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기행

남해 남면집에서 옛날 농주를 맛보다

김훤주 2013. 8. 21.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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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한 술상입니다. 파전과 우무 무침, 고구마 줄기 무침 그리고 농주 한 사발입니다. 남해 읍내 장터 가까운 데에 이렇게 술을 파는 집이 있었습니다.

 

7월 31일 남해대학 평생교육원에서 치러진, ‘경남 문화관광해설사 신규 양성 교육 과정’에 한 말씀 드리려고 갔다가 운좋게 눈에 띈 집이랍니다.

 

아침 9시부터 정오까지 세 시간 동안 내리 떠들었더니 머리도 어질어질하고 목도 까끌까끌하면서 ‘타는 목마름’이 올라왔더랬습니다. 그런 터에 이렇게 허름하면서도 옛날 맛이 나는 술집을 만났으니 운이 좋다고 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안주들도 심심하고 톡 쏘지 않아 좋았습니다. 특히 파전은 볼품은 저렇게 그다지 있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기름기가 많지 않아 좋았는데요. 무엇보다 걸작은 바로 ‘옛날 농주’였습니다.

 

집주인인 할머니가 손수 담그신다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쌀로 고두밥을 쪄서 말리고 누룩을 빚는 일부터 일체를 다 그렇게 하신답니다.

 

할머니는, 제가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은데, 먹고 살려고 이 일을 시작했다고 하셨습니다. 나이 마흔 줄에 남편을 잃고 홀로 되셔서 줄줄이 달린 당신 자식들을 키우셔야 했답니다.

 

그래서 남해군 남면 어느 마을에서 가진 것 하나 없이 읍내로 나오셨답니다. 그로부터 남의 집 살이를 비롯해 갖은 고생을 하셨고 그 끝에 이렇게 가게를 내게 됐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나오신 지가 벌써 스무 해가 넘었다고 하신 것 같습니다만.

 

사실 처음에는 저 막걸리가 목에 탁 걸려 잘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누룩 냄새가 진하게 났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뻑뻑하기까지 해서 술술술 목넘김이 좋은 느낌을 주는 그런 술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래도 시중에 나도는 들쩍지근한 얄궂은 막걸리에 나름 길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한 되 짜리 PET병 두 통을 사갖고 집에 와서 마시는 동안에 그런 생각이 사라졌습니다. 바뀌었습니다. 마시면 마실수록 맛이 새로웠습니다.

 

아울러 술이든 아니든 먹을거리들은 사람 생각이 크게 작용을 하게 마련인데 ‘이것이 바로 살아 있는 누룩을 갖고 전통 방법으로 담근 좋은 술’이라고 여겼더니 정말 좋아졌습니다.

 

앞에서 목넘김이 좋은 느낌을 주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마저 막걸리가 목에 착착 감기는 그런 느낌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냥 차고 시원한 느낌만 주면서 곧바로 식도를 넘어가 버리는 그런 막걸리가 아니었습니다. 말 그대로 농주여서, 그 뻑뻑함이 곧바로 배를 가득 채우는 포만감으로 다가온 것이었습니다.

 

 

막걸리 한 모금 입에 물고 이리저리 돌아봤습니다. 바깥쪽에는 이렇게 옥수수가 달려 있었습니다. 아마 나중에 씨앗으로 쓰려고 말리는 것 같았습니다.

 

 

안쪽에는 또 엄나무 자른 가지가 두 개 묶인 채 달랑거리고 있었습니다. 엄나무는 아시는대로 척사(斥邪)-삿됨, 삿된 기운을 멀리 쫓아내는 구실을 합니다.

 

 

그리고 할머니 파전 부치고 하는 부엌 머리에는 프라이팬들이 얌전하게 나란히 걸려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할머니 성품이 깔끔한 것 같다고 짐작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보기 좋았습니다. 할머니랑 두런두런 이런저런 얘기 나누면서 한 시간 남짓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습니다.

 

언제 남해 가는 길 있으시면 한 번 들러 보시지요. 아스팜탄 따위 인공 감미료를 넣어 만든 시중 막걸리에 길든 입맛에는 거슬리겠지만, 말 그대로 ‘옛날 농주’의 스러지지 않은 참 맛을 알려주는 그런 술이었습니다.

 

 

할머니한테 한 잔 드시라 권하기도 했는데요, 이렇게 술을 담그는 할머니가 정작 당신은 술을 못 마신다 그러시더군요. 하하. 마지막 한 가지, 술값이랑 안주값은 아주 헐했답니다. 막걸리 한 되 6000원, 파전 하나 3000원.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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