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기행

여수 갔다 들른 두 밥집, 죽포식당과 해오름

김훤주 2013. 6. 19.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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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때로는 많이 둔합니다. 사진 찍을 일이 있고 무엇인가 적어 놓아야 할 것이 있는데도 그냥 무심하게 지나치는 때가 적지 않습니다. 게다가 아직 맛집 관련해서는 글을 적극 써야겠다는 생각이 그리 크지 않은지라 더욱 그렇습니다.

 

경상도 마산 사는 제가 한 번씩 전라도에서 가서 밥을 먹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음식이 깔끔하고 맛이 좋은지라 굳이 사진 찍을 생각을 했다가도 숫가락을 드는 순간 먹는 데 열중해져 버려서 사진 찍기를 까먹곤 하는 경우가 잦습니다.

 

이번에 여수에 갔을 때도 그랬습니다. 6월 13일 여수 오동도 일대와 금오도를 답사하러 갔는데요, 점심은 죽포식당에서 먹고 저녁은 여수시내 소호동에 있는 해오름이라는 데서 먹었습니다. 해오름은 ‘알콩달콩 섬 이야기’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블로거 임현철님 단골 가게였습니다.

 

 

이미 그 이름이 많이 알려진 죽포식당에서는 6000원짜리 정식을 먹었고 해오름에서는 여러 안주 가운데 2만원짜리 정어리 조림과 함께 막걸리를 주문했습니다. 막걸리는 주로 임현철님이 마셨고요, 저는 주로 정어리 조림에 손이 많이 갔습니다.

 

블로그를 하면 이래서 좋은 면이 있습니다. 사실은 별로 많이 만나지 않은 사이지만 같은 블로그를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편한 마음으로 연락하고 만나서 갖은 얘기를 할 수 있거든요. 이 날도 그랬습니다. 담사 목적을 얘기하고 이런저런 명소와 맛집을 소개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대충 마무리를 하고는 정치 얘기도 하고 사회 얘기도 하고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려는지도 얘기했습니다. 또 임현철님 친한 선배이시면서 같은 블로그를 하는 오문수님도 자리를 함께하시고 저녁도 같이 먹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리를 일어서는데 임현철님이 갑자기 제게 따졌습니다. “훤주 형님! 사진 안 찍었지? 어째 그럴 수 있소! 음식 맛있게 먹었으면 사진도 찍고 해서 블로그에 올려야지 말이야.” 물론 입가에 웃음이 사라지지는 않은 상태입니다. 하하.

 

임현철님은 저보다 안목이나 식견이 훨씬 높고 깊으면서도 제가 나이가 한두 살 많다는 이유로 사석에서는 꼬박꼬박 선배 대접을 하십니다. 처음에는 조금 불편했지만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받아들이기는 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말을 놓지는 않습니다요. ^^

 

그렇습니다. 제가 그렇게 둔합니다. 정어리 조림 씹히는 살점 맛을 즐겼으면서도 사진 찍고 글 쓸 생각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다시 상을 차리고 사진을 찍을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식당 겉모습 사진을 찍고서는 블로그에 한 줄 올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화초도 이렇게 가꾸는 모양입니다.

 

그 약속을 지금 실행하고 있는 셈입니다. 해오름은 일단 음식값이 쌉니다. 그러면서도 나오는 음식이 천박하지 않습니다. 그날 먹은 정어리 조림 같은 경우 간이 잘 돼 있으면서도 원재료 씹는 맛이 좋았습니다.

 

크기가 작아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들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25인승 버스 한 대 정도 인원은 받을 수 있는 정도는 됩니다. 나름 알려져 단체로 오는 손님이 간혹 있다고 주인 아주머니가 말씀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와 더불어 푸짐한 인심도 좋았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전라도 인심이 좋고 경상도 인심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냉정하게 따져보면 그렇게 인심만으로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전라도에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공동체가 아직 더 많이 있고 경상도는 그런 공동체의 남아 있는 정도가 전라도에 못 미칩니다.

 

또 언제나 그렇다고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경향상으로 따져보면, 화폐경제에 편입된 정도가 심할수록 공동체는 많이 해체돼 적게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경상도는 공업을 비롯해 이른바 산업의 발달로 말미암아 화폐경제에 편입된 정도가 심합니다.

 

보기를 들자면, 경상도 창원 밥집에서는 김치 반찬을 하나 내놓아도 그게 돈으로 얼마다 하는 계산이 됩니다. 김치를 구성하는 갖은 요소들, 배추나 무 그리고 고춧가루 같은 여러 양념이나 젓갈 따위가 대부분 ‘돈을 주고 사야’ 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전라도 여수 밥집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김치를 구성하는 갖은 요소들을 ‘돈을 주고 사야’ 하는 일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기르거나 이웃에서 공짜로 얻거나 아니면 서로 물물교환을 하거나 또는 아주 싸게 사들일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해오름 주인 아주머니도 이런저런 반찬을 자꾸 내놓으면서 먹어보라고 했습니다. 심지어는 ‘돌갓=야생갓’으로 담근 갓김치를 내어놓기까지 했습니다. 경상도 인간인 저로서는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었습니다.

 

야생 돌갓 김치라면 아주 귀한 것이고 그렇다면 값이 비싸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하나 집어서 씹어 먹어 보니 그 쫄깃한 정도가 밭에서 나는 돌산갓으로 담근 갓김치랑 크게 달랐습니다. 통통하고 탱글탱글한 정도도 훨씬 더했습니다.

 

그런데도 아주머니는 자기가 여기저기 야산을 돌아다니면서 캐온 돌갓이라면서, 아무 스스럼없이 내어놓았습니다. 자기 노동을 돈으로 환산하지 않는 것이고, 돌갓을 아무 대가 지불 없이 그냥 생긴 물건쯤으로 여기는 자세였습니다.

 

이런 태도는 줄곧 이어졌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블로거 오문수님이 조금 늦게 오셨는데요, 이 분을 위해 밥 한 그릇과 된장국을 따로 끓여 내었지만 한사코 돈을 받지 않았습니다. 정어리 조림 2만원과 막걸리 세 통 값 2만9000원만 받았습니다.

 

게다가 해오름에서는 김치도 팔고 있었는데요, 임현철님이 제게 선물로 1만원 어치를 담아 달라했습니다. 스티로폼 상자에 얼음까지 넣어서 챙겨준 녀석을, 그날 집에 와서 열어보니 그냥 많은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잘 익은 갓김치와 새로 담근 싱싱한 알타리김치가 수북했던 것입니다. 맛도 제게는 좋았습니다. 적어도 경상도에서는, 이렇게 많은 양을 1만원으로 사기 어렵습니다. 사진을 제대로 찍지 못한 것은 죽포식당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밥그릇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ㅗ 깻잎, 양파, 배추김치, 물매기 말린 고기, 호박나물, 갑오징어무침, 낙지젓, 미나리무침, 잡어조림, 갓김치. 밥그릇 오른쪽 옆에는 게를 넣고 끓인 된장국이 있습니다.

 

죽포식당 정식이 값은 6000원이었지만 거기 담긴 음식은 그 이상이었습니다. 모두 다 집에서 만들어서 내놓는 것들 같았습니다. 호박나물도 그랬고 절인 듯 만 듯한 깻잎도 그랬습니다. 미나리 무침은 너무 세어서 먹기 불편할 정도였습니다.

 

배추김치 갓김치도 큼지막하게 통째 나왔는데요, 다른 어디에서 사온 것 같지 않은 투박함과 싱싱함이 있었습니다. 바다에서 나는 해물은 더욱 그랬습니다. 오징어 무침이 나왔는데요, 자세히 살펴보니 그냥 오징어가 아니라 갑오징어였습니다.

 

곁들여 나온 낙지젓갈도 푸짐했는데요 제게는 그보다 더 좋았던 것이 바로 물매기 말린 고기랑 잡어 조림이었습니다. 물매기 말린 고기는 여기서 처음 먹었고요, 잡어는 당연히 양식한 것도 아니고 바다에서 나는 것을 잡아내어 말렸다가 조리해 내놓은 것입니다.

 

미나리는 억세서 다 먹지 못했습니다. ㅎㅎ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습니다. 다른 음식까지 먹어보지는 않았지만 죽포식당에서 차려내놓는 음식은 모두 이처럼 그럴 듯할 것 같았습니다. 맛집 찾아 일부러 걸음하지는 마시고, 여수 들를 다른 일 있으시거든 이 두 밥집 한 번 찾아가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실망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해오름 : 여수시 소호동 725-12, 061-682-3727.

죽포식당 : 여수시 돌산읍 죽포리 879-1, 061-644-3017.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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