현장도 찾고 서울이나 창원으로 나서는 주민들과도 함께했거든요.

 

그런데 반면 엄 시장님은 지난해 1월 이치우 어르신이 분신 자살했을 때 위로 차원에서 한 번 찾아가신 적만 있다고 합니다.

 

밀양 할매 할배들이 이렇게 굴착기 삽날에 들어가야 했을 때 밀양시장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아 : 지금껏 돌아보지 않다가 지금 나선 까닭은 무엇일까요? 중앙정부나 여당인 새누리당의 주문 또는 압력이 있어서일까요? 엄 시장 당적이 새누리당이니까 말입니다.

 

주 : 내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되면 엄 시장님은 현행 법령이 보장하는 3선 12년 임기를 꽉 채울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중앙정부와 여당의 부담을 덜어주는 대가로 공천을 받는 등 정치적 거래가 있으리라고 많은 이들이 짐작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엄 시장님은 ‘뼛속부터’ 새누리당이 아닙니다. 2006년 당선 때는 열린우리당 소속이었지만 열린우리당의 후신 민주통합당이 대선에서 정권을 잃자 2008년 2월 탈당했고, 2010년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으로 옮겨갔습니다.

 

4. 드디어 행동에 나서는 관변단체들

 

아 : 밀양 이런저런 단체들이 8월 1일 기자회견을 했어요. 보상협의체 구성과 외부세력 개입 중단 같은 주장이 들어 있어요. 엄 시장과 마찬가지로요. 새로운 분열의 시작일까요?

 

주 : 서른한 개 단체가 가입해 있다는 밀양시 사회봉사단체협의회가 주체였는데요, 봉사단체들은 대체로 지역 단체장과 친하지만, 특히 이번 기자회견은 차고 찌는 고스톱 같았습니다.

 

밀양 할매 할배들이 이렇게 한전에 둘러싸여 고립돼 있을 때, 같은 밀양 주민을 자처하는 관변단체 대표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더욱이 이번 사태를 두고 김태호 공동대표는 “갈등이 보도되면서 밀양이 지역이기주의 표본처럼 비치고 부정적인 시선이 집중됐다”고 했는데, 이는 중앙정부와 한전의 관점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아 : 해당 지역 주민의 목숨과 밥줄이 달려 있는 생존권 문제를 두고 지역이기주의로 규정하는 것이 그렇다는 얘기지요? 아무리 해당되는 사람 숫자가 적다 해도 먹고 사는 문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권리일 텐데 말씀입니다.

 

5. 옛 마산에 있었던 단체장의 반(反)주민 책동

 

주 : 이런 사태는 이미 옛 마산시에서 한 번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2008년 황철곤 마산시장이 관변단체들을 부추겨 지역 주민을 누르고 제압하고 STX중공업의 소음 공해 공장인 조선기자재 공장을 수정만 매립지에 진입시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아 : 기억이 나네요. 관변단체들이 동원돼 삶터를 위해 STX 진입을 반대하는 수정 주민들을 마산 발전을 가로막는 주범인 양 공격하는 기자회견이랑 관제 집회를 열었거든요.

 

주 : 2011년 창원시가 ‘STX 중공업(주) 수정산업단지 조성 포기 입장 표명’을 하기까지 4년 내내 그랬습니다. 밀양과 마찬가지로 수정 주민께는 ‘집단이기주의’ 딱지가 붙여져 있었습니다.

 

마산 수정만 할매들도 여기 밀양 할매처럼 윗옷을 벗고 투쟁할 수밖에 없는 국면이 있었습니다.

 

당시 시장을 위하던 단체가 관변단체 대부분이 들어 있던 마산발전범시민협의회였는데요, 주민들을 일방적으로 비난했습니다. 일제 악덕 지주 아래 조선인 소작농을 괴롭힌 같은 조선인 마름 같은 존재였습니다.

 

아 : 맞아요.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정 주민들이 갖은 고난을 무릅쓰고 결국 이기기는 했습니다.

 

주 : 저는 엄 시장님과 밀양 관변단체들이 마산 수정마을을 보고 배우면 좋겠습니다. 지역 주민 생존권 요구를 외면하고 이익을 챙기려 하다가는 큰 코 다친다는 것을 말입니다. 황 시장은 나중에 임기가 끝난 뒤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살기까지 했습니다.

 

6. 늘고 있는 밀양 송전탑 주민 위한 연대 손길

 

아 : 밀양 주민들을 거드는 움직임은 오히려 더 많아진 것 같아요. 마산 수정만 매립지 STX공장 진입 사태 때보다 더 커진 모습입니다.

 

주 : 초고압 또는 고압 송전탑과 송전선로 건설로 한전과 분쟁을 겪는 전국 곳곳 주민들이 연대했습니다. 밀양을 비롯해 경북 울진과 청도·구미, 충남 당진 등 모두 6개 지역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이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전력시스템을 위한 초고압 송변전 시설 반대 전국 네트워크’를 결성하고 어제 4일 밀양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노동계 움직임도 있습니다. 엄 시장님 기자회견이 있던 날 민주노총 경남·경북·대구·부산·울산 5개 본부와 건설노조 같은 지역 본부 노동자들이 한전 밀양지사 앞에서 “영남권 건설노동자들은 밀양 송전탑 공사에 동원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7. 주민들 깊은 상처 덧내지 않는 단체장이기를

 

아 : 지금 밀양에 가면 송전철탑 관련 플래카드가 곳곳에 널려 있잖아요? 한전이나 관변에서도 내걸고 해당 지역 주민들도 만들었어요. 당분간 갈등은 계속될 것 같습니다.

 

주 : 예, 플래카드 전쟁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였습니다. 곳곳에 어지럽게 걸려 있었습니다. 이를 두고 한전 쪽에서는 그동안 플래카드는 주민들만 해왔는데 이제는 우리도 적극 나서서 알리게 됐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잘못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버텨오면서 밀양 송전탑 주민들이 깊은 상처를 입었더라고요. 세계적인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를 비롯한 9개 단체가 함께 조사했는데, 10명 가운데 7명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심각하게 앓는다고 나왔습니다.

 

경남도민일보 사진.

 

이는 일반인의 5배에 이르는 수치랍니다. 걸프전에서 포로가 됐던 미군은 48%, 9·11테러를 겪은 미국인은 15%, 쌍용차 해고자는 51%였는데 이보다도 다들 높은 수준입니다. 그만큼 안으로 상처가 깊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상처가 더 커질 것 같습니다. 엄 시장님은 2011년 2월 신공항 유치에 반대하는 지역 주민을 주먹으로 때리고 “×만한 ××”라 욕한 적도 있는데요, 이번만큼은 제발 갈등 키우지 말고 걸림돌도 되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저는 간절합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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