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정옥남 원장은 숲 생태 교육을 왜 못 놓을까

김훤주 2013. 7. 3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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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옥남 현당평생교육원 원장은 2004년 사회복지법인 현당복지재단을 설립한 이래 지금까지 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현당평생교육원은 숲 생태교육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재단에서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기관입니다.

 

사실 정 원장은 숲속자람터어린이집 원장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답니다. 2005년 문을 연 장애 전문 어린이집인데 처음부터 생태교육을 해 왔습니다.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안계마을 가장 위쪽, 마을을 가로지르는 길이 끝나는 산자락에 있습니다.

 

장애-비장애 다함께 자연에서 놀고 논밭에서 일하는

 

논에서는 모내기도 하고 피도 뽑고 허수아비를 만들어 세우고 가을걷이까지 함으로써 밥이 되기까지 모든 과정을 체험하게 합니다. 밭에서는 감자·고구마·상추·배추 갖은 채소를 심고 김도 매고 벌레도 잡고 물도 줍니다.

 

미나리꽝에서 개구리알을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길러 한 주일에 두 차례 하는 요리수업 재료로도 쓰고 간식도 하며 김장까지 몸소 한답니다. 대추·매실·보리수·앵두·자두도 따고 개구리·송사리도 잡고 잠자리·방아깨비 같은 곤충과 며느리밑씻개·고마리·여뀌 같은 여러 야생초도 교재로 삼습니다.

 

또 심심찮게 마주치는 두꺼비·다람쥐·꿩들과도 숲 속에서 함께 놉니다. 태풍에 쓰러진 나무가 있으면 그것을 그네 삼아 타고 놀며 알맞게 비탈져 있는 데 제대로 깔려 있는 잔디는 그대로 미끄럼틀이 됩니다. 자연 생태 속에서 놀이와 학습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생태교육이랍니다.

 

숲 교육 숲 유치원 숲 프로그램 등 요즘 뜨고 있는 이른바 ‘트렌드’입니다. 상처받은 아이들이 다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악순환을 만들어내니까, 그런 아이들에게 쫓기는 경쟁 교육이 아니라 생태적인 감수성을 길러주는 교육이 필요해진 것입니다.

 

생태교육은 장애 아이뿐 아니라 비장애 아이에게도 좋고 필요한 것이어서 그 부모도 많이 좋아합니다. 법령은 장애 전문 어린이집도 정원 40%까지 비장애 어린이를 받을 수 있도록 하지만 다른 장애 전문 어린이집은 비율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숲속자람터어린이집은 그렇지 않습니다. 법령 규정대로 비장애 어린이 40%를 채우고 통합 교육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생태교육 아니라도 장애-비장애 어린이가 함께하는 통합교육은 소통·인정·배려·이해·협동을 키운다는 면에서도 긍정적이며 바람직한 교육 효과까지 내고 있습니다.

 

어린이집은 베이스캠프, 평생교육원은 전진기지

 

정 원장은 여기 어린이집 원장으로 5년 일하다가 현당평생교육원 원장으로 2010년 자리를 옮겼습니다. 숲속자람터어린이집이 기본 바탕으로 베이스캠프에 해당된다면 현당평생교육원은 숲 교육 생태교육을 사회 전반에 확산하고자 하는 전진기지라 할 수 있습니다.

 

“5년 운영하면서 어린이집을 안정시켜놓고 다시 외부 지원 전혀 없이 개척 정신으로 투신했어요. 평생교육원은 주로 숲 교육을 나이 관계없이 하고 있습니다. 어른 대상으로는 교사 직무 연수와 자격증 취득 과정이 있는데 실내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산호동 교육장에서 합니다.

 

생태교육사·생태심리치유사·요리재활상담사·발달진단평가가·특수아동교육사, 그리고 미술·음악·독서치료사 등등 프로그램이 있지요. 아이들 상대로는 생태교육과 심리 치유가 있습니다.

 

가장 주력 분야는 심리 치유와 숲 생태 교육을 합한 생태심리치유입니다. ‘숲 심리 치유 프로그램’입니다. 숲 자체가 아이 어른 구분 없이 편안함을 줍니다. 놀이·운동·원예 이런 것들이 숲 안에서 종합적으로 이뤄지는 치유 활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10년 경남교육청 특별교육 위탁기관으로 선정된 현당평생교육원은 이듬해 ‘숲 유치원’과 ‘숲 학교’ 프로그램 기관으로 환경부 인증을 받았고 녹색창원 21로부터도 ‘찾아가는 생태교육’ 기관으로 뽑혔습니다. 올해는 산림청 녹색사업단 지원으로 학교 부적응 어린이를 위한 체험 프로그램 ‘녹색교육, 녹색마음’을 하며 경남도 지원도 받아 ‘공격성 아동 심리지원 생태체험 프로그램’도 합니다.

 

“영남권에서 민간 기관으로서는 최초로 환경부 인증을 받았고 창원시에서는 지금도 우리밖에 없습니다. 올해는 숲 녹색 심리 치유 프로그램도 인증 신청을 할 예정입니다.

 

장애 어린이, 부적응 학생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한꺼번에 많이 할 수 없고 전문가가 필요한 부분이 많아 ‘일반’ 숲 활동보다 비용이 많이 듭니다. 그래서 환경부 인증 프로그램으로 선정되지 못했는데 많이 설득을 해 놓은 바가 있기에 이번에는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향 마산이 정 원장에게 베풀어준 것들

 

정 원장이 이렇게 생태교육, 그리고 장애 어린이 교육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요? 얘기를 들어보니 어린 시절 기억과 추억이 그이를 이리로 밀고 오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전공이 치료교육이었고 좋은 성과도 냈지만 그 분야에서 일하는 이들이 늘자 지금은 '숲 교육', '숲 심리치유'라는 새로운 분야에 힘을 쏟고 있는 것입니다.

 

정 원장 어린 시절처럼 어린이집이 있는 골짜기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습니다.

 

“숲속자람터어린이집이라는 장애 전문 어린이집을 만들면서도 마산을 고집했어요. 길러준 부모가 비천하다고 부모를 버릴 수는 없잖아요? 제가 마산 본토박이예요. 양덕동, 수출 후문 앞에서 태어났습니다.

 

거기 개천에서 멱 감고 고기 잡고 앞바다에서 놀았습니다. 산에 있는 아카시나무 꿀을 따서 선생님께 드렸던 기억, 봉덕초등학교 뒷산에서 놀았던 기억이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애향심이 너무 커서 창원으로 가지 못하고 끝까지 마산을 놓지 못했습니다.”

 

1957년생인 정 원장은 대학을 나와 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지금 한일전산여자고등학교) 가정 선생님으로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중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이런 시절 고향 마산이 베풀었던 것에 대한 상실감이 여기에 깔려 있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산업화될수록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 많아질 것이다 예측했습니다. 그래서 어린이 상담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대구대학교 특수교육과 정서장애아 전공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대구에서 대학원 다닐 때 임상실험을 했는데 마산·창원·통영에서 치료받으러 오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어요. 창원이나 마산 같은 경남에 이런 아이들을 위한 치료기관이 없었던 탓이지요. 지역 아이들을 위해 일해야겠다고 마음먹고 1991년 창원 양곡에 ‘자람터’를 열었습니다. 양곡이 마산·창원·진해 어디서나 쉽게 올 수 있는 위치거든요.”

 

장애 전담 어린이집을 위한 오랜 노력

 

‘자람터’라는 특수아동교육장과 아동상담실을 했는데 당시는 국가 지원이 없어서(지금은 치료 비용 지원을 국가가 잘해 주고 있는 편입니다) 부모도 지원 요청을 하지 않았고 따라서 부모들이 자부담으로 장애 자녀 교육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1996년 장애 전담 어린이집이 무상으로 운영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창워보다 규모도 작은 경북 구미에 두 군데나 있다는 것이었어요. 여태 자부담으로 치료를 받아 온 장애 어린이와 그 부모들에게 커다란 죄를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남도청 문을 두드렸더니 담당 공무원도 몰랐습니다. 돈이 없어 못한다는 말로 거절했습니다. 어린이집을 지으면 기초자치단체도 일정 부분 지원을 해야 하는데 마산은 돈이 없어 못하고 창원은 아예 안할 것이라고 공무원이 말했어요.”

 

장 원장은 경남도와 마산시에 매달렸습니다. 비판도 하고 공격도 하고 설득도 했습니다. 주변에서는 돈이 많은 편인 창원시가 나을 것이라는 충고도 있었지만 장 원장에게는 고향 마산만 보였답니다. 마산시는 예산이 부담스러워 법인 설립 허가를 쉽사리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그 때 일을 낱낱이 다하자면 한도 끝도 없어요. 마산에 반드시 세우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어요. 그 때문에 김해시에 시립으로 장애 전담 어린이집이 경남 최초로 생겼는데 거기 원장으로 오라는 제안도 거절했습니다. 1999년 김해시종합사회복지관 부설 인당어린이집으로 문을 열어 인제대학교가 운영을 위탁받은 상태였지요.

 

우여곡절 끝에 2004년 사회복지법인 현당복지재단이 설립됐고 건축비 2억4000만원 지원이 나왔습니다. 자람터를 운영하고 여러 대학에 출강하면서 모은 재산으로 사들인 양지바른 산 속 땅 1000평을 법인에 출연한 상태였습니다.”

 

지금 법인 사무국과 숲속자람터어린이집이 있는 내서읍 안계마을 산기슭 끝자락이 거기입니다. 예산 지원을 받아놓고도 문제는 이어졌습니다. 건물을 지을 업체가 나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2004년 12월 31일까지 건물을 짓는 계약서가 마산시에 들어가야 하는데, 해를 넘기면 예산을 도로 내놓아야 하는데, 마지막까지 업체를 찾지 못했습니다. 100평만 해도 되는 건평 규모를 좀더 잘해 보려고 150평으로 늘렸는데다, 길이 좁고 평지가 아니라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었습니다.

 

와서 보고는 고개를 흔들며 돌아가는 판이었습니다. 결국 12월 30일 2억4000만원보다 7000만원 많은 3억1000만원에 하기로 하고 단서 조항으로 개인 아파트라도 처분해 반드시 지불하겠다고 적어넣고서야 계약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분이 고맙습니다.”

 

지금도 노후대책은 ‘시립 요양원 같은 데’

 

정 원장은 자기 아파트를 처분하려고 했답니다. 그런 뒤에는 어린이집에다 일정 공간을 개조해 몸을 누일 공간을 마련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를 알게 된 언니가 ‘여자 혼자 어떻게 산 속에서 밤을 지새느냐’며 4000만원을 후원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법인 이사장과 어린이집 원장을 겸임했습니다. 이사장은 어려울 때 운영비를 조달할 책임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사장은 무보수고, 원장은 월급제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에는 지금도 관심이 없습니다.

 

주위서는 노후 대책도 없이 모은 돈을 기부해 가면서 굳이 할 필요 있느냐고  말렸습니다. 하지만 가진 돈을 누군가에게 필요한 곳에 쓰는 것이 의미가 있지 않나요? 시립 요양원 같은 데가 노후대책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대신 기부를 상당히 많이 하는 편입니다.

 

저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자식들한테 봉사랑 기부를 보여줘야만 나중에 부모들한테 기대지 않는다, 그게 훌륭한 교육이라고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결혼을 하지 않았고 그래서 재산을 물려줄 자식도 없고 만약 자식이 있었어도 물려줄 재산이 없게됐네요.”

 

보통 생각하는 그런 이사장, 그런 원장이 아니었습니다. 조그만 아파트에 살면서 나머지 재산은 자기가 설립한 재단에 내놓았습니다. 재단을 대대손손 물려나갈 자식이나 가족도 없습니다. 이사장으로서 운영에 책임을 지고, 원장으로서 주어진 급여를 받아갈 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이에게는 무엇이 보람일까요?

 

“우리 경남에 장애어린이집이 하나도 없었기에 특수교육 전공자로서 스스로 책임을 느끼게 됐습니다. 숲 교육도 활발해져 있었다면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없는 길을 만든다는, 선구자적인 개척자적인 역할입니다. 남이 안 하는 일을 한다는 데 대한 만족도가 높습니다.

 

물론 가끔씩 월급이 생각될 때면 비참합니다. 80년대 여고에 함께 있었던 동료들과 견주면 월급이 절반에도 못 미칩니다. 일하는 강도와 시간에 견주면 보수는 너무 약합니다. 연봉 2500만원 정도? 대신 일하는 즐거움으로 채웁니다.”

 

자연을 거대하고 위대한 학교로 삼아나가는 즐거움

 

숲 속에서 멈춰 서서는 눈을 감고 오감을 열어보는 아이들.

 

그이가 누리는 즐거움이랄까 보람은 이렇습니다. 처음 숲속자람터어린이집이 땅을 골랐을 때 열에 아홉은 좋지 않다 했지만 지금은 한 사람만 거리가 멀다 하고 아홉 사람이 어떻게 이런 좋은 땅을 골랐느냐 한답니다. 10년 전 높은 안목이 지금 드러나는 셈입니다. 하지만 이는 지엽말단입니다.

 

“자연캠프에 청소년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합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참가비를 받고 참가시킵니다. 가진 것이 많음에도 감사할 줄 모르고 불만 많고 자존감이 낮습니다. 책임감이나 감사함을 좀 가지라고 하는 일입니다.

 

학교 부적응 아이였다가 와서 보고 특수교육을 전공해 교사로 나간 아이, 장애아 재활 치료 기구를 만드는 아이, 교사로 나간 아이, 공부가 제일 쉽다는 사실을 깨닫고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된 아이, 우리 부모도 나 키울 때 이렇게 힘들었을까 생각할 수 있게 된 아이 등등….

 

장애 어린이를 돌보러 왔다가 더 큰 이득을 안고 돌아갑니다. 숲속자람터어린이집을 나와서 다른 유치원 가지 않고 곧바로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들이 올해 처음 6학년이 됐어요. 내년에 졸업을 합니다. 특별한 교육을 받았고 특별한 친구를 두고 있는 ‘자람터’ 출신이라는 강한 자부심이 있습니다. 그런 자부심을 좀더 높여 주려고 내년 2월에 이 아이들 장학금을 주러 갑니다.

 

어린이집 아이들도 사회봉사활동을 나갑니다. 할 수 있는 최대한. 구세군 자선냄비 공연은 해마다 합니다. 추운 겨울 그 쓸쓸한 풍경이 너무 하다 싶기도 한데, 준비한 공연도 하고 저금통에 모았던 돈도 기부합니다. 그냥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님을 스스로 확인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작은 보람이고 즐거움인 것 같았습니다. 정 원장은 자연 그 자체를 자기가 앞장서 커다란 배움터·놀이터로 삼아나가는 데에서 가장 큰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더 이상 지겨울 정도로 원 없이 놀아서 이제는 공부 좀 해보자’ 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하찮게 여겨지지만 놀기가 전혀 헛된 일이 아닙니다. 인성도 좋아지고 관찰력도 높아지고 체력도 좋아집니다. 자기 스스로 자기 시간을 경영할 줄도 알게 됩니다.

 

개미 거미, 별꽃 개별꽃 구분하고 새 울음에서 까치 참새 소리 구분할 줄 안다면 교실에서 하는 ‘아’ ‘어’ 구분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10점무당벌레와 12점 무당벌레 등딱지에 점이 몇 개 있는지 헤아리는 공부에 견주면 교실에서 종이에 연필로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하는 수업은 죽은 교육입니다.

 

이렇게 놀아도 아이들은 방종을 모릅니다. 오히려 건강한 에너지를 뿜어내지 못하면 산만하고 흐트러집니다. 우리 아이들이 집중을 잘 합니다. 제 이야기가 아니라 자람터를 비롯해 여섯 군데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동화 구연을 해주시는 할머니가 그러십니다.”

 

“소작농의 비애는 이제 그만 느끼고 싶다”

 

 

전통 방식으로 보내기를 하는 아이들.

 

생태교육을 하면서 어려움이 없느냐 물었더니 웃으면서 “이제 소작농의 비애를 그만 느끼고 싶다”는 답을 돌려줬습니다. 무슨 뜻인지 몰라 눈을 크게 떴더니 정 원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이들 농사 체험을 남의 땅을 빌려 하고 있습니다. 먹을거리 중요합니다. 강조하는 까닭이 인스턴트식품이 아이들 성격하고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고요, 식량 자급도가 20% 수준인데 식량이 문제가 되면 8명은 굶어 죽어야 합니다.

 

논 30평, 밭 150평 작은 농사인데, 여러 이유로 해마다 비껴달라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면 새로 묵은 땅 개간해야 하는데, 고달프지요. 한 평에 50만 원 정도 하는데, 둘레에 직영 농장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해 달라고 했더니 인간의 한계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어쩌면 생태교육에 나선 계기였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심리치유사와 상담사로서 살아왔어요. 개별 교육도 하고 조기 치료 교육도 했지요. 그런데 인간이 인간을 바꿀 수 있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것을 자연에다 맡기자, 거대한 자연이 치유자가 되고 교사가 되고 학교가 되도록 하자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바꾸고 치유한다는 것은 신이 만든 아이를 인간이 바꾼다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인간의 교만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학교 부적응 학생을 위한 '숲학교'도 설립하고 싶습니다. 동참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더 나이가 들기 전에 하면 좋겠습니다. 지금 대안학교는 박비가 비싸 집안 형편이 되는 아이들만입학할 수 있는 거의 귀족학교입니다.

 

소외계층 아이는 입학하기 어렵고 더구나 예방 차원이 아니라 격리 차원이 많습니다. 문제 행동이 조금씩 드러나는 초기 사춘기(초등학교 시절) 학교 부적응 아이를 위한 대안하교는 전혀 없어 이를 위한 프로그램이 절실하지요.”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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